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90)
신마의선-190화(190/500)
신마의선 (190)
단악선은 신마의가 뒤편에 지어진 건물로 향했다.
내원이 어려운 환자를 위해 별도로 마련된 독채.
삼십여 채에 달하는 별채는 벌써 환자들도 만실이었다.
단악선이 정원을 가로질러 걸음을 옮겼다.
그런 단악선 뒤로는 이십여 명의 의원들이 따르고 있었다.
단악선의 의술을 배우고자 이곳에 남기로 한 의원들이었다.
별채를 돌며 환자들을 치료하는 단악선을 따르는 의원들은 하나같이 손에 지필묵을 소지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단악선의 치료 과정을 기록하고 머릿속에 새기는 와중에도 그들은 연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해박한 지식도 지식이었지만, 환자를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은 매일같이 배워도 새롭게 느껴졌다.
반면 단악선은 단악선대로 감탄하고 있었다.
자신의 치료 과정을 한시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는 의원들의 열의는 그만큼 대단했다.
처음에는 저들에게 인정을 받아 내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지만 일단 승복한 뒤에는 자신들의 결정을 쉽게 번복하지 않았다.
나이와 자존심을 떠나 그들을 일단 의원이었다.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소명 의식.
그 앞에서는 오직 의술 실력만이 서로의 고하를 나누는 절대적인 척도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시까지 입원 환자들을 치료한 단악선이 의원들을 돌아봤다.
“그럼 식사 후에 진료를 다시 시작하죠.”
의가 한편에 마련된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의원들은 단악선에게 쉬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단악선은 그들의 질문에 최대한 성실하게 답변했다.
그래서 정작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었다.
그런 단악선을 곤경에서 구해 준 사람은 마침 식당에 들어선 사무심이었다.
“이제 곧 진료를 시작하실 시각입니다.”
그 말에 의원들이 하나같이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악선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한 의원들이 각자 배정된 진료실로 향했다.
그제야 겨우 한숨 돌린 단악선을 향해 사무심이 안쓰러운 눈빛을 던졌다.
“매일같이 고생이시군요.”
“괜찮아요. 그래도 보람이 있는 고생이니까요.”
“아직까지는 특별히 위중한 환자는 없습니다. 오늘은 모처럼 무공 수련을 할 수 있으시겠군요.”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이 된 것 같죠?”
사무심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원들의 합류로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여유가 생겨났다.
덕분에 단악선의 표정 역시 전보다 한결 느긋해져 있었다.
식사를 이어 가는 단악선을 향해 사무심은 평소대로 신마상단과 신마의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제반 사항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약방 하나가 또 늘어났습니다. 북경에 본단을 두고 있는 대형 상단 소속인데, 능 단주의 허락을 얻어 이곳에 지부를 세운다 하더군요.”
“또요?”
“그만큼 신마단과 독계산의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저들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공급처와 가까운 곳에 수급처를 마련하는 것이 유리하다 판단한 모양입니다.”
“믿을 만한 곳인가요?”
“알아보니 가격을 조금 비싸게 받는 것 말고는 꽤 신뢰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황실의 어의들과도 거래할 만큼 북경 쪽에서는 기반과 인맥도 탄탄하고요.”
사무심이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
“우선은 신마단만 공급할 생각입니다. 향후 석 달 동안 자세히 지켜보고 특별한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독계산도 공급할 예정이고요.”
“양이 부족하다 들었는데 괜찮나요?”
“대책을 마련해 두었으니 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어진 사무심의 말에 단악선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제조 시설의 확충은 이미 끝났고, 단약을 제조할 기술자들도 숙련자를 중심으로 확보한 상태입니다. 물론 교육 과정에 시간이 다소 소요될 듯합니다만, 준비가 되는 대로 그들을 투입하면 기존보다 다섯 배 이상 생산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와! 그렇게나 많이요?”
단악선이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좀 공급에 여유가 생기겠네요.”
그 말에 사무심이 쓰게 웃었다.
“글쎄요.”
“설마 그걸로도 부족한가요?”
사무심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다 능 단주 때문입니다.”
갑작스럽게 능소밀이 언급되자 단악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어진 사무심의 설명에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능 단주의 사업적 재능이 이 정도로 대단할 줄 몰라본 제 실책이기도 하고요. 설마 이렇게까지 사업을 확장시킬 줄은 몰랐습니다.”
최근 서역의 상단을 통해 주문량이 어마어마하게 밀려들면서 상단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배정된 물량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서역 상단들끼리 자주 부딪친다더군요. 그 문제 때문에 능 단주도 골치가 아픈 모양입니다.”
그래서 신마상단은 최근 서역 상단과의 교역 방침을 달리했다.
기존에 거래 대금으로 허용했던 금과 은을 받지 않고 오직 물물로만 받겠다 선언한 것이다.
덕분에 서역 상인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부랴부랴 중원에서 구하기 힘든 장홍화와 용연향을 비롯한 서역 특산물을 수배하느라 그 시세가 몇 배나 뛰었다.
반면 신마상단의 상인들은 더 이상 굳이 장성을 우회해 서역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들이 먼저 알아서 찾아왔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단악선이 사무심을 불렀다.
“그런데 총관님.”
“네, 말씀하십시오.”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자 골목 끝에 있는 약재상 아저씨 말인데요.”
“지난번 말씀하신 임평이라는 분 말입니까?”
“네, 기억하시는군요.”
“어찌 잊겠습니까. 곡주님과 인연이 깊으신 분이라 들었습니다.”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단악선의 표정에 사무심은 뒤늦게 아차 싶었다.
한때 산서 일대를 기반으로 패주로 군림했던 장락방.
방주의 죽음과 함께 몰락의 길을 걷던 그들은 결국 악수를 두었다.
단악선을 납치해 성수신단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다시 문파를 일으켜 세우려 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애꿎은 사람이 휘말렸다.
바로 약재상 주인인 임평이었다.
단악선과 오래 거래를 이어 온 만큼 그를 통해 단악선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 한 것이다.
장락방도들의 모진 고문에 결국 임평은 자신이 아는 바를 실토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리석은 자들.’
결국 장락방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강호에서 완전히 지워져 버렸다.
문제는 그 일련의 사태로 인해 단악선 역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는 점이었다.
약재상을 운영하던 임평은 단악선을 밀어냈다.
육신의 상처는 나았지만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오래가는 법.
평범한 사람인 그는 무림인들의 고문에 육신은 물론 정신도 망가져 버렸다.
그래서 단악선에게 더 이상 거래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단악선을 볼 때마다 떨쳐 내지 못한 악몽 같은 기억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라 둘러댔지만 단악선은 그가 그러는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다.
바로 죄책감 때문이었다.
“여전히 우리 약을 받지 않고 있나요?”
사무심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염치가 없다며 한사코 거절하고 있습니다.”
“약재상의 운영 상황은 어때요?”
“손님이 완전히 끊긴 모양입니다. 지금 무위에서 독계산이나 신마단을 구비해 놓지 않으면 제대로 장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아…….”
길게 한숨을 내쉰 단악선이 말없이 허공을 응시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저 좀 나갔다 와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짐짓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무심은 내심 걱정이 앞섰다.
단악선의 표정이나 분위기로 미루어 목적지를 짐작하는 게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무심이 식당을 나서는 단악선을 배웅했다.
이윽고 단악선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사무심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어디까지나 단악선의 의지고, 결정이었다.
자신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법.
‘다만…….’
사무심이 신형을 돌려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발걸음 끝에는 현재의 상황에서 유일하게 그가 기댈 수 있는 세 사람이 머무는 장소가 있었다.
* * *
단악선은 시전을 지나 오래된 상가들이 모여 있는 골목에 들어섰다.
골목 끝에 위치한 허름한 약재상.
예전과 변함없이 그대로인 모습에 단악선은 순간 울컥했다.
이곳으로 향하는 도중 본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무위의 풍경.
그 속에서 오직 이곳만이 세월이 비껴간 듯 오래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도 약재상에 들어서는 사람이 없었다.
잠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약재상을 응시하던 단악선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무위에 돌아온 이후 몇 번인가 이곳에 와 볼까 하다 그만두었다.
바빴다곤 하나 사실 핑계에 불과했다.
오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언제든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은 두려움과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몸과 생각이 자란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근원적인 두려움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관계의 단절.
그것이 바로 단악선이 세상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두려움의 정체였다.
몇 번의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잡은 단악선이 이윽고 약재상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약재상 주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게의 외관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만큼은 세월을 비껴가지 못한 듯, 머리에는 새하얀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으음?”
낯선 인기척에 임평이 선잠에서 깨어났다.
처음에는 단악선을 보고 반색하며 일어서던 그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우리 가게에 독계산과 신마단은 없다오.”
약재상을 찾는 손님들이 늘 묻는 말이기에 반사적으로 그 말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손님들 대부분이 발길을 돌려 가게를 나갔다.
당연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건 웬걸.
모처럼의 손님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임평의 눈에 이채가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혹시 우리가 어디서 만난 적이 있소?”
서글서글한 눈매며 온화한 눈빛이 낯설지가 않았다.
열다섯의 나이를 넘긴 단악선은 부쩍 키가 자란 상태.
늘 어린 모습만을 기억하던 그였기에 지금의 단악선을 곧바로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그때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그냥 들여놓으시면 되잖아요.”
“……?”
“신마상단의 호의를 아저씨가 한사코 거절하신다면서요.”
임평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는?”
그제야 눈앞에 서 있는 훤칠한 소년이 단악선이라는 것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임평의 얼굴 위로 반가워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표정을 굳히며 돌아섰다.
“여긴 뭐 하러 왔누? 안 그래도 바쁠 텐데.”
단악선에 대한 소식은 일찍부터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저자를 오가는 사람마다 단악선을 칭송하지 않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단악선을 모르는 사람은 무위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묵묵히 바닥만 응시하던 임평이 힘없이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그만 나가다오.”
“…….”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 해도 너를 볼 면목이 없구나.”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 잘못이 아니에요.”
“아니. 내 잘못이다. 너에 대한 의리를 먼저 저버린 것도 나였고, 그것이 부끄러워 연을 끊자 한 것도 나였다. 그런 내가 이제 와서 어떻게 네 호의에 기대 입에 풀칠을 하겠느냐?”
단악선은 쓸쓸한 임평의 모습에 눈물이 솟구쳤다.
하지만 애써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거 아세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풍 아저씨를 제외하면 임 씨 아저씨가 제가 세상에서 가장 처음 인연을 맺은 분이라는 거.”
“……!”
임평의 눈빛이 흔들렸다.
처음 단악선을 만났던 때가 지금도 눈앞에 선명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떠오르게 하는 좋은 냄새가 난다며 약재상 앞을 어슬렁거리던 꼬마.
길거리에서 놀기에는 위험하기도 하고, 약재 이름을 곧잘 대는 게 귀엽기도 해서 가게에 들인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악선이 그에게 얼마나 큰 복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 어린 것이 귀한 약초들을 구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신통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거래를 이어 오며 그에게 단악선은 둘도 없는 존재가 되어갔다.
가족도 없는 그에게는 단악선이 동료였고, 친구였으며, 그리고…… 가족이었다.
그런 단악선을 고작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팔아넘긴 것이 지금도 두고두고 후회되었다.
입술을 깨물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임평의 모습에 단악선이 한숨을 흘렸다.
“알았어요, 갈게요. 대신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었어요.”
임평을 향해 단악선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
“아저씨 덕분에 제게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어요.”
사람의 인연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두 번 다시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낼 수 있었고요.”
단악선이 임평과 시선을 마주했다.
“제가 세상에 나갈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지금의 제가 있는 것도…… 모두 아저씨 덕분이에요. 그래서 꼭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 말에 임평은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