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99)
신마의선-199화(199/500)
신마의선 (199)
유시 말엽.
인적이 끊긴 신마의가는 고요했다.
흘러내리듯 사위를 감싼 고아한 달빛과 이따금 들려오는 바람 소리만이 전부인 호젓한 밤.
그러나 늦은 시각까지 단악선의 처소는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
끊임없이 흔들리며 어둠을 밀어내는 유등의 불빛.
그 아래서 단악선은 방금 인편을 통해 도착한 서신을 확인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 신마의가를 떠났던 초악량이 보낸 서신이었다.
―칠절마군 추적 중.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는, 그저 한 줄짜리 내용이 전부인 간단한 내용의 서신이었다.
“부디 별일 없으셔야 할 텐데.”
나직이 한숨을 흘리는 단악선의 모습에 범계위가 서신을 힐끔거렸다.
그리곤 이내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찼다.
“쯧! 이것 봐.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네?”
의아해하는 단악선을 향해 범계위가 기다렸다는 듯 초악량을 헐뜯었다.
“완치되자마자 신나서 빨빨거리며 돌아다니잖아. 응? 애도 아니고 말이야. 기껏 힘들게 고쳐 놨더니 또 싸움이나 하러 돌아다니잖아. 그것도 지금처럼 중요한 상황에서. 안 그래? 단 의원.”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내심 누구보다 초악량을 걱정하고 있을 사람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무사히 돌아오시겠죠?”
단악선의 물음에 범계위가 실소했다.
“걱정할 사람을 걱정해야지. 무공을 회복한 초 형을 누가 다치게 할 수 있겠어? 강호 전체를 뒤져도 나 정도는 돼야 그나마 살짝 비벼 볼 수라도 있을걸?”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피식하는 코웃음이 들려왔다.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린 채 뒤에 서 있는 한설화를 노려봤다.
“아니면 저 마녀 정도는 되어야겠지.”
사실상 무공을 회복한 초악량은 적수가 없다는 의미였다.
비로소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은 단악선이 서신을 접어 품속에 갈무리했다.
“그럼 전 의가 좀 둘러보고 올게요.”
묵묵히 단악선을 따라나서는 한설화를 범계위가 불러 세웠다.
“어이, 마녀.”
“……?”
“너는 어디 갈 데 없어?”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한설화가 재차 코웃음을 치며 돌아섰다.
“쳇.”
단악선을 독차지할 계획이 무산된 범계위가 아쉬운 표정으로 혀를 찼다.
같은 시각.
신마상단의 집무실에서 머리를 맞댄 채 고심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사무심과 능소밀이었다.
산처럼 쌓인 서류들을 확인하던 사무심이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 하루만 육백 명이 넘는군.”
사무심이 침음성을 흘리자 능소밀도 덩달아 한숨을 내쉬었다.
“상단과 관련된 이가 사백 명. 의가와 관련된 사람들은 이백 명 정도고, 나머지는 표국 사람과 일반인들입니다. 그중 사파 무림인은 열 명 남짓이고요.”
오늘 하루 무위를 드나든 사람들을 기록한 자료들을 확인한 두 사람의 얼굴이 무거워졌다.
“현재 인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군.”
아무리 상단의 규모가 늘어났어도 상단원은 어디까지나 상단원.
감시와 정보 수집에 특화된 인원이 아니었기에 역할의 한계가 분명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야지요.”
능소밀이 쓰게 웃었다.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조사는 가능할 겁니다.”
문제는 앞으로 무위를 드나드는 사람들의 숫자가 더 늘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점이었다.
“대책을 모색해야겠군.”
그렇게 두 사람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집무실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섰다.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죠?”
단악선을 발견한 두 사람이 애써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고생은요.”
“이번 일을 계기로 조금 앞당겨졌을 뿐,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탁자 위에 놓인 서류들을 확인한 단악선이 두 사람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래도 사람들을 너무 압박하진 말아 주세요.”
사무심과 능소밀이 당황한 얼굴로 시선을 마주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무위는 발전하고 있어요. 사람들의 삶도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고요. 그런 사람들의 미소를 보는 게 제겐 더없이 큰 행복이에요.”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곡주님의 신변에 위험이 닥친다면…….”
능소밀의 우려에도 단악선은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 절 노린다면, 그냥 놔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요.”
“네?”
“혹시 모를 위험인물을 찾아내기 위해 대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을 의심한다면 지금의 무위를 만들기 위해 애써 왔던 그간의 노력이 퇴색하지 않을까요?”
단악선이 자신의 확고한 뜻을 밝혔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를 태우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래도 걱정을 채 떨쳐 내지 못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단악선이 웃으며 말했다.
“이곳 무위는 누군가에는 최후의 선택지예요.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자유롭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가혹한 현실을 피해 기껏 도착한 곳에서 다시 감시를 받는다면…….”
침묵하는 두 사람을 향해 단악선이 되물었다.
“무위를 금지로 선포한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셨으면 해요.”
물끄러미 단악선을 응시하던 사무심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곡주님의 뜻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반면 능소밀은 여전히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단악선의 뜻은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음험하고 냉혹한 귀계가 난무하는 무림의 이면을 알지 못하기에 할 수 있는, 순진한 발상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능소밀은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긴장된 분위기가 형성되면 암중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역시 이전보다 더욱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할 거예요. 차라리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되, 만약의 사태가 도래했을 때 기민하게 대처하는 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저 역시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요.”
“허허실실(虛虛實實)의 계책이군요.”
“거기에 하나 더. 눈앞에 먹음직한 미끼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들어야죠.”
“미끼 말입니까?”
“섣불리 수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하느니 상대가 모습을 드러내도록 자연스럽게 유인하는 거죠.”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능소밀을 향해 누군가 말을 건넸다.
“단 의원은 지금 포전인옥(抛塼引玉)의 계책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능소밀이 깜짝 놀라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는 한설화를 향해 되물었다.
“설마 곡주님 스스로 미끼가 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한설화가 예의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나와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마쳤다.”
능소밀이 침음했다.
그런 그에게 단악선이 어깨에 메고 있는 묵룡을 가리켰다.
“걱정 마세요. 오늘부터는 늘 묵룡을 지니고 다닐 테니까요. 게다가 제 곁에는 늘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함께 계시잖아요.”
확고한 단악선의 의지에 능소밀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곡주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 * *
무위 저자 중심지에는 약방 거리가 있었다.
과거에는 약재들만 취급하던 약재상이 전부였지만 신마단과 독계산의 인기에 힘입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한 약방이 지금은 마을 한곳에 운집해 하나의 거대한 상권을 형성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단악선의 결정이 있었다.
환자들 중 상당수가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했는데, 약을 만드는 인력과 도구에 한계가 있어 신마의가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약방들과 협업을 통해 신마의가에서 발행한 처방전을 가져가면 언제든지 해당 약을 조제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를 통해 얻은 이익도 상당했을뿐더러 무엇보다 안정적인 수익을 도모할 수 있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무위에는 새로운 약방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약방 거리가 무위를 상징하는 특색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영화당(永華堂) 역시 그런 약방들 가운데 하나였다.
근래에 개업한 약방이었지만 친절한 주인과 뛰어난 약효 덕분에 제법 입소문을 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늘도 오가는 환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약방 주인 감곡이 늘 그렇듯 사람 좋은 미소로 직접 문밖까지 나와 환자를 배웅했다.
그렇게 마지막 손님을 보낸 뒤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기 위해 문을 닫아걸려던 순간.
뒤늦게 약방을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한눈에 봐도 병색이 완연한 사십 대 초반의 사내였다.
“어서 오십시오.”
감곡은 닫아걸던 문을 다시 열고 환자를 안으로 들였다.
그런데 약방 안에서 환자와 마주한 순간 그의 눈빛이 바뀌었다.
사람 좋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더없이 냉혹하고 차가운 위압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벌써 퇴원한 건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감곡의 음성에 사내가 쩔쩔매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더 이상은 버틸 방법이 없었습니다.”
말없이 사내를 응시하던 감곡이 계산대로 걸어갔다.
짤그랑.
금고에서 은자가 담긴 주머니를 꺼내 사내에게 던진 감곡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후 할 일은 알고 있겠지?”
“무, 물론입니다.”
조심스럽게 전낭을 집어 든 사내가 약방 내부로 향했다.
약재들이 정리된 서랍장 한 곳을 건드리자 뒤쪽의 비어 있는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으로 들어선 사내가 서탁 위에 놓인 지필묵을 향해 다가섰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기록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사내를 향해 감곡이 말했다.
“이대로 무위를 떠나라.”
황급히 고개를 끄덕인 사내가 서둘러 영화당을 나섰다.
보기 좋게 꾸며 낸 사람 좋은 미소로 그를 배웅한 감곡이 주위를 살핀 뒤 문을 걸어 잠갔다.
이후 내부의 비밀 공간으로 향해 방금 전 떠난 사내가 남긴 기록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각각 다른 필체들로 채워진 서책에는 신마의가 내부의 건물 배치를 비롯해 환자들의 동향, 단악선과 환자들이 나눈 대화까지 소상하게 적혀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촛불이 일렁이는 것을 깨달은 감곡이 은밀하게 품속으로 손을 가져갔다.
한 사람의 음성이 귓전을 파고든 것도 그때였다.
“명령이 내려왔다.”
귀에 익은 음성에 감곡이 쓰게 웃으며 돌아섰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핏빛을 머금은 한 자루 비수가 들려 있었다.
“여전히 사람을 놀라게 하시는군요.”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감곡의 음성에는 은은한 노기가 배어 있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유령처럼 눈앞에 서 있는 사내.
비록 같은 조직에 몸담고 있다 하나 매번 이런 식으로 명령만 던지고 사라지는 그의 존재가 내심 거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푸념 섞인 그의 말에도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흑의인은 감정이 실리지 않은 눈빛으로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무기질적인 눈빛.
비수를 거둔 감곡이 한숨을 삼키며 물었다.
“무슨 명령입니까?”
“단악선을 제거한다.”
“……!”
깜짝 놀란 감곡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수습한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제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단악선에게 접근할 기회를 만들어라.”
“최근 혈수존자가 보이지 않습니다만, 여전히 단악선 곁에는 망산초자와 빙옥선자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둘 중에 한 명. 누구라도 상관없으니 한 명만 떼어 내라. 그 뒤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감곡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사전에 미리 준비한 포석이 몇 가지 있습니다.”
“정확히 사흘 후. 이곳 무위로 우리 쪽 사람 다섯이 들어올 것이다. 단악선은 그들이 처리할 것이다.”
감곡이 난색을 드러낸 것도 그때였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문제?”
“도주로와 은닉처를 마련할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건 신경 쓸 필요 없다.”
처음에는 의아해하던 감곡이 이내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감곡의 대답을 들은 복면인이 천천히 물러섰다.
그리고 이내 어둠 속에 녹아들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홀로 남겨진 감곡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언제 봐도 귀신 같은 표홀한 신법에 할 말을 잃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