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02)
신마의선-202화(202/500)
신마의선 (202)
얼굴에 와 닿는 눈빛은 칼날처럼 섬뜩했고, 그 너머에 꿈틀대는 위압감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끔찍한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한설화가 조용히 미소 지은 것도 그때였다.
마주한 이의 혼백을 앗아 가는, 더없이 아찔한 미소였다.
순간 악요는 가슴이 철렁했다.
“피해!”
그 말과 함께 악요가 황급히 전권에서 몸을 뺐다.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외치기도 전에 다른 복면인들 역시 메뚜기 떼처럼 튀어 오르며 뒤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들 역시 나름 경지를 자부하는 고수들.
순식간에 주변을 잠식하듯 에워싼 가공할 기세에 무인의 감이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
협봉검을 거머쥔 악요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는 다른 복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 그들이 서 있던 자리에는 언제 생겨났는지 모를 거대한 균열이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었다.
요란한 굉음도, 그 어떤 전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존재했던 것처럼 그냥 그렇게 나타난 것이다.
그야말로 온몸의 피가 서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콰앙! 꽝!
멀지 않은 곳에서 연거푸 폭음이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한설화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단악선 쪽이었다.
‘가두달의 방식인가?’
한설화가 슬며시 웃음을 머금었다.
한눈에 봐도 단악선을 습격한 자의 무공은 상당했다.
적어도 눈앞의 네 사람과 동수이거나 반 수 이상.
실질적으로 습격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단악선보다 훨씬 윗선의 고수라는 점이었다.
그런데도 단악선은 상당히 영리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승산이 없다 일찌감치 판단했던지 상대에게 거리를 내어 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복면인은 권장에 특화된 무공을 익힌 자였고, 단악선은 이를 철저히 이용하고 있었다.
시종일관 거리를 좁히려 하는 상대와 직접 싸워 주지 않았다.
대신 묵룡을 휘둘러 주변을 파괴해 먼지를 일으켰다.
그렇게 상대의 시야로부터 몸을 숨긴 다음 상대가 접근할 때마다 암기를 날려 댔다.
깨진 기왓장 조각부터 돌멩이까지.
가릴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날리는 암기는 위력도 상당했다.
초악량이 전수한 전사경.
회전력을 기반으로 한 파괴적인 경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단악선을 상대하는 복면인이 악에 받쳤던지 먼지구름을 향해 뛰어들었다.
“잡았……. 컥!”
쩌엉!
육중한 충격음과 함께 복면인의 신형이 튕겨져 나왔다.
그가 재차 먼지구름 속에 뛰어들려 했지만 한발 늦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암기의 비가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놈이 비겁하기 짝이 없구나!”
복면인의 노성에 단악선이 태연하게 받아쳤다.
“당신만 할까요.”
먼지구름 속에서 들려온 낭랑한 목소리에 복면인은 일순 멈칫했다.
사실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아이를 죽이려는 어른.
그것도 더 고수인 자신이 입에 담을 말은 아니었다.
멀리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한설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먼지구름에 의해 시야가 차단당한 상황.
저 안에서는 오로지 기감에만 의지해야 했는데, 이조차도 쉽지 않았다.
묵룡 때문이었다.
위화신공을 받아들인 묵룡은 그 자체로 엄청난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단악선은 그런 묵룡을 적절히 이용해 자신의 기척을 감추고 상대를 현혹하고 있었다.
한설화도 감탄할 만큼 놀라운 임기응변이었다.
그간의 경험이 실전에서 제법 요긴하게 쓰이고 있는 셈이었다.
하나 그 여유가 오래가진 않을 터.
그만큼 복면인과 단악선의 무위 차이는 상당했다.
그 정도 고수라면 머지않아 대응 방법을 모색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당장은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
단악선 덕분에 여유를 되찾은 한설화가 주위를 쓸어 보았다.
그저 그뿐이었는데도 그녀는 이미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악요가 협봉검의 손잡이를 으스러져라 움켜쥐었다.
자신들에게는 없으나 한설화는 지니고 있는 것.
바로 일대 종사로서의 위엄이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사위를 압도하는 가공할 존재감이 무형의 칼날로 화해 전신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그것이 무의 극의에 도달한 자만이 지닐 수 있는 무형지기의 일종이라는 것을 깨달은 악요의 눈빛이 더없이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좋지 않다.’
내색지 않으려 애쓰고는 있었지만 어딘가 주눅 들어 보이는 일행의 모습에 악요가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빙옥선자의 무공도 별거 아니군.”
허세를 빌려서라도 두려움을 떨쳐 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
한설화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에워싼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원한다니 보여 주지.”
“……?”
“제대로 된 무공을.”
그 말에 악요의 눈동자가 지진을 일으켰다.
이미 밑천을 죄다 까 보인 자신들과 달리 한설화는 아직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껏 보여 준 그녀의 신위만으로도 이미 기함할 정도였다.
그런데 제대로 싸우겠다니.
대체 어떤 신위를 보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 물러설 수도 없었다.
이때 한설화가 늘어트렸던 손을 들어 허공을 그었다.
“……?”
악요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한설화와 자신들의 거리는 오 장이나 떨어져 있었고, 따라서 그녀의 손이 직접 자신들에게 닿는 것은 불가능했다.
칼날보다 섬뜩한 예기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 직후였다.
“당신 차례요!”
악요의 외침과 동시에 한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나섰다.
빙공을 사용하는 복면 여인이었다.
그녀의 두 손은 이미 투명하게 변해 있었다.
짜자작!
십이성 전력이 담긴 가공할 장력이 허공을 찢어발겼다.
북해빙궁의 절학.
빙백신장(氷白神掌)이었다.
이를 신호로 다른 세 사람도 한설화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눈앞으로 짓쳐들어오는 장력을 향해 한설화가 소매를 휘저은 것도 그때였다.
쩌엉!
장내를 집어삼킨 거대한 충격파와 비산하는 흙먼지.
그 사이를 뚫고 처음 장력을 날린 복면 여인이 발밑에 깊은 고랑을 새기며 주르륵 밀려났다.
반면 한설화는 구름을 밟듯 가볍게 훌쩍 물러섰을 뿐이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던 복면 여인의 신형이 그대로 굳어졌다.
방금 전 빙백신장으로 걷어 내려 했던 날카로운 경력이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이를 깨달았을 때는, 시린 예기를 품은 얼음 칼이 눈앞에서 섬뜩하게 웃고 있었다.
“……!”
복면 여인이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 활짝 펼쳤다.
냉기로 대기를 뒤틀어 공간을 왜곡하는 절대 수비식.
처음 한설화의 공격을 비껴가게 만들었던 북해빙궁의 절학이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팔한지옥(八寒地獄).
모든 것이 얼어붙는다는 올발라(嗢鉢羅)의 권위가 짧게나마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빙한 계열의 무공이라면 그 어느 것이라도 그것이 지닌 지배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미 이를 통해 한 차례 한설화의 공격을 막아 냈던 만큼 이번에도 자신하고 있었다.
하나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억.
“……!”
툭.
볼품없이 바닥을 구르는 무언가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뒤늦게 그것이 투명하게 변한 한 쌍의 손이라는 것을 깨달은 복면 여인이 찢어져라 눈을 부릅떴다.
그 순간 가공할 한기가 기맥을 파고들더니 그대로 단전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황급히 진기를 끌어 올려 밀어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끔찍한 고통과 함께 순식간에 단전을 얼려 버린 한기에 온몸이 순식간에 굳어 버렸다.
그러나 위기를 맞은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정작 합공을 이어 가던 다른 이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톱니처럼 맞물리듯 끊임없이 이어지던 정교한 연수합격도 차원을 달리하는 기공의 격차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핏빛 연자창도, 영활하게 파고드는 협봉검도.
그리고 흑운강기(黑雲罡氣)를 덧씌운 밀종대수인(密宗大手印)도 이미 차분함을 되찾은 한설화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사실상 이들을 지휘하던 악요가 협봉검을 휘둘러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 내려 했지만 이조차도 쉽지 않았다.
호신강기를 전문적으로 파괴하는 그만의 검공도 소용이 없었다.
생채기는커녕 엄밀하고 두터운 호신강기를 뚫을 수도 없었다.
‘빌어먹을!’
내심 욕설을 삼키고 있던 그때.
서슬 퍼런 예기와 경력이 뒤얽혀 난무하는 공간을 향해 한설화가 불쑥 손을 집어넣었다.
허공을 움켜쥔 손을 잡아당기자 그 주인들이 맥없이 딸려 왔다.
전면을 어지럽게 메우던 경력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하나같이 경악에 사로잡힌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설화가 입을 열었다.
“내 무공은 충분히 견식했겠지?”
한설화가 얼음장 같은 눈빛을 흘렸다.
“이제 그 값을 치를 시간이다.”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던 주위의 경물이 그대로 일그러지나 싶더니, 흔들리는 공간 사이로 불쑥 무언가가 눈앞에 나타났다.
예의 그 지긋지긋한 투명한 얼음 칼이었다.
‘망할!’
악요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악요가 내심 욕설을 삼켰다.
지나치게 긴장한 나머지 반응이 느렸고, 그만큼 대처가 늦었다.
그 찰나의 실수가 상대에게 맥없이 거리를 내어 준 것이다.
악요가 황급히 협봉검을 휘둘렀다.
쳐 내지는 못하더라도 궤적을 틀어 치명상이라도 모면할 생각이었다.
그 순간 한설화의 손이 기이하게 흔들렸다.
그 흔들리는 손을 따라 악요의 눈빛도 암담함에 물들었다.
눈앞을 가득 메운 어지러운 검영을 헤집으며 계속해서 거리를 좁혀 오는 칼날 때문이었다.
“큭!”
신음을 삼킨 악요가 두 손을 모아 가슴 부근을 방비했다.
자칫 실수하면 손목이 날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가슴을 내주는 것보다는 나았다.
모든 전력을 쏟아부어서라도 일단은 막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질없는 짓이었다.
악요가 입을 벌렸다.
비명조차 새어 나오지 않는 목구멍을 통해 끊임없이 핏물이 넘어왔다.
가슴을 파고들어 등을 뚫고 튀어나온 칼날.
이미 한 차례 피를 마시고도 모자랐던지 방향을 틀어 연이어 다른 먹잇감을 노리는 얼음 칼을 마지막으로 눈에 새겨 넣으며 악요는 숨을 거두었다.
“으악!”
남은 두 사람은 체면이고 뭐고 없이 벌렁 누워 날아드는 얼음칼을 피했다.
한데 한번 살기를 베어 문 얼음 칼은 집요하기 짝이 없었다.
스컥.
“……!”
예리하고 차가운 무언가가 자신들 사이를 헤집고 사라지는 것을 느낀 복면인들이 아연한 눈으로 한설화를 바라봤다.
그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괴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짙은 피 보라가 그들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왔다.
털썩.
힘없이 주저앉는 그들의 눈에서는 이미 생기가 사라져 있었다.
그야말로 개죽음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내려다보는 한설화의 눈에서는 그 어디에도 안타깝거나 애석해하는 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린아이를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 자들이었다.
저들처럼 피에 미친 이매망량(魑魅魍魎)의 무리에게 자비는 가당치도 않았다.
그나마 온전히 시신을 남긴 것도 놈들에겐 사치였다.
그때였다.
“잡았다!”
단악선 쪽에서 쩌렁한 음성이 들려온 것과 한설화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진 것도 동시였다.
사내가 득의양양한 눈빛을 흘렸다.
끝내 망할 꼬맹이와의 거리를 좁혀 저 요사스러운 제미곤을 움켜쥐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그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언제 당황했냐는 듯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이다.
“맞아요. 잡았어요.”
“뭐?”
대답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미끼를 문 건 네놈이라는 뜻이다.”
콰드득.
어깨와 등을 훑어 내리는 끔찍한 고통에 복면인이 눈을 부릅떴다.
그 순간에도 한설화의 섬섬옥수는 사정없이 그의 등뼈를 바수어 놓고 있었다.
“크헉!”
입에서 폭포수 같은 선혈을 뿜어내며 복면인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더 볼 것도 없었다.
즉사였다.
그 광경을 목도한 유일한 생존자.
복면 여인의 안색이 밀랍처럼 창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