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21)
신마의선-221화(221/500)
신마의선 (221)
하루 일과를 마친 늦은 저녁.
식탁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은 신마곡 식구들을 향해 단악선이 환하게 웃었다.
“모처럼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니 정말 좋네요.”
한설화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낮에 저 두 바보가 일으킨 사달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그래도 사람이 다친 건 아니잖아요.”
단악선은 마냥 해맑기만 했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신마의가를 떠나 있던 초악량이 돌아온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다.
“게다가 범 아저씨도 오늘부로 치료가 끝나셨고요.”
거기에 사무심과 능소밀까지.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함께 식사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단악선은 충분히 행복했다.
하지만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초악량이 꺼낸 이야기 때문이었다.
“노단양의 흔적을 추적하다 보니 대막(大幕)에까지 이르렀다.”
초악량은 자신이 알아낸 바를 자세히 설명했다.
“칠절마군이 마공을 익혔다고요?”
단악선의 반문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다. 혈라강기의 흔적을 분명히 확인했다.”
“하지만 남궁세가의 가주님께서는 그에게 준 건 반쪽짜리 비급뿐이라 하지 않으셨나요?”
“누군가 온전한 비급을 건네주었겠지.”
기갈에 허덕인다 해서 바닷물을 마실 수는 없는 법.
그것도 노단양 정도 되는 고수가 반쪽짜리 무공을 익힐 리 만무했다.
누구보다 그 위험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단악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사람을 도와준 사람이 현 무림맹주고요.”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단악선이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무림맹과는 또다시 부딪칠 수밖에 없겠네요.”
초악량이 짧게 코웃음을 쳤다.
“놈들과는 처음부터 그리될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정사는 양립하기 어려운 법이니까.”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았다.
“맞아. 어차피 걔들과는 시작부터가 글러 먹었어. 구파일방에서 세가연합으로 바뀌었다 뿐이지 무림맹은 무림맹이니까. 게다가 우리를 적대한 것은 그 사갈(蛇蝎) 같은 계집이 먼저였잖아.”
적대감을 드러내는 두 사람과 달리 능소밀은 무작정 감정적으로만 대응할 수 없었다.
신마상단이 얽혀 있는 이상 현실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 표국의 상당수가 그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잠잠해졌다 하나 언제 다시 녹림이 이빨을 드러낼지 모르는 일.
그 정도 수모를 당하고도 그냥 넘어갈 악호군이 아니었다.
비록 지금은 서역과의 교역에 집중하고 있다 하나, 결국 돈을 만들기 위해서는 중원 각지로 교역품을 실어 날라야 했다.
그런 만큼 수많은 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무림맹과 대놓고 척을 지는 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쯤에서 노선을 확실히 정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초악량의 말에 사무심과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위를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건 녹림이나 무림맹이나 마찬가지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무위 자체가 일종의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는 셈.
말없이 생각을 이어 가던 단악선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그걸 결정하기 전에, 말씀드릴 게 있어요. 이걸 확인해야 어느 쪽에 설지도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어쩌면 이걸 통해서 고민 없이 선택할지도 모르고요.”
모두의 시선이 모아지자 단악선이 침중한 눈빛을 흘렸다.
“제 기우라면 좋겠지만…….”
잠시 말끝을 흐리던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머잖아 중원에 혈풍이 닥칠 것 같아요.”
“혈풍?”
범계위의 반문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녹림과 해남검파에서 마공을 익힌 사람이 나왔어요. 그런데 마공을 익힌 중원인이 과연 그들뿐일까요?”
중인들의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단악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나 예상일뿐이지만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봐요. 번개가 친 다음에는 반드시 천둥이 치는 것처럼, 이처럼 공교로운 일이 연달아 발생한 건 어떤 징후를 암시하는 거라고 봐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아마도 우리가 파악한 것보다 훨씬 많은 마공이 중원에 퍼져 있을 거예요.”
많은 경우의 수를 놓고 봐도 딱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어떤 놈들이 그런 짓을 벌이는 걸까요?”
“마교겠죠.”
단악선의 대답에 질문을 던진 사무심이 멈칫했다.
“당장은 그들 말고 떠오르는 곳이 없어요. 모든 정황들도 저들을 가리키고 있고요.”
그런데 초악량과 범계위는 생각이 달랐다.
초악량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놈들이 자신들의 무공을 공개한다고?”
그 어느 곳보다 무공에 자부심을 지닌 마교였다.
그만큼 철저하게 무공의 유출을 막고 있었다.
그런데 무공을 회수하기는커녕 정작 당사자인 자신들이 앞서 퍼트린다니?
“주화입마에 빠진 자들을 기다리는 건 절망뿐이에요.”
끔찍한 형극(荊棘)의 길.
그 끝이 확실한 죽음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아가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지독한 천형(天刑)이 주어진 셈이다.
“무공을 익힌 사람들이 그걸 모를까요? 분명 수련 과정에서 어떤 징조를 느꼈을 거예요. 그리고 이를 느꼈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접어들었을 테고요.”
그들은 그야말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와 다를 바 없었다.
그 사실에 착안해 단악선은 의원다운 방식으로 접근해 하나의 결론을 도출했다.
“부모님을 찾아온 환자들. 그들 중 상당수는 시의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쳐 너무 늦은 상태에서 찾아온 이들이 대다수였어요.”
정사를 불문하고 그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뭐든 한다는 점이에요. 그게 무엇이라 해도요. 마공을 익혀 주화입마에 빠진 환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죠.”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주화입마에 빠진 놈들 중에 제 의지로 단 의원을 찾아온 놈은 없었잖아? 진영산인가 하는 녹림의 조무래기도 애초에 이곳에 숨어든 것에 불과하고.”
“제가 주화입마를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테니까요. 게다가 자신이 마공을 익혔다는 사실을 끝까지 숨기고 싶었을 거예요. 마교의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딜 가나 지탄받을 테니까요.”
“으음…….”
초악량이 침음성을 흘렸다.
비로소 단악선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진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를 제외하면 처음부터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뿐이에요.”
“마교를 찾아가 제대로 된 심법을 얻는 것이구나.”
초악량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역시 저와 연이 닿지 않았다면 같은 선택을 했을 거예요. 그래서 전 마공을 익힌 사람들이 더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고요.”
나직한 탄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렇다면……?”
입에 담기도 불편하다는 듯 능소밀이 말끝을 흐렸다.
거기에 단악선이 쐐기를 박았다.
“중원에서 마공을 수련한 고수들이 자연스럽게 마교의 하수인이 되는 거죠. 오직 살기 위한 일념으로요.”
사무심과 능소밀은 일순 충격을 받은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초악량을 포함한 한설화와 범계위 역시 마찬가지.
단악선의 말대로라면 실로 소름 돋는 간계가 아닐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지만 제 추론은 이래요.”
그런 그들을 향해 단악선이 정리한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정마 대전에서 마교는 주요 비급을 무림맹에게 빼앗겼어요. 더 이상 자신들만의 무공이 아니게 된 것이죠. 그래서 차라리 이걸 퍼트려 버린 거예요. 독문 내공이 필요한 무공들을 골라서요. 그리고 그걸 익히게 된 사람은 자연스럽게 마교를 찾아오게 만들도록 획책한 거죠.”
초악량이 침음했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 셈인가.”
과감한 이환위리(以患爲利)의 계책.
누구의 생각인지는 몰랐지만 실로 대단한 자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중인들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장내에 내려앉은 침묵을 깨며 단악선이 능소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각 문파에서 갑자기 실종된 사람들을 알아봐 주세요.”
더 이상 이대로 손 놓고 관망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분명 어딘가에서 유사한 경우가 발생하고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명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도요.”
마공을 익힌 두 환자가 언급했던 그 이름이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능소밀이 밖으로 나섰다.
능소밀이 단악선에게 조사 결과를 보고한 것은 보름이 지나고 나서였다.
“흑점에서 파악한 정파의 인물만 서른 명이 넘습니다. 사파인들 역시 행방이 묘연해진 자가 적지 않습니다. 이곳 무위에 집결해 있는 자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뿔뿔이 흩어져 정확한 수를 파악하긴 힘들지만 대략 정파인들보다 몇 배는 될 듯합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엄격한 사문의 규율과 눈을 피해 마공을 익혀야 하는 정파의 무인들보다 상대적으로 사파의 무인들이 처한 상황이 그만큼 열악하고 절박했기 때문이다.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 의원의 예상대로구나.”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단악선이 능소밀과 시선을 마주했다.
“혹시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나요?”
능소밀이 각지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단악선에게 내밀었다.
“하나같이 강한 무공을 절실히 원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재능은 뛰어나나 무공을 사사할 시기를 놓쳤다거나, 지니고 있는 지위나 배경에 비해 무공 실력이 받쳐 주지 못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강한 무공을 갈망했던 만큼 마공의 유혹을 떨쳐 내기 힘들었을 터.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서 안의 내용을 확인하던 단악선이 불쑥 입을 열었다.
“혹시 이들 중 무림맹과 관련된 인물은 없었나요?”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흐음…….”
어딘가 석연치 않아 하는 단악선의 표정에 초악량이 물었다.
“무림맹이 신경 쓰이는 것이냐?”
단악선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그들이 마공과 관련이 있는 건 확실하니까요.”
현재 주어진 확실한 단서는 노단양과 무림맹의 관계뿐이었다.
만약 노단양에게 혈라강기를 제공한 사람이 제갈연이라면 사안은 더욱 심각해지는 것이다.
만약 저들이 마교와 결탁했다면 중원 무림은 내부에 적을 둔 것과 마찬가지.
그야말로 사자의 몸속에 사는 벌레인 셈이다.
“아무래도 무림맹을 먼저 조사해 봐야겠어요.”
단악선의 말에 능소밀이 우려를 드러냈다.
“저들이 알게 되면 자칫 전면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싸움은 최대한 피하겠지만, 필요하다면 마다치 않을 거예요.”
말없이 단악선 곁을 지키고 있던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디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위험한 법이지.”
범계위가 섬뜩한 웃음을 흘리며 한설화의 말을 받았다.
“드디에 놈들에게 빚을 갚아 줄 수 있겠군.”
단악선이 의지를 드러냈다.
“서둘러야 해요. 분명 마교 역시 우리가 무언가를 눈치챘다는 걸 알게 될 공산이 커요. 이 정도로 치밀하게 암계를 꾸민 자들이에요. 자신들의 마각이 드러났다는 걸 깨달으면 본래의 계획을 앞당겨 실행할 수도 있어요.”
문제는 그게 무엇인지 당장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 * *
먼동이 터 오르기 시작한 묘시 말엽.
서탁 위에 지필묵을 내려놓은 단악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이 복잡해 꼬박 밤을 새운 것이다.
종이 위에 휘갈긴 다양한 가능성과 가설들을 물끄러미 응시하기를 잠시.
“어?”
단악선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서탁 위에 놓여 있던 붓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진?”
그러고 보니 희미하긴 했지만 전각이 흔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단악선이 서둘러 전각 밖으로 나섰다.
“어?”
저 멀리, 우두커니 서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한설화였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단악선이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한설화가 묘하게 아미를 찡그렸다.
“잠을……. 잘 수 없었다.”
단악선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사태에 새외오세 중 한 곳인 북해빙궁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부정할 수 없었다.
한때나마 북해빙궁에 몸담고 있었던 그녀로서는 더없이 착잡한 일이 아닐 수 없을 터.
하지만 그런 단악선의 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작작 좀 하지.”
그녀가 보는 곳은 범계위의 처소였다.
의가에 퍼진 그 울림이 시작된 진원지.
하지만 그 이유를 단악선에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초악량의 처소 쪽에서 쩌렁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온 것도 그때였다.
“잠 좀 자자! 이것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