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9)
신마의선-19화(19/500)
신마의선 (19)
잠시 후.
두 사람이 전각을 나섰다.
초악량과 범계위는 이미 모옥을 완성하고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럼 전 아침 준비할게요.”
단악선이 멀어지자 한설화가 초악량과 범계위를 지그시 바라봤다.
범계위가 불만 가득한 눈빛을 던졌다.
“왜? 또 뭐?”
“가서 씻어.”
이어진 그녀의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냄새나.”
“이게!”
범계위가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한설화가 입을 열었다.
“어제…….”
범계위가 그대로 신형을 돌려 연못으로 향했다.
초악량도 마지못해 범계위의 뒤를 따랐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범계위가 고개를 돌려 한설화를 바라봤다.
“어? 방금 말한 거야?”
“그러고 보니……?”
초악량 역시 뜻밖이란 얼굴로 한설화를 바라봤다.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차가운 전음이 날아들었다.
―씻어. 당장.
일각 후.
바구니 가득 담아온 약초들을 식탁 위에 올린 단악선이 해맑게 웃었다.
“오늘은 맞춤 식단이에요. 앞에 놓인 대로 드시면 돼요.”
목욕을 마치고 때를 맞춰 도착한 범계위와 초악량은 새어 나오는 한숨을 겨우 삼켰다.
오늘도 온통 풀밭이었다.
그것도 시고, 쓰고, 떫은 풀들.
한설화가 가장 먼저 약초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말없이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차피 맛을 느끼지 못했기에 크게 상관이 없었다.
반면 초악량과 범계위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이 순간이 무척 고역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이어 가던 중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오늘도 마을에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범계위가 의아한 눈빛을 던졌다.
“또? 어제 다녀왔잖아.”
“사람이 늘었으니까요. 알아볼 것도 있고요.”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내심 풍진성의 안위가 신경 쓰였던 것이다.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그럼 내가 데려다주마.”
그때 묵묵히 식사를 하던 한설화가 입을 열었다.
“아니. 내가 가지.”
“아니 왜? 그건 원래 내 일…….”
한설화가 차가운 표정으로 범계위의 말을 잘랐다.
“넌 따로 할 일이 있잖아.”
“내가?”
“침상 만들어야지. 설마 나더러 맨바닥에서 자라는 건 아니겠지?”
“그걸 왜 내가 만들어?”
“어젯밤 일을 내가 알고 있으니까?”
이젠 대놓고 협박하는 한설화의 모습에 범계위는 기가 막혔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약점 잡힌 놈이 죄인인 것이다.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오늘은 한 아주머니께서 저랑 함께 가요.”
그렇게 식사를 마친 뒤.
툴툴대는 범계위를 뒤로한 채 단악선과 한설화는 마을로 향했다.
* * *
마을에 들어선 이후 단악선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시선을 느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한설화의 미모 때문이었다.
그만큼 그녀의 외모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끄는 매력이 있었다.
반면 한설화는 무덤덤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익숙했던 것이다.
단악선도 지금 상황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평소에는 수많은 인파로 분주한 시전, 작은 몸집의 단악선이 그 인파를 헤치며 나아가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한설화와 함께 움직이니 탁 트인 대로를 걷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서면 남녀를 불문하고 썰물이 빠지듯 양쪽으로 갈라졌다.
물론 지나온 길 뒤쪽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한설화를 힐끔거리다 연인과 아내에게 들켜 혼나는 뭇 사내들 때문이었다.
그런 소요를 뒤로 한 채 걸음을 옮기던 때였다.
말쑥한 차림의 사내 한 명이 한설화 쪽을 향해 다가섰다. 사람들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쭈뼛거리는 모양새를 보니 목적은 분명해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가 한설화에게 수작을 부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내가 멈춰 선 곳은 한설화가 아닌, 단악선 앞이었다.
단악선이 의아한 얼굴로 사내를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왜 그러시죠?”
사내가 싹싹하게 웃으며 단악선을 향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꼬치구이를 내밀었다.
“오늘부터 저 앞에서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제게 이걸……?”
사내가 멋쩍게 웃었다.
“앞으로 자주 이용해 주십사 하고요.”
당황한 단악선의 손에 사내가 떠넘기다시피 꼬치구이를 쥐여 주었다.
“이렇게 많이요?”
단악선이 당황했다.
사내가 쥐여 준 꼬치구이는 자그마치 열 개나 되었다. 사내가 어색하게 웃었다.
“많이 드시라고요.”
그리곤 재빨리 돌아서서 어디론가 달려갔다.
한참을 달려 꺾어진 골목으로 들어서자 한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확실히 전달했지?”
소적산의 물음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소적산이 이끄는 이의당의 수하였던 것이다.
“네. 제일 좋은 놈으로 구워서 식기 전에 전해 드렸습니다.”
“애들 풀어서 계속 주시해라. 저분께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그날로 우린 죽은 목숨이다.”
소적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무시무시한 범계위의 얼굴과 그날 그가 남겼던 살 떨리는 엄포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 * *
마을에 들어서고 반 시진.
단악선의 모습은 처음 신마곡을 나섰을 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가벼웠던 옷 위로는 두꺼운 털 조끼가 걸쳐져 있었고, 손에는 온갖 먹거리와 장난감이 가득했다.
오늘따라 유독 새로 개업한 사람들이 많았다.
분명히 홍보로 보이는데, 어쩐지 그 홍보가 유독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모르던 사람이 성큼 다가와 빨간 산사나무 열매를 대나무 꼬치에 꿰어 꿀과 물엿을 발라 놓은 빙당호로(冰糖葫蘆)를 내밀었다.
“맛 좀 보십시오, 공자님.”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돈 내고 사 먹을게요.”
의아한 점은 상점의 위치를 물어보면 하나같이 어색하게 얼버무리며 급하게 자리를 뜬다는 것이다.
“그동안 인심을 많이 얻었나 보구나. 이리도 사람들이 반기는 걸 보면.”
한설화는 내심 단악선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웬만한 협객도 겪지 못하는 환영이었다.
“그게 아닌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국 곤란해진 사람은 단악선이었다. 마을에 온 목적이 자꾸만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아주머니, 부탁이 있어요.”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단악선이 손에 들린 물건들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것들 좀 잠시 맡아 주시겠어요? 들러야 할 곳이 있어서요.”
한설화가 이를 받아 들자 단악선은 어디론가 뛰기 시작했다.
행여라도 다른 사람에게 붙들릴세라 혼신의 힘을 다한 달음박질이었다.
그렇게 달려 도착한 곳은 단골 약재상이었다.
단악선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약재상 주인이 반색하며 다가섰다.
“그렇지 않아도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다.”
“저를요?”
약재상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성의가의 가주께서 네게 전언을 남기셨거든.”
단악선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지 않아도 풍진성이 걱정되던 참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연락을 부탁하고 싶어 마을을 찾은 것이다.
“이번 참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당분간은 마을에 내려오지 말라고 하시더구나.”
“참사라뇨?”
단악선의 반문에 약재상 주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젯밤 무림맹 무사들이 머물던 청화객잔에서 화재가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단악선을 향해 약재상 주인이 설명을 이어 갔다.
“난리도 아주 그런 난리가 없었지. 그 위세 등등하던 무림맹의 파사단이 화마에 휩쓸려 죽을 줄 누가 알았겠느냐?”
“죽었다고요?”
“그래. 듣자니 화재 현장 곳곳에서 술 항아리가 여러 개 발견되었다더구나. 술에 취해 불길을 피하지 못한 게지.”
“……!”
“그들이 청화객잔을 통째로 빌려 쓰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진성의가의 가주께서도 늦게 도착하지 않았다면 위험할 뻔했고.”
단악선이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약재상 주인이 나머지 전언을 언급했다.
“풍 가주께서 사태를 수습을 하신 뒤 직접 찾아가겠다 하시더구나. 그러니 그분 말씀대로 당분간은 마을에 오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제 일로 마을 분위기가 흉흉해.”
“그랬군요.”
풍진성을 떠올린 단악선이 한숨을 흘렸다.
그가 무사한 것은 다행이었지만 이번 일로 인해 더욱 고생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알려 주셔서 고마워요.”
단악선은 필요한 약재들을 구입한 후 약재상을 나섰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설화가 단악선의 풀 죽은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러나 굳이 이유를 캐묻지는 않았다.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는 단악선의 뒤를 말없이 따를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골목을 벗어나려던 단악선이 우뚝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시전의 약재상들이 주고받는 대화 때문이었다.
“이번에 왕 씨가 제대로 하나 건졌다지?”
“아아, 그 산삼? 듣자니 이백 년은 족히 넘었다더군.”
“횡재했군. 그 정도면 부르는 게 값 아니야?”
“왜 아니겠어? 고관대작들이 알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걸? 천금도 마다하지 않을 거야.”
“어쩐지. 어제 갑자기 산을 타고 싶더라니.”
“자네 같은 주정뱅이가? 그 정도 산삼이면 영물이야. 신령님께서 점지해 주지 않고서는 평생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한설화가 의아한 눈으로 단악선을 보았다.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 단악선의 얼굴에 홍조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아저씨들, 잠깐만요!”
흥분한 얼굴로 달려간 단악선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방금 말씀하셨던 산삼 누가 가지고 있나요?”
단악선의 물음에 상인 한 명이 반문했다.
“그걸 알아서 뭐 하려고?”
“제가 사려고요!”
피식 웃는 상인의 모습에 마음이 급해진 단악선이 품속에서 전표를 꺼냈다. 신마곡을 나서기 전, 한설화에게 받았던 만 냥짜리 전표였다.
“다친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꼭 그 산삼이 필요해요!”
상인이 움찔했다.
전표에 적힌 금액도 금액이었지만, 무엇보다 기이한 열기로 일렁이는 단악선의 눈빛에 놀란 것이다.
“그분과 만나게 해 주세요.”
그로부터 일각 후.
거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보통 흥정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산삼의 품질을 확인한 단악선은 대뜸 일만 냥짜리 전표를 통째로 내밀었던 것이다.
“헤헤.”
마을을 벗어난 단악선은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몇 번이나 상자 안의 비단을 풀어 산삼을 확인하고, 이따금 냄새를 맡기도 했다.
“그렇게 좋으냐?”
“그럼요.”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분의 치료에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대범하구나.”
“네?”
“그래도 그것을 구하기 위해 만 냥을 전부 쓸 줄은 몰랐다.”
“아, 맞다!”
뒤늦게 단악선이 구입하려 했던 물품들을 떠올리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한설화는 내심 어이가 없었다.
의술을 펼칠 때는 누구보다 차분하더니 지금은 영락없는 어린애였다.
‘대지약우(大智若愚)라더니…….’
크게 지혜로운 자는 때로 바보처럼 느껴진다.
지금의 단악선이 딱 그랬다.
* * *
“뭐야? 이건!”
초악량과 범계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넝마가 된 이불을 대신해 새로 구입한 것이라며 한설화가 건넨 이불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건 이불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했다.
자투리 헝겊을 되는대로 이어 붙여 온통 알록달록했기 때문이다.
“나더러 이 거적을 덮고 자라고?”
“이거 마녀 네가 골랐지? 우리 골탕 먹이려고!”
말도 섞기 싫다는 듯 한설화가 전음으로 응수했다.
―그게 제일 싼 거야. 닥치고 써.
범계위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 많던 돈은 다 어쩌고?”
대답은 단악선이 대신했다.
“죄송해요. 산삼을 사느라 그만…….”
단악선의 사과에 범계위가 손사래를 쳤다.
“어? 아니야. 사고 싶은 건 사야지. 아암, 단 의원이 사고 싶다는데 누가 뭐래.”
“헤헤, 고마워요.”
단악선이 품속에 꼭 끌어안고 있던 상자를 열었다.
“한번 보실래요? 지금까지 저도 몇 번 본 적 없을 정도로 좋은 녀석이에요.”
자랑하듯 산삼을 꺼내 놓는 단악선의 모습에 초악량과 범계위가 쓴웃음을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