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95)
신마의선-195화(195/500)
신마의선 (195)
“무슨 일이죠?”
심상치 않은 능소밀의 표정에 단악선이 황급히 달려갔다.
“이자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능소밀이 업고 있던 사내를 내려 바닥에 눕혔다.
“원래라면 이런 식으로 환자를 옮겨서는 안 되겠지만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더 상태가 나빠질 것 같아 부득이하게 이곳으로 데려왔습니다.”
“잘하셨어요. 만약 조금만 더 늦었다면 돌이킬 수 없었을 거예요.”
단악선이 무거운 눈빛으로 능소밀이 데려온 환자를 살폈다.
처음에는 중독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땀조차 말라붙어 소금기 푸석한 얼굴.
거기에 고열을 동반한 경련과 각혈의 흔적도 남아 있었다.
맥을 짚어 보니 기혈도 미친 듯이 들끓고 있었다.
“주화입마! 그것도 상당히 진행된 상태예요!”
단악선의 말에 능소밀이 깜짝 놀랐다.
“주화입마요?”
단악선이 대답 대신 환자의 혈도 몇 군데에 침을 찔러 넣었다.
그러자 끊임없이 몸을 떨어 대던 사내의 발작이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내 맥없이 축 늘어졌다.
“벌써 치료가 끝난 겁니까?”
능소밀의 말에 단악선이 한숨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임의로 응급 처치를 하긴 했지만 매우 심각한 상태예요. 일단 이분을 안으로 옮겨야겠어요.”
눈치 빠른 아두가 들것을 가져왔다.
그 위에 환자를 눕힌 단악선이 능소밀과 함께 자신의 처소로 환자를 데려왔다.
자칫 다른 환자들에게 두려움을 심어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주화입마의 증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본능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다.
무림인들이 죽음보다 두려워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크륵…….”
심한 가래가 끓어오르는 듯한 신음과 함께 환자가 다시 덜덜 떨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시뻘겋게 얼굴이 달아오르나 싶더니, 어느 순간에는 급격히 핏기가 사라지며 창백해졌다.
동시에 온몸이 용암처럼 뜨거워졌다 빙산처럼 차가워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렇게 주화입마가 진행될 때까지 스스로를 방치했다니…….”
단악선의 탄식에 능소밀이 한숨을 흘렸다.
“아마 그럴 겨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럴 겨를이 없다뇨?”
“이자는 진영산이라는 자로, 한때 녹림에 몸담고 있다 지금은 그들을 피해 도주 중입니다. 무위에는 어젯밤에 들어왔고요. 녹림에서도 이자를 찾기 위해 사람을 보냈더군요.”
“녹림이요?”
“아직 듣지 못하셨습니까?”
능소밀이 의아한 눈으로 범계위를 바라봤다.
범계위가 어색하게 헛기침을 터트렸다.
“험험. 어쩌다 보니 말할 기회를 놓쳐서…….”
그러곤 이내 곡운경과 대치하고 있던 녹림도들과 그들이 가져온 악호군의 서신에 대해 언급했다.
“이분이 녹림의 배신자라고요?”
능소밀이 우려를 담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자를 치료하고 보호한다면 녹림에게 명분을 내어 주는 셈입니다.”
녹림의 총표파자인 악호군이 이를 빌미로 물고 늘어진다면?
단악선이라면 모를까, 다른 세 사람이 이를 용납할 리 만무했다.
“이자 한 명으로 인해 자칫 녹림과의 갈등을 야기한다면…….”
단순히 가능성을 놓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충분히 그렇게 비화될 소지가 다분했다.
“악호군 그자는 집요할 뿐만 아니라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유명합니다. 거기에 몹시 교활하지요.”
무공도 무공이었지만 악호군은 사파 최대의 무력 단체인 녹림을 오랜 세월 장악해 온 진짜 실력자였다.
만약 그가 제대로 마음먹고 무위와 척을 진다면 이래저래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당장 신마상단부터가 제동이 걸릴 터.
제아무리 서역과 교역을 통해 이득을 취한다 해도 결국 돈을 만들기 위해서는 중원의 상단들에 물건을 넘겨야 했다.
녹림이 자신들의 장점인 인원을 활용해 교통로를 점거해 버리면 상단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골치가 아파지는 것이다.
능소밀의 말에 범계위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흥! 그래 봐야 그 두목에 그 잡졸들이지. 감히 우리 단 의원을 적대한다고? 그날로 녹림은 이 세상에서 지워지는 거야.”
자신만만한 범계위의 말에 능소밀이 쓰게 웃었다.
“녹림이 두려운 것은 무공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끈질긴 생명력 때문이지요.”
과거에도 수많은 영웅과 방파가 탕마멸사의 기치 아래 녹림 토벌을 시도했었다.
하나 완전히 쓸려 나간 것 같다가도 지나 보면 어느새 다시 세를 회복해 있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도 저들에게만큼은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그때였다.
“그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진영산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하루만……. 하루만 시간을 주십시오.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되면 제가 알아서 떠나겠습니다.”
단악선과 능소밀의 대화를 들었던지 진영산이 힘겹게 웃었다.
“염치없지만 부탁드립니다.”
말없이 고심하는 단악선을 대신해 초악량이 나섰다.
“어째서 녹림에게 쫓기는 것인가?”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초악량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자네 몸에 흐르는 마기에 대해 함구하는 것처럼?”
진영산이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이때 단악선이 한숨을 흘리며 진영산을 응시했다.
“현재 자신의 상태는 알고 계신가요?”
“…….”
여전히 고집스레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유지하는 진영산의 모습에 단악선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저도 딱히 치료를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억지로 신병을 구속하지도 않을 거고요.”
능소밀을 포함한 모두가 놀란 눈으로 단악선을 바라봤다.
너무나 선선히 물러서는 단악선의 모습이 그만큼 의외였기 때문이다.
“다만 생각이 바뀌신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그렇게 말을 마친 단악선이 먼저 일어나 방을 나섰다.
다른 사람 역시 마지못해 단악선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초악량의 말에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그렇다고 눈앞의 환자를 외면할 수도 없잖아요.”
초악량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단악선의 성정을 모를 그가 아니었다.
그래도 노파심에 한 번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치료를 권하지 않으신 겁니까? 저대로라면 아마…….”
능소밀의 질문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흘을 넘기기 힘들겠죠.”
단악선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주화입마가 상당히 진행되긴 했지만 아직 돌이킬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에요. 저분은 아마 곧 정신을 잃게 될 거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주화입마가 시작될 거예요. 아직까지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건 주화입마의 진정한 고통을 제대로 겪어 보지 못했기 때문일 테고요.”
“아!”
“무엇보다 의원이라 해서 마음대로 환자를 치료할 권리는 없어요. 의원은 어디까지나 살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 사람을 돕는 역할일 뿐, 환자의 뜻이 반영되지 않는 치료는 폭거나 다름없으니까요.”
그제야 능소밀은 단악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리는 것뿐인가?”
초악량의 말에 단악선이 아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두 형, 내 진료 시간을 조금 늦춰 줄 수 있겠어?”
“마침 급한 환자는 없으니 다른 의원님들께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아두가 환자들의 안내를 위해 장내를 벗어났다.
“기다리는 동안 이제 뭘 하지?”
심심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범계위가 이내 탄성을 흘렸다.
“맞다! 아까 하던 이야기는 마저 하면 되겠군!”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범계위가 무슨 말을 꺼낼지 뻔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초 형이 완치된 것은 축하! 그러니 이제 그만 갈 길 가슈.”
“뭐, 인마?”
“어차피 여기 있을 이유도 없잖수. 언제까지 단 의원을 귀찮게 할 셈이유?”
“귀찮게 하다니! 단 의원을 도와 환자도 봐 주잖아!”
“흥! 그래 봐야 돌팔이 아뇨. 어차피 이제 진짜 의원들도 넘쳐 나는데 초 형한테까지 순서가 갈 것 같수?”
그렇게 한참을 아웅다웅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능소밀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자고로 모진 비는 피해 가라 했다.
오죽하면 경전하사(鯨戰蝦死)라는 말이 있을까.
괜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건 그만 사양하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언쟁하는 두 사람을 보다 못해 한설화가 끼어들었다.
“둘 다 그만 입 다물어.”
동시에 자신을 노려보는 두 사람을 향해 한설화가 일침을 가했다.
“결국 단 의원의 생각이 가장 중요한 것 아냐?”
그 말에 초악량과 범계위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자 단악선이 나직하게 한숨을 흘렸다.
“저는 의원이에요. 그래서 환자가 완치되었을 때 가장 행복하죠.”
단악선의 눈빛이 우울해졌다.
“그런데 지금은 마냥 기뻐할 수만 없네요.”
환자가 완치되면 헤어져야 하는 건 당연한 수순.
책임을 다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이별의 아쉬움 역시 홀로 감내하는 것도 의원의 몫이었다.
“저는 아저씨 아주머니와 계속 함께 지내고 싶어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제 욕심이겠죠. 각자의 삶이 있고, 원하는 인생이 있을 테니까요.”
단악선이 초악량과 시선을 마주했다.
“이 자리에서 정식으로 말씀드릴게요. 초 아저씨는 완벽하게 치료되셨어요. 제가 할 일도 끝났고요.”
물끄러미 단악선을 응시하던 초악량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 어쩔 수가 없구나.”
움찔하는 단악선을 향해 초악량이 빙그레 웃었다.
“이제 남은 건 정에 호소하는 수밖에.”
“네?”
“난 이곳에 계속 머물고 싶은데 허락해 주겠느냐? 설마 오갈 데도 없는 늙은이를 냉정하게 내칠 만큼 모질지는 않겠지?”
단악선의 얼굴이 환해졌다.
한껏 격앙된 표정으로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저는 세 분에게 제 옆자리를 내어 드릴 준비가 되어 있어요.”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제 집은 언제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계신 곳이니까요.”
상황이 이쯤 되니 범계위도 더 이상 토를 달 수가 없었다.
이때 멀찍이 떨어져 처소 안의 상황을 살피던 능소밀이 다급한 표정으로 단악선을 불렀다.
“시작된 것 같습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단악선이 예상했던 대로 진영산은 이미 혼절한 상태였다.
맥을 짚던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진맥을 통해 상태를 확인해 보니 불안정한 진기의 흐름을 따라 기맥 역시 제멋대로 뒤엉키고 있었다.
“잘못된 무공 수련으로 인한 주화입마예요.”
제대로 된 심법이 받쳐 주지 못할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증상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치료는 가능한 게냐?”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는요. 하지만 환자의 뜻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겠죠?”
단악선이 선앙침을 꺼내 진영산의 인중 부근에 천천히 찔러 넣었다.
그 순간 젖은 솜처럼 늘어져 있던 진영산이 번쩍 눈을 떴다.
“으아아악!”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튀어 오르듯 벌떡 일어난 진영산이 온몸을 쥐어뜯으며 몸부림쳤다.
그러기를 잠시.
핏발 가득 선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광기로 점철된 눈동자에서는 이미 그 어떤 이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능소밀은 밖에 대기하고 있었고 실내에는 네 사람뿐.
그 와중에도 진영산은 본능적으로 강자를 인지했는지 세 사람을 피해 단악선에게 달려들었다.
“물러서라.”
단악선을 끌어당긴 한설화가 순식간에 그 자리를 대신했다.
쩌엉!
날카로운 소성과 함께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던 진영산이 그대로 튕겨져 나가 벽에 부딪쳤다.
쿠웅!
한설화의 발밑에서 시작된 새하얀 서리가 사방으로 뻗어 나간 것도 동시였다.
그녀의 손엔 어느새 새하얀 강기가 맺혀 일렁이고 있었다.
“해치면 안 돼요!”
단악선의 외침에 한설화가 멈칫했다.
초악량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놈의 무공을 확인하는 게 먼저다.”
초악량과 범계위 역시 진영산이 곱게 보일 리 만무했다.
단악선에게 살기를 드러낸 것도 모자라 서슴없이 살수까지 쓰다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한참 선을 넘었다.
당장 죽일 이유로는 차고도 넘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인내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단악선 때문이었다.
한설화는 내키지 않았지만 진영산이 공격할 수 있도록 그를 찍어 누르던 진기의 압력을 느슨하게 거두었다.
그 순간 튀어 오르듯 달려든 진영산이 마구잡이로 손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찌이익.
허공을 찢는 날카로운 파공음.
거기에 은은하게 남겨지는 핏빛 잔영까지.
이를 확인한 초악량이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혈옥수(血玉手)로군.”
마기를 흘릴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막상 그가 사용하는 무공을 확인하자 절로 침음성이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