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89)
신마의선-189화(189/500)
신마의선 (189)
무위의 중심지에 우뚝 솟은 전각.
최근 완공된 오 층짜리 건물은 무위 어디에서도 한눈에 들어올 만큼 크고 웅장했다.
바로 신마상단의 본단이었다.
어느새 무위의 상징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본단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가장 꼭대기 층이자, 단주의 집무실인 오 층만이 상대적으로 한산할 뿐이었다.
능소밀의 결재를 받기 위해 한 아름 서류를 가득 안은 사내 한 명이 오 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려 했다.
그런 그를 한 사람이 만류했다.
능소밀의 일정을 관리하는 담당 계원이었다.
“지금은 가지 않는 게 좋을걸?”
“어? 왜?”
“단주님의 심기가 오늘따라 유독 불편하시거든.”
“그래도 이거 오전 안에는 재가가 떨어져야 하는 사안들인데…….”
“나는 일단 말렸으니까 나중에 가서 괜히 원망 말라고.”
서류를 안고 있던 사내가 잠시 고민하던 순간.
계단 위쪽에서 호통이 터져 나왔다.
“꺼지라고 해!”
능소밀의 목소리였다.
움찔한 사무 계원이 오 층 쪽을 바라봤다.
다행히 자신을 향해 한 말이 아니었다.
“파사국 상단주가 와 있거든.”
동료의 설명에 서류를 안고 있던 사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또 뭔 사고를 쳤길래?”
“궁금하면 올라가 보든가.”
“됐네. 나중에 다시 오지, 뭐. 분위기 좀 나아지면 자네가 대신 이것들 좀 올려 주게.”
“맨입으로?”
“……술 살게.”
원하는 대답을 들은 계원이 씨익 웃었다.
“놓고 가.”
자신의 책상에 서류를 올려놓은 뒤 툴툴대며 돌아서는 동료를 미소로 배웅한 그가 오 층 쪽에 시선을 던졌다.
“어째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냐.”
능소밀은 싸늘한 표정으로 탁자 맞은편에 앉아 있는 마합마(馬哈麻)를 응시했다.
붉은 수염에 대비되는 파란 눈이 인상적인 중년인이었다.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선지자의 이름을 지닌 이 서역인은 최근 몇 차례 거래를 한 적이 있는 교역 상단의 주인이었다.
그 옆에서 통역을 하던 역사(譯士)가 난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합마님이 거듭 죄송하다고 말씀드립니다. 사과를 위해 직접 자신이 찾아온 만큼 다시 한 번 결정을 재고해 주십사 부탁하십니다. 이건 약소하나마 성의를 표시하기 위한 선물이라고…….”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겠지.”
역사의 말을 자른 능소밀이 탁자 위에 놓인 상자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상자 안에는 세 알의 묘안석(猫眼石)이 놓여 있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투명한 광채와 그 안에 자리 잡은 뚜렷한 흑색 결정.
한눈에 봐도 최상급의 묘안석이 분명했다.
상호 간의 약속을 어긴 것을 이유로 능소밀은 그의 상단과 교역 중단을 선언했고, 이 때문에 값비싼 선물을 들고 부랴부랴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능소밀은 미련 없이 서역인 쪽으로 상자를 밀어냈다.
“내가 분명히 말했지.”
능소밀이 입을 열자 역사가 재빨리 그 말을 통역하기 시작했다.
“개인이 몇 개씩 구매하는 건 상관없지만, 매점매석은 용납지 않는다고. 물량을 쥐고 멋대로 가격을 흔들려 하면 두 번 다시 거래는 없다고 못 박았을 텐데?”
역사의 통역에 마합마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거라고……. 그저 언어와 문화 차이에 따른 상호 간의 오해로 빚어진 문제라고 하십니다.”
역사의 말에 능소밀이 코웃음을 쳤다.
“오해? 사람까지 고용해서 몰래 약방의 물건까지 싹 쓸어 간 걸 모를 줄 알았나?”
“……죄송하다고 하십니다.”
훨씬 공손해진 태도로 연신 사과하는 서역인을 따라 역사의 목소리에도 힘이 빠졌다.
“두 번 다시 약속을 어기는 일은 없을 거라 하십니다.”
그러나 능소밀은 결정을 번복할 생각이 없었다.
“교역할 상단은 널리고 널렸어. 널 봐주면 다른 놈들이 우리를 우습게 보겠지. 두 번 말 안 해. 이거 가지고 돌아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변명을 늘어놓는 마합마를 향해 능소밀이 불쑥 입을 열었다.
“어이, 무하마드.”
“……!”
뜻밖에도 능소밀의 입에서 유창한 자신들의 언어가 흘러나오자 마합마는 깜짝 놀랐다.
그런 그에게 능소밀이 태연하게 말을 이어 갔다.
“가서 회개나 하시지. 당신네들 율법인 샤리아를 어기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불타는 지옥에서 뜨거운 녹물을 마셔야 한다며? 아니, 그 전에 상대를 기만해 이득을 취한 자는 어떤 형벌을 내린다고 했더라? 거짓말을 입에 담았으니 혀를 뽑아야 하나? 남의 것을 탐했으니 손을 자르던가? 아니면 그 둘 다?”
마합마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설마 능소밀이 자신들의 율법인 샤리아의 내용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지금까지 거래한 정이 있어 다른 상단에는 알리지 않겠다. 그게 내가 마지막으로 베풀 수 있는 온정이야. 그러니 좋은 말로 할 때 꺼져.”
당혹감과 분노로 붉으락푸르락하는 마합마의 표정에 능소밀이 경고를 날렸다.
“행여나 허튼짓할 생각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아. 여기가 어딘지 분명히 기억하라고.”
유창한 능소밀의 파사국어(波斯國語)에 마합마가 움찔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신마상단을 벗어난 그의 얼굴은 불붙은 석탄 가루가 내려앉은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불쾌하고 화가 났다.
인생의 반을 바쳐 전 세계를 돌며 교역을 해 왔지만 이처럼 모멸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교역에서 주도권을 쥐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더욱 그를 괴롭혔다.
씩씩대며 걸음을 옮기던 그가 신경질적으로 눈앞의 상자를 걷어찼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부서진 상자 파편이 마침 지나가던 여인을 향해 날아갔다.
“아악!”
갑자기 날아든 목편에 발목을 얻어맞은 여인이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 사방에서 쏟아지는 살기에 마합마가 멈칫했다.
난도질하듯 사방에서 날아와 박히는 섬뜩한 눈빛 때문에 피부가 따끔거렸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던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해쓱해졌다.
지붕 위에서는 서까래를 수리하던 자가 공구를 쥔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고, 길거리 노점에서 만두를 베어 물던 사내는 주먹을 움켜쥐며 자신을 주시했다.
골목 한쪽의 푸줏간에서는 고기를 썰던 백정이 큼직한 칼을 든 채 걸어 나왔고, 지나가던 행상은 걸음을 멈추고 등 뒤에서 길쭉한 강조(强爪)를 꺼내 들었다.
마합마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곳이 괴물들이 득시글대는 용담호혈(龍潭虎穴)임을 뒤늦게 떠올린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갔다.
그때 푸줏간에서 걸어 나온 백정이 피 묻은 손을 앞치마에 쓱 닦고는 쓰러진 여인에게 다가섰다.
“괜찮으시오?”
“네, 괜찮아요. 살짝 긁힌 것뿐이에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살기가 솟구쳤다.
“뭐? 긁혔어?”
“무위의 일반 백성이 다쳤다고?”
고작 생채기에 불과한 작은 부상이었지만 이곳 무위에 터를 잡은 사파인들에게는 그 의미가 가볍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놈도 발 하나를 잘라야겠군.”
“저 홍모귀들 법이 원래 그렇다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섬뜩한 눈빛을 흘리며 다가서는 사파인들의 모습에 마합마는 바람 앞의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기 시작했다.
한순간의 분을 이기지 못한 행동으로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르게 생긴 것이다.
마합마가 재빨리 그 자리에 엎드려 사죄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뭐라는 거야?”
“사… 뭐? 차라리 죽여 달라는 건가?”
“그것도 나쁘지 않지. 그렇지 않아도 피를 본 지 오래됐거든.”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마합마의 얼굴이 꺼멓게 죽어 갈 때 즘.
뒤늦게 달려온 역사가 재빨리 마합마의 말을 통역했다.
“죄송하답니다. 진심으로 사죄드리니 부디 용서해 달라고 하는군요.”
처음에는 공손하게 마합마를 대하던 그였지만 이제는 태도가 달라져 있었다.
감히 신마상단에 야료를 부리다니.
비록 고용주라 해도 좋게 봐 줄 수가 없었다.
“흥! 맨입으로?”
역사가 그 말을 전하자 마합마가 재빨리 품속에서 돈을 꺼냈다.
사파인들 중 누군가가 조소했다.
“뭐야? 딱 봐도 돈 좀 있어 보이더구먼, 네 놈 발목 값이 이거밖에 안 돼?”
역사를 통해 그 말을 들은 마합마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물론 잘못을 한 건 자신이었지만 이러다 장사 밑천까지 죄다 털리는 게 아닌가 싶어 눈앞이 캄캄해진 것이다.
이때 한 사람이 장내로 들어섰다.
“그만들 하시게, 친구들. 과한 보상을 요구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단 의원님께서 언짢아하실지도 모르네.”
이제는 단악선의 열렬한 추종자가 된 구유음소 장곡이었다.
그 말에 사파인들이 저마다 아쉬운 눈빛을 흘렸다.
“장 형, 그럼 어찌해야 하오?”
이때 장곡의 눈에 들어온 물건이 있었다.
서역인이 바닥에 떨어트린 상자였다.
상자의 재질이나 세공 솜씨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았다.
마합마에게 다가가 상자를 연 장곡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이거면 되겠군.”
상자 안의 묘안석 하나를 집어 든 장곡이 이를 다시 여인에게 건넸다.
세상의 여인치고 보석을 싫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여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제가 이걸 받아도 되는 건가요?”
“치료비에 위자료까지 더해 받았다 생각하시오.”
이때 역사가 마합마의 말을 통역했다.
“이자가 이걸로 전부 해결된 것이냐 묻는데요?”
“되기는? 이제 사과를 해야지.”
장곡이 마합마의 목덜미를 잡아채 여인 앞으로 질질 끌고 왔다.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려 사과해.”
역사를 통해 그 말을 전해 들은 마합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들 문화에서 여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불명예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지금 그가 있는 곳은 무위였다.
“뉘우침 없는 사과는 상대를 능멸하는 것과 마찬가지.”
장곡의 눈에서 섬전 같은 안광이 일렁였다.
“우리가……. 아니, 이곳 무위가 그리 만만해 보이더냐?”
줄기줄기 쏟아지는 가공할 살기에 마합마는 오금이 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역시 이곳 무위를 드나들며 무림인들의 신위를 몇 번인가 경험한 적이 있었다.
저 인간 같지도 않은 괴물들과 맞서는 건 화약을 안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
마합마가 엎드리며 머리를 땅에 박았다.
그리고 연신 사죄의 말을 읊조렸다.
그러나 장곡의 표정은 여전히 냉랭하기만 했다.
“좋아, 이제 거의 다 왔다.”
의아해하는 마합마를 향해 장곡이 싸늘한 눈빛을 던졌다.
“마지막으로 당사자가 용서해야지. 저 여인의 용서를 얻지 못하면 너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마합마가 간절한 눈빛으로 여인을 향해 애원했다.
당황한 여인을 향해 장곡이 부드러운 눈빛을 건넸다.
“원하시는 대로 결정하면 되오. 누구도 그 결정에 토를 달지 않을 테니까. 그에 따른 처리도 우리가 맡을 테니 후환은 걱정할 필요 없을 것이오.”
쥐고 있던 묘안석과 마합마를 번갈아 바라보던 여인이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 이제 괜찮아요.”
그 말에 장곡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사파인들을 향해 외쳤다.
“형제들, 들었나? 이분께서는 저자를 용서한다 하셨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거짓말처럼 살기가 걷혔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게 흩어져 하던 일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물론 몇몇 사람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당사자끼리 원만하게 해결한 이상 자신들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운이 좋군. 너그러운 분을 만난 것에 감사해라.”
역사를 통해 장곡의 말을 전해 들은 마합마가 달아나듯 급하게 자리를 떴다.
때아닌 소란에 몰려든 사람들을 향해 장곡이 내공을 실어 외쳤다.
“서역인이든 중원인이든 무위 백성들을 함부로 대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리라! 명심하라! 손님으로서 예의를 갖추지 않는 자는 손님 자격이 없다는 것을!”
웅혼한 내력이 담긴 목소리가 쩌렁하게 저자에 울려 퍼졌다.
그런 장곡의 말에 무위 토박이들은 감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타지에서 온 자들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그럼 살펴 가시오.”
여인에게 인사를 건네고 장곡이 돌아섰다.
그런데 그 순간 여인이 손을 뻗어 장곡의 소매를 붙들었다.
“저기…….”
“왜 그러시오? 설마 다친 발목이 불편하시오?”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말끝을 흐리며 잠시 주저하던 여인이 속삭이듯 넌지시 입을 열었다.
“덕분에 이번 일을 무사히 해결했으니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어서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답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오. 내가 아니더라도 우리를 받아 준 무위의 백성들을 위해 분명 누군가가 나섰을 것이오.”
“그러면 하다못해 차라도 한잔…….”
보다 못한 누군가가 장곡을 향해 외쳤다.
“아, 거참. 더럽게 눈치 없으시네. 그러니 여태 장가를 못 갔지.”
“뭐?”
“그분이 장 형한테 호감 있다고 하잖수.”
장곡이 당황해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
그 모습에 사파인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좋으시겠수, 장 형. 늘그막에 장가가게 생겼네.”
“혼례 때는 꼭 부르시오. 다른 일 제쳐 두고 달려갈 테니까.”
언제 살기가 휘몰아쳤냐는 듯 장내에는 더없이 훈훈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는 계절.
구유음소라는 명호와 함께 평생 홀로 강호를 떠돌았던 장곡에게도 처음으로 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