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19)
신마의선-219화(219/500)
신마의선 (219)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이른 아침.
그럼에도 단악선의 표정은 오늘따라 유독 진지했다.
웃음기 거둔 단악선의 눈빛에 괜히 범계위도 바짝 긴장했다.
침상 위에 누워 있던 범계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단악선을 올려다보았다.
“단 의원, 왜 그래? 혹시 뭐가 나빠진 거야?”
말없이 범계위의 몸 곳곳을 세심하게 진찰하던 단악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그 반대예요.”
단악선이 고개를 들어 범계위 곁을 지키던 벽화령을 향해 말했다.
“죄송하지만 잠시 자리를 비켜 주시겠어요?”
그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벽화령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보다 유독 진료가 길어져서 내심 걱정하던 참이었다.
“무슨 일이죠? 혹 범 가가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전 알아야겠어요.”
우려 가득한 벽화령의 표정에 단악선이 빙긋 웃었다.
혼례만 치르지 않았다 뿐이지 이미 혼인을 마친 것이나 마찬가지인 두 사람이었다.
배우자로서 치료 과정에 대해 알 자격은 충분했다.
“오늘이 마지막 치료가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집중해야 하거든요.”
“아!”
짧은 탄성과 함께 벽화령의 얼굴이 밝아졌다.
“드디어!”
덩달아 환하게 웃던 범계위의 얼굴이 어느 순간 사색이 되었다.
단악선이 꺼내 든 묵룡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 잠깐! 단 의원! 설마 그걸 쓰려고?”
긴장으로 굳어진 범계위를 향해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때가 왔거든요.”
“때?”
“어떤 일이든지 시의적절한 시기라는 게 있잖아요. 치료도 마찬가지예요. 아마 이 순간을 놓치면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몰라요.”
“그, 그래도…….”
단악선의 손에 들린 묵룡아를 보며 범계위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천하의 그라 할지라도 묵룡아만큼은 두려웠다.
저 거대한 침이 자신의 몸속에 박힌다 생각하니 그것만으로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렇다고 우는 소리를 할 수도 없었다.
단악선의 진지한 태도는 둘째 치고, 희망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벽화령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묵룡아를 발견한 벽화령이 흠칫하더니 이내 안쓰러운 눈빛을 흘리며 범계위의 두 손을 힘주어 맞잡았다.
“믿을게요. 가가…….”
벽화령이 처소 밖으로 사라지자 실내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본격적인 치료에 앞서 단악선은 선앙침을 들어 범계위의 혈도 곳곳에 찔러 넣었다.
“음?”
순식간에 마혈이 제압되자 범계위가 불안한 눈빛을 흘리기 시작했다.
“단 의원? 이건 왜?”
“혹시라도 몸부림을 치실까 싶어서요. 예방 차원의 조치예요.”
“그 정도로 아파?”
단악선이 미소로 범계위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세요. 치료가 끝나면 전혀 다른 몸이 되실 거예요. 제가 약속할게요.”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고 애매하게 말을 돌리는 단악선의 모습에 범계위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그럼 시작할게요.”
단악선이 묵룡아를 천천히 움직였다.
그 진지하고 삼엄한 눈빛에 범계위도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범계위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자, 잠깐! 단 의원! 이거 죽을 것같이 아픈데?”
범계위의 다급한 외침에도 단악선은 집중력을 유지한 채 시침을 이어 갔다.
“참아 보세요. 자고로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다잖아요.”
“아니야, 단 의원. 이건 그렇게 퉁칠 정도로……. 끄아악!”
결국 범계위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
지금껏 살아오며 적잖이 험한 꼴을 겪었다 자부하는 범계위조차 상상해 본 적 없는 끔찍한 느낌이었다.
문제는 그 고통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거의 정신을 놓기 직전.
한 줄기 차가운 음성이 뇌리를 파고들었다.
“조금만 참으세요! 거의 다 왔어요!”
단악선이 창백한 얼굴로 외쳤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은 말할 것도 없었고, 정신력도 극에 달했는지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단악선의 손에 들려 있던 묵룡아.
그 안에 새겨져 있던 무늬를 따라 상서로운 서기가 뿜어져 나온 것도 그때였다.
그 순간 범계위는 돌연 끔찍한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대신 목뒤 근처가 시원해졌다.
오랜 기갈에 시달리던 끝에 주어진 한 모금의 감로수가 그러할까.
청량한 기운이 사지백체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단전에서 용틀임한 거대한 진기가 기맥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한 것도 동시였다.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날뛰던 진기!
그러다 어느 한순간 맹렬한 기세로 정수리 부근의 천령개를 향해 쇄도했다.
꽈앙!
실제로 소리는 없었으나 범계위는 머릿속에서 벼락 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꽝!
다시 한 번.
꽝!
그리고 다시 한 번.
맹렬한 진기가 세 번이나 정수리 부근의 백회혈(百會穴)을 두들겼다.
쩌적.
범계위는 일순 무언가가 깨져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앗!”
단악선의 짧은 경호성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걸 마지막으로 범계위는 그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무념무상의 상태로 접어든 것이다.
삼매(三昧).
혹은 무아지경(無我之境)이라 일컫는 심일경성(心一境性)의 상태.
지척에서 깊은 선정(禪定)에 잠긴 범계위.
그런 그를 바라보던 단악선의 눈에 놀라움이 자리 잡았다.
돌연 범계위의 신형이 천천히 침상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피피피핑!
범계위의 온몸에 꽂혀 있던 침들이 암기처럼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스으으.
범계위의 전신에서 안개와 같은 서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건 그 직후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짙어진 운무가 이내 범계위를 집어삼켰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범계위를 에워싸고 있던 자욱한 서기가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단악선은 숨소리도 죽인 채 그런 범계위를 응시했다.
서서히 머리 위로 뭉쳐진 서기가 일정한 형태를 갖추어 눈부신 빛을 뿌렸다.
‘삼화취정(三花聚頂)!’
단악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나라 말의 팔선(八仙)이라 불리던 종리권과 여동빈.
그들이 쓴 종려문답집에서 언급된 내용 그대로였다.
삼화취정은 삼양취정(三陽聚頂)이라고도 하는데, 음(陰) 가운데 양(陽), 양 가운데 양, 음양 가운데 양. 이 삼양이 내원을 향하고 천궁으로 반환되어 가는 과정이다.
음 가운데 양은 하원. 즉 하단전으로, 음이 양기를 감싸고 있는 형태의 혼원을 의미했다.
양 가운데 양은 중원으로, 강력한 극양의 기운을 뜻한다.
심장을 중심으로 하는 중단전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음양 가운데 양은 상단전이었다.
이 삼양이 어우러져 완성된 순양의 정화가 상단전인 천궁에 모여 이처럼 빛나는 꽃의 형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성공했구나.”
정수리 근처를 노닐던 세 개의 꽃이 점차 하나로 모이며 둥근 고리 형태를 갖춰 갔다.
처음엔 청색을 띠고 있던 고리는 이내 붉은색으로 변하더니 다시 흑색과 백색을 거쳐 황색으로 물들었다.
“오기조원(五氣朝元).”
조원.
즉 정수리에 모여 있던 다섯 개의 기운이 천궁을 통해 뿜어져 하늘에 닿는다는 경지였다.
―다섯 개의 기운이 중원(中元)에서 하나 되니, 군화(君火)를 쫓아서 내원(內元)을 초월한다.
초범입성(超凡入聖).
말 그대로 육신의 근본이 되는 질(質)을 벗어나 한계를 초월하는 경지였다.
그래서 단악선은 범계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기조원의 경지를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더구나 범계위의 내공 경지가 상당하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그도 몰랐다.
“아아!”
단악선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릴 때, 범계위의 신형이 다시 침상 위로 천천히 내려섰다.
이윽고 범계위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빛은 매우 독특했다.
이전처럼 강렬하지도 않았고, 날카롭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전의 눈빛이 훨씬 더 무섭게 느껴질 만큼 평범했다.
아쉬움을 지워 내며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기분이 어떠세요?”
범계위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최고야! 온몸이 날아갈 것 같아.”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고마워, 단 의원. 이 모든 게 단 의원 덕분…….”
범계위가 말끝을 흐리며 흔들리는 눈으로 단악선의 손, 정확히는 단악선의 손에 들린 묵룡아를 응시했다.
“설마 그걸 또 쓸 건 아니지?”
단악선이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오기조원의 경지에 들어선 그가 묵룡아를 두려워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리가요. 이미 완치되셨는걸요.”
그제야 범계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무언가를 떠올리곤 히죽 웃었다.
“그거 잘 보관해 둬.”
“네?”
“곧 다시 쓰일 일이 있을 테니까.”
의미심장한 범계위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편 단악선의 처소 밖을 서성이던 사람들은 실내에서 폭발적으로 뻗어 나오는 기운에 깜짝 놀랐다.
모두가 불안함에 전전긍긍하던 그때.
오직 한설화만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완치가 됐군.”
벽화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왜 저런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거죠? 이건 마치…….”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벽화령이 머뭇거리는 사이 한설화가 설명을 이어 갔다.
“육신의 제약에 갇혀 있던 경지가 깨달음을 통해 원래의 자리를 회복한 것이다. 사실 오래전에 이미 얻었어야 할 경지인 셈이지.”
“역시 우리 가가!”
꺅꺅대는 벽화령의 호들갑에 한설화가 아미를 찡그렸다.
뭐라 한 소리 하려는 찰나.
한설화의 시선이 어느 한 곳을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시야에 한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초악량이었다.
한 줄기 바람처럼 장내에 도착한 초악량이 놀란 눈으로 단악선의 처소를 바라봤다.
갑작스런 초악량의 등장에 사무심과 능소밀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와 함께 초악량을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어서 오십시오.”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인 초악량이 한설화를 향해 불쑥 입을 열었다.
“설마 범가 이 자식이……?”
“이 자식이요?”
난데없이 옆에서 날아든 뾰족한 음성에 초악량이 고개를 돌렸다.
“헛!”
자신에게 말을 건넨 상대를 확인한 초악량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벽 누이가 여긴 왜……?”
“흥! 누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그런 거짓말을 해요?”
벽화령의 살벌한 눈빛에 초악량이 움찔했다.
한 줄기 전음이 날아든 것도 그때였다.
―다 들키셨습니다.
사무심이었다.
초악량이 곤혹스러운 눈빛을 흘리고 있던 그때.
단악선의 처소에서 뿜어져 나오던 폭발적인 기운이 점차 잠잠해졌다.
잠시 후.
덜컹.
방문이 열리고 단악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치료가 끝났어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악선 뒤쪽으로 범계위가 걸어 나왔다.
“범 가가!”
날듯이 달려간 벽화령이 범계위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벽화령을 안심시키듯 등을 토닥인 범계위가 초악량을 향해 슬쩍 웃었다.
“왔수?”
“…….”
초악량의 눈빛 위로 더없이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범계위의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의 신경이 팽팽해졌기 때문이다.
‘설마 저놈이?’
안정적인 눈빛도 눈빛이었지만 기도 자체가 몰라볼 만큼 바뀐 범계위였다.
사납고 거칠던 기파가 지금은 태산을 마주한 것처럼 장중하고 묵직해진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 줄래? 내 여자. 초 형하고 잠깐 할 이야기가 있어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는 벽화령과 달리 초악량은 와락 얼굴을 구겼다.
“뭐? 내 여자?”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초악량을 향해 범계위가 슬쩍 웃어 보였다.
“마침 제때 잘 왔수.”
“뭐라는 거냐?”
초악량의 핀잔에도 범계위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만만한 태도로 초악량을 향해 다가섰다.
“한판 붙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