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
신마의선-2화(2/500)
신마의선 (2)
이른 아침.
어슴푸레한 미명을 걷어 낸 햇살이 전각의 이 층 창문을 넘자 얼굴을 간질이는 온기에 단악선이 눈을 떴다.
“하암.”
침상에 누운 채로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 단악선이 창문을 열었다.
쏴아아.
시원하게 쏟아지며 연못을 두들기는 폭포.
장엄하게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그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단악선은 잠시 눈앞의 경치를 만끽했다.
매일 아침 보는 풍광인데도 질리지가 않았다.
잠시 후 단악선이 아래층으로 이어진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일 층 한쪽에 놓여 있는 항아리.
그 안에서 보리쌀을 한 움큼 집어 주머니에 넣은 뒤 전각을 나섰다.
그리고 곧장 연못으로 향했다.
연못은 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했고, 엄청나게 차가웠다. 그 물로 세수를 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물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단악선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안녕, 얘들아.”
다양한 색상의 물고기들이 어느새 단악선 앞에 모여 있었다.
단악선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곤 항아리에서 집어 온 보리쌀을 연못에 뿌렸다.
먹이를 먹기 위해 분주해진 물고기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단악선이 초악량이 머물고 있는 모옥으로 향했다.
“들어갈게요.”
좌정한 채 운기조식을 하고 있는 초악량이 감았던 눈을 뜨며 조용히 웃었다.
“어서 오시게, 단 선생.”
“그렇게 부르시지 말라니까요. 민망하단 말이에요.”
“하하, 알겠네. 단 선생.”
초악량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단악선이 볼을 부풀렸다.
살짝 삐진 듯한 그 모습에 초악량이 멋쩍게 웃었다.
“알겠다. 정 그렇다니 앞으로는 편하게 말하마. 선생 대신 의원으로 부르는 건 괜찮겠지?”
그제야 단악선이 표정을 풀었다.
“네. 몸은 좀 어떠세요?”
초악량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래저래 노력은 하고 있다만, 아직 운공은 무리구나.”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혹시라도 초악량이 실수할까 싶어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기맥이 뒤틀렸고 단전도 다쳤어요. 피도 많이 흘린 데다 내부도 많이 상했고요. 사실 지금도 위험한 상태예요.”
단악선이 손을 들어 초악량의 가슴을 가리켰다.
“무리하면 다시 심각해질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벌어진 상처도 아직 아물기 전이고.”
단악선이 한숨을 흘렸다.
“정말 운이 좋았던 거라니까요. 가슴 상처가 반 치만 더 깊었으면 그 자리에서 절명하셨을 거예요.”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네?”
“남궁가의 장로가 펼친 제왕검형(帝王劍形)이 운으로 어찌할 수 있는 건 아니지.”
호신강기를 뚫고 들어왔던 섬뜩한 검강.
지금 생각해도 간담이 서늘한 순간이었다.
“남궁세가요? 천하제일 검가라는?”
단악선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 초롱초롱한 눈빛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악선의 말이 빨라졌다.
“전에 아버지께 들은 적 있어요. 남궁가는 검의 조종(朝宗)이고, 그래서 검조(劍朝)라 불린다고요.”
“흥!”
초악량이 차가운 웃음을 말아 올렸다.
“제 검에 목 뚫려 죽은 놈이 검조는 무슨.”
“그건 엄마와 비슷한 말씀이네요.”
“그래? 생사마의께선 뭐라 하셨느냐?”
“들고 있는 검의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얼간이들이라고 하셨어요. 결국 그 검이 자신들을 해칠 거라고.”
“역시 마의! 놀라운 혜안이로다. 남궁가 놈들은 범을 대신한 여우에 불과해.”
초악량이 살기를 뿜어내자 단악선이 만류했다.
“지나친 흥분은 금물이에요. 호흡이 거칠어지면 부러진 늑골이 장기를 찌를 수 있거든요.”
“주의하마.”
말은 그리했지만 초악량은 쉽게 분노를 가라앉힐 수 없었다. 옆구리에 파고들었던 경력을 떠올리니 새삼 화가 솟구쳤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단악선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궁금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할 말이 있다면 하려무나.”
고민하던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옆구리의 부상에 대해 묻고 싶어서요. 원인을 알면 치료가 쉬워지거든요. 물론 호기심도 있고요.”
“호기심?”
“네. 그렇게 일정한 간격으로 부러진 늑골은 처음 봤어요. 그런데 물어보면 또 화……내실까 봐.”
초악량이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 와중에도 자신을 걱정해 주는 단악선이 기특하고 고마웠기 때문이다.
“소림 땡중들의 절학인 사자모니인(獅子牟尼引)이다. 충격으로 내부를 진탕시키는, 호신강기를 전문적으로 파괴하는 수법이지.”
“소림사요? 무림의 태산북두 중 하나라고 들은 곳이네요.”
남존무당(南尊武當)과 더불어 정도 무림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 북숭소림(北崇少林).
“엄마는 머리만 밀면 강해진다고 믿는 미친놈들이라고 했지만…….”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친놈 중에 료범이라는 놈이 있었다. 나한당의 당주를 맡고 있는 놈이었지.”
단악선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초악량이 과거형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니란 말인가요?”
단악선의 물음에 초악량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목이 부러져 죽었거든.”
그리고 자신의 어깨를 가리켰다.
“이 상처를 만든 놈과 사이좋게 갔지.”
초악량이 섬뜩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 갔다.
“가슴뼈를 함몰시킨 뒤 그대로 심장을 타격했다.”
당시를 떠올린 초악량이 흉흉한 살기를 드러냈다.
‘부끄러움도 모르는 늙은이들.’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그들 개개인은 그래도 나름 무림에서 명숙이라 불리던 자들이었다. 물론 자신과는 어느 정도 실력의 차이가 존재하니 차륜전(車輪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합공을 할 줄이야.
비참히 죽어도 싼 놈들이다.
자존심도 없는 자들에게 무슨 명숙이라는 칭호란 말인가!
그때 단악선이 모옥 밖으로 쪼르르 달려 나갔다가 잠시 후 무언가를 들고 돌아왔다.
손에는 두꺼운 가죽 장갑을 낀 채였다.
“어깨에 박혀 있었던 암기예요.”
금속으로 만들어진 강전이었다.
단악선이 옆 부분을 건드리자 철컥 소리와 함께 강전의 몸체에서 역린 형태의 갈고리들이 솟구쳤다.
“사실 이것 때문에 가장 애를 먹었어요. 제거하기가 정말 어려웠거든요. 심지어 독까지 발라져 있더라고요.”
“절명전(絶命栓)이라는 물건이다.”
초악량이 설명을 덧붙였다.
“손으로 던지는 수전(手栓)이지. 당가의 가주와 장로들만 다루는 비전 암기다.”
“엄청 정교하더라고요.”
단악선은 독본(毒本) 당가라는 말에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의께서 당가를 뭐라 평하셨느냐.”
태연하게 물었지만 사실 초악량은 마의의 평가를 무척 궁금해하고 있었다.
“옹졸한 겁쟁이요. 얼마나 내세울 게 없었으면 고작 독 따위로 스스로 추켜세우겠냐면서요.”
“크큭! 훌륭한 평가구나. 바로 그렇다.”
“그 부분은 아버지도 동의하셨어요.”
“응? 신의께서도?”
“당가를 싫어하셨거든요. 군자의 도리를 모르는 소인배들이라고.”
그 박한 평가에 초악량은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초악량이 단악선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도 넌 내가 무섭지 않느냐?”
자신이 세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듣고도 단악선이 태연했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눈을 들어 초악량을 바라봤다.
“솔직히 말하면 무섭다기보다는 신기해요.”
“신기하다고?”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토록 많은 신공절학을 맨몸으로 받아 내고도 살아 계시잖아요.”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의원으로서 봤을 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거든요.”
초악량이 실소했다.
만약 단악선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 기적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단악선이 침통을 꺼내며 말했다.
“오늘은 침을 미리 놓아야 할 것 같아요. 마을에 다녀와야 하거든요.”
“약재를 팔러 가는 것이냐?”
“네, 살 것도 있고요.”
초악량이 나직하게 한숨을 흘렸다.
“이리 매번 신세만 지니……, 내가 참 염치가 없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몸이 조금만 나으면 약값은 내가 알아서 구해 오마.”
거처에만 들를 수 있다면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말에 단악선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왕이면 많이 가져오세요. 좋은 약재를 쓰면 치료도 더 빨라질 테니까요. 하지만 당분간은 절대 엄금이에요.”
초악량이 웃음을 터트렸다.
“절대 엄금이라니. 정말 의원 같은 말투로구나.”
샐쭉해진 단악선의 표정에 초악량이 아차 싶었다.
“미안하다. 내가 실언했다. 의원다운 말투라 말한다는 게 그만…….”
단악선이 말없이 침이 담긴 목갑을 꺼냈다.
그 모습에 초악량이 움찔했다.
“긴장하지 않으셔도 돼요. 오늘은 아빠 방식이에요.”
초악량이 어색하게 헛기침을 터트렸다.
“험험, 긴장은 무슨. 마의의 방식도 견딜 만하다.”
말과는 달리 내심 안도의 한숨을 흘리는 초악량이었다.
단악선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빠 방식은 효과가 느리지만 안정적이고 고통이 덜해요. 반대로 엄마 방식은 빠르지만 거칠고 엄청 아프죠. 그런데 둘 다 필요한 부분이 있어요.”
“걱정할 것 없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이 정도 고통은 기꺼이 감내해야지.”
“그럼 시작할게요.”
단악선이 침을 놓기 시작했다.
초악량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마을에 가면 내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게다.”
“그럴게요.”
너무나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는 단악선의 모습에 오히려 초악량이 궁금해졌다.
“이유를 묻지 않는구나?”
“원래 무림인들은 사연이 많잖아요.”
초악량이 잠시 말없이 단악선을 바라봤다. 순진한 얼굴에서는 그 어떤 의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 이름은 초악량이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천하오절 중에 권절(拳絶)이 바로 나다.”
“아! 권절 초악량! 저도 들어 봤어요! 당금 강호에서 가장 강한 다섯 명이요!”
“십대악인의 수좌로 더 유명하지.”
초악량이 단악선의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단악선의 반응이 싱거웠다.
한 차례 고개만 끄덕였을 뿐, 여전히 치료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내가 거북하지 않느냐?”
초악량의 질문에 단악선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우리 엄마가 누군지 잊으셨어요?”
그 한마디에 초악량이 웃고 말았다. 괄괄한 성격과 기행으로만 따지자면 사파 제일인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때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무림인들은 다 똑같다.”
“……?”
의아해하는 초악량을 향해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엄마, 아빠. 두 분 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무림에 몸담은 이상 선인과 악인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요.”
“구분이 의미 없다?”
“일반인을 건드리는 놈은 나쁜 놈. 나머지는 다 똑같은 놈.”
단악선이 눈을 들어 초악량을 보았다.
“아저씨는 어느 쪽인가요?”
“맹세코 원한이 없거나 무림인이 아닌 사람을 죽인 적은 없다.”
“그럼 아저씨는 후자네요.”
“허허.”
초악량이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단순하지만 명쾌한 논리였다. 그러다 문득 초악량은 내심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런데 나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셨느냐?”
그 순간, 단악선의 어깨가 움찔했다.
시종일관 침착하던 아이가 그 질문에 당황한 것이다.
“말 안 할래요.”
“대체 뭐라 하셨기에……?”
“듣지 않는 게 좋으실 거예요.”
“으음…….”
“하지만 제 평가는 달라요. 직접 겪어 본 아저씨는 그렇게 광오해 보이지도, 뒤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당장만 사는 분 같지도 않거든요.”
초악량이 씁쓸하게 웃었다.
듣지 않아도 다 들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