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08)
신마의선-208화(208/500)
신마의선 (208)
평소보다 조금 이른 저녁 식사 자리.
초악량을 제외한 모든 이가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무거웠다.
녹림의 움직임에 대한 능소밀의 보고 때문이었다.
단악선이 우려 가득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결국 그분일까요?”
녹림이 배신자라 일컫는 진영산은 지금도 신마의가에서 치료를 하는 중이었다.
능소밀이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단지 그것뿐이라 하기에는 저들이 지나치게 일을 크게 키우는 것 같습니다.”
“다른 목적이 있다는 뜻인가요?”
단악선의 반문에 능소밀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짐작이 가는 게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만…….”
“그게 뭐죠?”
“어쩌면 곡주님께서 악호군이 보낸 초청 서한에 응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도 사실 그게 이상했어요. 그 사람과 저는 그 어떤 교류와 접점도 없는데, 왜 저를 만나자고 하는 것일까요?”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연수 제의일 것입니다.”
“자신들과 손을 잡자는 뜻인가요?”
반문하던 단악선은 이내 짚이는 바가 있었다.
“무림맹 때문이군요.”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녹림은 무림맹의 공세에 적잖게 애를 먹고 있습니다. 산채들이 활동을 중단한 지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으니 슬슬 속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을 겁니다.”
무위에 모여 있는 사파인들의 힘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오랜 시간 정파의 집요한 추적과 척살령에서 살아남은 자들이다.
그만큼 무공도 만만치 않았고, 경험을 통해 쌓은 심계 역시 깊었다.
“거기에 세 분 선배님들도 계시지요. 우리와 손을 잡으면 세가 연합인 무림맹과의 싸움에서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 여겼을 겁니다.”
단악선이 복잡한 눈빛을 흘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우리는 무림 세력이 아닌데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이곳은 그저 갈 곳 없는 사람들을 위한 마을일 뿐인데.”
단악선의 말에 능소밀이 쓰게 웃었다.
그 마음이야 왜 모르겠냐만, 실제로 그렇게 여길 무림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었던 것이다.
“지금은 저들과 직접적인 충돌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표국을 끼고 움직이는 방편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좀 더 적극적인 대응 방안도 있습니다.”
“그게 뭐죠?”
반색하던 단악선이 이어진 능소밀의 말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녹림과 적대하는 무림맹과 손을 잡는 것입니다.”
“아…….”
“실제로 무림맹과 손을 잡지 않는다 해도 그런 움직임만 보여도 충분할 것입니다. 녹림 입장에서는 오히려 까다로운 적을 늘리는 셈이니 지금과 같은 결정을 철회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무림맹은 우릴 돕지 않을 거예요.”
개방의 총단에서 연판장을 발표할 당시 조우했던 제갈연의 표독스러운 눈빛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했다.
“저들도 그걸 알기에 이처럼 노골적으로 행동하는 걸 테고요. 그리고 어쩌면…….”
단악선이 무거운 얼굴로 장내에 모인 사람들을 바라봤다.
“무림맹이 이 사태를 일부러 방관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러고 보니…….”
능소밀이 무언가를 생각하다 침음성을 흘렸다.
확실히 이상한 감이 없지 않았다.
녹림이 활동을 재개했음에도 무림맹의 대응이 너무나 미온적이었던 것이다.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노리는 것일 수도 있겠군요.”
능소밀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면 우리가 먼저 접촉해 오길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우리를 돕는 대가로 조건을 내걸겠죠.”
제갈연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무위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세상을 너무 만만히 여긴 것 같아요.”
단악선의 말에 능소밀이 웃으며 위로를 건넸다.
“그렇게 자책하실 것 없습니다. 곡주님께서는 늘 옳은 결정을 내리셨으니까요.”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 잘 날이 없는 이유.
무위라는 나무에 신마의가와 신마상단이 크게 가지를 뻗었기 때문이다.
다만 걱정인 것은 언젠가 끌어안은 바람 때문에 그 가지가 부러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실제로도 적은 늘어나고 지켜야 할 것은 많아지고 있는데, 당장 활용할 수 있는 가용 자원은 한정적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나겠죠?”
단악선의 목소리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그저 좋아하는 분들과 의가를 세워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싶었을 뿐인데.”
범계위가 단악선에게 위로를 건넸다.
“단 의원은 잘못한 게 없어.”
그리곤 천천히 신형을 일으켰다.
“걱정 마. 내가 해결하고 올 테니까.”
“그러지 마세요.”
단악선이 깜짝 놀라 범계위를 만류했다.
그가 선호하는 해결 방식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그런데 평소라면 한 소리 했을 한설화가 웬일로 범계위 편을 들었다.
“이번에는 그게 가장 좋은 방법 같구나. 악호군 그자는 교활하고 탐욕스러운 놈이다. 인의의 도리를 앞세워 대화가 통할 상대가 아니지.”
“그것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에요.”
단악선이 나름의 이유를 설명했다.
“아직까지는 양측에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저들을 공격하면 명분을 내주는 꼴이 되고 말아요.”
사상자라는 말에 범계위가 멈칫했다.
진영산을 잡으러 왔던 녹림도 몇 명을 쥐어팬 게 떠오른 것이다.
‘뭐, 무위 밖이었으니까 그건 논외.’
그렇게 열심히 자기 합리화를 하던 도중.
벌컥 문을 열고 들어선 소적산이 능소밀을 향해 소리쳤다.
“단주님! 큰일 났습니다!”
“이번에는 또 뭔데?”
능소밀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되물었다.
얼마나 서둘러 달려왔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던 소적산이 황급히 전서구에 매달려 있던 쪽지를 내밀었다.
“광동 지부로부터의 연락입니다. 그쪽에서 사고가 터졌습니다.”
“사고라니?”
전서를 낚아채 그 내용을 확인하던 능소밀이 흠칫하며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
“상단과 동행하던 무림인이 녹림도를 죽였다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
총표파자인 악호군에게 전언할 일부만 남겨 둔 채 모조리 도륙해 버렸단다.
황당함에 능소밀이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단악선이 서둘러 물었다.
“우리 쪽 피해는요?”
“없습니다.”
“다행이에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단악선과 달리 능소밀은 다른 의미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쪽의 피해가 전무하다는 사실이 마냥 좋은 일일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녹림의 피해가 발생한 이상 악호군이 이를 유야무야 넘어갈 리 만무했다.
무엇보다 살얼음판 같았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유지되고 있던 대치, 그 위태롭던 형국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일단 유혈 사태가 발생한 이상 수습은 이미 물 건너간 상황.
시작이나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결과만 놓고 보았을 때는 이쪽에서 선전 포고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악호군의 성격상 이를 빌미 삼아 분명 직접적인 행동으로 나서리란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남은 것은 오직 건곤일척의 전쟁뿐인가.’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나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어?”
전서의 내용을 확인하던 능소밀의 얼굴 위로 의아함이 떠올랐다.
“여기 적혀 있는 이름이 이거 맞아?”
왜 자신들과 연관이 없는 문파 사람의 이름이 튀어나온단 말인가.
“누군데 그래?”
한설화의 물음에 능소밀이 한 사람의 이름을 언급했다.
“녹림도를 죽인 사람이 벽화령이라고 합니다.”
“해남검파의 벽화령?”
단악선은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분이라면…….”
오래전 한설화로부터 범계위와 벽화령에 대해 들었던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범계위를 바라봤다.
그런데…….
딸꾹.
범계위가 돌연 딸꾹질을 시작했다.
“아저씨?”
“어? 어……. 왜?”
의아해하는 단악선의 시선에 범계위가 애써 웃었다.
그런데 어딘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괜찮으세요?”
“어? 응. 나야 늘 괜찮지.”
그렇게 대답한 범계위가 한설화를 힐끔거렸다.
그 수상한 행동에 한설화가 아미를 찡그렸다.
“왜 이래? 갑자기.”
“으응? 내가 뭘?”
한설화의 추궁이 이어졌다.
시치미를 떼는 모습이 더욱 수상했기 때문이다.
“대체 해남도에서 무슨 사고를 친 거야?”
궁지에 몰린 범계위가 버럭 역정을 냈다.
“내가 초 형이야? 여기저기 사고만 치고 다니게?”
“그런 둘이 갔으니 하는 말이야.”
“야! 너……!”
그러나 범계위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능소밀이 전서의 나머지 부분을 확인한 뒤 그 내용을 말했기 때문이다.
“지금 무위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
딸꾹!
범계위의 딸꾹질이 더욱 심해졌다.
* * *
같은 시각.
다른 장소에서 같은 소식을 듣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뭐라고? 벽화령?”
태사의를 박차고 일어난 악호군이 호목을 부릅떴다.
악호군의 맞은편에 시립해 있던 청수한 인상의 중년인이 당혹성을 흘렸다.
“벽화령이라면 해남검파의 부문주가 아닙니까?”
침음하는 악호군의 모습에 총사(總師)직을 맡고 있는 석단평 역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누구보다 오래 그를 보필해 온 만큼 악호군과 벽화령의 관계를 잘 알기 때문이다.
과거 악호군은 해남검파에 매파를 보내 벽화령에게 청혼한 적이 있었다.
걸핏하면 토벌을 이유로 자신들을 귀찮게 구는 관부.
그 육선문과 해남검파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해남검파와 혼인 관계를 맺는다면 어느 정도는 관부의 압박을 덜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최소한 관부의 동향을 살피고 그들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것만으로도 남는 장사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냉담한 거절이었다.
이미 혼인을 약조한 사람이 있어 불가하다는 대답에 악호군은 내심 기가 막혔다.
그 혼약의 대상자가 바로 범계위였기 때문이다.
정파인 해남검파와 십대악인이라니.
정작 자신조차 십대악인의 일원이면서도 악호군은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분노했다.
벽화령이 자신을 놀린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신이 싫어도 그렇지.
하필 많고 많은 인간 중에 범계위라니!
오래전부터 그와 범계위 사이에는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깊은 악연이 존재했다.
악호군의 표정을 살피며 석단평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번 사안만큼은 신중하게 대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처음 보고를 올렸던 채주 한 명이 결의에 찬 얼굴로 입을 열었다.
“명령만 내려 주신다면 당장 고수들을 집결시켜 그 바닷가 촌년을 끌고 오겠습니다.”
악호군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를 본 석단평이 재빨리 눈짓으로 그만두라 종용했으나 눈치 없는 다른 채주가 비분강개한 얼굴로 소리쳤다.
“부채주인 단귀를 포함해 사망자가 적지 않습니다. 생존자는 곽 채주를 포함한 극히 일부뿐이고요. 이 원한을 어찌 그냥 넘긴단 말입니까. 만약 이를 묵과한다면 전 무림이 우리 녹림을 우습게 여길 것입니다.”
제 딴에는 충심을 고한답시고 한 말이었을지 모르나 이는 오히려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것과 다름없었다.
“닥쳐! 이 새끼들아!”
“초, 총표파자?”
당황한 수하를 향해 악호군의 진노가 쏟아졌다.
“곽영산! 아니, 단릉채 그 자식들 모조리 다 잡아 와!”
“예? 왜 그 사람들을……?”
당황해 말을 잇지 못하는 채주들을 악호군이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해남검파의 부문주를 기생이라고 희롱한 놈을 그냥 두라고?”
“하, 하지만 우리 녹림도의 피해가 크니 당연히…….”
석단평이 한숨을 내쉬며 질책했다.
“그렇지 않아도 고립무원과 같은 작금의 상황에서 적을 더 늘리면 어쩌자는 것입니까?”
그 말에 회의장 안에 자리하던 다른 채주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무림맹을 상대하는 것만 해도 버거운 데, 거기에 해남파까지 가세한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중원의 일에 좀처럼 끼어들지 않아서 그렇지, 은원이 생기면 그 어떤 피해와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끝을 보고야 마는 독종 중의 독종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오죽하면 사천의 당가, 해남의 벽가라 불리겠는가.
더구나 저들과 척을 지면 자연스럽게 관부도 개입할 터.
이래저래 적으로 마주해선 안 될 자들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만나 봐야겠군.”
눈앞의 사태를 타개할 방법을 모색하던 악호군은 벌써부터 골치가 지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