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91)
신마의선-191화(191/500)
신마의선 (191)
봄의 끝자락을 알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깊은 밤.
홀로 운기행공을 하고 있던 곡운경이 천천히 눈을 떴다.
멀지 않은 곳에서 마을 입구 쪽으로 접근하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쯧.”
곡운경이 한 차례 혀를 찼다.
이처럼 야심한 밤에 방문하는 이들은 대개 한 부류.
바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움직이는 자들이었다.
신형을 일으킨 곡운경이 포목점을 나섰다.
우두커니 서서 어둠 속을 응시하기를 잠시.
우비도 걸치지 않은 채 마을 쪽으로 달려오는 사내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야음과 어우러진 비 때문에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튀어 오르는 흙탕물도 마다 않고 서두르는 모습에서 어딘가 다급함이 느껴졌다.
사내는 곡운경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포목점을 지나쳐 곧장 마을 쪽으로 달려가려 했다.
그런 그를 곡운경이 불러 세웠다.
“멈춰라.”
어둠 속에서 난데없이 자신을 제지하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사내가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비로소 곡운경은 사내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십 대 초반 정도 되었을까.
깡마른 얼굴에 하관이 길고, 두 눈이 움푹 꺼져 있어 어딘가 음험한 느낌을 주는 인상이었다.
게다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엔 경계심이 가득했다.
그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곡운경이 입을 열었다.
“이름.”
“…….”
처음에는 입을 다문 채 대답을 망설이던 사내였지만 곡운경이 기파를 개방하자 흠칫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순순히 입을 열었다.
“진영산입니다.”
곡운경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아무리 오랜 세월 강호를 주유했다 하나 그가 모든 사람의 이름을 알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상대는 한눈에 봐도 무림인이 분명했다.
그것도 삼류 어중이떠중이도 아니었다.
눈빛이나 기세로 미루어 나름 상당한 무공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명호는?”
“강호에서의 친구들은 저를 초마효응(憔痲梟鷹)이라 부릅니다.”
“초마효응?”
그러고 보니 사내의 얼굴이 곰보 자국으로 얽어 있었다.
문제는 그런 명호가 금시초문이라는 점이었다.
그런 곡운경의 표정을 읽었던지 자신을 진영산이라 밝힌 사내가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강호에 무명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 일천해 저를 모르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때 적호방에 몸을 담고 있었습니다.”
“적호방이라면 귀주 복천에 있던 곳 말인가?”
“귀주는 맞지만 복천이 아니라 복산입니다. 전에 적호방의 호법이셨던 귀영마동(鬼影魔童) 한 노 선배와 대협께서 비무를 하셨을 때 멀리서 지켜본 적이 있었습니다.”
곡운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였다.
일부러 그를 떠보기 위해 거짓 정보를 살짝 섞어 보았는데, 그 부분을 정확히 짚어 낸 것이다.
게다가 과거 귀영마동이라 불리는 적호방의 호법과 비무를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곳에 온 목적은?”
곡운경의 물음에 진영산이 쓰게 웃었다.
“아시다시피 적호방은 무림맹에 의해 쓸려 나간 지 오래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저를 노리는 정파인들을 피해 오랜 세월 풍찬노숙(風餐露宿) 중이고요.”
한마디로 오갈 데 없는 신세라는 의미.
이 야심한 시각에 무위를 찾아온 것이 다소 수상했지만 크게 경계할 필요는 없다 판단이 들었다.
무엇보다 무위에서 분탕질을 치기에는 그리 대단한 무공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곡운경은 무위에서 지내기 위해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해 설명한 뒤 그를 보내 주었다.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올린 뒤 진영산이 마을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몇 번씩이나 뒤를 돌아봤다.
그 불안한 태도가 신경 쓰인 곡운경은 곧장 신마상단을 찾아갔다.
늦게까지 불을 밝힌 신마상단에 들어서자 마침 자리를 지키고 있던 소적산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반갑게 맞이하는 소적산을 향해 곡운경은 진영산의 인상착의를 자세히 설명했다.
“아무래도 신원 확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매번 수고가 많으십니다.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곧바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곡운경이 돌아서자 소적산은 곧장 상단을 나섰다.
그리고 늦은 시각까지 유달리 시끌벅적한 곳으로 향했다.
기루들이 모여 있던 거리였다.
근래 들어 상업이 번창하고 서역에서까지 교역을 위해 상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하며 무위의 유흥 사업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호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특히나 기루가 그랬는데, 몇 년 전만 해도 한 군데에 불과했던 기루가 지금은 여덟 곳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화루는 독보적인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기루 외관에서 시작해 내부의 장식이나 가구, 취급하는 술부터 요리까지.
그 어느 것 하나 고급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녀들의 수준이 달랐다.
시서금화는 말할 것도 없었고 가무에도 능했다.
그야말로 무위에서 돈 좀 쓴다 하는 고객들의 취향을 제대로 노린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이화루는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소적산이 이화루로 들어서자 그를 발견한 기녀들이 날 듯이 달려왔다.
“어머! 부단주님! 왜 이리 뵙기가 힘들어요?”
“그러게. 요즘 들어 발길이 너무 뜸하셨어요.”
소적산을 대하는 그녀들의 미소에는 단순한 접객 이상이 아닌, 진심 가득한 호의를 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무위에는 순의방(巡衣幇)이 없었다.
과거에는 흑룡회와 이의당이 무위의 밤거리를 양분해 관리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흑룡회의 회주는 범계위에 의해 사라졌고, 그 뒤를 이은 후임자 역시 사무심에 의해 제거된 상태.
소적산이 당두로 있던 이의당 역시 지금은 신마상단에 흡수되어 순의방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달리 보호비를 걷거나 패악질을 일삼지 않았다.
오히려 사업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고 기루를 운영하며 발생하는 말썽들을 도맡아 처리해 주고 있었다.
그런 만큼 신마상단을 향한 기녀들의 호의는 당연한 일이었다.
“애석하지만 나 지금 바쁘다. 총관님에게 내가 좀 보잔다고 전해 주려무나.”
“피이. 소 오라버니 너무 비싸게 구신다. 출세하시더니 오히려 재미없어지셨어.”
“오라버니, 그러지 말고 조금만 놀다 가요. 응? 마침 오늘 나 시간 비어.”
사방에서 쏟아지는 아찔한 교태와 고혹스런 유혹에 소적산이 울상을 지었다.
“나중에.”
소적산이 힘겹게 그녀들의 유혹을 뿌리치며 기루 안쪽으로 향했다.
이윽고 한적한 내실에 이른 소적산이 의자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기루에서 심부름을 담당하는 아이 한 명이 차를 내왔다.
차를 마시며 기다리길 잠시.
“오셨소이까.”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화려한 옷과 달리 눈빛이나 분위기는 학사를 연상시키는 오십 대의 장년인.
이화루의 총관인 고벽운이었다.
하지만 소적산은 그가 단순한 일개 총관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소적산이 건넨 인사에 고벽운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마상단 덕분에 큰 탈 없이 사업을 이어 나가는 중입니다. 루주께서도 매우 흡족해하시는 눈치입니다.”
“그러시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부탁하실 일이라도?”
고개를 끄덕인 소적산이 곡운경으로부터 들었던 진영산의 인상착의와 명호를 전달했다.
“알겠습니다. 그자의 신원에 대해 조사를 끝마치는 대로 그쪽으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하하, 이렇게나마 도와야 저희도 면이 서지요.”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하는 고벽운이었으나 소적산은 내심 그가 껄끄러웠다.
그의 진정한 신분을 아는 까닭이다.
장물을 비롯한 온갖 물건과 정보, 심지어 사람의 목숨까지.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거래하는 암거래 집단인 흑점에서 파견한 연락책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외견으로는 평범해 보일지 몰라도 그 속내를 짐작기 어려운 사람.
“그럼 단주님께도 안부 전해 주십시오.”
고벽운의 인사에 마주 고개를 숙인 소적산이 이화루를 벗어났다.
강호에 악명 자자한 흑점이었지만 이럴 때만큼은 한편인 게 다행이다 싶었다.
그들과의 연계를 통해 사파인의 동향과 배경에 대한 정보를 소상하게 얻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튿날 아침.
고벽운이 인편으로 서신을 보내왔다.
봉인된 서신 안에는 어젯밤 부탁한 진영산이라는 자의 내력이 소상하게 적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안에서 예상치 못한 세력이 언급되었다는 점이다.
“녹림?”
진영산이 한때 적호방에 몸담았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최근 그가 녹림십팔채, 그것도 그들의 총단 격인 와호채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내용은 금시초문이었다.
“이거 뭔가 수상한데…….”
녹림은 현존하는 사파 단체 중 가장 큰 세력과 영향력을 지닌 곳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엄연히 사파.
아무리 이곳 무위가 금지로 선포되었다곤 하나 어디까지나 정파 무림에 한정된 이야기였다.
사파인 녹림도가 무위에 들어서는 걸 막을 명분이 없었다.
무엇보다 저들이 힘으로 밀고 들어 온다 하면 여러모로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특히나 부담스러운 존재는 녹림을 이끄는 총표파자인 악호군이었다.
한때는 십대악인이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죽어 네 명밖에 남지 않아 강호사사(江湖四邪).
초악량 범계위, 그리고 행방이 묘연한 칠절마군 노단양과 더불어 당당히 그 한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거마가 바로 악호군이었다.
“이제 좀 안정되나 싶더니만…….”
소적산이 수하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새로 들어온 그 진영산인가 뭔가 하는 놈, 당장 소재 파악해.”
소적산의 지시에 이의당 출신의 수하들이 서둘러 상단을 나섰다.
그런데 그들이 밖으로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수하들이 헐레벌떡 뛰어와 소리쳤다.
“부단주님! 큰일 났습니다!”
“뭐야?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녹림도들이 나타났습니다!”
“뭐?”
소적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결국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된 셈이다.
“일단 내가 가서 확인을 할 테니 너희는 이대로 신마의가로 가서 상황을 보고해라.”
그 말을 마치기 무섭게 소적산이 신형을 날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일단의 무리와 대치하고 있는 곡운경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험악한 기세를 피워 올리는 녹림도의 숫자는 무려 이십여 명.
게다가 하나같이 기도가 범상치 않았다.
녹림 내에서도 저마다 한 자락 하는 위치가 분명했다.
이미 한차례 곱지 않은 대화가 오간 듯, 녹림도의 선두에 서 있던 장한이 곡운경을 노려봤다.
“지닌바 무위만 믿고 너무 오만불손하군.”
마주한 것만으로도 살 떨리는 살기.
그것도 동시에 내뿜는 무형의 기운은 그 자체만으로도 섬뜩한 위협이 되었다.
하나 정작 홀로 이를 받아넘기는 곡운경의 눈빛은 일말의 흔들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용건은?”
자신의 말을 무시한 채 담담히 입을 여는 곡운경의 모습에 처음 입을 열었던 사내의 눈썹이 역팔자를 그렸다.
“무슨 권리로 우리를 막는 거지?”
“용건부터.”
“감히!”
발끈하는 녹림도들의 모습에 곡운경이 한숨을 흘렸다.
역시 대화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 족속들이었다.
“이곳 무위에는 무위만의 규칙이 존재하오. 이를 무시하는 자는 그 누구도 손님으로서 환영받지 못할 터.”
“그건 경고인가?”
“정중한 권고요.”
곡운경의 말에 녹림도들이 어이없는 눈빛을 흘리며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곤 저마다 무기를 거머쥐며 곡운경과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펄럭.
바람도 없는데 곡운경의 소매가 펄럭였다.
순식간에 달라진 곡운경의 기세에 녹림도들이 멈칫했다.
“방금까지는 권고였으나 지금부터는 경고로 바뀌었다.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딛는 자, 내 손속이 무정하다 원망하지 못하리라.”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곡 선배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황급히 뛰어든 소적산의 만류에 곡운경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어진 소적산의 설명에 살기를 풀며 한 걸음 물러섰다.
“곧 삼존께서 이쪽으로 오실 것입니다.”
삼존이라는 말이 언급되자 녹림도들의 얼굴 위로 감출 수 없는 동요가 번져 갔다.
아무리 세상 무서울 게 없는 그들이라 하나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의 이름이 지닌 무게는 결코 경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곡운경의 눈이 이채가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이자들이……?’
당연히 물러서리라 예상했던 녹림도들이 오히려 진열을 정비하며 전의를 가다듬고 있었다.
‘믿는 구석이 있군.’
그것 말고는 지금 상황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