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87)
신마의선-187화(187/500)
신마의선 (187)
물론 그에 따른 반응도 즉각적이었다.
“미쳤어?”
“아서라!”
한설화와 초악량이 곧바로 반대했다.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범계위를 잘 아는 두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무심과 능소밀 역시 마찬가지.
다만 대놓고 감히 반대할 수 없어 눈빛으로 초악량과 한설화를 응원할 뿐이었다.
이처럼 격렬한 반대를 예상치 못했는지 범계위는 순간 당황했다.
“왜 이래? 나 범계위야. 강호 제일의 해결사 범계위.”
그런데도 아무도 호응해 주는 이가 없자 범계위의 눈빛이 대번 험악해졌다.
“방법이 있으세요?”
그나마 유일하게 단악선만이 기대 어린 눈으로 범계위를 향해 물었다.
“물론.”
범계위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가서 데려오면 돼.”
“어떻게요?”
“잘 다독이고 타일러서 설득하는 거지.”
실제로 초악량과 한설화만 제외하면 지금까지 그 누구도 설득에 실패한 적이 없는 범계위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죽은 사람은 논외로 둔 계산이겠지?”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가 뜨끔했다.
한설화의 눈이 가늘어졌다.
“거절하거나 설득에 실패하면?”
“걱정 마. 그래도 성공률은 변함없을 테니까.”
“살인멸구로?”
“어? 으음…….”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는 범계위의 모습에 중인들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납치는 안 돼요.”
단악선의 말에 범계위가 황급히 변명했다.
“아니, 납치가 아니라…….”
그러나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헛기침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협박도 안 되고요.”
보다 못한 능소밀이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 나쁜 소문은 좋은 소문보다 더 빨리 퍼지는 법입니다. 이제껏 힘들게 호의적인 여론을 형성했는데, 신마의가가 의원들을 납치해 부린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능소밀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군요.”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사무심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차라리 제가 가서 협상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협상이요? 어떻게요?”
단악선의 반문에 사무심이 인자한 미소로 대답했다.
“자고로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건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자존심 때문에 돈으로 움직이지 않으신다고…….”
“만약 돈이 통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건 제시한 금액이 틀린 것이지요. 그럴 때는 금액이 적은 게 아닌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의원으로서의 신념을 돈으로 사려 하다니……. 그건 그분들을 모욕하는 행위가 아닐까요?”
“그런 생각 자체가 아예 들지 않도록 막대한 돈을 안기면 됩니다.”
단악선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사무심을 바라봤다.
아무리 사람이 인자하게 바뀌어도 수전귀야는 수전귀야.
돈에 대한 맹목적인 신념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래서는 의가의 수익금만으로 감당이 안 될 텐데요?”
단악선의 반문에 사무심이 빙그레 웃었다.
“문제없습니다. 신마상단의 재원을 쏟아부으면 되니까요.”
“네? 하지만 그래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거 아닌가요?”
“어차피 신마상단도 곡주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등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한 사무심의 대답에 단악선과 주초운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 모습이 단악선은 더 당황스러웠다.
할 말을 잃은 단악선이 고민하길 잠시.
이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안 돼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서 있는 사무심을 향해 단악선이 쓰게 웃었다.
“돈에 신념을 꺾는 의원이라면 당장 저부터가 그분을 신뢰하지 못할 거 같아서요.”
지극히 단악선다운 대답에 사무심이 무언가를 말하려 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 부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선선히 수긍한 사무심이 물러서자 이번엔 능소밀이 나섰다.
“정보력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정보력이요?”
“네.”
능소밀이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설명을 이어 갔다.
“탈탈 털어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습니다. 주변 인물을 활용해 상대 의원을 수소문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구린 부분을 파헤친 다음, 이를 빌미로 우리 쪽에 합류하도록 권유하는 것이죠. 만약 먼지가 안 나온다? 그럼 터는 방법을 달리하면 그뿐입니다.”
“…….”
단악선이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자 능소밀이 재빨리 말했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나쁜 소문을 흘려 주변으로부터 철저히 고립시키는 거지요. 그렇게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로 내몬 다음, 호의를 베푸는 척 손을 내밀면 그 어떤 의원이라도…….”
단악선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지자 능소밀의 음성에서 점차 자신감이 사라졌다.
“하아.”
결국 단악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방식의 회유가 협박과 뭐가 다르죠?”
능소밀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단악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비난의 눈빛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면 풍류고 남이 하면 바람이라더니…….’
그렇다고 대놓고 불만을 드러낼 수도 없었다.
어쨌거나 신마곡 생태계에서 소적산을 제외하면 그가 가장 낮은 먹이 사슬 구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능소밀이 풀 죽은 얼굴을 한 채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렇다 할 마땅한 의견이 없자 단악선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그런 단악선을 위로하듯 주초운이 말을 건넸다.
“전통을 지닌 의가가 오래 유지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본래 하나의 의가가 지역 내에 자리를 잡는 데에는 사실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오히려 지금의 신마의가 같은 경우가 무척 이례적이고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었다.
개업과 동시에 이처럼 환자들이 몰리는 경우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을 거쳐 자연스럽게 구축된 수요와 공급의 균형.
이를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운영이 의가를 지탱하는 기본 골자였다.
단악선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의원들을 어떻게 영입하지?’
쉬운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당장 의원의 숫자를 늘리는 건 풍진성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진성의가를 일구기 위해 풍진성이 쏟아부은 노력을 아는 까닭이다.
현재 이곳에 파견된 세 명만으로도 나름 풍진성이 힘을 다한 것일 터.
여기서 한 번 더 부탁을 한다면 아예 진성의가를 닫아걸고 모든 의원들을 데리고 이쪽으로 합류할지도 몰랐다.
‘풍 아저씨라면 그러고도 남지.’
그런 면에서 풍진성도 누구 못지않게 외골수 기질이 강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그러고 보니 눈앞의 주초운도 그리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았다.
어찌 보면 뛰어난 의원이 되기 위해 그런 기질이 필요한 걸지도 몰랐다.
그러다 문득 번쩍하고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잠깐?’
협박, 납치, 회유…….
이 모든 걸 제외하고 의원들이 혹할 만한 조건이라면?
딱 하나가 있었다.
“제 의술을 공유하면 어때요?”
“……!”
장내는 일순 침묵에 잠겼다.
주초운을 비롯한 모두가 경악한 얼굴로 말을 잇지 못한 것이다.
그러기를 잠시.
이윽고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주초운이었다.
“사실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없는 게 확실합니다. 저만 해도 단 의원님을 만나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달았으니까요. 눈이 멀지 않은 이상, 단 의원님의 실력을 확인하면 앞다투어 이곳에 눌러앉으려 할 것입니다.”
그만큼 의술에 대한 의원들의 집착은 무공에 대한 무림인들의 열망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사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제가 괜찮은 의원들을 추천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요?”
반색하는 단악선을 향해 주초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 중원을 떠돌며 저보다 많은 의원을 만나 본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중에는 실력이 있으나 아직 의원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거나, 명성이 부족해 환자들이 찾지 않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을 불러들이면 어떻겠습니까? 그들이라면 당장 환자를 맡아도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실력만큼은 확실하니까요.”
“아! 장명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여행을 계속해 왔다고 하셨죠?”
고개를 끄덕인 주초운이 걱정을 담아 되물었다.
“그래도 다만 마음에 걸리는군요.”
“네? 뭐가요?”
“단 의원님은 정말 괜찮으십니까? 의술을 공유하는 것 말입니다.”
조심스러운 마음을 표정으로 드러내는 주초운을 향해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공개할 생각이었는데요, 뭐.”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가 놀라서 외쳤다.
“응?”
“뭐라고?”
“언젠가는 공개하려 했다니?”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단악선과 함께해 온 그들이었다.
그런 만큼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의술을 단악선이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단악선의 말에 더욱 놀란 것이다.
“제가 부모님의 의술을 정리하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성수의록과 생사의록이라 명명된 방대한 양의 의서와 거기에 딸린 온갖 임상 치료 기록.
단악선은 틈나는 대로 그 안의 내용을 숙지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고 있었다.
부모님의 유산인 의서를 요약하고 세분화하여 집대성하는 작업.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하루도 빼놓지 않는 단악선의 주요 일과 중 하나였다.
“그 작업을 모두 마치고, 제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하면 그 안의 내용들을 세상에 공개할 생각이었어요.”
범계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공개? 전수도 아니고 그냥 공개한다고? 아무런 대가도 없이?”
“네. 그걸 위해 정리를 하는 거였거든요.”
단악선이 덧붙였다.
“물론 저 스스로 의술을 갈고닦기 위해서인 목적도 있지만요.”
그 말에 초악량과 범계위가 침음했다.
“아무리 욕심이 없다지만 어떻게 그런…….”
“그렇다고 해도 그건 너무 아깝지 않으냐?”
지금까지 쏟아 넣은 단악선의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단악선이 배시시 웃었다.
“제가 얼마나 욕심이 많은데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하는 두 사람을 위해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사실 의술을 독점해 정점에 서는 건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제가 진정으로 꿈꾸고 바라는 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욕심에 불과하죠.”
잠시 뜸을 들인 단악선이 자신의 진짜 목적을 밝혔다.
“부모님의 의술과 제 연구를 공개해서 세상의 의술을 진일보시킬 거예요. 세상에 의술이 존재하는 한, 두 분의 업적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거고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단악선이 쐐기를 박았다.
“무엇보다 공개된 의술을 연마한 뛰어난 의원들이 세상에 나타날 거예요. 그들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테고요. 사람을 살리는 것만큼 큰 욕심은 없잖아요.”
장내에 무거운 정적이 자리 잡았다.
이 자리에 모인 어느 누구 하나 그 의견에 반대할 수가 없었다.
달리 반박할 여지도 없었을뿐더러, 확고한 신념으로 가득한 단악선의 눈빛은 인세의 그것을 넘어 경이롭게 느껴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 정적이 깨어진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정적을 만들어 낸 단악선 본인에 의해서였다.
“물론 다 정리하려면 십 년은 넘게 걸리겠지만요.”
그렇게 말한 단악선이 주초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일단 제게 주 의원님께서 추천할 분들의 명단을 주시겠어요? 그럼 몇 가지 선물과 함께 그분들께 초대장을 보낼게요.”
“선물이라면…….”
“그분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임상 기록과 치료법이요.”
“아! 그거면 확실할 겁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주초운의 행동이 더욱 공손해졌다.
이로써 새로운 의원을 충원하는 문제는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단악선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낸 것이다.
‘이분은 세상에 내려진 선물 같은 분이다.’
단악선을 보는 모든 이가 같은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