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98)
신마의선-198화(198/500)
신마의선 (198)
남궁세가가 위치한 안휘에 초악량에 도착한 것은 이튿날 늦은 밤이었다.
잠깐 운기조식을 취하는 것 말고는 펼칠 수 있는 최대한의 경공을 시전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조금도 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궁세가의 정문 앞에 선 초악량이 굳게 닫힌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외원의 호위 무사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주를 뵙기 청한다 전하게.”
다짜고짜 건넨 초악량의 말에 무인은 처음에 인상을 찌푸렸다.
오밤중에 찾아와 대뜸 가주를 찾다니.
이처럼 경우 없는 손님을 쫓아내는 것도 그의 역할이었다.
한데 얼마 안 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달빛에 기대고 있어 처음에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상대의 눈빛이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혹시 몰라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그 자리에는 천하오절 중 한 명이 서 있었다.
“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호위 무사가 황급히 대문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남궁세가의 대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궁백이 친히 초악량을 마중 나온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이오, 가주. 그간 무탈하셨소?”
초악량의 반공대에 남궁백이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이제는 서로 친분이 생긴 사이.
한 가문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대우해 주겠다는 초악량의 뜻이 내심 고마웠다.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단 의원님과 다른 두 분 선배님들도 평안하시지요?”
초악량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애석하지만 그렇지 않소.”
“네?”
“다른 이들을 물려 주시겠소? 가급적 가주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하오만…….”
“이쪽으로 오시지요.”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불구하고 남궁백은 흔쾌히 독대를 수락했다.
친히 초악량을 안내해 남궁백이 도착한 곳은 내원의 한적한 정원이었다.
“이곳이라면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주의 배려에 감사드리오.”
“이제 듣는 이들도 없으니 편하게 말씀하시지요. 선배님께서 배려해 주시는 것은 감사하나 이 후배는 심히 부담스럽습니다.”
그 말에 초악량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한데 무슨 일로 이 늦은 시간에 폐가를 방문하셨는지요?”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실례를 무릅썼네.”
심각한 초약량의 표정에 남궁백의 눈빛도 무거워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진 초악량의 말에 남궁백이 깜짝 놀랐다.
“마교의 무공이 나타났네.”
“마공이 나타났단 말씀이십니까? 단 의원님이 계시는 무위에?”
“정확히는 그것을 익힌 사람이 나타난 게지. 그자는 혈옥수를 익히고 있었네.”
굳은 얼굴로 자신을 응시하는 남궁백을 향해 초악량이 설명을 이어 갔다.
“녹림에 몸담고 있다 이탈한 놈인데, 그를 악호군이 쫓고 있네. 한데 그가 혈옥수를 얻은 내력이 영 미심쩍어서 말이야. 자네라면 혹시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 몰라 이렇게 찾아온 것일세.”
초악량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다.
이후 남궁백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기를 잠시.
남궁백이 복잡한 눈빛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정마대전이 끝난 이후 무림맹은 몇 권의 마공 비급을 노획할 수 있었습니다.”
“몇 권씩이나?”
반문하던 초악량이 이어진 남궁백의 말에 깜짝 놀랐다.
“무공서는 모두 다섯 권이었습니다.”
“……!”
남궁백이 차분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 갔다.
“언급하신 혈옥수를 포함해 혈라강기(血羅罡氣)와 천강마벽(天罡魔壁), 명음마소(冥音魔笑). 마지막으로 극멸염륜(極滅炎輪)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초악량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남궁백이 나열한 무공들은 하나같이 강호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어김없이 크나큰 재앙을 일으켰던 마교의 진산절예였기 때문이다.
“그 비급들은 어찌 관리되고 있나?”
무림맹을 나온 남궁백이 그걸 들고나오지는 못했을 테니 아직도 무림맹 어딘가에 남아 있을 터.
그런데 의외로 남궁백은 고개를 저었다.
“모두 파기했기 때문에 남아 있는 비급은 없습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한은 말입니다.”
“그 절학들을 파기했단 말인가?”
뜻밖의 대답에 당황한 초악량을 향해 남궁백이 쓰게 웃었다.
“비급의 존재로 인한 폐해가 너무 커 부득이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폐해라면?”
“처음에는 비급의 내용을 연구해 마공의 파훼법을 찾으려 했습니다. 나아가 마공과 상극인 반마공(反魔功)을 창안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했고요. 훗날 언젠가 있을 놈들의 발호를 막기 위해서요.”
남궁백의 얼굴 위로 지울 수 없는 후회의 감정이 떠올랐다.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마공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렬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었다.
힘을 숭상하는 무인에게 있어 이는 좀처럼 거부하기 힘든 유혹인 셈이다.
그것도 하나같이 전대 마두들이 강호를 호령했던 무공이니 말할 것도 없었다.
“연구를 하던 이들 중 마공을 익혀 심마에 빠진 자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초악량은 더 묻지 않았다.
남궁백은 간단히 심마라고 표현했지만 무거운 표정과 회한 가득한 눈빛에서 당시의 상황이 결코 가볍지 않다 직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마공에는 상위 무공을 지닌 자를 거역할 수 없는 강제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저들이 상급자의 명령에 망설임 없이 목숨을 던지는 것도 그래서 가능했지요.”
비록 연구를 위해 익힌 것이지만 이는 곧 무림맹 내부에 스스로 세작을 만들어 내는 결과나 다름없었다.
“최소 육마존(六魔尊) 정도의 성취를 이루지 않는 이상 의지만으로 마공의 구속력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 정도였나…….”
한때 호교십위(護敎十衛)라 불리었던 교주의 최측근들.
하나 정마대전 당시 그중 네 명이 목숨을 잃었고, 남아 있는 여섯 명을 육마존이라 지칭하고 있었다.
무림맹이 얻은 무공 역시 본래는 사망한 호교십위가 지니고 있던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는 어찌 된 것인가? 듣자니 칠절마군을 마교의 비급을 대가로 회유를 했다던데?”
초악량의 질문에 남궁백이 슬쩍 웃었다.
“애초부터 그에게 보여 준 비급은 절반뿐이었습니다. 그것만으로 혈라강기를 익히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혈옥수 역시 자네나 무림맹에서 유출된 건 아닌가 보군.”
“아마도 그러할 것입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초악량이 순간 멈칫했다.
갑자기 이상한 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절학이 유출되었다는 걸 과연 마교가 모를까?”
곰곰이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던 남궁백이 이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확실히 이상하군요. 저들이 너무 잠잠합니다.”
아무리 큰 피해를 입었다 하나 마교는 마교였다.
자신들 이외에는 그 어떤 무림의 세력도 인정하지 않는 독선과 아집.
그런 그들이 자신들의 상징성을 지닌 절학의 유실을 손 놓고 구경만 한다는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 이면의 사정을 유추하기에는 단서가 너무 부족했다.
“진실을 말해 주어 고맙네.”
“의당 해야 할 당연한 일입니다. 남도 아니고, 단 의원님과 관련된 일을 어찌 폐가가 모른 척할 수 있겠습니까?”
“응?”
초악량은 남궁백의 마지막 말에서 묘한 무언가를 느꼈다.
하나 남궁백은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을 뿐이어서 그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혹 칠절마군에 대한 정보도 있나?”
“노단양, 그자라면 저희도 백방으로 수소문 중입니다만 아직 뚜렷한 행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그를 돕는 방수(幇手)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점을 남궁백도 이상하게 느끼고 있었다.
십대악인 출신인 노단양은 무림맹 내에서도 항상 겉도는 위치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다.
그것도 거대한 호수에 가라앉은 조약돌처럼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그를 돕는 자에 대한 심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현재로서는 그저 막연한 추측에 불과했다.
명확한 증좌 없이 의심을 제기해 봐야 오히려 상대에게 명분만 내어 줄 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의 성격이라면 분명 복수를 위해 이를 갈고 있을 터.”
무공은 둘째 치고 독기와 집요함만은 강호사사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인물이 노단양이었다.
그래서 하루빨리 놈을 찾아내야 했다.
혹시 닥칠 위험을 미리 제거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놈을 통해 이번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강렬한 예감이었다.
남궁백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단 의원님이 어쩌면 큰 혈풍에 휘말릴 수도 있겠군요.”
“다행이군.”
“예?”
당황해 반문하는 남궁백을 향해 초악량이 슬며시 웃었다.
“자네 정도나 되는 사람도 그리 생각했다면 필시 흑막 이면에서 귀계를 꾸미는 자들도 마찬가지겠지.”
“그게 무슨……?”
여전히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는 남궁백의 모습에 초악량이 단언하듯 입을 열었다.
“그 아이를 섣불리 판단하지 말게. 나이가 어리다 뿐이지 충분히 제 앞가림은 하는 아이네. 게다가 누구보다 영민한 아이지. 자신을 둘러싼 저간의 상황을 어찌 모르겠는가?”
“아!”
“분명 나름대로 생각해 둔 바가 있을 걸세.”
단악선을 떠올린 초악량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지금까지 그 아이는 단 한 번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네. 위기가 도래했을 때야말로 진정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바로 단 의원이라네.”
“그렇군요.”
남궁백이 내심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의 혈수존자가 이처럼 누군가를 높이 평가한 적이 있었던가.
적어도 그가 아는 한에서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혹시 지금까지 칠절마군에 대해 모은 정보는 있나?”
“물론입니다. 곧바로 내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남궁백이 어딘가로 전음을 날렸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수북한 서류를 받쳐 든 노총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직접 놈을 찾으실 생각이십니까?”
남궁백의 물음에 초악량이 조용히 웃었다.
“놈에게는 받아 내야 할 빚이 있다오.”
비록 눈은 웃고 있었으나 그 안에서 서늘하게 몰아치는 가공할 살기를 마주한 남궁백은 돌연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무공을 완전히 회복했구나!’
그러고 보니 이제는 초악량의 기도가 아예 느껴지지 않았다.
그조차 잡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한 반박귀진(返樸歸眞)의 경지.
겉모습만 보고서는 강호를 떨어 울리는 절대고수라 도저히 짐작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남궁세가의 총관인 단리웅풍이 가져온 서류들을 그 자리에서 모두 숙지한 뒤, 초악량이 남궁백을 향해 예를 갖췄다.
“가주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오.”
“무슨 말씀을. 미력하나마 존자께 도움을 드릴 수 있어 다행입니다.”
“그럼 또 봅시다.”
그 말과 함께 초악량의 신형이 허깨비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허!”
막상 이를 눈으로 확인한 남궁백은 그 가공할 신법에 탄성을 흘릴 뿐이었다.
이 순간 그가 느끼는 감정은 오직 하나.
천하오절의 벽은 정녕 높다는 것이었다.
남궁세가를 벗어난 초악량은 곧장 한 군데의 장소를 떠올렸다.
‘내키지는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군.’
당장은 더운밥 찬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묵은 빚을 청산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놈을 찾아내야 했다.
이 년 전, 처음 단악선을 만나게 된 계기.
무림맹 고수들의 합공에 초주검이 되었던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자 자신도 모르게 이가 갈렸다.
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놈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놈의 음모에 보기 좋게 속았고, 하마터면 그 때문에 황천행 배에 몸을 실을 뻔했다.
“어쩔 수 없이 당분간은 외유를 해야겠어.”
당장 무위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아쉬웠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범계위와 한설화가 있는 이상 단악선의 안위를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홀연히 종적을 감춘 기련산의 미치광이 늙은이.
천마 정도가 직접 오지 않고서야 두 사람을 당해 낼 고수는 강호를 통틀어 전무했다.
신형을 솟구친 초악량이 곧장 북서쪽을 향해 방향을 잡았다.
목적지를 정한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밤하늘을 가르는 한 줄기 유성처럼 초악량의 신형은 이미 광풍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