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2)
신마의선-22화(22/500)
신마의선 (22)
세 사람은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런 그들을 남겨 둔 채 단악선이 일어섰다.
“어디 가느냐?”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점심과 저녁 식사를 미리 준비해 두려고요.”
“벌써? 방금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느냐?”
“오늘은 제가 바쁠 것 같아요.”
설레는 얼굴로 단악선이 말했다.
“어제 구해 온 산삼을 달일 거거든요.”
“하루 종일?”
“네. 정성을 쏟아야 결과가 좋으니까요.”
초악량은 전각을 향해 걸어가는 단악선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봤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이윽고 단악선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초악량이 불쑥 입을 열었다.
“혼원(混元)은 무극(無極)이라.”
범계위와 한설화가 의아한 눈으로 초악량을 바라봤다. 그러나 이어진 초악량의 말에 표정을 달리했다.
“정해진 바가 없어 한계도 없으니…….”
“초 형, 지금 그거?”
초악량이 손을 들어 범계위를 제지했다. 그리곤 시작한 구술을 한참 동안 이어 갔다.
“……오르내림이 뒤얽혀 나아감을 반복하니, 그것이 곧 명료한 힘의 근본이자 요체라.”
한설화와 범계위가 놀란 눈으로 초악량을 응시했다.
방금 초악량이 언급한 내용이 내공심법의 구결이었기 때문이다.
“그거 설마 초 형의……?”
범계위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하기로 한 거 제대로 해야지.”
반면 두 사람은 여전히 놀란 눈으로 초악량을 바라보고 있었다.
명색이 천하오절의 한 사람이었다.
그만큼 자신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누구보다 대단했다.
그런데 이처럼 선뜻 자신의 독문심법을 공개할 줄이야.
그때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저 아이를 위해서다.”
초악량의 시선이 전각 쪽을 향했다.
“저 아이는 지금도 우리를 위해 저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느냐? 나는 그런 저 아이의 믿음을 저버릴 수가 없구나.”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수. 내 무공을 전수할 사람은 단 의원 말고는 생각할 수도 없어.”
그 생각은 한설화 역시 다르지 않았다.
“나도 저 아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서로의 시선을 마주하며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차례대로 자신들의 독문심법 구결을 공개했다.
단악선을 위해 기꺼이 의기투합한 것이다.
무림 역사상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종사들의 무공 연구회가 그렇게 결성되었다.
* * *
한설화의 귀와 턱.
그 사이에 침을 찔러 넣은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때요?”
“여전히 느낌은 없구나.”
“그래요? 으음…….”
잠시 고민하던 단악선이 침을 살짝 돌리며 반 푼(分)가량 더 깊게 침을 찔렀다.
“진기를 한번 운용해 보시겠어요?”
단악선의 말에 따라 한설화가 천천히 진기를 끌어 올렸다.
“아!”
한설화의 입에서 짤막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느낌이 어때요?”
“얼굴이 조금 간지러운 것 같다.”
단악선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요?”
“왜 그리 좋아하는 것이냐?”
“좋아할 수밖에요. 감각이 돌아오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악선이 침을 들어 귀 뒤쪽의 이근혈(耳根穴)에 짧은 침을 꽂았다.
“이번에는 어떤가요?”
“조금 따끔하다.”
“신경이 밀포(密佈)된 곳이거든요. 방금 따갑다고 하실 때 살짝 인상을 찌푸리셨어요.”
“내가?”
“네.”
단악선이 주위를 둘러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보여 드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게 안타깝네요. 다음에 마을에 가면 거울부터 사야겠어요.”
순간 한설화는 자신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아! 방금 웃으셨어요.”
단악선이 한설화를 향해 밝게 웃었다.
“이렇게 웃으시는구나. 너무 예뻐요.”
‘이 아이는 정말이지…….’
한설화는 새삼 더없이 흐뭇해 보이는 미소를 짓는 단악선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타인을 위해 저토록 투명하게 기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까닭이다.
“고맙구나.”
“헤헤. 뭘 이 정도 가지고요.”
단악선이 몸 곳곳에 꽂혀 있던 침을 거두며 말했다.
“확실히 진기의 흐름을 파악한 것이 도움이 되네요.”
“네 의술이 뛰어난 덕이지.”
한설화의 칭찬에 단악선이 부끄러운 듯 배시시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어?”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진 단악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신마곡 입구에서 범계위와 대치하고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범계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범 아저씨! 잠깐만요!”
크게 외친 단악선이 서둘러 모옥 밖으로 뛰쳐나갔다.
범계위는 내심 어이가 없었다.
대놓고 뿌린 자신의 살기를 이렇게 버티는 사람은 그의 기억에도 몇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보면 무공을 익힌 것 같지도 않건만 이렇게 버티다니.
위협을 담은 경고에도 사내는 물러서지 않았다.
“소곡주께 동행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대협이셨나 봅니다.”
소곡주? 동행?
의아해하는 범계위를 보며 사내가 처음 했던 말을 반복했다.
“소곡주께 기별해 주십시오. 풍진성이 뵙기를 청하노라고.”
쩔그렁.
범계위가 등에 매고 있던 대초자곤을 움켜쥐었다.
“단 의원이 널 모른다 하면 살아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때였다.
“범 아저씨! 잠깐만요!”
멀리서 들려온 단악선의 음성에 범계위가 멈칫했다. 저 멀리 달려 나오는 단악선의 모습이 보였다.
“헉헉.”
허겁지겁 달려와 숨을 몰아쉬는 단악선을 향해 풍진성이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소곡주님. 아니, 이제는 곡주님이라고 불러야겠군요. 하하, 습관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풍진성의 너스레에 단악선이 한숨을 흘렸다.
“일단 들어오세요.”
범계위가 의아한 얼굴로 단악선을 바라봤다.
“단 의원이 아는 사람이야?”
단악선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쓱해진 범계위가 한쪽으로 비켜섰다.
단악선을 따라 전각으로 걸으며 풍진성이 주위를 둘러봤다.
“정말 오랜만에 와 보는군요. 그리웠던 풍경입니다.”
“저 때문에 고생하셨죠?”
“조금 놀라기는 했죠.”
풍진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단악선이 척살령이 내려진 흑도방파의 인물과 관련되었다는 혐의는 둘째 치고, 그 악명 자자한 파사단의 지부로 압송되었다는 연락에는 정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곽가라는 자의 심기가 독사 같았구나.’
이건 분명 대처를 잘못한 자신의 잘못이다.
그래도 명색이 무림맹 사람인데, 이 정도로 파렴치하게 나올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밤을 새워 도착한 파사단 임시 지부는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파사단의 인물은 전원 사망.
술에 취해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풍진성은 이를 믿을 수 없었다. 무림맹의 정예라 할 수 있는 무인들이 고작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몰살이라니.
다행스러운 건 단악선이 그 자리에 없었다는 점이다.
서둘러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무림맹의 조사에 상당 기간 발이 묶여 버렸다.
그래서 이제 겨우 마무리를 짓고 신마곡을 찾아온 것이다.
“죄송해요.”
단악선의 말에 풍진성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단악선이 사과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뒤늦게 마지막 만남에서 한 말을 떠올리곤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말로만 때우실 겁니까?”
모처럼의 기회를 놓칠 풍진성이 아니었다.
“제게 내린 파문을 철회해 주십시오.”
“네?”
풍진성이 빙그레 웃었다.
“혈수존자 맞지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단악선의 모습을 보며 풍진성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가 이곳에 머물고 있었군요.”
“어떻게 아셨어요?”
“그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으니까요. 최근 곡주님께서 구하신 약재들도 신경 쓰였습니다. 난데없이 저를 파문하신 이유도 납득할 수가 없었고요. 그래서 고민을 했더니……, 그 이름이 떠오르더군요.”
풍진성이 멀찌감치 서 있는 범계위를 바라봤다.
“그럼 저분은……, 망산초자겠군요.”
“……!”
“놀라실 것 없습니다. 저 무서운 외모에 대초자곤을 보고 어찌 모를 수 있겠습니까.”
풍진성이 단악선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이제 어쩌시렵니까? 곡주님께서 감추고 계셨던 비밀을 제가 알아 버렸는데요? 그래도 절 파문하실 겁니까?”
“아저씨께서 위험해지는 건 원치 않아요. 이번에도 저 때문에…….”
“저 지금 협박하는 겁니다.”
“아저씨…….”
풍진성이 단악선의 손을 잡았다.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오기 전에 미리 손을 좀 썼습니다.”
“손을 쓰다니요?”
“제가 무림맹에 들렀다는 건 예상하셨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단악선에게 풍진성이 말을 이어 갔다.
“제가 그곳에서 곡주님의 신원을 보증했습니다.”
단악선이 놀란 눈으로 풍진성을 바라봤다. 이에 풍진성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곡주님께서 맹과 척을 지신다면 저 역시 그들과 척을 지는 것입니다. 곡주님과 한배를 탄 것이죠.”
“대체 왜…….”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세상 누가 자신의 가족을 포기한단 말입니까.”
풍진성이 단악선의 얼굴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이제 절 내치시면 가서 죽으라는 말이 되는 겁니다, 곡주님.”
대답을 못 하는 단악선에게 풍진성이 예의 너스레를 이어 갔다.
“후…….”
결국 단악선은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파문은 철회할게요. 그리고 다시 한 번 사과드려요. 저 때문에 고생이 심하셨죠?”
“하하. 언제는 안 그랬습니까?”
흡족한 얼굴로 반문한 풍진성이 단악선을 향해 말했다.
“그분들을 소개시켜 주시겠습니까? 이왕 한배에 올랐으니 인사를 나누는 것이 순리겠지요.”
잠시 후.
풍진성은 세 사람과 마주하게 되었다.
“풍가의 진성이라 합니다. 부족하나 진성의가라는 작은 의가를 이끌고 있습니다.”
“진성의가?”
초악량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최근 무서운 기세로 명성을 높이는 진성의가에 관한 소문은 그 역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반면 범계위와 한설화는 시큰둥했다.
그런 불편한 시선에도 풍진성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곡주님과도 막역한 사이이니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끄덕인 초악량이 심유한 눈빛으로 풍진성에게 물었다.
“그러지. 듣자니 무림맹과 얽히셨다고?”
“최근 일이 좀 연결되어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무림맹! 그 망할 자식들하고 한편이란 말이야?”
버럭 고함을 지르는 범계위를 향해 풍진성이 손을 내저었다.
“그저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일 뿐입니다.”
“혹시 무림맹의 간자 아닐까?”
그래도 여전히 의심을 지우지 못하는 범계위의 모습에 풍진성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을 말로 지울 수는 없겠지요. 다만 제 스승님 중 한 분이 마의셨다는 것만 알아 주십시오. 환자 이외의 정사 구분은 저 역시 여기 곡주님과 같습니다.”
마의를 언급하자 범계위의 의심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이때 풍진성이 들고 온 물건들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워낙 오랜만에 방문하는 것이고, 또 객의 입장에서 빈손으로 오기도 뭐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풍진성이 가지고 온 비단을 풀어 그 안의 상자를 열었다.
“우와! 필요했던 것들인데!”
그도 그럴 것이, 상자 안에는 구하기 힘들었던 약재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앞으로 필요한 약재들은 제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고마워요, 아저씨!”
단악선이 풍진성을 와락 껴안았다. 흐뭇한 기분을 만끽하던 풍진성이 흠칫한 것도 그때였다.
바로 이어진 단악선의 말 때문이었다.
“그럼 공청석유 좀 구해 주세요.”
풍진성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웃음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