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16)
신마의선-216화(216/500)
신마의선 (216)
신중한 표정으로 사내를 진맥하던 단악선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아무래도 아주머니께서 짐작하신 게 맞는 것 같아요.”
단악선이 무거운 눈빛을 흘렸다.
“이 사람도 마공을 익혔어요.”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그런데 왜 난 못 느꼈지?”
“앞선 두 분과 다르니까요.”
눈앞의 사내는 진영산이나 모용진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진기의 흐름이 안정적이에요. 익히고 있는 내공심법이 불완전한 반쪽짜리가 아니라는 의미겠죠.”
“하긴.”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에도 분명 그랬다.
마공의 성취가 부족한 졸자들이나 마기를 줄줄 흘려 댔지, 호교십위 정도 되는 고위급의 고수들은 달랐다.
압도적인 눈빛과 존재감이 정신 사나운 마기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들이 마기를 드러내는 건 전력을 다할 때나, 죽음을 앞두고 내력의 균형이 깨졌을 때뿐이었다.
단악선의 설명에 한설화가 의아한 눈빛을 던졌다.
“그런데 이자 역시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이미 그 단계를 한참 전에 지났거든요.”
단전을 비롯한 기맥이 송두리째 박살 난 상태여서 이미 한 줌의 내력도 존재하지 않을 터.
간신히 침술로 그의 목숨을 붙들고는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생명은 빠르게 흩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마교와 새외 세력의 결탁은 이로써 확실해진 셈이군.”
한설화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의 내공심법을 온전히 익히기 위해서는 그들의 전폭적인 협조가 있어야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참을 물끄러미 사내를 내려다보던 단악선이 자신의 진료실로 향했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단악선의 손에는 길쭉한 목갑이 들려 있었다.
그것을 본 범계위가 움찔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섬뜩한 물건의 정체를 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목갑을 열어 기다란 대침을 꺼낸 단악선이 복잡한 눈빛으로 묵룡아와 정신을 잃은 흑의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무얼 하려 하느냐?”
한설화의 물음에 단악선이 슬프게 웃었다.
“이분을 깨울 거에요.”
“가능하겠느냐?”
“네…….”
어딘가 석연치 않은 단악선의 표정에 한설화가 의아해할 때였다.
나직한 한숨과 함께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묵룡아를 이용해 이분 몸에 위화신공의 기운을 불어 넣어 흩어진 내력을 일시적으로 대체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만큼 죽음도 앞당겨지겠죠.”
사실 지금 이 상태로도 흑의인은 이 각을 넘길 수 없었다.
내력을 불어 넣어 의식을 회복시킨다면 인위적으로 회광반조(回光返照)의 효과를 불러올 수 있었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생명의 불꽃.
하나 그만큼 생명 역시 금세 소진될 것이다.
“내키지 않는다면…….”
만류하는 한설화의 말을 자르며 단악선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하겠어요.”
단악선의 눈에 단단한 각오가 자리 잡았다.
단악선이 진기를 끌어 올리자 묵룡아 표면에 자리 잡고 있던 문양이 더욱 선명해졌다.
신중한 표정으로 단악선이 손을 움직였다.
단악선의 손에 들린 묵룡아가 천천히 흑의인의 아랫배, 단전이 위치해 있던 기해혈 부근을 파고들었다.
죽은 듯이 늘어져 있던 흑의인이 번쩍 눈을 뜬 것도 그때였다.
“크아악!”
눈을 부릅뜬 흑의인.
그의 처절한 비명이 허공을 흔들었다.
의식을 회복하자 끔찍한 고통이 전신에서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시선을 마주한 범계위와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광반조 현상과 함께 흑의인의 전신에서 새어 나오는 불안정한 기운을 느꼈던 것이다.
확실히 마기였다.
마혈이 제압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버둥거리려는 사내를 누르며 단악선이 말했다.
“깨워서 미안해요.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요.”
핏발 가득한 눈으로 단악선을 올려다보던 흑의인이 히죽 웃었다.
지옥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악귀처럼 섬뜩한 웃음이었다.
“크큭. 그래, 너로군. 신마의선이라는 꼬맹이가.”
“어째서 우리를 그냥 두지 않는 거죠?”
단악선의 물음에 흑의인이 키득거렸다.
“인과의 규율에 몸을 던진 건 네놈이다. 네놈이 방해만 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너를 신경 쓰는 일도 없었겠지.”
“우리라는 건 당신들 혈운사와 마교를 말하는 건가요?”
“……!”
흠칫한 복면인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이를 놓치지 않고 단악선이 재차 물었다.
“당신들은 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건가요?”
단악선을 노려보던 흑의인이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크흐흐. 나를 통해 얻어 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단악선이 안타까운 눈빛을 던졌다.
지금도 그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악착같이 자신의 뜻을 꺾지 않고 있었다.
참다못해 범계위가 나섰다.
“단 의원, 원래 이런 놈들은 대화가 통하지 않아. 괜히 맘 상할 것 없이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한설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통할 상대였다면 애초에 이렇게 만나지도 않았을 테지. 여긴 우리에게 맡기고 들어가 쉬거라.”
두 사람의 만류에도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진지한 눈빛으로 흑의인과 시선을 마주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이제 얼마 안 가 당신은 숨이 끊어질 거예요. 그때까지 고통은 계속될 거고요. 그 시간이 어쩌면 억겁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사실을 이야기해 준다면 제가 그 고통을 덜어 드릴게요.”
“크윽……. 개소리.”
단악선의 제안을 거절한 흑의인이 저주를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한 가지만 말해 주지. 너희들은 비참하게 죽을 것이다. 네가 금지로 만든 이곳 무위 역시 마찬가지. 머잖아 모조리 피에 잠겨 허우적댈 것이다. 모두 네가 자초한 것이니 그 책임을 통감하며 괴로움에 몸부림쳐라!”
“……!”
단악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순간 흑의인이 돌연 부르르 몸을 떨기 시작했다.
“끄어억!”
거품을 물며 경련하는 사내의 모습에 중인들이 당황했다.
“뭐야? 벌써 죽는 거야?”
범계위의 당혹성에 단악선이 말없이 선앙침을 꺼내 흑의인의 인중과 가슴팍에 위치한 영태혈(靈台穴), 그리고 머리 뒤쪽의 옥침혈(玉枕穴)에 차례대로 꽂았다.
그러자 흑의인의 눈빛이 돌아왔다.
그런 그를 향해 단악선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결은 허락할 수 없어요. 억지로 내력을 운용하려 해도 소용없고요.”
“……!”
차분한 단악선의 설명에 사내의 얼굴에 경악의 감정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끝을 짐작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이 재차 그를 씹어 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사무심을 향해 말했다.
“능 단주님을 불러 주세요.”
그 말과 함께 단악선이 이번엔 마령침을 꺼내 들었다.
고통에 괴로워하는 흑의인을 내려다보며 단악선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당신의 지옥을 끝내 줄게요. 대신 당신의 남은 시간은 제가 받아 가겠어요.”
단악선이 마령침을 사내의 혈도 곳곳에 꽂기 시작했다.
잠시 후 능소밀이 도착하자 단악선이 마지막 침을 흑의인의 뇌호혈에 시침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사내의 입에서 비명이 잦아들었다.
눈빛 역시 마찬가지.
광기와 살기, 저주로 점철되어 있던 눈빛이 점차 나른해지나 싶더니 이내 꿈을 꾸듯 몽롱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취생몽사(醉生夢死)라는 시술이에요. 남은 시간 동안 그는 가장 편안한 꿈을 꾸게 될 거예요. 대신 현실을 인지할 수 없고요. 아마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할 거예요.”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의식의 방어 기제가 완벽하게 무력화된 상태인 셈이다.
고개를 끄덕인 능소밀이 흑의인에게 다가섰다.
“이름은?”
“……바트얼지.”
“달자(韃子) 놈들의 이름이군?”
능소밀은 일부러 그를 자극하는 질문을 던졌다.
정보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
서북변의 오랑캐라는 의미가 담긴 달자는 중원인들이 그들 이민족을 비하하는 말이었다.
바트얼지라 스스로를 밝힌 사내가 마치 잠꼬대를 하듯 대답했다.
“……위대하신 하앙의 혈통을 이어받은 존귀한 이름이다.”
능소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앙은 한때 중원을 지배했던 이민족의 황제, 대한(大汗)의 저들 식 발음이었다.
그만큼 묻는 말에 솔직히 대답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능소밀은 새삼 단악선의 능력에 감탄했다.
단악선의 침술만 있다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심문 자체가 수월해질 터.
‘대체 곡주님의 능력은…….’
저 방법만 있다면 굳이 고문처럼 험한 수단을 동원할 필요도 없었다.
그때였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서둘러 주세요.”
단악선의 말에 능소밀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곤륜 문하를 살해한 것과 공동 문하를 납치한 것도 너희인가?”
“……그래.”
“왜지?”
“……방해가 되니까.”
“무슨 방해?”
“……금지가 선포되면 사파인들을 우리 뜻대로 움직이기 힘들어진다.”
능소밀의 질문에 흑의인은 순순히 자신이 아는 걸 털어놓기 시작했다.
“역시 그랬군.”
흑의인의 말을 듣던 한설화가 침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맹을 피해 달아났던 삼몰쌍괴가 이곳에서 나타난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들은 일찍부터 무림맹에 쫓기는 사파의 인물들을 포섭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고, 무공의 증진을 돕는 대가로 자신들의 명령에 따르도록 꾸민 것이다.
사파인들을 은밀하게 모으고 있던 구심점이 있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마교라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자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곤륜에 도착하기 전 독을 복용한 사내가 이 아이를 죽이려 했다. 그 역시 너희들의 소행이냐?”
한설화의 물음에 단악선이 멈칫했다.
당시를 떠올리자 새삼 소름이 끼쳤기 때문이다.
“……고수의 이목을 속일 방법이 그것뿐이었다.”
이때 범계위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것도 물어봐. 아까 저놈이 단 의원에게 이상한 소리를 했거든.”
범계위의 설명을 들은 능소밀이 흑의인에게 질문했다.
“인과의 규율에 몸을 던졌다는 것이 무슨 의미지?”
“……꼬마가 먼저 우리 계획에 끼어들었다.”
“계획?”
“……맹주의 딸을 볼모로 무림맹을 장악하려는 계획.”
그 말에 장내의 모두가 깜짝 놀랐다.
“남궁향 소저에게 청화은옥(淸化誾玉)으로 만든 침상을 쓰도록 만든 게 당신들이었군요!”
단악선의 외침에 흑의인이 나른하게 대답했다.
“……그게 뭔지 나는 모른다. 그 일을 맡은 자들은 따로 있으니까. 애초에 목표는 남궁백이었고.”
한데 남궁백이 침상을 딸에게 선물하는 바람에 계획이 차질을 빚었고, 처음 이를 획책했던 사람이 계획을 수정했다는 것이다.
“계획을 세운 사람이 누구지?”
“……이름은 모른다. 그저…….”
“그저?”
“……마교의 핵심 인물이라는 것밖에. 그는 항상 육존 중 두 명 이상을 대동하고 움직였다.”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단악선을 바라봤다.
“우연하게 놈들의 계획을 좌절시킨 것이군요. 그래서 놈들의 원한을 산 것이고요.”
그때였다.
흑의인이 흐릿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는 늘 다른 방법을 준비하지. 계획은 이미 성공했다.”
“뭐?”
“……남궁백이 실각했으니까. 이미 다른 말이 그를 대신하고 있다 들었다.”
중인들이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곰곰이 무언가를 되짚던 능소밀이 다시 질문을 이어 간 것도 그때였다.
“해남검파의 무인들을 왜 죽이려 한 것인가?”
“……그들을 통해 어디까지 정보가 누설되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곤명 말인가?”
“……아아, 이미 알려져 버린 건가? 위에 알려야 하는데……. 그런데…… 지금은 귀찮군.”
흑의인의 호흡이 점차 가늘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단악선이 서둘러 질문을 던졌다.
“혹시 신의와 마의의 죽음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요?”
단악선의 말에 듣고 있던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