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03)
신마의선-203화(203/500)
신마의선 (203)
한설화가 다가서자 복면 여인이 흠칫하더니 눈에 띄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어째서 북해빙궁이 나를 공격한 것이지?”
한설화의 물음에 복면 여인이 떨어 대던 것을 멈추었다.
가늘게 휘어진 그녀의 눈.
그녀가 웃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한설화는 문득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더러운 배신자.”
복면 여인의 독설에 한설화가 아미를 찡그렸다.
“배신자?”
복면 여인은 대답 대신 표독스런 눈빛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를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때였다.
“마혈을 점해야 해요!”
단악선의 외침에 한설화가 복면 여인을 향해 지풍을 날렸다.
팍.
허공을 가른 한 줄기 경력이 복면 여인의 어깨 부근, 견정혈에 작렬했다.
그러나 이미 늦어 버렸다.
복면을 붉게 적시며 쏟아진 선혈이 이내 그녀의 앞섶을 타고 번져 가고 있었다.
털썩.
복면 여인의 신형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녀의 눈에서는 더 이상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스스로 심맥을 끊어 자결한 것이다.
한설화가 그녀에게 다가가 복면을 벗겼다.
오십 대 초반 정도.
나이에 비해 대단한 성취를 이룬 셈이다.
하지만 기억에 없는 얼굴이었다.
‘당연한 건가.’
빙궁과 연을 끊은 지도 벌써 수십 성상.
아니, 훨씬 더 오래되었을 지도 몰랐다.
강산이 여러 번 바뀌었기에 그녀가 알던 빙궁의 인물들도 지금은 유명을 달리한 지 오래일 터.
하나 마지막에 그녀가 죽기 전 남긴 말이 마음에 걸렸다.
‘배신자라니…….’
무언가 터무니없는 오해가 존재하는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입장이 반대가 되어야 옳았기 때문이다.
한설화는 다른 습격자들의 얼굴도 확인했다.
협봉검과 살막의 무공을 사용하던 사내는 사십 대 중반.
다른 이들도 비슷한 연배로 짐작되었다.
당연히 그녀와는 면식이 없는 자들이었다.
생각에 잠겨 있는 한설화의 모습을 응시하던 단악선이 문득 주위를 둘러봤다.
순식간에 피와 죽음의 냄새로 채워진 장내.
한 폭의 지옥도가 펼쳐진 것 같은 눈앞의 광경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런데도 정작 이를 만들어 낸 한설화의 모습은 어딘가 다른 세상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가차 없이 상대의 목숨을 거두는 단호한 손속.
이를 떠올린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차라리 더하면 더했지 범계위에 비해 전혀 모자람이 없는 신위였다.
‘이게 내가 선택한 세상이구나.’
머릿속으로는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심경은 매번 착잡했다.
의원으로서 접하는 부득이한 죽음과 무림인으로서 마주하는 불가피한 죽음 사이에는 그만큼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고 있었다.
복잡한 마음을 애써 추스른 단악선이 한설화를 향해 다가섰다.
“아주머니, 괜찮으세요?”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괜찮다. 그러는 너야말로 괜찮으냐?”
“네, 덕분에요. 아주머니가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나야말로 네가 아니었다면 곤경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잘 버텨 주었다.”
단악선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들은 대체 누구일까요?”
한설화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이들은 새외 세력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새외 세력이요?”
“변황오세라고도 하지.”
한설화가 바닥에 구르는 연자창을 가리켰다.
“저자가 사용하는 창법은 육선문의 정통 창법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육선문은 관부를 가리키는 무림의 은어.
게다가 제비 꼬리 모양을 한 붉은 창날을 사용하는 세력은 오직 단 한 곳뿐이었다.
“혈운사(血雲沙). 아마도 그곳에 속해 있는 자일 것이다.”
“혈운사라면 혹시?”
단악선은 언제가 사무심으로부터 그들과 관련한 설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한때는 중원을 지키던 군문 소속이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중원을 떠나 변방에 뿌리를 내린 악명 높은 마적단.
개개인의 무위가 금의위의 정예 장수들과 필적하며 그 숫자는 기백 명을 헤아린다고 했다.
풀 한 포기 남기지 않고 초원을 휩쓰는 메뚜기 떼인 비황(飛蝗)과 견줄 만큼 그들의 흉포함과 잔학성은 호전적인 북방의 야인들조차 치를 떨 정도라고.
오죽하면 이름부터 피를 몰고 다니는 죽음의 모래일까.
“그리고 저자가 사용했던 밀종대수인은 천축유가(天竺瑜伽)의 비전절예다.”
“천축유가요?”
“소뢰음사(小雷音寺)라고 들어 본 적이 있느냐?”
“아!”
“그곳에 속해 있는 미친 땡중들이다.”
그렇게 설명한 한설화가 자결한 북해빙궁의 여인을 향해 복잡한 눈빛을 던졌다.
“저 여인은 북해빙궁 출신이다.”
단악선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질문을 대신했다.
그만큼 한설화의 눈빛이 아련했기 때문이다.
좀처럼 쉽게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는 그녀였기에 매우 드문 일이었다.
한설화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협봉검을 놓지 않고 숨을 거둔 사내를 가리켰다.
“흑야벌(黑夜閥)이라는 곳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변방의 밤을 지배하는 살수 집단이지. 이제 보니 흑야벌은 사라진 살막의 후예인 것 같구나.”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한 곳은 어디인가요?”
“만수산장. 남만을 양분하고 있던 독곡(毒谷)을 무너트리고 단일 세력으로 남만을 통일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문파다. 아마도 너를 공격했던 저자가 그곳 출신이지 싶구나.”
“아!”
사내로부터 느껴졌던 야성적인 분위기와 야수와 같은 감각.
그 배경을 알게 되자 곧바로 이해가 되었다.
“어째서 이들이 저를 노리는 걸까요?”
“이제 알아봐야겠지. 그런데 어쩌면…….”
그녀답지 않게 말끝을 흐리던 한설화가 무거운 눈빛으로 한숨을 흘렸다.
“저들과 마교가 결탁했을지도 모르겠구나.”
“마교요?”
“단순히 기분 탓이라면 좋겠지만, 곤륜파와 공동파에서 일어났던 일과 오늘의 사태가 단순한 우연이라고만은 생각되지 않는구나.”
* * *
산서성 태원.
인근의 명물인 쌍탑사를 마주한 사 층짜리 누각은 다루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웅장한 규모를 자랑했다.
그 다루의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초악량이었다.
오직 루주만 사용할 수 있다는 사 층.
그곳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는데도 어느 누구 하나 초악량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도 사전에 언질이 있었던 모양이다.
역시나.
사 층에 오르자 한 사람이 초악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중하게 예를 갖추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나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서 오십시오. 이렇게 누추한 곳을 친히 찾아 주시다니, 이 엽 모는 실로 감개가 무량합니다. 이렇게 직접 존자의 존안을 뵙게 되다니요. 제가 전생에 덕을 잘 쌓았나 봅니다.”
초악량이 피식 웃었다.
전생에 덕을 쌓았다면 범계위나 자신 같은 괴물과 마주할 일도 없었을 터.
“악업이겠지.”
“예?”
“아닐세.”
대수롭지 않게 손을 저은 초악량이 중앙에 마련된 다탁에 기대며 조용히 웃었다.
“듣자니 이곳 차 맛이 그리 각별하다던데?”
“곧 바쳐 올리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엽단영이 부랴부랴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쟁반에 다기를 받쳐 들고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흑점의 산서 지부장께서 친히 우린 차라니. 나도 참 출세했군.”
초악량이 건넨 농담에 엽단영이 억지웃음을 얼굴에 걸었다.
“하하하. 제가 출세한 거지요. 당금 강호를 떨어 울리는 무위의 지배자, 신마삼존 중 벌써 두 분의 존안을 뵙지 않았습니까.”
엽단영은 돌연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쓰☓. 이러다 빙옥선자까지 찾아오는 거 아니야?’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했다.
범계위만 해도 골치 아픈데 이제는 초악량까지…….
저들의 진짜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에 지금 이 순간도 바짝바짝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내가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었나?’
그렇게 홀로 속앓이를 하던 엽단영이었지만 이조차도 오래가지 못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초악량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음? 군산은침(君山銀針)이 아니군?”
“동정벽라춘(洞庭碧螺春)입니다.”
범계위와의 일이 있고 난 이후 군산은침은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자신과 범계위의 관계를 오해한 수하의 과잉 충성 때문에 하마터면 이승에서 하직할 뻔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날만 떠올리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범계위에게 약점을 잡혀 계속 질질 끌려다니게 된 계기도 그놈의 군산은침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시던 차를 바꿨지만 취향은 쉽게 바꿀 수 없는 법.
모든 명차를 섭렵했지만 결국 돌고 돌아 비슷한 계열의 황차인 동정벽라춘을 선택했다.
탁.
초악량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한껏 기대하고 왔는데 실망인걸.”
“다른 것으로 올릴까요? 녹차 계열을 원하신다면 서호용정(西湖龍井)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상린남영(祥鱗藍影)도 타서?”
“……!”
일곱 번의 신음을 토하기 전에 죽음에 이른다 해서 칠음절명(七吟絶命)이라 불리는 사천당가의 절독.
지난번 범계위가 방문했을 때 군산은침에 풀었던 독이었다.
“설마 아까운 것인가?”
“네?”
“아니면 범가와 나를 차별하는 모양이군. 그 귀한 걸 내게는 대접하지 않는 걸 보면 말이야.”
쩔쩔매며 식은땀을 흘리는 엽단영의 모습에 초악량이 실소했다.
“미안하네.”
“예? 뭐, 뭐가 말씀이십니까?”
“범계위 그 녀석과 달리 나는 농담에 소질이 없어서 말이야.”
“으하! 으하하하! 이런 게 바로 포복절도라는 것이군요!”
뒤늦게 되지도 않게 웃음을 터트리는 엽단영의 모습에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정도면 오히려 측은할 정도였다.
범계위에게 대체 얼마나 시달렸기에 이럴까 싶었다.
“안쓰러우니 적당히 하게.”
“넵.”
웃음을 거둔 엽단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무슨 농담을 저리 살 떨리게 한단 말인가.
등줄기를 적시고 있는 식은땀만으로도 몸무게가 열 근은 빠진 기분이었다.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좌불안석하는 엽단영을 향해 초악량이 본론을 꺼냈다.
“내가 자네를 찾은 이유를 알고 있나?”
“개방 방주를 만나고 이쪽으로 향하신다기에 사안이 가볍지 않다는 것 정도만 짐작하고 있을 뿐입니다.”
눈치 빠른 대답에 초악량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 범계위가 그에 대해 괜찮은 놈이라 칭찬한 이유가 있었다.
그만큼 칭찬에 인색한 범계위였다.
특히 최근 무위와 협력하는 일과 관련해서도 능소밀은 엽단영을 높이 평가했다.
“내가 온 목적을 말하면 개방 방주와 만난 이유도 알게 되겠군?”
그래도 혹시 몰라 슬쩍 떠보았다.
한데 대답이 걸작이었다.
“제가 사실 기억력이 좋지 못합니다. 일찍 치매가 왔는지 어제 있었던 일도 까먹곤 하지요. 그래서 여전히 지부장 자리에 머물러 있나 봅니다.”
초악량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칠절마군의 행방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
“칠철마군 노단양 말씀이십니까?”
엽단영이 침음하며 잠시 고민을 이어 갔다.
이윽고 엽단영이 초악량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와 관련한 정보를 일부 확보하고 있습니다. 다만…….”
“다만?”
“아무리 저라도 그 정보는 함부로 유출할 수가 없습니다.”
그와 관련된 정보는 기밀을 요하는 것으로, 흑점 내에서도 최고 등급에 속해 있었다.
오직 문주만이 열람과 배포, 거래가 가능하도록 묶인 것이다.
그것도 최근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 상황을 설명하자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지간히도 욕심이 많은 자로군.”
초악량의 말에 엽단영이 잠시 의아해했다. 하나 그 안에 담긴 뜻을 이해한 뒤 안색이 창백해졌다.
초악량이 언급한 사람이 흑점의 지배자인 흑점주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모를 만큼 그는 아둔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