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01)
신마의선-201화(201/500)
신마의선 (201)
그런 범계위의 모습을 보며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능소밀이었다.
이러다 자칫 또 다시 제비뽑기를 하면 어쩌나 내심 전전긍긍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는 이곳에서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적당한 이유를 대고 자연스럽게 발을 빼는 감곡의 모습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역시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감곡에게 환자가 있는 곳의 위치를 확인한 단악선이 신형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한설화 역시 신형을 뽑아 올렸다.
순식간에 작은 점으로 화해 사라지는 두 사람의 모습에 감곡이 깜짝 놀랐다.
단악선이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높은 경지에 이르러 있을 줄은 예상치 못한 것이다.
“대단하지?”
“예?”
난데없이 말을 건네 온 범계위 때문에 감곡이 당황해 반문했다.
“우리 단 의원을 고지식한 샌님으로만 알았다면 오산이야. 얕보고 덤볐다간 까무러치게 놀랄걸?”
팔불출처럼 으스대는 범계위의 말에 감곡의 눈빛이 흔들렸다.
신마의가를 떠나 경공을 전개하던 단악선이 의아한 눈으로 한설화를 바라봤다.
어째서인지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 바보를 떨궈 놓고 온 건 잘한 일이었다.”
한설화의 말에 단악선이 쓰게 웃었다.
“그래도 조금 미안해요. 어쨌거나 범 아저씨를 속인 셈이니까요.”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사실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성질 급한 범계위라면 당장 감곡부터 때려잡고 봤을 터.
“미안은 무슨.”
그렇게 말한 한설화가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달리는 단악선을 보며 슬쩍 웃었다.
비록 전력을 다한 건 아니었으나 제법 잘 따라오고 있었다.
“경공이 많이 늘었구나.”
“아주머니 덕분이죠.”
“힘들면 말해라.”
“아직은 괜찮아요.”
고개를 끄덕인 한설화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단악선을 응시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단악선은 이미 숨이 턱까지 차올라 있었다.
“내력을 아껴라. 그곳에 도착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한설화의 충고에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만에 하나, 감곡이라는 분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도 있잖아요.”
지금 향하는 그곳에 진짜 환자가 있다면 시간이 단축될수록 그만큼 살려 낼 가능성도 높아진다.
지극히 단악선다운 대답에 한설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손을 뻗어 단악선을 붙들었다.
“꽉 잡아라.”
단악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주위의 경물이 엄청난 속도로 스쳐 지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제대로 마음먹고 펼친 한설화의 경공은 실로 대단했다.
덕분에 단악선은 경공에 쏟아붓던 내력을 아낄 수 있었고, 원래대로라면 두 시진 이상 소요되었을 시간 역시 절반 이상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무위로부터 한참 떨어진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아담한 장원이었다.
활짝 열린 대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선 단악선이 나직한 한숨을 흘렸다.
장원 그 어디에서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위중한 환자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를 잠시.
“그렇다면 역시나 함정이겠죠?”
한설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인가.”
아무리 은밀하게 은신하고 있다 해도 그녀의 기감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단악선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어요.”
신마단의 제조 방법은 기본적으로 성수신단의 제조법을 기반하고 있었다.
다소 저렴한 약재를 사용한다곤 하나 만드는 과정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성수신단의 제조법은 아버지인 신의에게 물려받은 것.
그만큼 단악선은 신마단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껏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던 신마단의 부작용이 하필 이때 나타나다니.
게다가 이미 몇몇 환자들에게서 의심스러운 정황이 포착된 상황.
시기상 너무나 공교로웠다.
그래서 일부러 한설화와 동행한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격다짐의 범계위보다 강호 경험이 많고 심계가 깊은 한설화가 더 낫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 차례 주위를 둘러본 한설화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숨어 있기만 할 거면 왜 부른 것이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원의 처마 아래서 두 사람이 뚝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곧장 한설화와 단악선을 향해 쇄도해 왔다.
두 사람 모두 복면을 쓰고 있어 확인할 수 있는 건 두 눈뿐이었지만, 체구로 미루어 한 명은 사내였고 다른 한 명은 여인이 분명했다.
“흥!”
싸늘한 미소를 말아 올린 한설화의 신형이 그대로 꺼지듯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새 달려드는 두 사람 앞에 유령처럼 나타났다.
오 장의 거리를 단숨에 지워 버린 듯한 가공할 신법이었다.
자칫 난무하는 경력에 단악선이 휩쓸릴까 싶어 거리를 둔 것이다.
그 엄청난 신위에 습격자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한설화가 손을 들어 허공의 한 점을 찍은 것도 그때였다.
한차례 대기가 일그러지나 싶더니, 섬뜩하기 짝이 없는 예리한 경력이 사방에서 솟구쳤다.
암경을 응용한 진기의 칼날.
이를 이용해 진로를 차단한 뒤 한 명씩 제압할 생각이었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자신들을 향해 솟구친 예기로 습격자들이 망설임 없이 뛰어든 것이다.
한설화는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진기가 유형화된 칼날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기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호신강기를 지니고 있다 한들 그 앞에서는 종잇장과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한설화의 눈 위로 잠시 갈등의 빛이 스쳤다.
죽음을 도외시한 채 달려드는 저들의 무모함이 어이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저들을 통해 알아내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주저하게 만든 것이다.
‘뭐, 상관없나?’
저들이 죽는다고 해도 정보를 캐낼 사람은 아직 셋이나 남아 있었다.
마음을 굳힌 한설화가 허공을 향해 소매를 내저었다.
마치 귀찮은 벌레를 쫓듯 가벼운 손짓이었다.
하나 그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째앵!
섬뜩한 소리와 함께 차가운 얼음 칼이 허공을 그어 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복면 여인의 눈에서 서늘한 기광이 번뜩였다.
그리곤 기다렸다는 듯 양손을 모았다 넓게 펼쳤다.
“음?”
한설화의 입에서 당혹성이 새어 나온 것도 동시였다.
금방이라도 상대를 찢어발길 것 같던 진기의 칼날들이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상대를 비껴갔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진짜 당황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투명하게 변한 여인의 두 손.
그 광경이 너무나 눈에 익었기 때문이다.
‘현빙옥수(泫氷玉手)!’
현음신공(玄蔭神功)을 십성 이상 대성한 이가 빙백신권(氷白神拳)을 사용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상대의 정체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장성 너머, 변방의 새외무림(塞外武林).
달리 변황오세(邊荒五勢)라고 부르는 다섯 곳의 세력 중 오직 북해빙궁만이 저와 같은 신위를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설화는 일순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은 흐릿할 정도로 아득히 먼 예전의 기억.
그러나 그곳은 한때 그녀가 태어나 자랐던 곳이었다.
‘빙궁이 어째서?’
그 순간 거리를 좁혀 온 복면 사내가 벼락처럼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기다란 송곳을 연상시키는 협봉검(狹鋒劍)이 들려 있었다.
베기를 배제한 채 오직 찌르기만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형검.
그런데 그 검의 형태가 놀라웠다.
비스듬히 각을 세운 검첨(劍尖).
그곳에서 시작해 검신을 따라 길게 파인 혈조는 살짝만 찔려도 대량의 출혈을 유도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특히 검신 자체가 놀라울 정도로 유연해 회초리처럼 낭창낭창 휘어져 검로를 예상하기 힘들었다.
그만큼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기병이었다.
한설화는 오래전 이런 형태의 검을 본 적이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살수 단체.
살막(殺幕)의 살수들을 상징하던 독문병기인 혈우추(血雨錐)였다.
게다가…….
‘암연환허보(黯然換虛步)!’
희끗한 잔영과 함께 안개처럼 흩어지며 미끄러지듯 다가서는 흑의인의 신법을 알아본 한설화가 침음성을 삼켰다.
그것으로 확실해졌다.
상대는 살막(殺幕)의 무공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놀란 것은 그 무공이 대단해서가 아니었다.
바로 저들의 이름이 지닌 상징성 때문이었다.
목표로 삼은 이상 절대 포기하지 않는 집요한 살수들.
비록 마지막 살행에 실패해 멸문지화를 면치 못했지만 오백 년 넘는 역사를 이어 오며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던 살귀(殺鬼)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단악선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 꺼림칙했다.
치익!
가슴 부근을 향해 날아든 강맹한 기운을 느낀 것도 그때였다.
한설화가 소매를 휘둘러 날아드는 경력을 쳐 냈다.
따앙!
허공에 흩어지는 차가운 경력.
한음지(寒陰指)까지 목도한 이상 눈앞의 여인이 빙궁의 고수라는 것도 분명해졌다.
그 순간 독사의 혓바닥처럼 영활하게 움직인 협봉검이 한설화의 아랫배를 파고들었다.
“건방진!”
한설화가 걷어 올린 허공을 따라 차디찬 강기 벽이 생성되었다.
카가가각!
강기 벽을 긁으며 사납게 튀어 오른 협봉검이 크게 휘며 목덜미에 날카로운 이빨을 박아 넣으려 했다.
한설화가 뒤로 물러서려 하던 그 순간.
쩌저적.
주위를 에워싼 대기가 급격히 얼어붙으며 서늘한 경력이 파도처럼 밀어닥쳤다.
난데없는 한빙장(寒氷掌)에 퇴로가 막힌 한설화가 별수 없이 손을 뻗어 협봉검을 낚아채려 했다.
하지만 이내 황급히 손을 거둬야만 했다.
방금 전 강기 벽을 긁어 대던 협봉검의 검 끝에 희미한 핏빛 서기가 맺혀 일렁이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찌익.
협봉검이 호신강기를 찢으며 파고들었다.
쾌애액!
소름 끼치는 파공음이 들려온 것도 동시였다.
한설화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인원이 더 늘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명은 제비 꼬리처럼 날 끝이 갈라진 연자창(燕刺槍)을.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손목까지 시커멓게 물든 거대한 주먹을 철퇴처럼 휘둘러 공격해 오고 있었다.
하나같이 상당한 존재감을 지닌 자들이었다.
“……!”
갑자기 한설화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가 파악한 인원은 총 다섯 명.
그런데 한 명이 비었다.
그리고 역시나.
단악선을 향해 은밀히 접근하는 기척이 기감에 걸렸다.
놈의 의도야 명확했다.
누가 봐도 목적을 알 수 있을 만큼 짙은 살기를 뿜어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심해라!”
단악선에게 경고한 한설화가 다급히 전권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좀처럼 쉽게 몸을 뺄 수 없었다.
상대방의 무공도 녹록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빙궁의 여인이 집요하게 퇴로를 차단하며 발목을 잡고 있었다.
뜻밖의 상황에 발이 묶여 버린 한설화는 마음이 급해졌다.
마음이 어지러워지자 순간적으로 빈틈이 드러났고, 이때만을 기다리고 있던 상대들은 그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사방에서 집요하게 파고드는 공격!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충격음이 대기를 뒤흔든 것도 그때였다.
꽈앙!
바로 단악선이 있던 곳에서 들려온 폭음이었다.
“……!”
한설화가 놀라 단악선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희뿌연 먼지구름과 비처럼 쏟아지는 담벼락의 파편들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희끗한 묵빛 섬광과 함께 한 사람이 튕겨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뜻밖에도 튕겨져 나온 사람은 단악선을 암습했던 복면인이었다.
잠시 후 먼지구름을 헤치며 걸어 나온 단악선이 묵룡을 거머쥔 채 한설화를 향해 소리쳤다.
“전 괜찮아요!”
우우우웅.
위화신공을 받아들여 침묵에서 깨어난 묵룡이 웅혼한 울음을 토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비로소 안도한 한설화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곧 가마.”
한설화가 얼음장 같은 눈빛으로 주변을 쓸어 보았다.
그녀를 협공하던 네 사람이 멈칫했다.
그만큼 한순간에 달라진 한설화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