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18)
신마의선-218화(218/500)
신마의선 (218)
흑의인이 부르짖듯 소리쳤다.
“모릅니다! 한 달 전에 행적을 놓쳤습니다.”
노단양의 흔적을 쫓아 추적 중이라는 그의 말에 초악량은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한 달 전에는 위치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군?”
“그, 그건…….”
“노단양을 처음 감시하던 곳이 어디지?”
잠시 대답을 머뭇거리던 사내가 이내 찢어지는 비명을 터트렸다.
기맥이 터져 나가는 지독한 고통 끝에 사내가 눈물 콧물을 쏟으며 자신이 아는 모든 바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며칠 후.
초악량은 야트막한 벼랑 아래 위치한 동굴 안에 들어섰다.
입구에 커다란 바위가 교차해 있어 밖에서는 존재를 알 수 없는 동굴.
그 안에 들어서자 널찍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곳곳에 남겨진 흔적들로 미루어 누군가가 이곳에서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항아리에 담겨 있는 벽곡단이 그랬고, 유등과 침상도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중원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물건들이었다.
특히나 벽곡단은 무림맹이 작전 중인 소속 무인들에게 지급되는 것과 동일했다.
이를 통해 초악량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지금껏 노단양을 숨겨 준 사람이 제갈연이었다는 뜻인가?”
하지만 감시를 붙인 것으로 미루어 완전히 노단양을 믿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다 문득 초악량은 동굴 석벽에 남겨진 흔적들에 주목했다.
마구잡이로 파헤치고 으스러트린 석벽.
그 안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분노와 광기를 확인한 초악량의 눈에 섬전 같은 안광이 일렁였다.
“아무래도 놈이 제갈연의 통제를 벗어났을 확률이 높군.”
아직은 확실하지 않았지만 이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한 사람.
제갈연을 추궁하면 상황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을 터.
“당장은 여기까지인가.”
초악량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이 넓은 초원을 뒤져 노단양을 찾는 건 무리였다.
게다가 너무나 오랫동안 무위를 떠나 있었다.
“그래도 아주 소득이 없는 건 아니군.”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 * *
무위 저자에 위치한 성화객잔.
점심을 맞아 손님들로 북적이는 객잔에 두 사람이 들어섰다.
그러자 떠들썩하던 객잔이 일순 조용해졌다.
“제길.”
“여기도냐.”
사방에서 날아와 꽂히는 시선에 종리추와 장철우가 한숨을 터트렸다.
대체 사파 놈들은 왜 이렇게 까칠하게 굴어 대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먹던 음식이나 마저 먹을 것이지, 젓가락을 암기처럼 움켜쥔 채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돌아서서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발길을 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이곳이 그들이 찾은 마지막 객잔이었기 때문이다.
신마의가에서 지내는 며칠 동안 두 사람은 밀려드는 회의감에 밤잠을 설쳤다.
그래도 명색이 해남검파 안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가 바로 그들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어딜 가나 찬밥 신세였다.
그나마 해남도를 떠나 벽화령과 함께 이곳에 올 때까지는 수신 호위라는 명목이라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벽화령 곁에 늘 범계위가 붙어 있었다.
자신들이 쳐다보지도 못할 고수인 그가 벽화령 곁에 머무는 이상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벽화령은 매번 눈치를 줬다.
자신과 범계위 사이를 방해하는 훼방꾼 취급하며 핀잔을 던지기 일쑤였고, 나중에는 아예 대놓고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사라지라며 을러대기까지 했다.
그래도 한때 목숨을 걸고 사선을 함께 헤쳐 나온 동문 아니던가.
그 야박한 처사가 몹시 억울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정말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건 따로 있었다.
바로 범계위와 벽화령의 끝없는 애정 행각이었다.
자신들이 뻔히 보고 있는데도 눈빛을 교환하는 건 예사였고, 나름 밀담을 주고받는답시고 서로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이며 키득대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닭살이 돋아 도저히 그곳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신마의가를 벗어났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중원의 사파 놈들은 죄다 이곳에 몰려왔는지, 어딜 가나 자신들을 꼬나보는 놈들이 있었다.
곱지 않은 시선은 말할 것도 없었고, 어떤 놈은 다짜고짜 욕설을 날리며 시비를 걸어오는 놈도 있었다.
개중에는 아예 살기를 드러내며 자신의 무기를 움켜쥐는 놈도 있었다.
그 이유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바로 자신들이 정파인이었기 때문이다.
벽화령과 그들은 이곳 무위가 정파인은 출입할 수 없는 금지로 선포된 이후 처음으로 들어선 정파인이었다.
그나마 범계위가 벽화령과 혼인하겠다는 선언을 해서 벽화령은 그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반면 두 사람의 입장은 여전히 애매했다.
비록 벽화령의 수신 호위 신분이기는 하나 언젠가 다시 해남도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들과 대놓고 싸우자니 범계위와 벽화령의 입장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저들의 불편한 시선을 피해 무위 안을 정처 없이 떠돌게 되었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됐지?”
종리추의 탄식에 장철우가 벌컥 짜증을 냈다.
“아, 몰라.”
장철우가 성큼 걸음을 내딛더니 비어 있던 식탁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여기 주문!”
점소이가 쭈뼛거리며 다가서자 장철우는 주변의 눈치에도 아랑곳 않고 이것저것 음식을 시켰다.
종리추도 마지못해 장철우의 맞은편에 앉았다.
잠시 후 음식이 나오자 종리추가 젓가락으로 음식을 뒤적였다.
“독 탄 건 아니겠지?”
“설마.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아무리 못 배워 먹은 놈들이라도 그 정도로 막 나가진 않을 거야.”
그 말을 들었는지 객잔 안의 누군가가 대놓고 코웃음을 쳤다.
“흥! 벽지의 촌놈들이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 가지고.”
그 말을 누군가가 받았다.
“걱정 마라. 뭐 하러 귀찮게 그딴 짓을 하겠어? 마음만 먹으면 너희 두 놈 목 따는 건 일도 아닌데.”
오랜 세월 정파에게 쫓기며 억하심정과 피해 의식이 뼛속 깊이 새겨진 사파인들이었다.
그런 만큼 해남검파의 무인들을 대하는 눈빛과 말투가 고울 리 만무했다.
문제는 종리추나 장철우 역시 거친 바다를 누벼 온 해남검파의 무인.
드센 성격으로는 어딜 가서도 밀리지 않았다.
“방금 나불거린 주둥이의 주인은 어디의 고인이실까? 응? 말로만 떠들 게 아니라 우리에게도 그 엄청난 신위를 견식할 기회를 주시지?”
“놔둬. 평생 달아나던 겁쟁이들이 하는 짓이라곤 겁먹은 개처럼 짖어 대는 게 전부일 테니까.”
종리추와 장철우의 말에 대번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그그극.
객잔 곳곳에서 의자 밀리는 소리와 함께 사파인들이 신형을 일으킨 것이다.
형형한 안광을 쏟아 내는 사파인들.
그들이 내뿜는 살기가 객잔 안에 휘몰아쳤다.
“벽 소저야 범 선배님의 정인이니 그렇다 쳐도, 저놈들이 왜 여기서 어기적거리는 거지?”
“그러게. 의가에 가만히 붙어 있지, 자기들이 뭐라고 의기양양하게 객잔까지 나와서 밥을 처먹어?”
자신들을 향한 노골적인 조롱에 종리추와 장철우가 참았던 분노를 터트렸다.
“오냐. 오늘 날 잡자.”
“다 덤벼, 이 자식들아! 왜 우리가 해남의 파랑이검(破浪二劍)인지 똑똑히 깨닫게 해 주마!”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객잔 안에 있던 일반인들이 서둘러 자리를 떴다.
객잔의 주인으로 짐작되는 푸근한 인상의 중년인이 소리친 것도 그때였다.
“신마의가에 알려라! 당장!”
그 말에 객잔 안의 모두가 흠칫했다.
종리추와 장철우 역시 마찬가지.
“끄응.”
“너희들 오늘 운 좋았다.”
검파에 올려 둔 손을 거두며 두 사람이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누군가 소리쳤다.
“누가 할 소리! 우리야말로 벽 소저 얼굴을 봐서 참아 주는 것이다.”
종리추가 어이없다는 눈빛을 흘렸다.
“네놈들이 왜 우리 부문주님 얼굴을 봐?”
“우리라고 뭐 여기 있고 싶어서 있는 줄 알아?”
장철우가 억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너희들 열흘 넘게 망산초자 옆에 있어 봤어? 그게 얼마나 사람 피 말리는 일인지 아냐고!”
그 말에 객잔 안의 사파인들이 멈칫했다.
“문주님은 부문주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말라고 명령하셨지! 그런데, 어? 정작 부문주님은 자꾸만 우리더러 꺼지래! 거기다 망산초자는 한 번씩 살기를 뿜어 대고! 사방에 눈치 주는 인간들뿐이라 갈 곳도 없어! 그래서 그 인간들 피해 밥 한 끼 먹자는 건데 이게 그렇게 큰 죄냐? 왜 너희들까지 눈치를 주고 지랄이냐고!”
가슴에 담아 두었던 울분을 토하고 난 장철우는 문득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어딘가 숙연해진 분위기.
게다가 자신들을 향한 사파인들의 눈빛이 바뀐 것을 깨달은 장철우가 벌게진 얼굴로 버럭 했다.
“동정하지 마!”
종리추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맛이 뚝 떨어져 식사할 마음도 사라진 지 오래.
자신들을 안쓰러워하는 사파 놈들의 눈빛에 안 그래도 우울한 기분이 더욱 비참해졌다.
다시 객잔을 나선 두 사람이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도착한 곳은 신마의가였다.
어딜 가나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불편한 시선에 맘 편히 있을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마의가의 담벼락을 보며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던 그때.
“꺄악!”
새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종리추와 장철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이건 부문주님의?”
그 비명이 벽화령의 음성이라는 것을 깨달은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대로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 경공을 펼쳐 그들이 도착한 곳은 인적 드문 후원의 정원.
그런데…….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아이, 가가. 따갑단 말이에요.”
까르르 웃으며 범계위의 얼굴을 밀어내는 벽화령.
“흐흐. 내 입술이 내 여자의 고운 뺨을 그리워하는 것 같아서.”
벽화령을 끌어안은 채 입술을 내밀고 있는 범계위의 모습에 두 사람은 일순 맥 빠진 표정을 지었다.
범계위의 품에 안겨 교태 가득한 눈빛을 흘리던 벽화령이 뒤늦게 두 사람을 발견했다.
“왜 벌써 왔어?”
“예?”
“왜 이리 눈치가 없어? 두 사람 다.”
황당해하는 종리추를 향해 벽화령이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리곤 두 팔로 범계위의 허리를 끌어안더니 코맹맹이 소리를 했다.
“신경 쓸 것 없어요, 가가. 우리 하던 것이나 마저 해요.”
“쟤들 가고 나서.”
“괜찮아요. 그냥 공기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쟤들도 어디 가서 떠들지 못할 거예요.”
“그럼 그럴까?”
자신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다시금 애정 행각을 이어 가는 두 사람의 모습에 종리추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걸 뭐라고 하지?”
“뭐?”
의아한 얼굴로 반문하는 장철우를 향해 종리추가 말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 제치는 거.”
“하극상(下剋上)?”
“아, 맞아. 그런 단어였어.”
“그건 갑자기 왜?”
“오늘 내가 할 거거든. 그 하극상이라는 거.”
장철우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부문주님 못 이기잖아.”
하지만 종리추가 품속에서 꺼내 든 폭뢰를 발견하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미쳤어? 왜 이래, 갑자기? 정신 차려.”
“이거 놔. 확 터트려 버리고 저 꼴 안 보고 말 테니까.”
그렇게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였다.
“시끄러워!”
빽 소리를 지른 벽화령이 두 눈을 치켜뜬 채 두 사람을 향해 다가섰다.
“대체 너희들은 뭐가 문제야?”
억울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종리추와 장철우가 자신들의 처지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고?”
벽화령의 반문에 장철우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문주님께서는 부문주님 곁에 있으라 명하셨고, 부문주님께서는 자꾸 우리를 돌아가라 하니 어느 분의 명령을 따라야 할지 모르겠단 말입니다.”
그때였다.
“뭐야? 그게 문제였어?”
범계위가 불쑥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 문제라면 내가 해결해 주지.”
의아해하는 세 사람을 향해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둘 다 하면 되잖아?”
“예? 어떻게 말입니까?”
종리추의 반문에 범계위가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능 단주우!”
쩌렁한 범계위의 음성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한 사람이 날 듯이 후원으로 달려왔다.
능소밀이었다.
“부르셨습니까.”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능소밀을 향해 말했다.
“그거 있지? 제비뽑기.”
“가, 갑자기요?”
능소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난데없이 불러 대뜸 한다는 소리가 제비뽑기라니!
이제는 제비뽑기라면 학을 떼는 능소밀이었다.
불안해하는 능소밀을 향해 범계위가 종리추와 장철우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긴 제비를 뽑는 놈은 여기 남고, 짧은 걸 뽑은 놈은 돌아가는 거야. 이러면 두 가지 명령을 모두 수행하는 거잖아?”
“어떻게 그런 천재적인 생각을? 역시 우리 범 가가!”
범계위를 한껏 추켜세우는 벽화령과 달리 종리추와 장철우는 내심 기가 막혔다.
한 사람만 돌아가야 한다면 남은 한 사람이 지금처럼 모든 고역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나마 지금의 상황을 공감하고 위로를 건넬 동료마저 사라지는 셈.
‘만약 짧은 걸 뽑으면?’
‘그래도 혼자보단 둘이 낫지.’
굳이 절반의 확률에 운명을 걸고 싶지 않았다.
시선을 마주한 두 사람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남겠습니다.”
“무엇보다 문주님의 명령이 우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