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15)
신마의선-215화(215/500)
신마의선 (215)
그 말에 범계위가 울컥했다.
놈의 의도야 명백했다.
“나는 만만하다 이거냐?”
복면인은 범계위를 향해 손을 뻗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만큼 그는 범계위와의 승부를 자신했다.
비록 초악량을 상대로는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눈앞의 범계위는 초악량이 아니었다.
비록 같은 십대악인으로 묶여 있다 하나 초악량은 천하오절.
그 안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고수였다.
범계위나 악호군, 노단양 같은 자들과는 격이 다른 것이다.
쾌애액.
섬뜩한 위력이 담긴 경력이 범계위의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다.
범계위와 복면인의 눈이 마주친 것도 그때였다.
“나보다 멍청한 놈은 정말 오랜만이네.”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게 네가 죽는 이유야.”
복면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범계위의 음성은 그리 크지도 않았고, 강한 기세가 담긴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심장이 서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달라진 범계위의 눈빛 때문이었다.
아니, 달라진 것은 눈빛만이 아니었다.
지금껏 그를 가늠해 왔던 기도가 한순간에 바뀌어 있었다.
복면인은 무언가 일이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에게 고정된 채 날카롭게 번뜩이는 범계위의 눈빛.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공할 기세가 범계위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 느껴졌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세는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기세에 밀려 제대로 실력을 펼치기도 전에 당하고 말 터.
쉭.
복면인의 손이 범계위와 자신 사이의 공간을 끊었다.
그 안에 담긴 섬뜩한 기세는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전력을 다해 승부를 지으려 마음먹은 것이다.
범계위의 어깨가 꿈틀한 것도 그때였다.
“……!”
복면인은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막 범계위의 가슴에 수도가 작렬하려는 찰나.
끔찍한 열기를 휘감은 손이 그대로 눈앞으로 짓쳐들어오고 있었다.
마침내 범계위가 출수를 한 것이다.
복면인은 급히 손을 거둬 상체를 방비했다.
그 와중에도 반격을 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허공의 한 점에 응축시킨 경력을 비어 있는 범계위의 옆구리 쪽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콰앙!
밤하늘 전체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한 사람의 신형이 훨훨 날아갔다.
그는 실 끊어진 연처럼 한참을 날아간 그대로 맥없이 널브러졌다.
“우웩!”
한 움큼의 피를 토한 채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사람은 복면인이었다.
먼지를 뒤집어쓴 복면인의 얼굴에서는 조금 전의 자신만만했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당혹감이 역력했다.
그의 오른팔은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범계위의 손을 간신히 막아 내긴 했으나 그 충격에 손목이 부러져 버린 것이다.
범계위를 바라보는 복면인의 눈이 경악으로 흔들렸다.
방금 전 범계위의 무위는 그의 예상을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입가의 피를 쓱 훔치며 복면인이 신음을 흘렸다.
“십대악인 따위가 어떻게 이런 무공을…….”
비로소 그는 자신이 무언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나 그 대가는 참으로 뼈아팠다.
‘제길!’
욕설을 삼킨 복면인이 황급히 자세를 바로잡았다.
범계위를 응시하는 그의 눈빛도 처음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천천히 들어 올리는 그의 손을 따라 허공이 일렁였다.
동시에 속속 모습을 드러내는 강기 창.
그 숫자는 무려 여덟 개에 달했다.
범계위를 경시하던 마음을 버리고 자신이 지닌 최고의 절학으로 상대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 하나하나의 강기 창에는 범계위조차 경시할 수 없는 위험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범계위는 주저하지 않고 복면인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복면인의 손이 허공의 한 점을 찍은 것도 동시였다.
꽈앙!
지축을 뒤흔드는 단 한 번의 폭음.
그것으로 모든 상황이 종결되었다.
두 사람이 지닌 기세에 비해 너무나 싱거운 결과였다.
그러나 장내의 어느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범계위였기 때문이다.
반면 복면인은 그 자리에 여전히 두 발로 서 있었다.
“가가!”
비명에 가까운 벽화령의 외침이 밤하늘에 메아리쳤다.
그때였다.
“왜?”
범계위가 부스스 일어나 벽화령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벽화령은 일순 할 말을 잃었다.
먼지를 뒤집어썼을 뿐 멀쩡해 보이는 범계위의 모습 때문이었다.
“쿨럭.”
기침 소리와 함께 복면인이 피를 토했다.
그제야 벽화령은 그의 상태를 자세히 확인할 수 있었다.
방금 전의 격돌로 복면이 날아갔는지 사내는 맨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핏기 한 점 없이 창백한 얼굴로 연신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
비록 두 발로 서 있었으나 어깨 아래, 의당 있어야 할 팔이 보이지 않았다.
팔 하나가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것이다.
뜯겨 나간 어깨는 허연 뼈가 드러나 있었고, 입과 코에서는 연신 검붉은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힐끗 고개를 돌려 자신의 상태를 확인한 복면인이 한숨을 터트렸다.
“어떻게…….”
입을 열기 무섭게 그의 입에서 폭포수와 같은 선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토록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절학.
그것도 전력을 실어 낸 공격이 범계위의 일 권 한 방에 그대로 폭발하듯 터져 나가 버렸다.
그 파괴적인 위력은 당사자인 복면인조차 믿기지 않을 만큼 전율스러웠다.
반면 범계위는 차가운 눈빛을 흘리며 복면인을 향해 다가섰다.
덥석.
범계위의 커다란 손이 복면인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런데도 복면인은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범계위가 날려 버린 건 그의 팔만이 아니었다.
절정의 기공이 정면으로 격돌한 이상 어느 한쪽이 고스란히 피해를 뒤집어써야만 했다.
본래의 위력에 반탄력까지 더해진 충격은 내부를 진탕시키고 심맥까지 으스러트렸던 것이다.
그런데도 복면인은 피 칠갑을 한 채 웃고 있었다.
“그래. 발버둥 쳐 봐라, 버러지들아. 그래 봐야 얼마 남지 않았다.”
“뭐?”
의아해하는 범계위를 복면인이 비웃었다.
“이제 곧 그분께서 나서실 것이다.”
“그놈이 누군데?”
“네 악몽의 주인.”
“난 악몽 따위 꾸지 않아.”
“곧 그리될 것이다.”
범계위가 피식 실소했다.
곧 머리통이 터져 죽을 놈의 헛소리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벽화령이 소리친 것도 그때였다.
“범 가가! 그자의 정체를 알아내야 해요!”
손가락에 힘을 넣던 범계위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내내 놈의 정체가 신경 쓰였던 것이다.
범계위가 손을 들어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복면인의 어깨를 눌렀다.
치이익.
“끄아악!”
살이 타들어 가는 연기와 함께 복면인의 어깨가 강제로 지혈되었다.
혹시 몰라 복면인의 마혈과 아혈까지 찍어 완벽하게 무력화시킨 다음 범계위가 벽화령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여자가 하는 말은 들어야지.”
방금 전의 무시무시한 모습은 어디 가고 멋쩍게 웃는 범계위였다.
“조금 전에 잘못 들은 게 아니었네요.”
천천히 다가오는 벽화령을 향해 범계위가 그답지 않게 쑥스러워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내 대답이야.”
“가가…….”
눈물 그렁그렁한 얼굴로 벽화령이 범계위를 향해 팔을 뻗던 그때.
“대랑, 여기 좀 와 보십시오.”
눈치 없이 끼어든 수하들을 향해 벽화령이 눈을 치켜떴다.
그러나 이어진 그들의 보고에 표정을 달리했다.
“흑백쌍교(黑白雙狡)입니다.”
“강서 일대에서 설쳐 댔던 마두들?”
한참 전에 모습을 감춰 행방이 묘연했던 사파의 고수들.
벽화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로 과거에 몇 번 손을 섞어 본 적이 있어 누구보다 그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악명은 높으나 그들의 무공 수위는 자신에게 한참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방금 전의 일전을 통해 겪은 상대방의 무위는 괄목상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죽어 있는 흑의인들 모두가 과거에 사라지거나 실종되었다는 사파 무림의 인물들이었다.
“저놈에게 물어볼 게 많겠군.”
이자들의 우두머리가 분명한 흑의인을 노려보던 범계위가 뒤늦게 무언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어? 다쳤어?”
어깨를 지혈하고 있던 벽화령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대단한 부상은 아니에요.”
“피가 이렇게 나는데 괜찮을 리가 없잖아!”
대뜸 손을 뻗어 벽화령의 허리를 끌어안은 범계위가 그대로 신형을 날렸다.
잠시 후.
꽈앙!
부서져라 대문을 박차며 신마의가에 뛰어든 범계위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단 의원! 우리 화령이가 다쳤어!”
난데없는 소란에 달려온 단악선이 놀란 눈으로 범계위를 바라봤다.
범계위의 품에 안겨 있는 벽화령보다 다른 손으로 뒷덜미를 움켜쥔 흑의인의 상태가 훨씬 위중해 보였기 때문이다.
쿵,
끌고 온 흑의인을 짐짝처럼 던진 범계위가 벽화령을 단악선 앞으로 내밀었다.
“치료할 수 있지?”
단악선 뒤에 있던 한설화가 아미를 찡그렸다.
한눈에 봐도 깊은 자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호들갑은.”
핀잔을 던진 한설화가 묘한 눈빛으로 범계위를 응시했다.
“그나저나……. 우리 화령이?”
범계위가 움찔했다.
반면 벽화령은 범계위의 손을 벗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얼굴만 붉히고 있을 뿐이었다.
그사이 단악선은 서둘러 팔 하나가 날아가 버린 사내에게 다가섰다.
“이런!”
단악선의 눈빛이 흔들렸다.
황급히 사내의 상의를 벗기고 전신 혈도에 침을 꽂아 넣은 단악선이 무거운 한숨을 터트렸다.
부모님이 살아 돌아오신다 해도 손쓸 수 없을 만큼 이미 사내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분은 누구죠?”
단악선의 물음에 범계위가 싸늘한 눈빛을 흘렸다.
“전에 초 형 골탕 먹인 놈. 놈이 모용진을 죽였다. 화령이도 죽이려 해서 내가 구해 낸 거고.”
“아!”
단악선이 복잡한 눈빛으로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눈앞에서 죽어 가는 환자였지만 그가 저지른 악행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마중하기 위해 산문을 나섰던 곤륜 문하를 살해한 것도, 연판장을 받는 걸 방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동파의 사람들을 납치한 것도.
전부 눈앞에서 죽어 가는 자의 소행이었다.
거기에 힘들게 살린 모용진을 죽이고 벽화령마저 죽이려 했다니.
만약 그를 살릴 수 있다 해도 선뜻 그를 치료할 수 있었을까?
단악선은 자신할 수 없었다.
“대체 누굴까요?”
단악선의 물음에 범계위가 한설화를 바라봤다.
물끄러미 사내를 응시하던 한설화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정도 고수라면 적어도 이름 정도는 들어 봤을 텐데 기억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자의 정체에 대해 짐작되는 바가 있습니다.”
뜻밖에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모아졌다.
어느새 장내에 들어선 사무심이 침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혈운사 놈이군요.”
“혈운사요?”
단악선의 반문에 사무심이 고개를 끄덕이며 흑의인의 어깨 부근을 가리켰다.
“악귀가 새겨진 깃발 문양의 문신. 그것으로 놈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나타냅니다.”
말단의 놈들은 깃발 하나를, 그들을 이끄는 조장은 두 개의 깃발을, 그 조장들을 지휘하는 총호법은 세 개의 깃발을 지니고 있었다.
지위가 올라갈수록 깃발을 하나씩 늘려 새겨 넣는 식이다.
흑의인의 어깨에 새겨진 깃발은 모두 세 개였다.
단악선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그럼 이 사람이 저들의 총호법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