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11)
신마의선-211화(211/500)
신마의선 (211)
꽈앙!
지축을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거대한 충격파가 일대를 집어삼켰다.
자욱하게 치솟은 먼지구름.
그 사이로 시뻘건 화염과 새파란 광망이 번뜩이며 연거푸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미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먼지구름 속에서 한 줄기 경악성이 터져 나온 것도 그때였다.
악호군의 목소리였다.
십대악인 시절에도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고 알려진 둘이다.
그럼에도 악호군은 내심 자신이 반수 정도 우위에 서 있다고 여겼다.
무공 자체는 엇비슷했지만 범계위는 무엇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약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격돌하고 보니 예전에 알던 그 범계위가 아니었다.
애초부터 그는 단번에 승부를 가를 생각으로 전력을 끌어 올려 칼에 실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범계위가 너무나 수월하게 이를 받아치고 있었다.
게다가 범계위는 적수공권.
성명병기인 대초자곤도 없이 자신과 비등하게 맞선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려웠다.
전면을 가득 메운 도강(刀罡).
이를 무시한 채 다가오는 범계위의 손을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망할!’
이를 악문 악호군이 필생의 전력을 다해 최후의 절초를 펼쳤다.
우우웅!
웅혼한 울음을 토한 박도 위로 일렁이던 강기가 한순간 더욱 짙어졌다.
그와 동시에 대기가 급격히 요동치며 반투명한 강기의 장막이 압도적인 위용을 드러냈다.
무려 일 장에 달하는 선명한 벽!
빗방울조차 뚫지 못한다는 성락밀밀(星落密密)의 절학인 도막(刀幕)이 그 신위를 드러낸 것이다.
쩌엉!
걷잡을 수 없는 충격과 함께 악호군의 신형이 그대로 오 장가량을 주르륵 밀려났다.
자신의 발밑에 새겨진 깊은 고랑.
이를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악호군은 고작 일 장 정도만 물러선 범계위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큰거리는 손목을 문지르던 범계위가 묘한 눈빛을 던져 온 것도 그때였다.
“그런데 너…….”
의아해하던 악호군이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와락 인상을 구겼다.
“왜 이렇게 약해졌냐?”
“……!”
“아닌가? 내가 강해진 건가?”
범계위가 섬뜩한 웃음을 말아 올리며 악호군을 향해 재차 다가서기 시작했다.
“뭐, 상관없나? 이제 제대로 붙어 보자.”
범계위로부터 풍겨 오는 전율스러운 압박감에 악호군은 숨이 턱 막혔다.
이미 밑천을 죄다 털어 보인 자신과 달리 상대는 아직 여유가 있어 보였다.
‘미친!’
이미 지금껏 보여 준 신위만으로도 기겁할 정도였다.
그런데 여기서 제대로 싸우겠다니.
대체 어떤 신위를 보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 물러설 수도 없었다.
무인의 자존심은 둘째 치고 총표파자인 자신이 수하들 앞에서 약세를 보일 수 없는 노릇.
다행히 범계위를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하나가 더 남아 있었다.
‘이 방법만큼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악호군이 칼을 들어 자신의 손바닥을 그었다.
투두둑.
그리곤 범계위를 향해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을 내밀었다.
‘이제 곧…….’
악호군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피를 본 범계위는 머지않아 특유의 광증을 일으킬 터.
물론 닥치는 대로 주변을 파괴하는 특성상 벽화령이 휩쓸릴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전에도 몇 번 이런 식으로 범계위의 광증을 이용해 곤란한 상황을 모면한 적이 있었기에 이 한 수가 먹히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뭐 하냐, 너?”
악호군의 눈이 당혹감에 흔들렸다.
분명 이쯤에서 발작을 일으켜야 했다.
그런데 정작 범계위는 황당한 눈빛을 던지며 아무렇지 않게 서 있었다.
“안 아프냐?”
“……!”
당황한 악호군을 향해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마음대로 일이 안 풀려도 그렇지 왜 자해를 하고 그래? 뒷골목 파락호도 아니고, 녹림의 두목이라는 놈이 체면도 없이……. 쯧쯧.”
혀를 차는 범계위의 모습에 악호군은 황당함을 넘어 기가 막힐 뿐이었다.
“어, 어떻게…….”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히려 냉철하게 지금 상황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슬슬 마무리 짓자.”
성큼 다가서는 범계위를 향해 악호군이 고함을 질렀다.
“그만!”
“왜 또?”
“더 이상의 의미 없는 싸움은 거부한다!”
“누구 마음대로?”
악호군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 미친년, 놈들이 싸우다 죽은 귀신이 들러붙었나? 아주 쌍으로 지랄이구나!”
“뭐래? 방금 전까지 화령이랑 싸우고 있던 놈이 누군데?”
“내가 싸우자고 한 게 아니야!”
범계위가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자 벽화령이 불쾌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저 미친놈이 뜬금없이 고백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고백? 저놈이 너 좋대?”
“혼인하자던데요?”
범계위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그으래?”
범계위가 주먹을 풀며 헛기침을 하더니 슬쩍 옆으로 비켜섰다.
그 모습에 벽화령이 의아한 눈빛을 던졌다.
방금 전의 대결은 누가 봐도 범계위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범 가가?”
“어, 음……. 생각해 보니 두 사람이 서로 잘 대화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어차피 둘 다 혼기도 찰 만큼 찼고, 마침 배필도 없으니…….”
“하!”
금방이라도 꿀이 떨어질 것 같던 벽화령의 눈빛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벽화령이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범계위에게 다가갔다.
“그냥 죽죠.”
“뭐?”
“설화 언니에게는 미안하지만요.”
“왜, 왜 이래?”
“범 가가를 죽이고 저도 죽겠어요. 그것도 불가능하다면 그냥 이 자리에서 칼을 물고 죽으려고요. 이런 모욕을 감내하며 사느니 차라리 그게 나아요.”
광기 가득한 벽화령의 눈빛에 범계위는 가슴이 싸늘해졌다.
“농담이야. 농담. 우리 사이에 그런 농담도 못 하나?”
범계위가 황급히 벽화령을 달랬다.
“일단 저 산적 두목부터 때려잡고 이야기하자. 응?”
그러나 악호군도 호락호락 당하지만은 않았다.
악호군이 길게 휘파람을 불자 어느새 주변을 빼곡하게 에워싼 녹림도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숫자만 삼백여 명에 달했다.
그 모습에 범계위가 실소했다.
“이런 오합지졸로 뭘 어쩌자는 거야?”
악호군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끓어오르는 노기를 삼키며 입을 열었다.
“저들의 손에 들린 것이 보이지 않나 보군.”
범계위는 뒤늦게 자신들을 향해 겨눈 독특한 형태의 활을 발견했다.
기계 장치로 살을 쏘아 날리는 노궁(弩弓)이었다.
“고작 저런 애들 장난감으로?”
범계위의 비웃음에 악호군도 마주 웃었다.
“그 장난감이 과거 겁대가리 없이 우리에게 덤볐던 마교의 잔당들을 쓸어버린 비격뢰(飛隔雷)라면? 물론 너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과연 저들도 그럴까?”
악호군이 언급한 비격뢰라는 단어에 신마상단 단원들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
일정 거리를 날아가 폭발해 쏟아지는 암기의 비.
더구나 그 파편에는 치명적인 극독이 발라져 있었다.
호신강기를 지닌 무인이라면 모를까, 일반인은 끝없이 쏟아지는 암기의 빗속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전무했다.
‘잠깐? 저거라면?’
범계위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벽화령 정도는 여유 있게 구할 수 있다 판단한 것이다.
반면 벽화령은 무위에 갈 목적이 사라진다.
제아무리 그녀를 수행하는 해남검파의 무인들이 대단한 고수라도 쏟아지는 암기의 빗속에서 환자를 지키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무위로 향하는 이유는 단악선을 만나기 위한 것.
눈앞의 저 환자만 사라지면 그녀와 한설화가 조우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뭐 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범계위가 악호군을 닦달했다.
“입만 산 놈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지?”
“뭐?”
자신의 협박에도 오히려 반색하는 범계위의 모습에 악호군은 할 말을 잃었다.
‘진짜 미친놈인가?’
그때였다.
“사, 살려 주십시오!”
애절한 관정의 외침에 범계위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저들은 신마상단의 일원이었다.
만약 저들의 죽음이 단악선에게 알려진다면?
그리고 그 자리에 자신이 있었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으으…….’
범계위가 갈등하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단악선이 슬퍼하고 실망하는 모습만큼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에 벽화령도 부탁을 해 왔다.
“부탁해요, 가가. 저자를 이곳에서 죽게 할 수는 없어요.”
그렇게 고민하기를 잠시.
이윽고 범계위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운 좋았다, 산적 두목.”
악호군을 노려보는 범계위의 눈에서 차가운 불꽃이 뚝뚝 흘러내렸다.
“화령이의 체면을 생각해서 이쯤에서 참고 넘어가 주마. 그러니 썩 꺼져.”
악호군은 이랬다저랬다 종잡을 수 없는 범계위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모처럼의 기회를 놓칠 수야 없는 노릇.
수하들과 함께 물러서는 악호군을 향해 범계위가 나직이 으르렁댔다.
“그런데 이거 하나는 명심해 두는 게 좋을 거야.”
“……?”
“단 의원과 관련된 무엇이라도 건드렸다가는 그땐 내가 직접 널 찾아갈 거야. 그리고 그날로 녹림은 이 땅에서 사라진다.”
끔찍한 광망이 이글거리는 범계위의 눈빛에 악호군은 내심 가슴이 서늘해졌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가뜩이나 골치 아프던 놈이 이제는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아득한 괴물이 되어 있었다.
벽화령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그래, 이게 바로 사내지.”
벽화령이 몽환적인 눈빛으로 범계위를 올려다봤다.
“설화 언니는 정말 좋겠다.”
그 말에 범계위가 움찔했다.
“지랄 났다, 아주.”
배알이 뒤틀린 악호군은 더 이상 그곳에 남아 버틸 수가 없었다.
악호군과 녹림도들이 물러나자 관정을 비롯한 신마상단의 일원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짧은 시간에 수명이 몇 년은 줄어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벽화령은 마음이 급했다.
지금도 악화일로로 치닫는 환자의 상태 때문이었다.
“우리도 서두르죠.”
벽화령의 채근에 범계위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를 한설화와 마주치게 하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놈은 내가 데려갈게. 그러니 화령이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럴 수 없어요.”
“왜?”
범계위의 반문에 벽화령이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환자를 노려봤다.
“놈이 깨어나면 물어볼 게 있어요.”
“그…… 주화입마라는 게 그렇게 간단히 치료되는 게 아니야.”
“단 의원이라면 가능하다면서요?”
범계위는 할 말을 잃었다.
지난번 해남도를 방문했을 때 단악선에 대해 주야장천 칭찬을 늘어놓았던 것이 이제와 새삼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벽화령이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듯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놈이 마공을 익히게 된 연유에 대해 반드시 알아내야 해요.”
그 환자는 오랜 세월 해남검파에 헌신해 온 유능한 뱃사람이었다.
이름은 모용진.
그것도 일개 선원이 아닌 전투선을 직접 지휘하는 단주였다.
섬에서 나고 자라 오직 해남검파만이 삶의 전부였던 사내.
그런 그가 어느 날 광기를 일으키더니 자신이 이끌던 선원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소식을 들은 해남검파 고수들이 결국 그를 제압했지만 그 과정에서 마공을 익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그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로 마공을 남발하다 결국 피를 토하며 주화입마에 빠졌다는 것이다.
“혹시 설화 언니에게 절 보여 주는 게 불편해서 그런 건가요?”
벽화령의 애잔한 눈빛에 범계위가 당황해 말끝을 흐렸다.
“그, 그거야…….”
“걱정 마세요. 설화 언니 앞에서는 미친년처럼 굴지 않을 테니까요.”
“…….”
“저는 공적인 사안을 처리하기 위해 온 거예요. 그런 만큼 해남검파의 부문주라는 자각을 잊지 않아요. 선을 넘는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세요.”
“그 말……. 믿어도 되지?”
“물론이에요.”
벽화령이 비 맞은 배꽃처럼 애처롭게 미소 지었다.
“제가 언제 범 가가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요?”
범계위가 울상을 지었다.
사실 그래서 더 문제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