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94)
신마의선-194화(194/500)
신마의선 (194)
“환자가 의원을 두려워해서는 안 돼요. 반대로 의원이 환자를 두려워해야죠.”
신마의가에 들어선 초악량과 범계위는 뜻밖의 광경을 마주했다.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는 한적한 정원.
그 한편에서 단악선이 누군가를 향해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한번 삐지면 그게 좀 오래가긴 했지만 평소에는 성격 좋기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단악선이다.
그런 만큼 이처럼 정색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범계위가 한설화에게 다가가 넌지시 물었다.
한설화가 귀찮은 표정으로 무시하자 범계위의 얼굴이 대번 험악해졌다.
이때 한설화와 나란히 서서 내원 쪽을 살피던 아두가 대신 설명했다.
“얼마 전 새로 오신 의원인데, 저분 환자의 용태가 갑자기 악화되셨대요.”
그제야 범계위는 단악선 앞에서 연신 쩔쩔매는 의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십 대 초반 정도 되었을까.
눈매며 생김새가 한눈에 봐도 고집 꽤나 있어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표정으로 단악선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화가 날 일이야?”
범계위는 이해할 수 없었다.
환자의 상태야 언제든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진 아두의 설명에 눈살을 찌푸렸다.
“상당히 권위적인 분이세요. 말투도 그렇고, 표정도…….”
이 때문에 몇몇 환자들이 그를 대하기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로 인해 환자들이 자신의 몸 상태와 증상을 적극적으로 말할 수 없었다는 점.
“아침에 갑자기 환자 한 분의 상태가 너무 나빠져서 단 의원님께서 급히 치료를 하셨어요. 다행히 호전되기는 했는데, 단 의원님의 말을 빌리자면 명백한 의료 과실이라고 하셨어요. 환자의 상태에 대해 몇 마디 대화만 나누었어도 충분히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고도 하셨고요.”
“뭐라고? 감히 우리 단 의원을 화나게 하다니!”
벌컥 역정을 내며 금방이라도 내원에 난입할 것 같은 범계위를 초악량이 붙들었다.
“아서라. 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이거 놓으슈. 어?”
초악량의 손을 뿌리치려던 범계위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초악량의 손힘이 예상외로 강해 좀처럼 떨쳐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 몰래 수련이라도 하는 거요? 왜 이렇게 힘이 세졌지?”
“실없기는.”
초악량이 실소하며 손을 거두었다.
그런 초악량을 향해 범계위가 수상쩍다는 눈빛을 던졌다.
“아닌데. 분명 뭔가 있는데…….”
그때 다시 한 번 단악선의 음성이 들려왔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증오는 분노에서 기인하고, 분노는 고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셨죠. 그 고통의 시작은 대부분 상실 때문이고요.”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의원은 외로운 직업이에요. 환자들은 늘 거짓말을 하고, 그로 인해 환자가 잘못되어도 결국 그 책임은 오롯이 의원이 져야 하니까요. 그게 우리가 환자를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예요.”
“……죄송합니다.”
고개도 들지 못하고 사과하는 의원을 바라보던 단악선의 눈빛이 한결 누그러졌다.
“환자와 신뢰 관계를 쌓아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비록 환자가 거짓말을 하더라도 많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결국에는 그 안에서 진실과 거짓 여부를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단악선의 맞은편에 서 있던 의원이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오늘처럼 단 의원님께서 화를 내는 일이 없도록,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화를 내는 게 아니에요. 안타까운 거죠.”
“네?”
“장 의원님께서 얼마나 힘드셨을지 누구보다 잘 알거든요. 오랫동안 치료하던 환자를 잃고 괴로우셨겠죠. 그래서 몇 년 동안 의원 일을 그만두셨던 것 아닌가요?”
“그, 그걸 어떻게…….”
“그만큼 좁은 바닥이니까요.”
한 다리만 건너도 의원들에 대해 수소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당시의 상실감 때문에 환자들과 거리를 두는 건 이해해요. 하지만 이래서는 또다시 싫은 상황과 마주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진심을 담아 단악선이 말했다.
“환자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
“우리는 의원이에요. 그래서 더욱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어서 그 어떤 실수도 해서는 안 돼요.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든 물에 가라앉는 것은 똑같으니까요.”
멀리서 그 말을 듣던 범계위가 머리를 긁적였다.
“언제는 환자를 두려워하라더니 지금은 또 두려워 말라고? 앞뒤가 맞지 않는 거 아닌가?”
범계위의 말에 아두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저분은 이해하신 것 같은데요?”
그 말대로였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표정을 짓고 멍하니 서 있던 장 의원이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단악선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이제 제법 어른스러워졌군. 더 이상 아이 취급은 못 하겠어.”
감탄 섞인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가 피식했다.
“키가 작았다 뿐이지 원래도 어른스러웠거든?”
그 말을 한설화가 받았다.
“하긴. 나잇값도 못 하는 누군가와는 다르지.”
“누구? 초 형?”
범계위의 반문에 한설화가 아미를 찡그렸다.
이래서 범계위와 말을 섞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대놓고 비꼬는 데도 알아듣질 못하니 결국 답답한 건 자신이었다.
상황을 깨달은 초악량이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한설화가 지그시 노려봤다.
“그나저나 아침 일찍부터 어딜 다녀온 거야?”
한설화의 핀잔에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무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바빴지.”
너무나 당당한 범계위의 태도에 초악량이 어이없다는 눈빛을 던졌다.
“그러는 마녀 넌? 아침부터 안 보이던데?”
범계위의 물음에 한설화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을을 좀 둘러봤어.”
“갑자기?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언제부터 아침 산책을 했다고.”
“희미하게 마기(魔氣)가 느껴진 것 같아서.”
범계위와 초악량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졌다.
“마기?”
“이곳 무위에서 말이냐?”
잠시 머뭇거리던 한설화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어쩌면 기분 탓이었는지도.”
기감을 펼친 채 마을 곳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얼핏 느꼈던 마기의 흔적은 종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반면 초악량과 범계위는 가볍게 흘려 넘길 수 없었다.
이를 언급한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한설화였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아침부터 어딜 다녀오셨어요?”
그사이 단악선이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언제 진지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어떤 놈들이 우리 문지기를 귀찮게 한다기에 버릇 좀 고쳐 주고 왔지.”
“아, 그래서 초 아저씨가 급히 가셨던 거군요.”
“초 형? 초 형은 아무것도 한 것 없어. 내가 다 쫓아냈지.”
“다친 사람은 없죠?”
“어?”
범계위는 순간 당황했지만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어. 다치거나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적어도 무위 안에서는.”
“다행이에요.”
황당해하는 초악량의 눈빛을 범계위가 뻔뻔하게 받아넘겼다.
적어도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 치료 시작할까요? 이 각 후에는 의가 문을 열어야 하니 좀 서둘러야 할 것 같아요.”
“응? 우리부터?”
의아해하는 범계위를 향해 아두가 말했다.
“선자님과 저는 이미 치료를 마쳤어요.”
소적산의 연락을 받고 초악량이 떠난 뒤 시간이 비게 된 단악선이 먼저 두 사람을 치료했다는 것이다.
위급한 환자가 발생한 건 그 직후였다.
그래서 지금은 초악량과 범계위의 치료만 남아 있었다.
“그럼 나부터.”
범계위가 성큼 앞으로 나섰다.
단악선과 오붓하게 보낼 수 있는, 하루에 몇 안 되는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할 수 없었다.
“최근에는 좀 어때요?”
주요 혈 자리에 침을 놓으며 건넨 단악선의 질문에 범계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피를 봐도 아무렇지 않아. 두통도 사라졌고.”
“다행이네요. 이제 완치가 머지않은 것 같아요.”
그 말에 범계위가 반색했다.
“그럼 이제 독계산도…….”
단악선이 정색하며 그 말을 잘랐다.
“아직은 안 돼요.”
금세 시무룩해지는 범계위를 향해 단악선이 달래듯 설명을 이어 갔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독계산의 기운이 자칫 뇌호혈을 자극할 수 있어요.”
“그럼 난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해?”
묘하게 말끝을 흐리는 범계위의 얼굴에서 감추기 힘든 수심이 묻어났다.
그러나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언제 그랬냐는 듯 대번 얼굴이 밝아졌다.
“어차피 치료가 완치되면 독계산은 필요 없을 거예요. 온전히 심신의 균형을 이루고 나면 머리로 쏠리던 화기가 수승화강(水升火降)의 이치에 따라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할 테니까요.”
“오오!”
그런 범계위를 향해 한설화가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어차피 무용지물.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런데 의외로 초악량이 범계위 편을 들었다.
“넌 모른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맞아! 마녀 너는 몰라!”
한설화가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쓸 데도 없잖아. 사귀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범계위가 발끈했다.
“있어서 안 쓰는 거랑 없어서 못 쓰는 거랑 같냐?”
그사이 단악선이 범계위의 몸에서 침을 제거했다.
“어때요?”
한 차례 짧게 운공을 해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한 범계위가 환하게 웃었다.
“아주 좋아! 머리가 아주 맑고 상쾌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단악선이 이번엔 초악량을 향해 다가갔다.
초악량을 진맥하던 단악선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좋아지셨네요. 오늘은 침을 맞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그 말에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그러고 보니 어제도 침 안 놨잖아. 가만……? 그저께도 초 형 침 안 맞았는데?”
그 말에 단악선이 멈칫했다.
“뭐, 이런 날도 있는 게지.”
초악량이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지만 한설화의 눈썰미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이미 완치됐군?”
한설화의 말에 초악량이 움찔했다.
“오호! 완치되셨어?”
범계위가 미심쩍은 눈으로 초악량을 응시했다.
“어쩐지. 아까 손아귀 힘이 심상치 않더라니. 그래서 그랬던 거였군?”
그러고 보니 초악량의 분위기도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눈빛도 안정되어 있었고, 전처럼 쉽게 울컥하지도 않았다.
과거와는 확연히 대비될 정도로 여유를 되찾은 것이다.
그리고 그 여유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깨닫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무공을 완벽하게 회복한 것이다.
단악선은 둘째 치고 정작 당사자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리 만무했다.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리며 범계위를 노려봤다.
“그게 뭐 어쨌단 말이냐?”
“그럼 초 형이 여기 있을 이유가 없잖수.”
“이유가 왜 없어! 단 의원 무공을 완성하려면…….”
“어허. 이거 알 만한 사람들끼리 왜 이러실까.”
초악량의 말을 자른 범계위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었다.
“무공의 근간이 되는 핵심 요결들은 이미 다 전수 했잖수. 이후 성취의 유무야 오직 수련과 깨달음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
“……!”
“왜, 내 말이 틀렸수?”
할 말이 없어진 초악량이 곤혹스러운 눈빛을 흘리며 단악선을 바라봤다.
이에 범계위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단악선에게 향했다.
“단 의원. 왜 초 형이 완치되었다고 말을 안 한 거야?”
“그, 그건…….”
단악선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러기를 잠시.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해요.”
단악선의 사과에 오히려 범계위가 당황했다.
“어? 아니야. 단 의원. 나는 딱히 단 의원을 추궁하는 게 아니야. 그저 왜 그랬는지 이유가 궁금했을 뿐이야.”
“사실…….”
단악선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완치되셨다는 사실을 알려야 할지 계속 고민했어요. 그런데…….”
“그런데?”
“사실을 말하면 초 아저씨가 떠나실까 봐…… 두려웠어요.”
그 말에 초악량의 눈 위로 감출 수 없는 감격의 빛이 떠올랐다.
반면 범계위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단악선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괜찮아, 단 의원. 왜, 그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도 있잖아. 사람 일이라는 게 원래 그래. 만남이 있으면 언젠가는 헤어짐도 있는 법이야.”
초악량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내가 싫었냐? 어울리지도 않는 문자까지 써 가면서 나를 쫓아내고 싶었어?”
그러거나 말거나.
범계위는 초악량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차피 초 형은 여기 있어 봐야 사고만 칠 거야. 기껏 고쳐 놨더니 어디 가서 다치고 온 게 어디 한두 번이야? 솔직히 의원 입장에서는 저런 환자가 가장 골치 아프지. 안 그래?”
“너어…….”
초악량은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당장 저 얄미운 입을 틀어막고 싶었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닌지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잠깐.”
한설화가 앞으로 나선 것도 그때였다.
“어, 그래. 마녀 너도 한마디 해.”
한설화를 부추기던 범계위가 이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딘가를 응시하는 한설화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한마디에 초악량과 범계위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기야.”
두 사람이 그녀의 시선을 좇아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 말대로 그들의 기감에도 희미한 마기가 포착되었다.
그 순간.
누군가를 둘러업은 채 황급히 대문을 넘어서는 한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곡주님!”
다급하게 단악선을 찾는 사내.
능소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