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20)
신마의선-220화(220/500)
신마의선 (220)
“뭐?”
당혹스런 눈빛을 감추지 못하는 초악량을 향해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십대악인의 수좌가 누군지 이제 확실히 해야지.”
“아직도 그 소리냐?”
초악량이 버럭 했다.
“지난번에 인정했잖아! 네가 십대악인 수좌라고!”
“그거야 초 형을 치료해 준 답례였지, 무공으로 결정한 건 아니잖수.”
초악량의 검미가 꿈틀했다.
“어째 지금이라면 나를 이길 수 있다는 말로 들리는구나?”
범계위의 얼굴에 맺혀 있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말로만 떠들면 입만 아플 뿐이니 무공으로 결정지읍시다. 진정한 십대악인의 최고 고수가 누구인지.”
“하!”
초악량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범계위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다.
그가 강호상에서 적수를 찾아보기 힘든 고수라는 건 분명하나, 이미 완벽한 무공을 되찾은 자신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대체 어디에 근거한 자신감이냐?”
초악량은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돌연 범계위가 기파를 개방했기 때문이었다.
“……!”
초악량의 표정이 굳어졌다.
치료를 통해 어느 정도 경지가 높아졌다는 건 짐작했지만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이야.
더 이상 범계위를 경시할 수 없었다.
“피하는 거요?”
범계위의 도발적인 눈빛에 초악량의 눈 위로 기광이 일렁였다.
“그럴 리가.”
실로 오랜만에 가슴 속에서 꿈틀대는 호승심에 초악량이 팔을 걷어붙였다.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마.”
투지를 드러내는 초악량의 모습에 한설화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이 멍청이들.”
두 사람을 향해 핀잔을 던진 한설화가 단악선 곁으로 향하며 주위에 경고했다.
“휩쓸리지 않도록 단단히 마음먹어라.”
한설화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단악선 옆을 단단히 지키고 섰다.
“저 둘의 일전을 봐 두어 나쁘지는 않을 게다. 적지 않은 공부가 될 테니까.”
한설화가 건넨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함께했지만 초악량과 범계위가 이처럼 진지하게 손속을 겨루는 것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내기 때문에 아웅다웅하던 게 전부일 뿐.
과연 고수들의 대결은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일 장의 거리를 두고 마주 선 두 사람 사이에서 몰아치는 기류는 한설화를 제외한 모두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상당한 거리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에서 튀어 오른 기파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기 때문이다.
마치 두 사람을 중심으로 세상의 경계가 나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모습이 중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고 느낀 순간 섬뜩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꽈앙!
수십 개의 폭뢰가 일거에 폭발한 것 같은 충격파가 장내를 휩쓴 것도 동시였다.
“헉!”
“으아!”
“꺅!”
각기 다른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저마다 나름 무공을 자신하는 고수임에도 사무심과 능소밀, 벽화령은 폭풍처럼 몰아치는 사나운 경력에 쓸려 나가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만 했다.
오직 단악선만이 한설화가 펼친 호신강기 안에서 두 사람의 대결을 주시할 뿐이었다.
“와! 어떻게 저런…….”
단악선의 외침에 한설화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방금 장면이 보였단 말이냐?”
“너무 빨라 흐릿했지만 어느 정도는요.”
고하를 논하기 힘든 막상막하의 대결에 단악선의 입에서는 연신 탄성과 경악성이 흘러나왔다.
한설화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자리 잡았다.
두 사람의 대결을 눈으로 좇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단악선의 성취가 상당하다는 방증이 됐다.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단악선의 눈빛에는 기이한 열기가 가득했다.
그만큼 차원이 다른 두 고수의 대결은 한 차원 높은 경지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나아가 단악선은 그 무엇으로도 값을 매길 수 없는 기연이 지금껏 자신과 함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완전 넋이 나가 두 사람의 비무를 제대로 관전할 여유가 없었다.
장내의 분위기가 달라진 건 그 직후였다.
단순한 초식 대결을 넘어, 본격적으로 기공과 기공이 부딪치기 시작한 것이다.
전력을 쏟아 넣은 격돌.
꾸웅!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압력이 일대를 집어삼켰다.
한순간 대기가 일그러질 정도로 지독한 충격!
그 여파에 일대가 일순 공백 상태가 되었다.
그러다 뒤늦게 진공 상태가 된 대기가 급격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이로 인해 형성된 무시무시한 후폭풍이 일대의 풍광을 뒤바꾸어 버렸다.
우지끈!
풀썩!
가까이 있던 전각들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기 시작한 것이다.
단악선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든 것도 그때였다.
“내 진료실이……”
방금 전 범계위를 치료했던 진료실이 그대로 무너져 버린 것이다.
단악선의 표정을 본 한설화의 눈 위로 차디찬 한광이 튀어 올랐다.
“적당히 해! 이 얼간이들아!”
한설화의 신형이 한 줄기 빛살이 되어 그대로 초악량과 범계위 사이로 쇄도했다.
쩌엉!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충격음과 함께 세 사람이 각각 오 장가량을 물러섰다.
어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같은 거리만큼 물러난 세 사람의 눈에 놀라움의 감정이 자리 잡았다.
일부러 하라 해도 어려울 만큼 정확히 동수를 이룬 대치!
그 모습에 중인들은 겨우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왜 갑자기 끼어드는 거야?”
“저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뒤늦게 무너진 단악선의 진료실을 본 범계위가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쩝, 이제 시작인데.”
그런 범계위를 향해 초악량이 쓴웃음을 건넸다.
“우리 대결은 다음으로 미루자.”
“왜? 시작한 김에 끝을 봐야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장소를 옮겨 계속합시다.”
“아니. 여기까지다.”
“설마 내빼는 거요?”
범계위의 도발에 초악량의 눈썹을 꿈틀했다.
“사람을 뭘로 보고!”
버럭 한 초악량이 낮게 으르렁댔다.
“너 지금 대초자곤도 없잖아.”
“그게 뭐 어떻다는 거유?”
“이 상태로는 내게 져도 네가 승복하지 않을 게 뻔하지 않으냐! 대초자곤이 없어서 졌다느니 하는 소리는 듣기 싫다는 뜻이다!”
듣고 보니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던지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그런 이유로 초 형이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내가 이겨도 석연치가 않지. 내 당장 소림사에 가서 찾아오겠수.”
당장이라도 소림사에 쳐들어갈 것 같은 범계위의 기세에 단악선이 나서 만류했다.
“그건 제가 부탁을 해 볼 테니, 일단 진정하세요. 범 아저씨는 더 이상 무리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제 막 완치된 참이잖아요. 초 아저씨도 마찬가지예요. 먼 길을 오셨을 텐데 여독부터 푸셔야죠.”
그래도 여전히 미련이 남았던지 아쉬운 눈빛을 흘리던 범계위가 마지못해 수긍했다.
결국 서로가 완전히 납득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 채 두 사람의 대결은 단악선의 중재로 무산되었다.
“그럼 일단 이것부터 수습해요. 다른 건 괜찮은데 진료 기록은 회수해야 하거든요.”
단악선이 직접 무너진 전각의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단 의원님. 제가 하겠습니다.”
“그 일은 저희들에게 맡기시지요.”
능소밀과 사무심이 얼른 단악선을 만류했다.
“힘을 모으면 빨리할 수 있잖아요.”
세 명이 잔해를 치우기 시작하자 초악량이 머쓱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토하며 그 일에 동참했다.
범계위 역시 마찬가지.
그때부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록 전각은 박살 났지만 다행히 진료 기록은 무사했다.
“후우. 다행이네요.”
단악선이 되찾은 진료 기록과 의서들을 보며 안심하자 다른 이들도 한숨을 돌렸다.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범계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그건 아니지.”
범계위가 평소답지 않게 정색을 하며 벽화령에게 말했기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내가 속인 건 이미 용서받았다지만, 그렇다고 초 형까지 용서할 필요는 없어. 아무리 공범이래도 나는 나고 초 형은 초 형이니까.”
다른 이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단 한 사람만은 아니었다.
“야, 이 치사한 놈아! 그게 다 누구 때문인데!”
이글거리는 초악량의 눈빛.
그 안에는 말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욕이 한가득이었다.
하지만 범계위는 짧게 코웃음을 쳤다.
“흥! 혼자 좋은 세월 보내고 온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날 원망한단 말이오?”
“뭐?”
“말이야 바른 말이지, 거짓말은 초 형도 했잖수. 그런데 왜 나 혼자 오롯이 그 뒷감당을 해야 하느냔 말이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슈?”
“뒷감당은 무슨! 딱 봐도 서로 좋아 죽고 못 사는구먼! 결국 잘 해결됐잖아!”
“그건 내가 노력해서 잘된 거고.”
“뭐, 인마?”
범계위가 벽화령을 향해 빙긋 웃었다.
“자, 내 여자. 가서 그간 쌓였던 원한을 마음껏 풀어.”
“네? 하지만…….”
망설이던 벽화령이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눈빛이 싸늘해졌다.
“보라구. 상황이 이리되었는데도 초 형은 사과 한마디 없잖아.”
“그러고 보니…….”
벽화령이 자신을 쏘아보자 초악량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벽 누이. 한 가지는 확실히 하지.”
“뭘 말인가요?”
“난 계속 설득했다. 범가 저놈의 천생배필은 너라고. 너를 선택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입이 닳도록 주장했다!”
“사실인가요, 가가?”
어서 대답하라는 초악량의 눈빛에 범계위가 히죽 웃더니 딴청을 피웠다.
“글쎄? 기억이 안 나는데?”
“저 자식이?”
다행히 벽화령은 눈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발끈하는 초악량과 범계위의 행동을 보자 대충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잠시 고민을 한 벽화령이 어렵지 않게 결론을 내렸다.
“그 일은 넘어가는 걸로 할게요. 어쨌든 범 가가를 얻었으니까요.”
“내 여자. 꼭 그래야겠어?”
“대신 마지막이에요. 또 제게 거짓말을 한다면, 그때는 저와 사생결단을 내야 할 거예요.”
벽화령이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두 분 모두요.”
그 말에 범계위와 초악량이 동시에 움찔했다.
웃음 뒤에 숨은 살기를 분명히 느꼈기 때문이다.
“흠흠.”
“커흠.”
초악량과 범계위가 어색한 웃음으로 당혹감을 숨겼다.
어색함이 퍼지는 분위기를 바꾼 것은 단악선이었다.
“곧 식사 시간이네요. 일단 밥부터 먹어요. 오랜만에 다 같이 먹겠네요.”
“어? 그래. 그래야지.”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구나.”
무너진 전각을 뒤로하고 그들이 그 자리를 떠났다.
* * *
식사가 차려진 후원으로 이동하던 초악량은 문득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범계위와 손을 섞은 여파 탓일까? 아직도 손끝에 저릿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만약 계속 싸웠다면?’
당연히 승자는 자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범계위의 손에 대초자곤이 쥐어져 있었다면?
승패의 결과를 그조차 장담하기 어려웠다.
‘만약 놈이 이긴다면…….’
백에 하나 있을 만큼 의미 없는 가정이었지만 그럼에도 초악량은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
녀석의 성격상 단순히 이겼다는 사실만 가지고 흡족해할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방심하고 있었어.’
천하오절 자리를 차지한 이후 처음으로 느낀 위기감에 초악량은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부터 다시 수련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건 비단 초악량뿐만이 아니었다.
‘이 바보들을 너무 얕보고 있었어.’
실로 오랜만에 위기감을 느끼는 건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