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88)
신마의선-188화(188/500)
신마의선 (188)
신마의가가 개업한 지 석 달째.
중원 각지에서 신마의가를 찾아오는 의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전설적인 의원이었던 신의와 마의.
두 사람의 진전을 이었다는 단악선의 존재는 그만큼 의원들에게 있어 호기심과 경외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단악선이 직접 초청 서한에 임상 기록까지 첨부하자 이를 거절할 수 있는 의원은 많지 않았다.
그중에 단악선과 의술을 겨뤄 신마의선을 꺾었다는 명성을 얻기 위해 찾아오는 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하나같이 일관된 부분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의술에 관해서만큼은 진심이라는 점이었다.
단악선의 의술을 겪어 본 이들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신마의가에 더 머물기를 자청했다.
그렇게 환자들을 분산할 수 있는 충분한 의원이 수급되자 단악선은 더 이상 이전처럼 밀려드는 환자로 인해 몸살을 앓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비단 신마의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의가가 자리 잡은 무위 역시 마찬가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그런 무위의 변화를 이끈 것은 신마상단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위로 몰려들었다.
환자와 가족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이들.
거기에 뒤늦게 합류한 사파인들까지…….
덕분에 시장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고, 거리에는 활기가 넘쳤다.
게다가 분주한 곳은 시장과 거리뿐만이 아니었다.
무위 외곽 지역.
본래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터였지만 지금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마을의 경계석 근처에 위치한 포목점을 중심으로 하나둘씩 건물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무위의 목수들과 인부들도 밀려드는 일거리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여기도 약방이 들어선다며?”
자재를 나르던 인부의 말에 기둥 위로 서까래를 올리던 다른 인부가 곧장 대답했다.
“약방만 벌써 열 곳째인가?”
“뭐, 우리야 일거리도 많고 돈도 많이 주니 좋지.”
“이게 다 신마상단이랑 신마의가 덕분이지.”
“신마상단이라……. 이럴 게 아니라 나도 이참에 서역 말이나 배워서 신마상단에 취직할까?”
“이 사람아. 그건 아무나 하는 일인 줄 알아?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라 했네. 괜한 공염불 말고 거기 줄이나 단단히 붙들어.”
동료의 핀잔에 자재를 옮기던 인부가 아쉬운 표정으로 뒤쪽을 힐끗거렸다.
멀리 공사 현장 뒤로 지나가는 일련의 무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괴상한 모양의 수염과 벽안(碧眼)을 지닌 사내들.
스무 명 남짓한 인원으로 구성된 서역 상단이었다.
전에는 더없이 낯선 광경이었지만 최근 들어 서역 상인들을 조우하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였다.
“또 한바탕 난리가 나겠구먼.”
“무슨 난리?”
“아 왜, 신마단이랑 독계산 말이야. 지난번에도 저들끼리 한바탕하지 않았나.”
“아, 그거?”
상단에 할당된 물량에 만족하지 못하고 두 상단이 내기를 해 한곳에 물량을 몰아주기로 했다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자 주먹다짐으로 번진 사건.
다행히 늦기 전에 무위의 머물던 무인들이 진압해 망정이지 하마터면 유혈 사태로 번질 뻔했다.
공자의 도리를 배워 먹지 못한 불학무식(不學無識)한 서역의 홍모귀(紅毛鬼)들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런 식으로 사고를 치곤 했다.
“그나마 무림인들이 있기에 다행이지 어쩔 뻔했나 그래.”
“누가 아니래. 처음에는 걱정했는데, 이제는 그들 덕에 마을의 치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다니……. 이래서 사람 일이라는 게 모르는 거야.”
“그래도 저들 덕에 장사하는 사람들은 노났다고 하던데?”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는 돈을 펑펑 쓰고 가니 좋아할 수밖에.”
먼 거리를 여행해야 하는 특성상 서역 상인들은 술과 식사, 여흥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긴 여정 내내 그들이 보는 거라곤 메마른 사막과 황량한 벌판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우리 단 의원님은 괜찮으시려나?”
“단 의원님이 왜?”
“환자들이 엄청나게 몰려든다며? 그분 성품상 환자를 내칠 리는 없으니, 그러다 무리해서 몸이라도 상하면 어쩌나 걱정이 돼서 하는 소릴세.”
“아이고, 이 사람아. 그게 언제 적 이야긴데.”
“지금은 환자가 줄었나?”
“아니. 훨씬 늘었지.”
“그러면 더 걱정 아닌가?”
“환자만큼 의원들도 넘쳐 난다더군. 그래서 최근에는 중한 환자만 돌보고 계신다고 하네.”
“그거 다행스러운 일이군.”
“아무렴. 단 의원님 덕택에 신마의가와 신마상단이 존재하는 건데 당연하지. 그분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언제 요즘 같은 좋은 시절을 누리겠나.”
그렇게 한참 대화를 나누던 인부들의 시선이 마을 입구 쪽으로 향한 것도 그때였다.
갑자기 터져 나온 고성 때문이었다.
“이 더러운 늙은이가 감히 내게 흙탕물을 튀기다니!”
사십 대 중반 정도 되었을까.
한눈에 봐도 성질 더러워 보이는 사내와 그 앞에서 연신 사과하는 노인의 모습이 인부들의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아무래도 무림인 같지?”
“등에 메고 있는 도갑(刀匣)을 보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저렇게 큰 칼을 어디에 쓰겠나.”
“저 눈빛 좀 봐. 저러다 사고 치는 거 아닌가 몰라.”
인부들이 우려를 금치 못하는 사이, 노인이 사내를 향해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미안하오. 그렇게 갑자기 끼어들 줄은 내 미처 몰라서…….”
“그럼 이게 내 탓이라는 건가?”
사내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떠올랐다.
“왜? 이제 사는 게 그만 지겨워지셨어?”
사내의 비아냥에 노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반면 사내의 얼굴에 맺혀 있던 웃음은 더욱 진해졌다.
“뭐야? 그 건방진 눈깔은? 정녕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늙은이로군.”
사내의 살벌한 기세에 주변 사람들이 멀찍이 물러섰다.
섬뜩한 눈빛.
그 너머로 일렁이는 살기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노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자네는 이곳 무위의 율법을 따르지 않을 셈인가?”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히죽 웃은 사내가 등 뒤로 손을 가져갔다.
스릉.
도갑을 벗어난 커다란 칼이 나신을 드러냈다.
끝이 뾰족하게 생긴 독특한 형태의 거첨도(巨尖刀)였다.
노인이 헛바람을 들이켜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런 그들을 향해 사내가 보란 듯이 으스댔다.
“사람을 몰라보고 함부로 혀를 놀리면 어찌 되는지 똑똑히 봐 둬라.”
사내가 칼을 치켜들며 소름 끼치는 웃음을 말아 올렸다.
“걱정 마. 죽이지는 않아. 대신…….”
커다란 칼이 그대로 노인의 어깨를 향해 떨어져 내린 것도 그때였다.
“팔 하나만 받아 가지.”
사람들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마른하늘의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애꿎은 시비에 휘말린 노인 역시 마찬가지.
“……!”
난데없이 들이닥친 재앙에 노인이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런데…….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끔찍한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슬쩍 눈을 뜨자 한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눈앞의 상대가 휘두른 거첨도를 움켜쥔 채 그가 말했다.
“가십시오, 노인장.”
“고, 고맙네.”
노인은 뒤늦게 자신을 구해 준 인물이 얼마 전에 새로 포목점을 차린 사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둘러 자리를 뜨는 노인과 달리 거첨도를 휘두른 사내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아무리 힘주어 칼을 잡아당겨도 옴짝달싹 하지 않았던 것이다.
‘빌어먹을!’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그러나 정작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눈앞의 사내였다.
예리한 칼날을 맨손으로 받아 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신위.
게다가 깊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서늘한 눈빛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보통내기가 아니다!’
무인의 본능이 끊임없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그만큼 더없이 위험한 분위기를 지닌 자였다.
상대가 불쑥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섬전도(閃電刀) 왕등. 맞나?”
“그걸 어떻게……?”
거첨도를 움켜쥔 사내가 피식 웃었다.
“이렇게 눈에 띄는 무기를 지닌 자는 흔치 않으니까.”
“그러는 당신은 누구지?”
왕등의 질문에 곡운경은 굳이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비무 상대를 찾아 중원을 떠돌던 때에도 안중에도 없던 상대였기 때문이다.
“이곳 무위의 규칙을 알려 주지.”
자신을 무시하는 곡운경의 태도에 왕등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곡운경이 말을 이어 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인은 일반 백성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직접 위해를 가하는 걸 포함해 위협을 가하는 것도, 불쾌하게 해서도 안 되지.”
곡운경을 노려보던 왕등이 빠드득 이를 갈았다.
동시에 그의 다른 손이 품속에 들어갔다 빠져나왔다.
그 손에는 어느새 푸른빛이 감도는 비수가 들려 있었다.
한눈에 봐도 치명적인 극독이 발라져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눈살을 찌푸린 곡운경이 손을 뻗어 허공에 그려 낸 동심원.
그 두 개의 궤적에 걸린 비수가 거짓말처럼 왕등의 손을 벗어나 곡운경을 향해 빨려 들어간 것이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공수탈백인(空手夺白刃)의 수법.
비장의 한 수가 이처럼 맥없이 와해되자 왕등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떠올랐다.
‘대체 이건 어디서 튀어나온 괴물이야?’
그러기를 잠시.
왕등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언젠가 이와 같이 독특한 무공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설마 너는…….”
뒤늦게 곡운경의 정체를 깨달은 왕등이 해연히 놀라 외쳤다.
“추비무랑? 당신이 어째서 여기에!”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곡운경이 움켜쥔 거첨도를 힘껏 잡아당겼다.
가공할 힘에 맥없이 끌려온 왕등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자신을 응시하는 무심한 눈빛.
얼굴에 와 닿는 시선은 칼날처럼 섬뜩했다.
그 시선 너머에 꿈틀대는 위압감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끔찍한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마치 초열지옥(焦熱地獄)의 열기와 빙한지옥(氷寒地獄)의 한기를 동시에 품고 있는 것만 같았다.
“넌 출입 금지다.”
우드득.
“컥!”
섬뜩한 골절음과 동시에 왕등의 신형이 허공에 떠올랐다.
피를 토하며 날아가는 그의 옆구리는 움푹 주저앉아 있었다.
무릎을 이용해 걷어 올린 슬격(膝擊)에 늑골이 으스러진 것이다.
한참을 날아가 실 끊어진 연처럼 처박힌 왕등을 향해 곡운경이 다가섰다.
“비록 이곳이 도망자들의 땅이라 하나 유일한 희망의 땅이기도 하다. 이 안에 들어서기 위해서 갖춰야 할 자격은 오직 하나. 바로 이전의 자신을 내려놓을 각오다.”
매번 그래 왔듯, 곡운경은 개선의 의지가 없는 사파인을 쫓아낼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해 온 이야기를 감정 없이 늘어놓았다.
하나 그 말은 왕등에게 닿지 않았다.
이미 거품을 물고 혼절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뒤로한 채 돌아선 곡운경이 포목점으로 돌아왔다.
“수고하셨소이다.”
“곡 씨가 있어 어찌나 든든한지.”
그와 마주치는 마을 사람들이 호의를 담아 인사를 건넸다.
곡운경은 이 순간이 가장 고역이었다.
감정을 숨기고 무표정한 얼굴로 지낸 세월이 워낙 오래된 탓에 웃으며 답례를 하는 게 힘들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포목점 아저씨!”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곡운경이 돌아섰다.
포목점을 향해 쪼르르 달려오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가 옷 받아 오래요!”
가쁜 숨을 몰아쉬는 소녀.
‘올해로 여덟 살이 된다고 했었나?’
얼마 전에 엄마의 손을 잡고 와 앙증맞은 손을 펴 보이며 자랑하던 소녀의 모습을 떠올린 곡운경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여기 있다.”
곡운경이 소녀의 엄마가 주문했던 옷을 내어 주었다.
그런데 옷을 받아 든 소녀가 머뭇거리며 가게를 서성였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
곡운경의 물음에 소녀가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옷 안에 감추고 있던 무언가를 꺼내 곡운경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삶은 오리알이었다.
소녀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선물이에요.”
“선물?”
“엄마가 그랬어요. 포목점 아저씨는 우리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신 같은 분이라고. 아저씨가 있어서 나쁜 놈들은 얼씬도 못 하는 거라고요.”
아이의 성의를 차마 거절할 수 없었기에 곡운경이 오리알을 받아 들었다.
“잘 먹으마.”
무뚝뚝하던 곡운경의 얼굴 위로 당혹감이 떠올랐다.
소녀가 갑자기 손을 뻗어 그의 다리를 와락 껴안았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아저씨.”
곡운경이 멍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내가 무섭지 않으냐?”
“네. 아저씨는 나쁜 놈들에게만 무섭잖아요.”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호의를 표현한 소녀가 뒤늦게 부끄러웠는지 달아나듯 포목점을 떠났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곡운경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사는 것도…….”
그의 얼굴 위로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쁘지는 않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