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22)
신마의선-222화(222/500)
신마의선 (222)
이른 아침.
날이 밝기 무섭게 전각을 나선 단악선은 하품과 함께 눈을 비볐다.
그리곤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어 끈질기게 달라붙는 수마를 떨쳐 낸 뒤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무공을 수련을 이어 가던 중.
“단 의원!”
자신을 부르는 음성에 단악선이 고개를 돌렸다.
함지박 같은 미소를 입에 걸고 달려오는 범계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날 듯이 달려온 범계위가 두 팔로 단악선을 덥석 끌어안았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자신을 번쩍 안아 들고는 연신 고맙다 외치는 범계위의 모습에 단악선이 어리둥절했다.
“오늘따라 유독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단악선의 말에 범계위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어디 좋다 뿐일까! 다시 태어난 기분이야! 역시 우리 단 의원이 최고야!”
“아저씨가 기분이 좋다니 다행이에요.”
그런데 딱히 고마워하는 이유로 짚이는 바가 없었다.
완치가 된 게 벌써 며칠이나 지났기에 이제 와 새삼 고마움을 표하는 것도 이상했기 때문이다.
이때 어느새 범계위 곁에 나란히 선 벽화령이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단악선에게 고개를 숙였다.
“단 의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날아갈 듯 대례까지 올리는 벽화령의 모습에 단악선이 당황했다.
“인사가 너무 과하신데요?”
“과하다니요. 이조차도 부족한걸요.”
“하지만…….”
“……?”
“지금 그 표정은 마치 죽어 가던 환자를 살렸을 때 보이는 표정인걸요.”
벽화령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다르지 않습니다.”
“네? 전 벽 아주머니를 살린 적이 없는데요?”
“제가 아니라 가가를 살리셨죠. 몸뿐만 아니라 자존심도 살리셨죠. 그리고…….”
벽화령의 얼굴 위로 홍조가 내려앉았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셨을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네? 제가요?”
단악선이 어리둥절해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그만. 거기까지!”
어디선가 나타난 한설화가 벽화령을 제지했다.
그리곤 곧장 범계위를 향해 핀잔을 날렸다.
“그만 좀 내려놓지? 단 의원이 숨을 못 쉬잖아! 단 의원을 죽일 셈이야?”
“어? 고마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그만…….”
범계위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단악선을 내려놓았다.
벽화령이 배시시 웃으며 한설화를 향해 눈인사를 건넸다.
“언니, 잘 주무셨나요?”
한설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편치는 않았다. 누구들 덕분에.”
“걱정 마세요. 오늘부터는 편히 주무실 수 있을 테니까요.”
“……?”
“전 오늘 본문으로 돌아갈 생각이거든요.”
단악선이 깜짝 놀라 외쳤다.
“얼마 전에 습격도 있었는데, 아직은 위험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범 아저씨께서 모셔다드리면…….”
벽화령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지난번에는 환자가 있어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지만 평소처럼 경공을 펼쳐 이동한다면 문제없어요. 저들이 눈치챘을 때는 이미 해남도에 도착해 있을 테니까요.”
“그래도…….”
“가서 할 일이 많아요. 혼인 준비도 서둘러야 하고요. 저희 두 사람의 혼례에는 참석해 주시겠죠?”
“물론이죠. 저도 해남도를 방문해 보고 싶었어요.”
“그럼 전 준비를 하고 떠나기 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벽화령을 향해 범계위가 걱정 가득한 눈빛을 건넸다.
“정말 혼자 괜찮겠어?”
자신을 염려하는 범계위의 말에 벽화령이 기분 좋게 웃었다.
“가가는 몸만 오세요. 제가 다 준비해 놓을 테니까. 그래도 혼례식만큼은 본문에서 해야죠. 그 후에는 가가가 어디를 가든 제가 곁에 있을 거예요.”
“어…….”
시무룩해진 범계위의 모습에 벽화령이 문득 미처 언급하지 못한 사실을 떠올렸다.
“그런데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어? 왜?”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요.”
“무슨 일인데?”
“그냥 절 믿고 기다려 주세요. 제가 오랫동안 가가를 기다렸으니, 이번에는 가가 차례예요. 대신 가가만큼 오래 기다리게 하진 않을게요.”
범계위는 불안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연락 기다릴게.”
“고마워요.”
달콤한 눈빛을 주고받던 벽화령이 범계위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이제 와서 혼례는 무슨. 신방은 진즉에 차렸더구먼.”
툴툴대며 나타난 초악량을 향해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흐……. 부럽소?”
툭 던진 범계위의 말에 초악량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나 범계위가 불쑥 내민 손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냐? 그건.”
“독계산이유. 나는 딱히 쓸 데가 없어서.”
완치되자마자 범계위는 그토록 갈망하던 독계산을 단악선에게 얻을 수 있었다.
“내가 그걸 쓸 데가 어디 있단 말이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독계산을 소매 안에 갈무리하는 초악량의 모습에 한설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 * *
흔들리는 유등을 등진 채 선 사내.
손에 들린 책자를 물끄러미 응시하는 그의 눈 위로 짙은 갈등이 어른거렸다.
‘천강마벽(天罡魔壁)!’
비록 표지에는 아무런 글자도 적혀 있지 않았지만 분명했다.
일시적으로 강기의 벽을 생성해 상대를 찍어 누르는 공방일체의 절학.
자신도 전 무림을 통틀어 상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고수인 만큼 책자 안에 기술되어 있는 구결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그 안의 무리를 유추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마교의 절학이라는 점이었다.
분명 자신이 익히기만 한다면 기존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한 단계 높은 경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특히나 범계위와의 일전에서 뼈아픈 패배를 절감한 직후라 눈앞의 비급이 지닌 유혹은 더욱 컸다.
―저는 무공을 익히지 않았습니다.
최근 채주 중 한 놈이 눈치를 보며 건넨 비급.
‘겁대가리 없이 산채에 쳐들어온 천둥벌거숭이가 지니고 있던 것이라 했지?’
그런 놈이 지니기에는 비급이 지닌 가치가 과하다 못해 넘쳤다.
처음에는 횡재했다 싶었던 웅단채의 채주였지만, 진영산의 일로 인해 최근 녹림 내부의 분위기가 뒤숭숭해지자 알아서 이실직고한 것이다.
그래서 악호군도 더 이상 그를 추궁하지 않았다.
펄럭.
무심코 책자를 넘긴 악호군의 눈에 구결이 빨려들 듯 새겨졌다.
‘아차!’
퍼뜩 정신을 차린 악호군이 황급히 책장을 덮었다.
비급을 읽기 무섭게 가슴이 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안에서 꿈틀대는 감정.
무인이라면 누구도 거부하기 힘든, 힘을 향한 갈망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야.”
스스로 다짐하듯 소리 내어 읊조린 악호군이 비급을 서탁에 내려놓았다.
그의 눈 위로 감출 수 없는 우려가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이런 마물(魔物)이 돌아다니다니…….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머지않아 무슨 일이 터질 게 분명해.”
정신력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나다 자부하는 그조차 일순 평정심을 잃을 만큼 비급의 유혹은 위력적이었다.
자신에 비해 한참 실력이 밑도는 채주들이라면?
어지간한 의지만으로 결코 거부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악호군이 비급을 집어 유등의 불꽃을 향해 기울였다.
그렇게 막 책자에 불이 옮겨붙으려는 찰나.
“총표파자님!”
누군가가 황급히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악호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지?”
곱지 않은 악호군의 시선에 총사(總師)직을 맡고 있는 석단평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외부 정찰조 가운데 두 명이 복귀하지 않았습니다.”
악호군의 눈에 기광이 번뜩였다.
다른 조직 중에서도 가장 기강이 삼엄한 조직이 석단평 휘하의 정보 조직임을 잘 아는 까닭이다.
“얼마나 지났지?”
“꼬박 하루가 지났습니다.”
“수색은?”
“행적 자체가 묘연합니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던 악호군이 나직이 침음했다.
“무림맹 놈들 짓인가.”
작금의 상황에서 녹림을 적대하는 세력은 그들 말고는 달리 짚이는 곳이 없었다.
결코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었다.
“총채의 위치를 놈이 알아냈다 생각해야겠군.”
석단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두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으음…….”
무거운 얼굴로 악호군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그때.
집무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섰다.
“응? 네가 여긴 왜 왔어?”
악호군의 눈에 의아함이 자리 잡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집무실에 들어선 자는 비응채를 지키고 있어야 할 채주, 우길산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길산은 악호군의 질문에도 푹 고개를 숙인 채 우물쭈물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뒤늦게 우길산의 얼굴에 가득한 시퍼런 멍 자국을 발견한 악호군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얼굴 들어.”
누가 봐도 명백한 구타의 흔적.
“하!”
악호군의 입에서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었다.
경극 변장처럼 알록달록한 얼굴은 당장 무대 위에 세워도 될 정도였다.
“어떤 놈에게 당한 것이냐!”
악호군의 물음에 우길산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혀, 혈수존자에게…….”
“뭐?”
악호군은 어이가 없다 못해 기가 막혔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길산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때였다.
“저……. 총표파자님…….”
집무실 안으로 또다시 들어서는 누군가가 있었다.
“곽 채주, 너도?”
면목 없다는 듯 잔뜩 움츠러든 채 들어서는 거웅채의 채주 곽호.
그런데 팔에는 두꺼운 부목을 대고 있었고,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들어서는 걸음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국물에 빠트린 만두처럼 퉁퉁 부은 얼굴 역시 마찬가지.
“너도 혈수존자에게 당한 것이냐?”
“예? 아뇨. 전 망산초자에게…….”
악호군이 기가 막혀 석단평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파랗게 질린 얼굴로 집무실에 들어서는 또 다른 채주가 있었다.
풍 맞은 것처럼 오들오들 떨어 대는 그 모습이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초, 초, 총표…….”
지독한 오한에 몸을 떨며 얼어붙은 입술을 겨우 움직이는 그 모습에 악호군이 한숨을 터트렸다.
“됐다. 말 안 해도 누구에게 당했는지 알겠다.”
빙옥선자.
그 괴물 말고 달리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소위 신마삼존이라 불리는 세 사람이 각각 채주 한 명씩을 털었다?
그런데도 죽이지 않고 살려 보냈다는 것은 그 의미가 명확했다.
그리고 이를 눈치챈 사람은 비단 악호군만이 아니었다.
녹림의 군사 역할을 맡은 석단평이 채주들을 향해 물었다.
“그들로부터 전언이 있었겠지?”
세 채주가 동시에 고개를 주억였다.
“넵. 전하라는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악호군의 눈썹이 꿈틀했다.
얼마나 호되게 당했는지 채주인 자신을 앞에 두고도 압존법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 수하들의 모습에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지그시 자신들을 쏘아보는 악호군의 모습에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채주들이 허둥거렸다.
그런 그들을 향해 악호군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됐고. 놈들이 뭐라 하더냐?”
세 명의 채주가 동시에 대답했다.
“보고 싶다.”
“……?”
“……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비로소 놈들의 의도를 파악한 악호군이 으스러져라 이를 악물었다.
‘이것들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노기를 악호군이 애써 억눌렀다.
놈들의 의도는 명확했다.
총채의 위치를 모르니 자신더러 알아서 찾아오라는 의미였다.
만약 이대로 나서지 않는다면 반병신 꼴로 기어 들어오는 채주들의 숫자가 늘어나리라는 일은 자명했다.
‘제기랄!’
악호군이 내뿜는 가공할 살기에 석단평은 한숨을 내쉬었고, 채주들은 죄지은 듯 고개를 처박았다.
* * *
같은 시각.
무림맹주의 집무실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밤잠을 잊은 채 각지에서 올라온 서류들을 확인하던 제갈연의 눈 위로 이채가 떠올랐다.
집무실을 향해 다가서는 인기척 때문이었다.
제갈연이 서류들을 책상 한쪽으로 밀었다.
그사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맹주님께 보고 드릴 사안이 있어 뵙기를 청하오.”
집무실 밖을 지키고 있는 수신 호위들을 향해 제갈연이 명령했다.
“들라 하라.”
집무실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섰다.
피처럼 붉은 옷과 소매에 수놓아진 흰색 국화.
당령이었다.
희미한 웃음을 머금은 얼굴에 보무도 당당한 것으로 보아 나름의 성과를 얻은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녹림 본단의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제갈연의 눈빛이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