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05)
신마의선-205화(205/500)
신마의선 (205)
사무심과 능소밀은 새벽이 되어서야 신마의가로 복귀했다.
온몸에 묻은 혈흔과 피 냄새는 목욕으로 말끔하게 지운 뒤였다.
두 사람이 들어서기 무섭게 범계위가 다그치듯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됐어? 놈이 뭐 좀 불었어?”
사무심과 능소밀이 서로를 보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예상외로 소득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능소밀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끝까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만?”
“마교와 관련되어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마교에 대해 언급했을 때, 눈빛이 달라졌거든요.”
단악선이 한숨을 흘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마교가 다시 발호할 수도 있겠군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무엇보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특히나 곤륜파에서 시작해 최근에 이르러 발생한 일련의 흐름이 머지않아 발생할지도 모를 심상치 않은 사태를 암시하는 것 같았다.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뿌리를 뽑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나타날 놈들이지.”
한설화가 단악선과 함께 상대했던 복면인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설화의 이야기를 들던 범계위의 눈빛이 더없이 진지해졌다.
“새외가 마교와 결탁했다고?”
평소와 다르게 무거운 범계위의 표정에 능소밀은 되레 불안해졌다.
그만큼 사안의 심각성이 새삼 피부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저들이 움직인다면 우리와 가장 먼저 맞부딪치겠네요.”
단악선의 말에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곤륜파와 같은 처지가 된 게지.”
청해성 끝자락에서 마교와 대치하고 있는 곤륜파.
반면 변황오세 가운데 만수산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세력은 북방에 자리 잡고 있었다.
새외와 맞닿아 있는 감숙의 지리적 특성상 저들이 중원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무위를 지나야만 했다.
그만큼 물리적 충돌은 필연적이었다.
이때 말없이 고민을 이어 가던 한설화가 불쑥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내가 북해빙궁에 다녀와야겠구나.”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한설화가 북해빙궁에 가려는 이유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특히 초악량이 자리를 비운 지금은 더욱 그랬다.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단악선의 우려에 한설화가 빙긋 웃었다.
“내 신변의 안전을 말하는 것이라면 염려할 것 없다.”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당금 강호에 그 누가 마녀를 상대할 수 있겠어?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바로 마녀 걱정이야.”
한설화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범계위를 응시했다.
걸핏하면 말꼬리를 걸고넘어지던 범계위가 웬일로 자신의 편을 들어 주는 게 영 수상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지금 바로 움직이는 게 어때? 단 의원은 내게 맡기고.”
애써 웃음을 참는 범계위의 모습에 한설화는 뒤늦게 범계위의 의중을 깨달았다.
“나까지 보내고 단 의원을 독점하시겠다?”
“어? 그, 그럴 리가. 그런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는데?”
범계위가 펄쩍 뛰며 고개를 저었지만 표정에서는 뜨끔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범계위를 지그시 노려보던 한설화가 손을 뻗어 단악선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역시 여기 있어야겠어.”
그 말에 범계위가 일순 당황하나 싶더니, 이내 버럭 했다.
“왜? 가서 확실한 정보를 얻어 와야지! 빨리 가! 얼른!”
“싫다면?”
“싫으면 안 되지. 아니, 싫어도 가야지. 왜 이랬다저랬다 해?”
“거기까지.”
얼음장 같은 한설화의 눈빛에 범계위가 입술을 삐죽였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빙그레 웃더니 그답지 않게 진득하게 설득을 이어 갔다.
“그러지 말고 다녀와. 가는 길에 혹시 초 형을 만나면 좀 도와주기도 하고. 원래 이런 일은 시간이 생명이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빙궁에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더욱 줄어들걸?”
범계위가 생각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꽤나 논리적인 이유였지만 한설화는 단칼에 그 말을 잘랐다.
“안 가.”
더 이상 말을 섞기 싫다는 듯 한설화가 고개를 돌려 버렸다.
“단 의원을 멍청이에게 맡길 수야 없지.”
“그거 지금 나 들으라 한 소리냐?”
“…….”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무시로 일관하는 한설화의 태도에 범계위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단악선이 웃으며 두 사람을 만류했다.
“지금은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에요. 저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방법을 모색해야죠.”
씩씩대던 범계위가 마지못해 살기를 누그러트렸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범 아저씨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응? 내게?”
“저…….”
“뭐야? 뭔데 그렇게 미안한 얼굴이야?”
단악선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난데없는 단악선의 사과에 범계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를 속이고 아주머니와 함께 저들을 쫓아간 거요.”
“아, 그거?”
범계위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씨익 웃었다.
“괜찮아. 아니, 오히려 내게는 잘된 일이지.”
“네?”
의아해하는 단악선을 향해 범계위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덕분에 나의 중요함을 새삼 절감했을 것 아냐? 내가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마녀처럼 궁지에 몰리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
“뭐?”
발끈하던 한설화가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네 입으로 이야기했잖아. 놈들한테 발목이 잡혀서 고생했다며? 그 때문에 단 의원은 혼자서 습격자 중 한 명을 상대해야 했고.”
“그건…….”
변명이 궁색해진 한설화가 말을 잇지 못했다.
마냥 무시하기에는 범계위의 말이 아프게 가슴을 찔렀기 때문이다.
만약 단악선이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지금 다시 생각해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나마 단악선이 재치 있게 시간을 끌었기에 망정이지, 놈들의 계략에 단악선이 위태로워졌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단악선이 나서 그런 그녀를 비호했다.
“그자들 모두 상당한 고수였어요. 일파의 수장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요. 게다가…….”
“괜찮아, 단 의원. 대신 변명해 줄 필요 없어.”
범계위가 한설화를 향해 피식했다.
“맨날 약한 놈들만 상대하다 보니 감이 무뎌진 거지.”
“……!”
한설화가 차가운 안광을 줄기줄기 흘리며 범계위를 노려봤다.
범계위가 그 눈빛을 받으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너 마교 애들이랑 붙어 봤어?”
한설화가 멈칫하자 범계위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친놈들하고 싸워 보지 않았으면 말을 마. 너와 달리 나와 초 형은 그놈들 대가리 깨느라 몸이 남아나질 않았거든. 잠은커녕 몇 날 며칠 동안 물도 못 마시고 싸웠지.”
“…….”
“서른 명이 넘어가고 나서부터는 세지도 않았어. 숫자를 헤아리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었거든.”
“흥! 머리가 나빠서는 아니고?”
정곡을 찔렸는지 범계위가 움찔했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피를 보면 광증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초악량의 기억에 의지해 당시의 상황을 전해 들은 게 전부였다.
범계위가 머쓱한 듯 헛기침을 토했다.
“크흠! 어쨌거나 마녀 네가 수빙궁(修氷宮)인가 뭔가 하는 움막에서 한가하게 얼간이들 연못에 담그고 있었을 때 초 형과 나는 그 미친 마귀들을 때려잡느라 바빴다고.”
한설화는 한껏 으스대는 범계위가 눈꼴시었지만 달리 부정할 수 없었다.
“마교의 위세가 그렇게 대단했나요?”
단악선의 물음에 범계위의 표정이 굳어졌다.
“위세?”
범계위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지. 그건…….”
무언가를 떠올린 범계위가 말끝을 흐렸다.
비록 일부였지만 당시의 기억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죽음이나 공포, 그것을 아득히 넘어선 광기(狂氣) 그 자체였다.”
범계위가 진지한 눈빛으로 단악선을 응시했다.
“놈들은 진짜 위험해.”
그리고 다짐을 받듯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 절대 그놈들과 직접 맞서려 하지 마. 내 곁에서 절대 떨어지면 안 돼. 알겠지? 단 의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게요.”
그제야 범계위가 평소처럼 씨익 웃으며 가슴을 두드렸다.
“늘 하는 말이지만, 우리 단 의원은 나만 믿…….”
“아저씨만 믿어요.”
단악선이 한발 앞서 대답하자 범계위가 더없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설화를 향해 약 올리듯 웃었다.
“그래. 난 허약해 빠진 누구와는 다르니까.”
“이게…….”
한설화가 살기를 일으키자 범계위 역시 지지 않고 그녀를 노려봤다.
괜히 중간에 낀 단악선만 입장이 곤란해졌다.
“휴우.”
단악선이 한숨을 흘렸다.
범계위와 초악량이 다툴 때도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타고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상대방을 긁는 재주는 누구보다 탁월한 범계위였다.
* * *
“그러니까…….”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은 실내.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적막을 깨며 한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놈들이 우리 제안을 거절했다고?”
감정의 기복이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음성.
하나 그 앞에 부복한 수하들은 숨 막히는 긴장감에 입도 벙긋할 수 없었다.
“정작 그 배신자는 데려오지도 못했고?”
콰드득.
단단하기로는 그 어떤 나무와도 비할 수 없다는 흑철목.
그런데 그 흑철목으로 만들어진 태사의의 팔걸이 부분이 한 사람의 손 아래 그대로 짓이겨졌다.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목피 사이로 섬뜩한 안광이 일렁였다.
“한마디로 쫓겨났다는 거지? 명색이 나를 대리해 간 놈들이 말이야.”
태사의에 앉아 있던 사내.
호목을 연상시키는 부릅뜬 눈 사이로 짙은 살기가 너울거렸다.
“어디 입이 있다면 말해 봐. 지금 내 꼴이 얼마나 우습게 됐는지.”
“초, 총표파자…….”
사색이 된 수하들을 노려보던 악호군이 돌연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내의 그 어느 누구도 그를 따라 웃을 수 없었다.
이처럼 실소를 흘릴 때야말로 그가 가장 분노하고 있을 때라는 걸 익히 아는 까닭이다.
저 웃음 이후 얼마나 많은 문파가 피에 잠기고, 얼마나 많은 이가 북망산에 올랐던가.
악호군이 수하를 향해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답신은 아직도 없나?”
굳게 입을 다문 수하들의 모습에 악호군은 열불이 터졌다.
서신을 통해 정중하게 이곳 총채로 초빙했건만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라니.
그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모든 수하를 이끌고 무위로 쳐들어가 사생결단을 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대계를 망칠 수는 없었다.
서로의 눈치를 보며 대답을 미루던 녹림도들 가운데 그나마 담이 큰 장한이 앞으로 나섰다.
복령채의 채주인 담우라는 자였다.
“명령만 내려 주신다면 수하들을 이끌고 무위로 가겠습니다.”
“가서? 그리고는?”
악호군의 반문에 담우가 결의에 찬 눈빛으로 이를 악물었다.
“총표파자의 권위를 무시한 오만한 자들을 그에 합당한 죄를 묻겠습니다. 그리고 이를 본보기 삼아…….”
악호군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 말을 잘랐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지. 괴물들 아가리에 수하들을 죄다 밀어 넣으란 말이냐? 그리고 나서는? 너랑 나 둘이 남아 녹림 할까?”
혈수존자와 망산초자, 거기에 빙옥선자까지.
셋 중 하나라면 모를까, 녹림의 모든 전력을 갈아 넣는다고 해도 기껏해야 양패구상이었다.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다.
더구나 아무런 실익도 없이 명분만을 위한 싸움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단악선과 삼존을 압박하기 위한 방편을 생각하던 악호군이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준비한 패를 꺼내야겠군.”
밀어서 안 된다면 당기면 되는 것이다.
억지로라도 상대를 협상 장소로 끌고 와 앉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