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23)
신마의선-223화(223/500)
신마의선 (223)
“벌써요? 제 예상보다 빠르군요.”
“맹주님의 시간은 천금으로도 가치를 매길 수 없다는 것을 이 당 모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의당 지닌바 모든 것을 쏟아 최선을 다해야 마땅하지요.”
“당가타주님의 말씀은 언제 들어도 저를 기분 좋게 하는군요.”
제갈연이 건넨 화사한 미소에 당령의 입가가 씰룩였다.
그런 그를 못 본 척하며 제갈연이 물었다.
“어떻게 알아내셨나요?”
“놈들의 정찰조 두 명을 잡았습니다.”
“그래요? 의외네요. 녹림은 비적치곤 꽤나 입이 무거운 자들인 줄 아는데요.”
실제로 몇 번인가 그들을 붙잡은 적이 있었지만 그 어떤 고문과 회유에도 악호군에 대한 충심을 꺾지 않았던 놈들이었다.
당령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 어떤 독종도 누대에 걸쳐 쌓아 올린 본 가의 비책 앞에서는 입을 열 수밖에 없습니다.”
자부심이 묻어나는 눈빛과 말투였지만 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태도였다.
‘그래 봐야 독이겠지.’
그런 그를 제갈연은 내심 비웃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한데 당령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은근슬쩍 자신의 속내를 내비쳤다.
“물론 맹주님의 대답은 제 뜨거운 마음으로 얻어 낼 생각이지만요.”
언젠가 그가 제갈세가에 사천당가의 이름으로 매파를 보내왔다는 건 제갈연 역시 알고 있었다.
당가타주는 당가의 가주 다음가는 직책.
실질적으로 당가의 실질적인 대소사를 도맡아 처리하는 중책인 만큼 자신의 배필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 뱃속에 도사리고 있는 구렁이들이 그녀의 눈에는 뚜렷하게 보였다.
당령 역시 자신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동류였기 때문이다.
제갈연이 미소로 화답했다.
“저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좋아하죠.”
나름 긍정적인 대답이라 생각했는지 당령의 얼굴 위로 기이한 열기가 어른거렸다.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 했습니다. 본래 가장 소중한 인연은 지척지지(咫尺之地)에 있다는 성현들의 말씀도 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 앞에서 문자를 쓰는 꼬락서니가 내심 우스웠지만 제갈연은 이를 내색지 않았다.
“수고하셨어요. 당가타주님의 활약 덕분에 이제 가주들의 의지를 하나로 모을 명분이 만들어졌군요.”
“바로 움직이는 것입니까?”
“네. 그래야죠. 새로운 무림맹의 첫 치적이니까요. 사실 지금도 늦은 감이 있죠.”
화사한 미소와 다르게 제갈연의 눈 위로는 자욱한 살기가 일렁였다.
“이제 무림에서 녹림이라는 거악(巨惡)의 뿌리를 뽑을 때예요. 무림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을 무림맹의 이름 아래 실행하는 것이죠.”
“그럼 저도 준비를 해야겠군요.”
“당가의 활약을 믿어 의심치 않아요.”
그 말에 당령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흘렸다.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뜨겁다 못해 이글거리는 당령의 눈빛을 제갈연이 자연스럽게 흘려 넘겼다.
저 뜨거운 눈빛에 담긴 열망이 단순한 상사의 감정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와 같은 눈빛을 무수히 보아 온 그녀였기 때문이다.
탐욕.
혹은 야망이라 포장한 권력욕일 뿐이다.
본인 스스로 사랑이라 믿고 있을 뿐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눈앞의 사내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가문을 무림맹 꼭대기에 올리고, 나아가 천하제일가로 거듭나게 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더 보고하실 게 있나요?”
자연스러운 제갈연의 축객령에 당령이 아쉬운 듯 그녀의 얼굴과 몸매를 한참이나 뜯어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당령이 집무실 밖으로 사라지자 제갈연의 얼굴 위로 독기 품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마침내 시작이군.”
그렇게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의 상념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 앞에 나타나 공손하게 부복한 사내.
수신 호위의 책임자인 공손정이었다.
“무슨 일이지?”
“그자가 만나기를 청해 왔습니다.”
제갈연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자리 잡았다.
공손정과 자신 사이에서 그라 언급될 인물은 오직 한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한참 애가 달아 있겠군.”
먼저 만남을 청한 것으로 미루어 전후 사정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틀 뒤에 약속 장소로 오라고 전해라.”
제갈연의 말에 공손정이 우려를 표했다.
“굳이 직접 가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명하신다면 속하가…….”
“아니.”
공손정의 말을 자른 제갈연이 예의 미소를 떠올리며 말을 이어 갔다.
“가끔은 개에게 주인의 얼굴을 보여 줄 필요도 있거든.”
* * *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깊은 산속.
과거 전란에 휩쓸려 지금은 폐허가 된 암자 안으로 들어서는 호리호리한 인영이 있었다.
절그럭.
사방에 즐비한 부서진 기왓장을 밟으며 한 사람이 일어선 것도 그때였다.
“오셨소?”
얼굴을 가린 면사를 걷으며 제갈연이 마주 화답했다.
“오랜만이에요, 노 대협.”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는 노단양을 향해 제갈연이 안타까운 눈빛을 던졌다.
“저런, 얼굴이 많이 상하셨네요.”
“…….”
“그간의 고초가 느껴졌기에 하는 말이에요. 다른 뜻은 없으니 그리 노려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노단양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눈앞의 여인은 흉중의 속내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반면 제갈연은 나름대로 놀라움을 삼키고 있었다.
‘마치 딴 사람 같군.’
눈에 띄게 수척해진 얼굴은 말할 것도 없었고, 기도 역시 눈에 띄게 달라진 노단양이었다.
눈빛 위로 언뜻언뜻 내비치는 광기가 살짝 불안했지만 분위기나 전체적인 기파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고 위험한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어쩌면 남궁백과 겨뤄 볼 수 있을지도?’
그렇게 그녀 나름의 계산을 하고 있을 때였다.
노단양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불쑥 내밀었다.
그것이 두 권의 비급이라는 걸 깨달은 제갈연이 배시시 웃었다.
“확인을 마친 모양이군요.”
제갈연의 말에 노단양이 침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말대로 가짜가 돌고 있었소.”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책은 혈라강기의 구결이 기술된 비급이었다.
하나는 그녀가 그에게 직접 건넸던 필사본.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가 혈운사를 습격해 확보한 비급이었다.
“그럼 제가 드린 비급이 진짜라는 걸 아셨겠군요?”
노단양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혈운사의 은신처를 습격해 얻은 혈라강기는 가짜였다.
언뜻 보기에는 완벽해 보이나 일부가 누락되거나 교묘히 뒤틀려 있었다.
온전한 내용이 적혀 있는 비급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면 그조차 속을 정도였다.
“어째서 이런 가짜 비급이 돌고 있는 거요?”
노단양의 물음에 제갈연의 얼굴에 맺혀 있던 미소가 짙어졌다.
“이런 음모를 획책할 곳이 마교 말고 달리 누가 있을까요?”
“마교?”
노단양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째서 그놈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 일이에요.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
“노 대협의 손에 쥐여 준 비급이 진짜라는 게 중요하죠.”
고개를 끄덕인 노단양이 가짜 비급을 쥐고 있던 손에 진기를 불어 넣었다.
그의 손 위로 언뜻 핏빛 아지랑이가 일렁이나 싶더니.
짜자작.
비급이 그대로 갈가리 찢겨 먼지로 흩어졌다.
진짜 비급을 다시 품속에 갈무리하는 노단양을 향해 제갈연이 미소를 건넸다.
“자. 이제 제가 노 대협께 보인 성의에 대한 답을 주실 차례 같군요.”
그녀와의 약속을 떠올린 노단양이 피식 웃었다.
“죽이고 싶은 놈이 생긴 모양이오?”
제갈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묘한 눈빛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맞아요. 그리고 노 대협께서 성실하게 약속을 이행하신다면 저는 더 많은 성의를 보일 준비가 되어 있어요.”
“더 많은 성의?”
의아해하던 노단양은 이어진 제갈연의 말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혹시나 잊고 계실까 싶어 드리는 말씀이지만…….”
제갈연이 묘하게 말끝을 흐렸다.
하나 단순호치(丹脣皓齒)라 불리기 부족함이 없는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말은 노단양을 뒤흔들기 충분했다.
“제가 지닌 마교의 비급은 혈라강기만이 아니에요.”
“……!”
그러고 보니 확실히 그랬다.
정마대전 당시 무림맹이 확보한 마공 비급은 모두 다섯.
혈라강기는 그 일부였을 뿐이다.
“설마……?”
조심스러운 노단양의 반문에 제갈연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비록 자세한 설명은 생략했지만 그 미소만으로도 그녀의 뜻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노단양의 두 눈 위로 집착에 가까운 광기가 일렁였다.
“원하는 목이 누구의 것이오? 악호군인가?”
노단양의 짐작에 제갈연은 고개를 저었다.
“애석하게도 그가 아니에요. 녹림의 총표파자 목을 베어 내는 건 무림맹의 공적이 되어야 하거든요. 암습 따위로 낭비하기에는 그의 목이 지닌 가치가 결코 가볍지 않죠.”
노단양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럼 누구를 죽이고 싶은 거요?”
제갈연이 웃으며 한 줄기 전음을 날렸다.
“……!”
노단양이 경악으로 눈을 부릅떴다.
“미쳤군!”
얼마나 놀랐는지 공대하는 것조차 잊고 대뜸 욕이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갈연은 눈빛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무림에 몸담은 이라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제가 원하는 건 그자의 목이에요.”
잠시 침음하던 노단양의 눈빛이 이내 감출 수 없는 탐욕으로 번뜩였다.
“하긴 안 될 것도 없지. 받아들이겠소.”
원하던 대답을 끌어낸 제갈연이 환하게 웃었다.
천강칠보우(天降七寶雨) 인욕부지단(人慾不知端).
설사 하늘이 칠보의 비를 내려 준다 해도 사람의 욕심은 그 끝을 모르는 법.
눈앞에 서 있는 노단양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욕망에 사로잡혀 움직이는 한 그는 절대 자신의 손을 벗어날 수 없었다.
끝없는 탐욕이 스스로를 죄는 목줄이라는 것을 그는 과연 알고 있을까?
‘안다 해도 상관없지.’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칠수록 더욱 옥죄는 올무를 이미 여러 개 준비해 놓은 그녀였다.
만에 하나 그가 운 좋게 벗어난다 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터.
몸을 돌려 멀어지는 노단양을 응시하던 제갈연이 그가 완전히 사라지자 눈을 들어 캄캄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유독 밝은 빛을 뿌리는 별 하나.
마치 천하를 굽어보는 늑대의 눈 같다 하여 천랑성(天狼星)이라 불리는 별이었다.
그렇게 이름 없는 암자에서 음모의 밤이 깊어 가고 있을 때, 무위는 무위대로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가겠다.”
“하오나…….”
석단평의 우려에도 악호군은 단호한 눈빛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
‘수하들을 앞에서 괜히 사나운 꼴을 보일 필요가 없지.’
천하의 그 누구라도 악호군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상대가 셋이나 된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아무리 계산해도 자신이 불리한 상황이라는 건 변함없었다.
범계위 하나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거기에 혈수존자와 빙옥선자까지 버티고 있는 이상,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하나 수하들 앞에서는 그런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개인의 자존심 문제보다 녹림 전체의 사기 문제였기 때문이다.
결국 만류하는 수하들을 뿌리친 악호군이 무위의 경계석 안으로 성큼 발을 디뎠다.
한 사람이 그 앞을 막아선 것도 그때였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상대가 악호군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뒤 한 걸음 물러섰다.
악호군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비무에 굶주려 강호를 떠돌던 늑대가 결국 정착한 것이 고작 문지기란 말인가? 추비무랑이라는 별호가 아깝군.”
악호군의 빈정거림에도 곡운경은 공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저 스스로 선택한 길입니다.”
“흥! 선택 좋아하네. 보나 마나 세 괴물들 중 한 명에게 협박이라도 당했겠지.”
악호군이 속을 박박 긁어 댔지만 곡운경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불편한 심사를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신다는 말씀은 이미 들었습니다. 들어가시지요. 곧장 신마의가로 향하시면 됩니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깍듯한 곡운경의 태도에 악호군은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시비거리가 생기면 이를 빌미로 놈들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해 보려 했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이래저래 힘든 하루가 되겠군.’
악호군이 내심 한숨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