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12)
신마의선-212화(212/500)
신마의선 (212)
범계위의 경공 덕에 주화입마에 빠진 환자는 늦지 않게 신마의가에 도착했다.
“어딜 다녀온 거야? 그 사람은 뭐고?”
범계위가 둘러업은 사람을 발견한 한설화가 대뜸 핀잔을 던졌다.
“환자야. 이놈도 마공을 익혔어. 그리고 마찬가지로 주화입마에 빠졌고.”
“뭐?”
“이야기가 길어. 단 의원 이놈도 치료 가능할까?”
단악선이 진료실을 가리켰다.
“일단 안으로 옮겨 주세요.”
범계위가 환자를 침대에 눕히자 단악선은 주저 없이 치료를 시작했다.
진영산에 비해 상태가 심각했지만 이미 충분한 경험이 누적된 상태.
까다롭긴 했지만 치료가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무려 두 시진에 걸친 집중 치료 끝에 모용진은 겨우 죽음의 문턱에서 생환할 수 있었다.
덜컹.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 단악선이 흐르는 땀을 닦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공이 왜 마공인지 알겠어요.”
단악선이 자신을 향해 다가서는 범계위와 한설화를 향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경과를 더 지켜봐야겠지만 목숨을 건지더라도 두 번 다시 무공은 익힐 수 없을 거예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한설화와 달리 범계위는 어딘가 불안한 표정이었다.
초조한 듯 좌불안석하던 범계위의 모습에 단악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 이유를 깨달았다.
벽화령을 위시한 해남검파의 무인들이 뒤늦게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떻게 되었죠?”
다급한 표정으로 들어선 벽화령이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금방이라도 방 안으로 쳐들어갈 것 같은 그녀의 기세에 단악선이 입구를 막아서며 고개를 저었다.
“고비는 넘겼지만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해요.”
벽화령의 시선이 단악선을 향했다.
“네가…… 그 소문의 신마의선?”
단악선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그녀였다.
한데 막상 단악선을 마주하니 채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단악선이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해남검파의 부문주이신 벽 여협이시죠? 말씀 많이 들었어요.”
뒤늦게 정신을 차린 벽화령이 급히 인사를 건넸다.
“아. 제가 실수를 했네요. 너무 놀라서 그만.”
자세를 고친 벽화령이 해남검파 부문주의 직책에 어울리는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염치 불고하고 불쑥 찾아와 죄송합니다. 해남검파의 벽화령이라고 합니다.”
“범 아저씨의 오랜 지인이시니 미안해하실 것 없어요.”
“단 의원님의 배려에 감사드려요.”
단악선은 사람 좋게 웃었지만 곁에 있는 범계위는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오긴 했는데, 한설화와 벽화령이 한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고문과도 다를 바 없었다.
단악선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그런데 환자 면회는 무리예요. 자칫 상황이 악화될지도 모르니까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던 벽화령이 뒤늦게 단악선 옆에 서 있는 한설화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이에요, 언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한설화의 모습에 벽화령이 복잡한 미소를 건넸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한설화도 인사를 받고 뭔가 말을 이어 가려 했는데, 갑자기 범계위가 나섰다.
“환자가 깨어나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벽 누이는 일단 좀 쉬어.”
떠밀리다시피 장내를 벗어난 벽화령이 범계위에게 안쓰러운 눈빛을 던졌다.
“정말이지 전 알 수가 없네요.”
“응? 뭐가?”
“범 가가를 대하는 설화 언니의 눈빛을 봤어요. 그렇게 쌀쌀맞고 차가운 언니가 좋은 건가요?”
“그, 그야…….”
혹시라도 한설화가 들을까 싶어 범계위가 담벼락 너머를 힐끔거렸다.
그런 범계위의 모습에 벽화령이 한숨을 터트렸다.
“고작 이런 대접 받으려고 제가 아닌 설화 언니를 택한 건가요?”
“어, 그게…….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그래. 사람 없는 데서는 또 달라.”
애써 한설화를 비호하는 범계위의 모습에 벽화령은 더욱 비참한 기분을 느꼈다.
“알겠어요. 그런 걸로 해요.”
“그런 걸로 하는 게 아니라…….”
“알았다니까요!”
빽 소리를 지른 벽화령이 차오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돌아섰다.
“그럼 전 쉴게요.”
그 말을 뒤로한 채 벽화령이 숙소로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 쾅 소리 나게 문을 닫았다.
한동안 문에 등을 기댄 채 벽화령이 손을 들어 심장 부근을 지그시 눌렀다.
왜 이다지도 가슴이 아픈 것일까.
“아니야. 약속했잖아. 범 가가를 보내 주기로.”
열여섯 처녀도 아니고, 이게 무슨 추태란 말인가.
명색이 그녀는 해남검파의 부문주였다.
임자 있는 사람을 꼬드겨 파혼을 시킨다면 그 불명예를 감당해야 할 사람은 비단 자신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애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까스로 달랜 벽화령이 방을 나섰다.
걷다 보면 조금이나마 기분이 나아질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범계위의 시선이 느껴졌다.
걸음을 멈춰 세운 벽화령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이제 깨끗하게 마음을 접었으니 더 이상 걱정하지 마세요. 범 오라버니.”
가까운 곳에서 흔들리는 기파가 느껴졌다.
“그러니 절 감시하지 마세요.”
정원 구석에서 벽화령을 훔쳐보고 있던 범계위가 움찔했다.
‘뭐, 저렇게까지 말했으니 큰 문제는 없겠지?’
살짝 양심에 찔리긴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더 이상 가가라 부르지 않고 오라버니라 하는 호칭의 변화는 둘째 치고, 일단 계획대로 두 사람을 떨어트려 놓는 데 성공한 범계위는 조용히 그 자리를 떴다.
홀로 남겨진 벽화령은 나직이 한숨을 흘러더니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대로 신마의가를 벗어나 저자로 향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을 축하하기 위한 선물로 어울릴 만한 물건을 찾던 벽화령의 눈에 마침 적당한 가게가 들어왔다.
과거 단악선과 인연이 닿은 목공예점이었다.
장인의 솜씨가 느껴지는 다양한 공예품들.
그중에서 벽화령이 집어 든 것은 서로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한 쌍의 기러기 목상이었다.
두 사람의 백년해로를 기원하는 선물로 이만한 게 없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
기러기 목상값을 치른 벽화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건네고 전부 끝내자. 범 가가를 향한 마음도……. 지금까지의 기억들도…….”
애써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벽화령이 처연하게 웃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한 쌍의 기러기 중 하나가 자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떠올리는 자신이 너무나 싫어지는 그녀였다.
그날 밤.
늦은 시각까지 모용진을 치료한 단악선이 진료실을 나서자 한설화가 안쓰러운 눈빛을 건넸다.
“고생했다.”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주화입마의 진행을 막았으니 다행이에요.”
한설화가 대견하다는 듯 마주 웃었다.
이때 그 두 사람을 향해 다가서는 사람이 있었다.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네요.”
벽화령이었다.
“단 의원님의 노고에 감사드려요.”
“아니에요. 의원이라면 당연한 일인걸요.”
어느새 단악선에 대한 호칭이 정중해진 벽화령이었다.
신마의가 내부를 오가는 사람들을 통해 단악선이 이곳 무위의 실직적인 책임자라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한설화의 눈에는 의아함이 떠올랐다.
자신을 바라보는 벽화령의 눈빛이 어딘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축하가 늦었어요.”
벽화령이 건넨 물건을 받아 든 한설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고급스러운 보자기를 받아 펼쳐 보니 의미를 알 수 없는 목상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게 뭐지?”
“선물이에요.”
“선물?”
“네. 그래도 지금까지의 인연이 있는데, 두 분을 축하해야 마땅하지 싶어서요.”
영문을 몰라 당황한 한설화를 향해 벽화령이 슬픈 미소를 건넸다.
“이걸로 범 오라버니는 깨끗하게 포기할게요. 그러니 절 불편해하지 마세요.”
“네가 범가를 포기하는 거랑 내가 널 불편해하는 게 무슨 상관이지?”
한설화의 반문에 벽화령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절 놀리시는 건가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한설화를 향해 벽화령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범 오라버니와 혼인을 약조하셨다고 들었어요.”
“뭐?”
한설화가 어이없다는 눈빛을 흘렸다.
“누가 그래?”
“범 오라버니와 초 오라버니요. 지난번에 두 분이 해남도에 오셨을 때…….”
그때였다.
“그마안!”
밤하늘을 쩌렁하게 울리는 처절한 포효와 함께 범계위가 허공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한설화와 벽화령 사이에 내려선 범계위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밤이 깊었으니 이제 그만 각자…….”
그러나 범계위는 말을 맺지 못했다.
한 줄기 차가운 음성이 말허리를 잘랐기 때문이다.
“내가 이 멍청이와 혼약을 했다고?”
싸늘한 냉기를 뿜어내는 한설화와 유독 당황해 허둥대는 범계위의 모습에 벽화령도 비로소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설마 절 속인 건가요?”
그러고 보니, 범계위가 마중을 나왔던 것부터 이곳에서의 행동이 전부 이상했다.
“대답하세요.”
벽화령의 싸늘한 말투에 범계위는 일순 대답을 못 하고 머뭇거렸다.
그러나 살기를 뿜어내는 한설화의 모습을 통해 벽화령은 이내 진실을 깨달았다.
쩌저적.
한설화의 발밑에서 시작된 서리가 순식간에 일대를 뒤덮었다.
폭발적인 기세로 늘어나는 가공할 한기.
츠츠츳.
허공에 맺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섬뜩한 얼음 창의 숫자는 이미 십여 개가 넘었다.
말없이 자신을 노려보는 두 사람의 시선에 범계위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그 모습에 단악선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겁에 질린 범계위의 표정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그 순간.
팟.
범계위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거기 서!”
“거기 서요!”
한설화와 벽화령이 달아나는 범계위를 쫓기 시작했다.
범계위가 최선을 다해 도주했지만 경공은 한설화가 한 수 위.
결국 얼마 못 가 따라잡히고 말았다.
한설화가 앞을 막아서자 범계위가 그대로 뒤돌아 반대편으로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뒤쪽에는 벽화령이 서 있었다.
“절 속이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벽화령에 의해 도주로가 차단된 범계위가 양쪽을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자자, 모두 진정해! 내가 다 설명할게!”
범계위가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진짜였네?”
나름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려고 건넨 농담이었지만 오히려 역효과였다.
아니, 애초에 한설화는 진정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폭풍 같은 한기를 뿜어내는 한설화의 눈에서 농밀하고 자욱한 살기가 쏟아져 내렸다.
“이 자리에서 네 놈의 혀를 찢어 버릴 것이다. 두 번 다시 그딴 헛소리를 지껄이지 못하도록.”
범계위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한다면 하는 한설화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일단 걔네들 좀 치우고 이야기하면 안 될까?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까지 살벌하게 굴어?”
“유언은 그것뿐이냐?”
한설화의 눈에서 차가운 불꽃이 튀었다.
“명년의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하지만 무덤은 없을 거야. 사방 천지 어디를 뒤져도 네놈의 사지를 찾지 못할 테니까.”
꿀꺽.
범계위가 마른침을 삼켰다.
이렇게 분노한 한설화의 모습은 처음 그녀를 찾아 갔을 때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위기를 직감한 범계위가 전력을 끌어 올렸다.
그런데 그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아니, 언니. 말이 좀 심한 거 아니에요?”
난데없이 범계위 뒤쪽에서 들려온 음성.
벽화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