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92)
신마의선-192화(192/500)
신마의선 (192)
범계위는 심심했다.
너무나 심심했다.
이게 다 저 망할 의원 놈들 때문이었다.
언제부턴가 신마의가를 찾아온 의원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아예 눌러앉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환자들이 분산되어 단악선이 무리할 필요가 없어진 점은 좋았다.
그런데 막상 단악선에게 여유가 생겼다 해서 좋은 일만도 아니었다.
종일 금붕어 똥처럼 단악선을 졸졸 따라다니는 의원 놈들 때문이다.
자존심이 높기로는 무림인 못지않은 자들이 의원들이라 들었는데 이건 웬걸.
자신의 무식함이 드러나는 게 부끄럽지도 않은지 쉴 새 없이 단악선에게 질문을 퍼부어 댔다.
적당히 무시하고 모처럼 얻은 시간을 만끽하면 좋을 텐데, 마음씨 착한 단악선은 그걸 또 일일이 답해 주느라 늘 바쁜 일정을 보내야만 했다.
그래서 좀처럼 단악선과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기회가 없었다.
게다가 넘쳐 나는 의원 놈들 때문에 덩달아 자신의 일거리도 줄어 버렸다.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것도 슬슬 한계였다.
좀이 쑤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무료한 마음에 범계위는 정처 없이 의가 곳곳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 없이 걸음을 옮기다 도착한 곳은 신마의가의 내원.
호젓한 정원 중앙에서 무공 수련에 한창 열중하고 있는 단악선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초악량이 단악선을 지도하고 있었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렇게 가르치는 거 아닌데.”
무심코 내뱉은 말에 돌연 섬뜩한 예기가 날아들었다.
“하여튼 귀만 밝아서는…….”
자신을 노려보는 초악량의 모습에 범계위가 쓴 입맛을 다시며 돌아섰다.
“이제 뭘 하지?”
한설화와 옥신각신이라도 하면 그나마 시간이라도 잘 갈 텐데, 어째선지 종일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혼잣말로 투덜대던 범계위가 신마의가 앞에 늘어선 환자들을 바라봤다.
순서대로 진료를 기다리는 그들을 향해 범계위가 외쳤다.
“이 중에 속병 앓는 사람 내 앞으로!”
환자 몇 명이 반색하며 대열을 이탈해 범계위에게 다가섰다.
그런데 그 숫자는 세 명에 불과했다.
“엥? 이것밖에 안 돼?”
범계위는 실망했지만 별수 없었다.
“어디가 아픈데?”
범계위의 질문에 환자들이 저마다 증상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뭘 잘못 먹었는지 새벽부터 설사가 계속돼서…….”
“저는 오한 때문에 계속 몸이 떨립니다.”
“저는…….”
범계위가 손을 들어 환자들의 말을 제지했다.
어차피 증상이 다르다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치료법은 한 가지뿐이었기 때문이다.
퍼퍼퍽.
범계위가 지풍을 날리자 환자들이 순간 멈칫했다.
그러기를 잠시.
“오! 아프던 배가 가라앉았습니다.”
“저도 추위가 가셨어요!”
“역시 신묘하십니다. 거짓말처럼 몸이 개운해졌습니다.”
귀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범계위가 주위를 둘러봤다.
“더 없어?”
그러나 더 이상 범계위에게 오는 환자는 없었다.
환자들의 감사 인사를 뒤로한 채 범계위가 돌아섰다.
“이제 뭐 하면서 시간을 때우지?”
아직 점심시간까지는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신마의가 안으로 헐레벌떡 뛰어들었다.
범계위가 반색하며 그에게 다가섰다.
“뭐야? 환자야?”
철탑 같은 체구의 범계위가 불쑥 눈앞에 나타나자 신마상단의 단원이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풀릴 정도로 몸이 안 좋아?”
“예? 아, 아뇨. 그게 아니라…….”
황급히 대답하던 사내가 갑자기 부르르 몸을 떨었다.
돌연 뜨거운 기운이 배꼽 아래쪽, 기해혈 부근으로 파고드나 싶더니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 나갔던 것이다.
동시에 온몸이 후끈해지며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응? 뭐야? 꾀병이었어?”
눈살을 찌푸리는 범계위의 모습에 신마상단의 단원은 억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부단주님의 전언입니다!”
“부단주?”
고개를 갸웃하던 범계위가 이내 한 사람을 떠올렸다.
“소적산인가 하는 걔?”
“예. 세 분께 그분의 말을 전하기 위해 달려왔…….”
범계위가 귀찮은 표정으로 그 말을 잘랐다.
“됐고. 뭐 때문에 그러는데?”
그러나 이어진 신마상단 단원의 대답에 범계위의 표정이 밝아졌다.
“녹림의 무리가 나타났습니다.”
“녹림?”
“네! 지금 마을 입구에서 곡 대협과 대치 중입니다.”
범계위가 나설 채비를 했다.
무료함에 지쳐 있던 눈빛은 이미 되살아난 지 오래.
두 번 다시 없을 천재일우의 기회를 마다할 그가 아니었다.
“마을 입구란 말이지? 알았어.”
막 신형을 날리려던 범계위가 갑자기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대로 어디론가 달려가려는 상단원의 어깨를 붙들었다.
“너 어디 가냐?”
“예? 당연히 다른 두 분께도 이 말을 전해야죠.”
“아냐, 됐어.”
“네?”
“내가 들었으니 괜찮다고.”
“하지만…….”
주저하며 말끝을 흐리는 상단원을 향해 범계위가 눈을 부라렸다.
“괜찮다니까?”
“……!”
상단원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나 이내 허옇게 질린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일단 삼존 중 한 명에게 전언을 마쳤으니 그걸로 자신의 소임은 다한 셈.
서둘러 범계위에게 인사를 하고 달아나듯 자리를 떴다.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모처럼 얻은 기회를 혼자 독점할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흐흐흐.”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린 범계위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어차피 둘 다 바쁠 테니까.’
본래 이런 잡일(?)은 한가한 사람 몫인 법.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통해 스스로 명분을 부여한 범계위가 무위 거리를 질주했다.
잠시 후.
저 멀리 곡운경이 운영하는 포목점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곡운경과 대치하고 있는 일단의 무리들이 보였다.
그 우두머리에 그 수하라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건들거리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악호군의 부하들이 분명했다.
“선배님. 오셨습니까?”
범계위의 등장에 곡운경이 고개를 숙였다.
소적산 역시 마찬가지.
반면 그사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능소밀은 의아한 표정으로 범계위의 뒤쪽을 살폈다.
“다른 분들은 안 오십니까?”
“아, 그 인간들 지금 바빠.”
건성으로 대답한 범계위가 성큼 앞으로 나섰다.
“이놈들이야?”
범계위를 마주한 녹림도들이 순간 움찔했다.
아무리 호랑이 간을 삶아 먹었다 해도 상대는 망산초자였다.
소문으로만 듣던 불길한 명호의 주인을 이처럼 직접 맞닥뜨리자 제아무리 철담을 지녔다 자부하는 그들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나마 말과 상식이 통하는 다른 강호사사와 달리 범계위는 걸어 다니는 재앙이라 불릴 만큼 인세의 규율과 법칙으로 재단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녹림의 무리들 가운데 선두의 인물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녹림의 양 모가 사파무림의 대선배님께 인사 올립니다.”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는 그 모습은 방금 전 곡운경을 대하던 모습과 천양지차(天壤之差)였다.
녹림 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인 그에게도 범계위는 그만큼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범계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양위군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너, 나 아냐?”
양위군은 내심 기가 막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녹림 내의 이인자이자 녹림십팔채 중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지닌 복우채의 채주인 자신을 몰라볼 수 있단 말인가.
“저 파산대부(破山大斧) 양위군입니다.”
“우리가 만난 적이 있나?”
“네. 십오 년 전, 양릉산에서…….”
“양릉산?”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범계위가 이내 탄성을 터트렸다.
“아! 너 그때 걔구나? 나한테 시비 걸다 쌍코피 터진 애? 그때 오줌도 지렸지, 아마?”
“……!”
양위군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당시 먼저 시비를 건 사람은 자신이 아닌 범계위였다.
아니, 일단 그런 억울함은 둘째 치고 다른 녹림도 앞에서 자신의 치부가 공개되자 열불이 치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범계위는 어차피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끓어오르는 노기를 애써 삭히며 양위군이 자신들이 이곳에 온 목적을 밝히려 했다.
“사실 이곳 무위에…….”
그런데 그는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입을 열기 무섭게 범계위가 손을 들어 자신의 말을 잘랐기 때문이다.
“아니, 말하지 마.”
“예?”
당황한 양위군을 무시한 채 범계위가 곡운경을 향해 물었다.
“어이, 비무귀신. 쟤들 뭐 잘못한 거 없어?”
앞뒤 없는 범계위의 화법에 곡운경도 잠시 당황했다.
그런 곡운경을 향해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있지? 있어야 해. 그러니 잘 생각해 봐. 그렇지 않으면 바쁜 와중에 공연히 헛걸음한 내가 몹시 화가 날 것 같거든.”
놈들의 방문 이유야 일단 나중 일이었다.
우선은 놈들을 이용해 손맛부터 볼 명분이 필요했다.
노골적인 압박을 가하는 범계위의 눈빛에 곡운경이 쓰게 웃었다.
만약 범계위가 조금만 늦게 도착했어도 저들이 허락 없이 무위에 들어선 책임을 물었을 테지만, 아직까지는 딱히 이렇다 할 문제를 일으킨 건 아니었다.
그 순간.
곡운경은 갑자기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
말없이 자신의 응시하는 범계위의 눈빛이 점차 섬뜩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서 신중히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노골적인 위협이 담긴 범계위의 음성.
어느새 진한 살기를 베어 문 그의 눈빛은 천하의 곡운경마저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저자들은…….”
곡운경이 입을 열자 범계위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그렇지. 계속해!”
“몇 번이나 방문 목적을 물었음에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어? 겨우?”
범계위의 얼굴 위로 일순 실망 어린 기색이 떠올랐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녹림도들을 노려봤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살다 살다 감히 나를 무시하는 놈들을 만날 줄은 몰랐군.”
“예?”
양위군을 위시한 녹림도들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당혹감이 떠올랐다.
“저희가 언제……?”
“우리가 인정한 문지기의 말을 무시했다는 건, 곧 그에게 중책을 맡긴 우리의 권위도 무시했다는 뜻이지. 나아가 우리 무위 전체의 의지를 무시한 거나 마찬가지.”
말을 이어 갈수록 범계위가 흘리는 살기는 점차 농밀해졌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유를 몰아가는 범계위의 궤변에 녹림도들이 아연실색했다.
하나 그 와중에도 범계위가 내뿜는 살기는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오, 오해십니다. 그게 아니라…….”
양위군이 황급히 입을 열었지만 범계위는 이를 허락지 않았다.
“변명은 나중에. 일단 벌부터 받자.”
섬뜩한 웃음을 말아 올리는 범계위의 모습에 양위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원래부터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막무가내인 미친놈일 줄이야!
그런데 그 순간.
“선배니임! 안 됩니다!”
처절하게 부르짖으며 범계위를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다.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리며 사색이 된 능소밀을 노려봤다.
“왜?”
졸지에 범계위의 살기를 정면에서 뒤집어쓴 능소밀이 부들부들 떨며 황급히 입을 열었다.
“곡주님을 생각하셔야죠. 무위를 평화롭게 만들려고 그리 노력하셨는데, 이곳에서 사람이 죽어 나간다면 무척이나 슬퍼하실 것입니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 한 거지?”
뒤늦게 이를 깨달은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우리 단 의원을 실망시킬 수야 없지.”
“그럼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겨우 범계위의 폭주를 말린 능소밀이 내심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는 녹림도들 역시 마찬가지.
하마터면 이곳에 온 목적도 이루지 못한 채 끔찍한 재앙에 휩쓸릴 뻔했다.
그런데…….
범계위가 갑자기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녹림도들을 지나쳐 마을의 경계석 근처에 이르렀다.
경계석을 응시하며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범계위가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대뜸 능소밀을 향해 물었다.
“여기부터는 무위 아니지?”
“예?”
뒤늦게 범계위의 의도를 깨달은 능소밀이 해연히 놀라 소리쳤다.
“선배님! 설마?”
의미심장한 웃음을 말아 올린 범계위가 녹림도들을 향해 손을 뻗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