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96)
신마의선-196화(196/500)
신마의선 (196)
마공이라 해서 반드시 마교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당장 가까운 사람 중 사무심만 해도 그렇다.
그 역시 마공을 익히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곧 마교의 무공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속성으로 연마하기 위해 안정성을 포기한 무공.
그만큼 불안정한 내력의 흐름이 일반인이나 정종 무공을 익힌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음험하고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이를 에둘러 마기라 표현하는 것이다.
반면 진영산이 사용하는 혈옥수는 근본부터가 마교의 무공이었다.
그것도 마교를 지탱하는 핵심 무공 중 하나였다.
“물어볼 게 많겠군.”
초악량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실내에 끔찍한 한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쩌저적.
“크아악!”
순식간에 진영산의 사지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의 무공 내력을 확인한 이상 더 이상 설치게 놔둘 수 없었던 한설화가 극한의 음한진기를 이용해 그를 구속한 것이다.
눈에 띄게 느려진 진영산을 향해 성큼 다가선 한설화가 그대로 손을 뻗어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컥!”
억눌린 신음 소리와 함께 진영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한설화의 손을 통해 파고든 끔찍한 한기.
미친 듯이 날뛰며 그를 지배하던 마기조차 해일처럼 밀려든 거대한 진기 앞에는 무릎을 꿇었다.
단악선이 앞으로 나선 것도 그때였다.
“그대로 잠시만 붙들어 주세요.”
그 말과 함께 단악선이 선앙침을 꺼내 진영산의 혈도 몇 군데에 찔러 넣었다.
그러자 흐릿하던 진영산의 눈동자에서 거짓말처럼 광기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크흑…….”
의식이 돌아온 진영산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단악선이 안타까운 눈빛을 던졌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주화입마의 고통은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지옥 그 자체였다.
육신뿐만 아니라 마음과 정신까지 살라 먹으며 절망의 나락으로 떠미는 고통의 무저갱인 셈이다.
“시간이 없어요. 의식을 붙들어 두는 건 잠시니까요.”
단악선이 진영산을 향해 서둘러 말을 이어 갔다.
“이제 자신의 상태를 잘 아셨을 거라 믿어요. 아직도 생각에 변함이 없으신 건가요?”
“…….”
진영산은 침묵했지만 그의 두 눈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진영산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눈을 부릅떴다.
“지금이라면 치료할 수 있어요.”
진영산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단악선이 단호하게 말했다.
“대신 묻는 바에 전부 대답하셔야 해요. 하나도 숨김 없이요.”
진영산의 눈 위로 간절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
어차피 주화입마가 시작된 이상 죽음은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사실 죽음보다 두려운 건 머지않아 다시 시작될 끔찍한 고통이었다.
“부, 부탁드립니다. 제발…….”
눈물 콧물을 쏟으며 진영산이 애원했다.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도 이미 한계였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단악선이 세 사람을 향해 말했다.
“잠시 자리를 비워 주시겠어요?”
“응?”
의외의 말에 범계위가 놀라 반문했다.
“주화입마를 치료하려면 위화요법이 필요한 거 아니었어?”
위화요법은 원래 절맥을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진 요상법.
과거 단악선의 부모는 합심하여 주화입마에 빠진 환자를 살려 낸 적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증상이 유사한 절맥의 치료법을 찾아냈고, 단악선은 이를 기반으로 위화요법을 사용해 남궁향을 치료할 수 있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때 주화입마에 빠졌던 사무심도 치료했다.
그때마다 단악선 곁에는 범계위와 한설화가 함께였다.
그래서 당연히 자신들이 필요하리라 여겼던 것이다.
단악선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화입마 초기라면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지금은 무리예요. 이미 지금도 충분히 아슬아슬한 상황이거든요. 위화요법으로 치료하는 속도가 주화입마의 진행을 따라잡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혼자서는 주화입마를 치료하지 못한다며?”
“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가능해요.”
단악선이 서가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서가 위에 놓여 있던 기다란 목갑을 집어 들었다.
“이게 있으니까요.”
묵가철장의 장주인 묵비가 염화단철과 만년한철을 이용해 만들어 낸 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악선이 묵룡아(黙龍牙)라 이름 붙인 대침(大鍼)이었다.
“이걸 사용하려면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해요. 그리고 약간의 부작용도 있고요.”
“부작용?”
범계위의 반문에 단악선이 잠시 대답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많이 아프거든요.”
“아프다고?”
초악량은 문득 궁금해졌다.
“마령침과 비교하면?”
단악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미 충분히 대답을 들은 것 같았다.
멈칫하는 모습과 흔들리는 눈빛이 진실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설화가 불쑥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그런 부작용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느냐?”
“시험을 해 봤으니까요.”
단악선의 대답에 세 사람은 일순 할 말을 잃고 황당한 눈빛을 던졌다.
그 시험 대상이 누구인지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신 효과는 확실해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의심은 이내 확신이 되었다.
이미 단악선 본인 스스로 확인을 마친 것이다.
“나는 가끔 단 의원이 무서워.”
무심코 튀어나온 범계위의 본심.
초악량과 한설화 역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범계위의 말에 동의했다.
“어쨌든 서둘러야 하니 자리를 비워 주시겠어요?”
단악선의 축객령에 세 사람은 밖으로 나섰다.
“별일 없겠지?”
걱정을 담아 방문 쪽을 힐끔거리는 범계위의 모습에 한설화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마혈을 단단히 점해 두었으니 문제는 없을 거야.”
초악량과 범계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설화만의 독특한 점혈법은 그들조차 인정할 만큼 대단한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방 안에서 미약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신음은 절규로 바뀌었다.
“끄아아악!”
지옥의 밑바닥에서 울부짖는 듯한 처절한 비명에 범계위는 그만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는 초악량과 한설화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초악량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대체 침으로 무슨 짓을 하면 저런 비명이 터져 나올까 싶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제 들어오셔도 돼요.”
방 안에서 들려온 단악선의 음성에 세 사람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온몸이 땀으로 후줄근하게 젖은 단악선이었다.
창백한 얼굴로 거친 숨을 몰아쉬던 단악선이 소매를 들어 비처럼 쏟아지는 땀을 훔쳐 냈다.
그러나 표정만큼은 더없이 밝았다.
“성공했어요.”
“수고했……. 응?”
무심코 입을 열던 범계위가 뒤늦게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저게 사람 몸에 다 들어간다고?’
반듯하게 누워 있는 진영산.
그의 정수리 부근에 거무튀튀한 무언가가 보였다.
바로 대침의 끝부분이었다.
진영산이 천천히 눈을 뜬 것도 그때였다.
방금 전 그토록 끔찍한 비명을 질러 대던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지극히 평온한 눈빛이었다.
그를 에워싸고 있던 마기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신이 드세요?”
진영산의 눈동자가 지진을 일으켰다.
감사한 마음과는 별개로 육신과 정신에 깊이 각인된 공포는 그의 의지를 벗어나 있었다.
이미 주화입마의 고통을 충분히 겪어 본 그였다.
그런데 설마 이를 아득히 뛰어넘는 고통이 존재할 줄이야!
“그럼 이제 대화를 나눠 볼까요?”
단악선의 말에 진영산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우선 제가 주화입마에 빠지게 된 연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영산이 순순히 자신이 겪은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적호방이 와해된 이후 한동안 강호를 떠돌던 저는 운 좋게 무림맹의 추적을 피해 녹림에 투신할 수 있었습니다.”
적호방 내에서도 손꼽히던 고수였던 만큼 자연스레 녹림 내에서도 점차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년간 궂은일을 도맡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깔끔한 일 처리를 높이 평가받아 총표파자인 악호군의 눈에 들게 되었다.
“하지만 제가 올라갈 수 있는 지위에는 한계가 있었지요.”
바로 다른 문파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이었다.
거기에 무공 역시 벽에 부딪혔다.
“악호군은 의심이 많은 자입니다. 녹림 출신이 아닌 제게 저들의 무공을 절대 전수하지 않았지요.”
더 높은 곳을 향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욕망.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무공이 필요했다.
매번 겪는 좌절이 삶에 대한 회의로까지 이어질 무렵, 한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한때 적호방에서 함께 지낸 적이 있던 동료였습니다.”
그는 무언가에 쫓기듯 한 권의 비급을 맡아 달라 부탁하고는 곧바로 사라져 버렸다.
“그게 혈옥수였나?”
초악량의 물음에 진영산이 한숨을 터트렸다.
“맞습니다.”
무공에 대한 갈망과 집착.
그 앞에서 인간의 양심과 의지는 한없이 무력했다.
더구나 혈옥수는 마교가 등장할 때마다 강호를 공포에 떨게 했던 절학이었다.
게다가 이를 맡긴 과거의 동료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는 비급에 대한 유혹.
결국 이를 끊어 낼 수 없었던 진영산은 혈옥수를 익히기 시작했다.
“혈옥수를 그렇게 쉽게 얻었다고? 그걸 믿으란 말인가?”
초악량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무림에 나타나는 것만으로 혈풍이 몰아칠 비급이었다.
그런데 고작 적호방의 일개 무인이 떠넘기듯 두고 갔다는 사실 자체가 어이없었다.
“너 거짓말하면 죽는다?”
범계위가 살기를 담아 으르렁댔다.
그러나 그 위협에도 진영산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입니다. 이제 와 제가 진실을 감출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범계위가 황당하단 표정으로 초악량을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거짓말을 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기연의 주인은 따로 있다더니.”
범계위의 말에 한설화가 실소했다.
“마지막에 주화입마가 기다리는 기연을 과연 기연이라 할 수 있을까?”
초악량이 두 사람을 제지하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 정도 무공이라면 충분히 요직을 노려봤을 법한데 어째서 녹림을 배신했지?”
“전 배신한 적이 없습니다.”
억울한 표정으로 진영산이 말을 이어 갔다.
“최근 황보세가와의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무림맹이 있었다.
구파일방을 탈퇴한 뒤 오대세가로 주축을 이뤄 세가의 연합으로 체제를 새롭게 정비한 그들은 당장 무림맹 존속을 위한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녹림을 목표로 잡았다.
“지낭리답군.”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 상황에서 녹림만 한 적도 없었다.
파사현정이라는 무림맹의 기치에 부합할뿐더러, 최대한 길게 싸움을 끌고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외부의 적을 이용해 내부의 결속력을 응집하기에 유리했다.
더구나 다른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데 이만한 수단도 없었다.
“그러다 한 번은 황보세가가 파 놓은 함정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펼친 천라지망은 지독하리만치 견고했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 진영산은 그때까지 드러낸 적이 없던 혈옥수를 사용해야만 했다.
“그렇게 겨우 천라지망을 빠져나온 뒤 총표파자께 사실대로 보고 서한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가 은신해 있던 안가(安家)로 혈랑대(血狼隊)가 들이닥쳤습니다.”
“아아, 그놈들?”
범계위가 아는 척을 했다.
혈랑대는 녹림 내에서도 뛰어난 무공을 지닌 자들로, 호위와 추적에 능한 특임대 성격을 지닌 악호군의 수족과도 다름없는 직속 단체였다.
과거에 몇 번인가 부딪쳐 본 적이 있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저를 무림맹의 간자라고 했습니다.”
“어째서지?”
초악량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진영산의 행적 어디에서도 무림맹과의 연관성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영산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튀어나온 것도 그때였다.
“칠절마군 노단양. 바로 그자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