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07)
신마의선-207화(207/500)
신마의선 (207)
“그럼 가실까요?”
관정이 상단의 선두에 위치한 마차로 벽화령을 안내했다.
눈치 빠른 그의 수하들은 이미 마차 한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푹신한 보료까지 준비해 둔 상태였다.
이윽고 마차가 다시 출발하자 해남검파의 무인들은 벽화령을 호위하듯 자연스럽게 마차의 좌우에 자리를 잡았다.
관정이 최대한 벽화령의 기분을 맞춰 가며 농담을 주고받던 그때.
문득 호기심이 동한 관정이 수레 위에 실려 있는 관을 가리켰다.
“그런데 어느 분의 시신인지 여쭈어봐도 될는지요?”
해남검파의 부문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직접 호송한다면 관 안에 누워 있는 시신 역시 범상치 않은 신분일 터.
묻는 말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 말에 벽화령이 피식 웃었다.
“아니야, 그런 거.”
“네?”
“왜? 궁금해?”
벽화령이 장난스레 미소를 건넸다.
“알려 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러기 싫은걸?”
“어째서입니까?”
“본 파의 중요한 기밀이니까. 알려 주면 당신을 죽여야 할지도 몰라.”
살벌한 벽화령의 말에 관정이 멈칫했다.
하나 벽화령의 눈에 떠오른 장난기를 읽고는 이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그렇지? 역시 이런 반응이 일반적인데 말이야.”
마주 웃은 벽화령이 말없이 마차를 따르던 죽립인들을 향해 버럭 했다.
“야! 칼 안 집어넣을래? 농담이라고, 농담.”
반쯤 뽑은 검을 슬며시 다시 검집에 밀어 넣는 죽립인들의 모습에 관정은 뒤늦게 식은땀이 흘렀다.
벽화령이 한숨을 터트렸다.
“저런 것들하고 함께 오느라 내내 죽을 맛이었어.”
이해한다는 듯 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무위에는 어쩐 일로 가시는 겁니까?”
“범 오라버니……. 아, 최근에는 신마삼존이라 불린다지? 그중 망산초자와 인연이 있거든.”
벽화령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말하고 나니 또 보고 싶네.”
절로 측은함을 불러일으키는 처연한 미소에 관정은 일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알아볼 것도 있고.”
관을 응시하던 벽화령의 눈 위로 섬전 같은 안광이 튀어 올랐다.
어지간히 담이 크다 자부하던 관정조차 일순간 숨이 막힐 만큼 섬뜩한 눈빛이었다.
그래서 더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관의 내용물을 확인할 기회가 찾아왔다.
피잉.
허공에 쏘아 올려진 대초명적.
이를 신호로 사방에서 험악한 병기를 꼬나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상단을 에워쌌다.
‘빌어먹을!’
저들의 모습을 확인한 관정이 욕설을 삼켰다.
어째 불길한 예감은 빗나간 적이 없더라니, 녹림도들이 나타난 것이다.
히이잉.
갑작스런 녹림의 난입과 저들이 내뿜는 살기에 말들이 놀라 버둥댔다.
상단원들이 황급히 말들을 진정시켰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관을 실어 두었던 수레는 관리하는 사람이 없었다.
덜컹.
갑자기 수레가 서자 관성에 따라 수레 위의 관이 앞으로 밀려 떨어져 버렸다.
콰직.
충격에 산산이 부서진 관.
그 안에 들어 있던 시신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저런!”
이를 목도한 관정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정작 벽화령은 태연했다.
“아, 괜찮아.”
벽화령의 눈짓에 해남검파의 무인들이 바닥을 뒹구는 시신을 향해 다가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관정의 눈에 의아함이 서린 것도 그때였다.
시신을 꽁꽁 옭아맨 단단한 동아줄 때문이었다.
해남검파의 무인들은 시신을 다시 수레 위에 올렸다.
그리고 삼엄한 눈빛을 뿌리며 주위를 경계했다.
뒤늦게 관정은 밧줄에 구속된 시신의 가슴이 미약하게나마 기복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살아 있는 겁니까?”
관정의 물음에 벽화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화입마 상태야. 혹시 몰라 묶어 둔 거고.”
“아! 그래서 무위로 가시는 거군요?”
벽화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금 강호에 주화입마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신마의선만이 유일하니까.”
이때 상단을 포위하고 있던 녹림도들 가운데 몇몇이 앞으로 나섰다.
비쩍 마른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거한.
그리고 작달막한 체구로 기다란 채찍을 허리춤에 감은 절름발이였다.
“총표파자께서 놈들을 죽이면 안 된다고 하셨죠?”
절름발이의 말에 단릉채(團陵砦)의 채주 곽영호가 커다란 덩치만큼 험악한 눈빛을 흘렸다.
“뭐, 팔다리 하나쯤은 괜찮지 않을까? 모처럼 한 건 올리는 건데 애들도 피 맛 좀 봐야지.”
건들거리며 접근하는 그들의 모습에 벽화령은 기가 차지도 않았다.
관정 역시 마찬가지.
평소에는 그렇게 꺼리던 녹림도 지금은 꼬락서니가 우스꽝스러울 뿐이었다.
아무리 승냥이 떼가 두렵다 해도 어찌 눈앞에 웃고 있는 호랑이만 할까.
그런데 놈들은 상황 파악도 못 하고 겁대가리 없이 호랑이 코털을 뽑으려 들고 있었다.
곽영호가 양날 검에 긴 자루를 붙인 거대한 참마검(斬馬劍)을 세우더니 씨익 웃어 보였다.
“이곳은 엄연히 우리 단릉채가 산주(山主)인바, 이곳을 지나려면 의당 통행료를 지불해야 한다.”
“야산에 주인이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데?”
벽화령의 말에 곽영호의 눈빛이 기이하게 번뜩였다.
이런 궁벽한 산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미모에 자신도 그만 음심이 동한 것이다.
그 모습에 관정이 서둘러 앞으로 나섰다.
일단은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게 먼저였다.
“알고 보니 이곳을 지배하시는 단릉채의 영웅분들이셨구려. 나는 관정이라는 사람으로 이 행상을 이끌고 있소. 원하시는 통행료가 얼마인지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신다면 내 충분한 성의를 보일 의향이 있소이다.”
정중한 관정의 말에도 곽영호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이미 벽화령의 미모에 눈이 돌아가 다른 건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백 냥.”
불쑥 뱉은 곽영호의 말에 관정이 멈칫했다.
잠시 고민하던 관정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나.’
처음에는 벽화령과 해남검파의 위세를 이용해 산적들을 물리치려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신마의가의 귀한 손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삼존 중 한 명인 범계위와 막역한 사이가 분명했기에 굳이 험한 꼴을 마주할 필요가 없었다.
백 냥이라는 돈이 큰돈이긴 해도 상황만 좋게 무마할 수 있다면 아까운 금액은 아니었다.
하나 이어진 곽영호의 말에 관정이 눈을 부릅떴다.
“은자 말고, 금으로.”
“미친놈인가?”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욕설에 관정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곽영호는 이미 그 말을 들었는지 키득거리며 참마검을 움켜쥐었다.
“뭐, 돈이 없으면 다른 걸로 대신해도 되고.”
곽영호의 비릿한 시선이 벽화령의 몸매를 더듬었다.
“흐흐, 고년. 참하기도 하다.”
“방금 그거 나한테 한 말?”
벽화령이 어이가 없어 실소했다.
“나름 신선한데?”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것 같은 해남검파의 무인들을 제지하는 벽화령의 눈 위로 더없이 고혹적인 미소가 자리 잡았다.
“미친놈이 그래도 보는 눈은 있나 봐?”
그 도도한 태도가 오히려 곽영호의 가슴에 불을 댕겼다.
“흐흐, 고것 참. 그래, 그렇게 톡 쏘는 맛도 있어야 품는 재미가 있지.”
“그런데 어쩌지? 넌 별로 재미가 없어 보이는데.”
벽화령이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젓자 곽영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사내를 상대하는 게 익숙한 걸 보니 꽤 굴러먹은 기녀인 것 같은데. 오늘 밤은 내 술잔을 채워 주면 어떠냐? 대신 네년 몸에는 뜨거운 양기를 가득 채워 주마.”
산적들 사이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이에 벽화령도 농담을 그만두었다.
“더러운 입은 수적 놈들이나 산적 놈들이나 똑같네. 전부 죽어야 할 놈들인 것도 똑같고.”
신랄한 비난에 반응한 것은 채주를 향한 아부가 몸에 밴 부채주 단귀였다.
“건방진 년이 어디서 감히!”
쾌액.
허공을 찢는 섬뜩한 음향과 함께 시커먼 채찍이 벽화령을 향해 쇄도했다.
콰직.
마차의 난간을 부수며 날아든 채찍이 살아 있는 뱀처럼 벽화령의 손목을 휘감았다.
“그 눈깔을 얌전히 내리깔게 해 주마!”
잔인한 웃음과 함께 단귀가 채찍을 잡아당겼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지워진 건 그 직후였다.
전력을 끌어모아 당겼음에도 채찍이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벽화령과 시선이 마주친 단귀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고수!’
그것도 보통 고수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벽화령의 전신에서 끔찍한 살기가 뭉클거리며 쏟아져 내렸다.
“내 눈을 내리깔게 해 주겠다?”
그 말과 함께 벽화령이 신형을 날렸다.
아니, 신형을 날린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이미 단귀 앞에 서 있었다.
“끄아악!”
참혹한 비명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진 것도 그때였다.
얼굴을 감싸고 바닥을 구르는 단귀의 손가락 틈으로 핏물이 배어 나왔다.
“흥!”
차갑게 웃은 벽화령이 손바닥을 펼쳤다.
“헉!”
그 위에 올려진 두 개의 눈알을 발견한 곽영호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바로 옆에 있음에도 언제 그녀가 손을 썼는지 제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아……!”
그 광경에 관정이 탄식을 터트렸다.
상황이 자신의 손을 벗어나, 더 이상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비록 정파이지만 해남검파는 거친 바다와 수적들을 상대하기에 그 어떤 사파보다 성정이 단호하고 손속이 독랄한 것으로 유명했다.
하나 막상 이를 현실에서 마주하니 너무 놀라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무림맹에 쫓겨 숨어 버렸다는 쥐새끼들 주제에 감히 나를 희롱해?”
한 줄기 섬뜩한 검광이 허공에 궤적을 그렸다.
그리고 그 궤적 끝에 한 사람의 목이 걸렸다.
툭. 데구르르.
“……!”
바닥을 구르는 부채주의 목.
이를 본 곽영호가 덜덜 몸을 떨기 시작했다.
“벼, 벽화령?”
뒤늦게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벽파검을 발견한 곽영호는 비로소 눈앞에 서 있는 여인의 정체를 인지했다.
스윽.
벽화령의 손에 들린 검이 꿈틀거린 것도 그때였다.
그 짧고 간단한 움직임과 크게 휘두르는 팔 동작이 합쳐져 벽파검이 허공에 큰 원을 그렸다.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놈들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지.”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소리도 없이 흐르는 검날.
그 섬뜩한 궤적을 따라 공중으로 솟구치는 세 개의 머리가 곽영호의 눈에 들어온 건 거의 동시였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가 깨달았을 때, 벽화령의 검은 이미 다른 목표를 노리고 있었다.
쓰컥!
섬뜩한 소리와 함께 가슴이 갈라진 녹림도 한 명이 무너져 내렸다.
일검에 상대의 목숨을 거두는 이검불요(二劍不要)의 신위.
“자, 잠깐!”
곽영호가 황급히 소리쳐 벽화령을 만류하려 했으나 그 와중에도 또 한 명의 녹림도가 황천행 배에 몸을 싣고 있었다.
눈앞의 걸리적거리는 녹림도를 닥치는 대로 베어 넘기며 주살하는 벽화령을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그야말로 시산혈해(屍山血海).
장내는 순식간에 피와 죽음의 냄새로 채워졌다.
곽영호는 뭔가 일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눈앞에 펼쳐진 지옥도를 망연자실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괴물!’
망설임 없이 사람을 베어 넘기는 벽화령의 모습은 유부에서 뛰쳐나온 나찰이 따로 없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아침에는 마귀 삼천 마리, 저녁에는 삼백 마리를 먹어 치운다는 전설 속의 탄사귀(呑邪鬼).
척곽(尺郭)이라는 귀신이 지옥에서 뛰쳐나온 것만 같았다.
그러다 문득 그녀가 남해의 악몽이라 불리는 수적들을 잡아먹고 사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녀에게 있어 수적이나 산적이나 별반 다를 바 없을 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곽영호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살아 있는 녹림도는 자신을 포함해 고작 다섯.
그들 역시 가공할 벽화령의 살기에 짓눌려 파랗게 질린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얼굴에 날아와 박히는 섬뜩한 시선을 곽영호가 느낀 것도 그때였다.
벽화령이었다.
그녀의 검에 일렁이는 살기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걸 깨달은 곽영호가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질렀다.
“이, 일은 총표파자께서 직접 지시하신 일입니다!”
소리 없이 미끄러지던 검이 곽영호의 코앞에서 멈춰 섰다.
더없이 스산한 벽화령의 음성이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그러니까 그 악호군 개새끼가 날 희롱하라고 시켰다고?”
“……!”
곽영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가뜩이나 꼬인 상황.
그런데 거기에 더해 뭔가 크게 오해가 깊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