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93)
신마의선-193화(193/500)
신마의선 (193)
순간 양위군은 가공할 흡인력이 전신을 옭아매는 것을 느꼈다.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지독한 압력!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이 온몸을 움켜쥐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돌연 몸이 붕 떠오르더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범계위 쪽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헉!”
그 가공할 격공섭물의 신위에 양위군이 기함하며 내력을 끌어 올렸다.
쿠웅.
맥없이 범계위에게 끌려가던 그의 두 다리가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황급히 천근추를 시전해 간신히 신형을 멈춰 세운 양위군은 범계위의 입가에 맺혀 있던 웃음이 더욱 짙어지는 것을 보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도 그때였다.
“으헉!”
양위군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한 차례 크게 신형이 휘청이더니 그대로 다시 범계위를 향해 끌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두 발은 여전히 발목까지 땅속에 파고든 상태였다.
그그극.
바닥에 깊은 고랑을 새기며 끌려가던 도중.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버티지 마. 그러다 부러져.”
그 말에 양위군의 얼굴은 더욱 해쓱해졌다.
순수하게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끌려가면 죽는다!’
그라 해서 범계위의 속내를 모를 리 없었다.
일단 경계석을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다리가 부러지더라도 마을 안에서 부러져야 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렇게 버티는 것만이 그나마 유일한 살길인 것이다.
양위군의 얼굴에서 점차 핏기가 사라졌다.
보다 못한 녹림도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양위군을 붙들었다.
“쯧!”
범계위가 귀찮은 표정으로 혀를 찼다.
그러곤 신경질적으로 손을 휘둘러 거칠게 허공을 낚아챘다.
양위군은 돌연 섬뜩한 느낌에 휩싸였다.
적지 않은 세월, 도산검림을 헤쳐 왔던 무인의 본능이 그 여느 때보다 요란하게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해진 흡인력에 온몸이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양위군이 내심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저 사력을 다해 버티는 수밖에.
그런데 어느 순간.
뚜둑.
천근추와 동료들의 힘.
거기에 더해진 격공섭물의 위력을 견디지 못한 그의 두 다리가 수수깡처럼 부러졌다.
“으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양위군의 신형이 무 뽑히듯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 바람에 양위군을 붙들고 있던 녹림도들 역시 균형을 잃고 우르르 앞으로 넘어졌다.
그대로 범계위를 향해 맥없이 끌려가는 양위군의 모습에 녹림도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턱.
범계위가 양위군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결국 양위군을 손아귀에 넣은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일단 한 놈.”
“……!”
양위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의 등에는 여전히 독문병기인 파산부(破山斧)가 매달려 있었다.
게다가 범계위는 지척이었고, 방심한 상태.
손만 뻗으면 얼마든지 반격이 가능했지만 감히 그럴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눈앞에서 줄기줄기 흘러내리는 소름 끼치는 안광을 마주하는 순간 온몸이 그대로 굳어 버렸기 때문이다.
“거봐. 부러진다니까. 그러게 왜 내 말을 안 들어서는…….”
범계위의 말에 양위군은 몹시 억울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이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한마디 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애초에 이 바닥은 힘이 전부인 것을.
범계위가 다른 녹림도들을 향해 시선을 돌린 것도 그때였다.
“너희들도 와야지?”
그 말과 함께 범계위가 재차 손을 뻗었다.
“헉!”
“어? 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녹림도들이 안간힘을 쓰며 버텼지만 소용없었다.
처음부터 그들과 범계위 사이에는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무위의 격차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내 비명을 지르며 범계위 쪽으로 끌려가는 녹림도들의 모습에 능소밀이 한숨을 터트렸다.
“부단주. 어서 가서 알리게.”
“네? 네! 알겠습니다.”
능소밀의 지시에 소적산이 황급히 자리를 떴다.
하나 그 순간에도 녹림도들은 범계위에게 딸려 가고 있었다.
“흐흐. 조금만 더. 여기만 넘으면 돼.”
자신들을 향해 히죽거리는 범계위의 모습에 녹림도들은 하나같이 사색이 되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모두 경계석 밖으로 끌려 나갔다.
끔찍한 예감에 그들이 몸서리치고 있을 때.
양위군이 처절하게 부르짖었다.
“서신! 총표파자께서 전하라 한 서신이 있습니다!”
범계위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서신? 악호군 그놈이? 왜?”
자칫 기회를 놓칠세라 싶어 양위군이 재빨리 품속에서 서신을 꺼내 범계위에게 내밀었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서신을 받아 든 범계위가 양위군의 멱살을 쥐고 있던 손을 풀었다.
“…….”
잠시 말없이 서신의 내용을 확인하던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라는 거야.”
아무렇게나 서신을 구겨 던져 버린 범계위가 양위군을 노려봤다.
“그래서. 악호군이 뒤에 버티고 있다고 그렇게 건방을 떨어 댄 거냐? 감히 나 범계위를 상대로?”
“아니요! 아닙니다! 제가 언제…….”
억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던 양위군이 이내 입을 다물었다.
더욱 험악해지는 범계위의 눈빛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양위군이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애초에 범계위만 나타났을 때부터 상황은 꼬일 대로 꼬인 셈이다.
괜히 말을 섞어 봐야 화만 자초할 뿐.
그나마 알아서 기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그 와중에 조심스럽게 다가온 능소밀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악호군의 서신을 집어 들었다.
‘음?’
서신을 펼쳐 내용을 확인하던 능소밀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 안에 적힌 주된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녹림 내부의 배신자가 무위에 숨어들었다는 것과 그자를 잡기 위해 협조를 구한다는 요청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녹림의 총단인 와호채에 단악선과 신마삼존을 초청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름 예의를 갖춘 정중한 서신.
‘이걸 믿고 그리 오만하게 굴어 댔던 것이군.’
총표파자인 악호군의 친서를 지닌 이상 아무에게나 전달할 수는 없었을 터.
만약 범계위만 홀로 나타나는 변수만 없었다면 이처럼 호된 꼴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결국 저들이 자초한 결과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불필요한 기 싸움을 하지 않고 방문 목적을 알렸다면 별 탈 없이 무위에 들어설 수 있었을 것을.
그런데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생각해 보니 열 받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범계위가 분노를 터트린 것이다.
“자기가 뭔데 감히 우리 단 의원을 오라 가라야? 어? 가뜩이나 나도 단 의원하고 보낼 시간이 없는데 말이야. 고작 산적 두목 따위에게 그 귀한 시간을 나눠 주라고?”
범계위의 눈빛을 맞닥뜨린 녹림도들이 하나같이 살 맞은 새처럼 덜덜 떨기 시작했다.
진짜 살기를 개방한 범계위의 존재감.
눈빛 너머로 도사리고 있던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한 무언가가 금방이라도 자신들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능소밀이 황급히 범계위를 만류했다.
“선배님! 참으십시오!”
그러나 범계위는 단호했다.
“안 돼. 이대로 이것들을 살려 보내면 앞으로도 우릴 만만하게 여길 거야. 게다가 여기는 무위도 아니잖아?”
범계위가 정색하며 이처럼 진지한 살기를 드러낸 이상 능소밀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졸지에 난데없이 줄초상을 치르게 생긴 녹림도들의 처지만 안쓰러울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들에게 예상치 못한 구원의 동아줄이 드리워졌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어느새 장내에 나타난 초악량이 범계위를 향해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강가에 내어놓은 애도 아니고, 어떻게 된 녀석이 눈만 떼면 사고를 치냐.”
초악량의 핀잔에 범계위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능소밀을 노려봤다.
이에 능소밀은 애써 그 시선을 외면하며 초악량에게 악호군의 서신을 건넸다.
“배신자?”
초악량의 반문에 능소밀이 설명을 보탰다.
“진영산이라는 자입니다. 처음에는 적호방의 생존자라 했지만 뒤를 캐 보니 녹림에 몸담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초악량이 양위군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알았으니 돌아가라.”
“네? 하지만…….”
양위군이 범계위의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렸다.
우악스럽고 막무가내인 범계위와 달리 일단 초악량은 대화가 가능해 보였다.
더구나 악호군이 자신들을 이곳에 파견한 데에는 서신을 전달한 뒤, 진영산을 추포해 오라는 명령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내 말이 우스운가 보군.”
냉혹하기 짝이 없는 초악량의 시선을 마주한 양위군은 그대로 숨이 턱 막혔다.
범계위와 느낌은 달랐지만 그 역시 말도 안 되는 괴물.
단지 눈빛을 마주했을 뿐인데도 눈앞이 아득해지며 온몸의 힘이 탁 풀렸다.
이 순간 양위군은 옛 어른들의 충고를 뼈저리게 절감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딱 셋만 센다.”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던 녹림도들이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사색이 되었다.
“하나.”
“……!”
“둘.”
굳이 셋까지 셀 필요도 없었다.
하나를 세는 순간 대부분이 신형을 날리기 시작했고, 둘을 세고 있을 때에는 이미 뿔뿔이 흩어져 아무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쳇.”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범계위의 모습에 초악량이 한숨을 흘렸다.
“생각 좀 하고 행동하면 안 되겠냐?”
“내가 뭘 어쨌다고!”
발끈하던 범계위가 이어진 초악량의 말에 움찔했다.
“내가 널 모를까. 보나 마나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갖다 붙이며 저놈들을 괴롭힐 명분을 만들었겠지.”
“그, 그건…….”
내심 뜨끔해 우물쭈물 말끝을 흐리던 범계위가 능소밀을 향해 홱 고개를 돌렸다.
“내가 잘못한 거냐?”
능소밀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었다.
이번에도 괜히 애꿎은 자신만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내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아니요. 잘하신 겁니다.”
능소밀이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유가 어쨌건 저들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줄 필요는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상황을 파악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녹림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나, 진영산이라는 자를 통해 저간의 사정을 직접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번 일을 통해 저들에게도 무위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 줄 수 있으니 결과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범계위가 흡족한 표정으로 초악량을 바라봤다.
“그렇다는데?”
물끄러미 범계위를 응시하던 초악량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돌아섰다.
범계위가 씨익 웃으며 능소밀을 바라봤다.
“어이, 능 단주.”
“예?”
호의 가득한 범계위의 눈빛에 능소밀이 당황했다.
“소신 발언 좋았어. 계속 그렇게만 해!”
“……감사합니다.”
범계위가 능소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멀어지는 초악량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능소밀이 한숨을 내쉬었다.
진심으로 바라건대 저들 사이의 문제에는 끼고 싶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매번 명이 짧아지는 기분이었다.
“어쩌다 내 팔자가 이리되었을까.”
하지만 언제까지 푸념만 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이 사달을 만들어 낸 원흉.
일단은 놈의 신병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었다.
때마침 저 멀리서 달려오는 소적산의 모습이 보였다.
“놈은 찾았나?”
능소밀의 물음에 소적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그게…….”
이어진 소적산의 보고에 능소밀이 눈살을 찌푸렸다.
“일단 가 보지.”
소적산의 안내에 따라 진영산을 찾아 나선 능소밀이 도착한 곳은 오래된 객잔의 후미진 방이었다.
방 안에 들어선 능소밀이 한숨을 내쉬었다.
침상에 누워 있는 진영산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산 넘어 산이로군.”
아무래도 오늘은 무척이나 긴 하루가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