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24)
신마의선-224화(224/500)
신마의선 (224)
무위 안으로 들어선 악호군은 걸음을 옮기는 동안 주변을 살피는 걸 잊지 않았다.
한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당혹감은 점차 커져 갔다.
지붕 위에서 건물을 수리하던 목수.
거리에서 좌판을 열고 음식을 파는 노점 상인.
거기에 산더미 같은 짐을 들고 분주히 움직이는 지게꾼까지.
오다가다 한 번쯤 마주친 적이 있었던 사파 무림인들이었다.
자연스럽게 일반인들 사이에 녹아든 저들의 모습은 과거의 악명 자자하던 그들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단순한 도피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여겼건만…….’
이따금 자신을 향해 던지는 저들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경계심.
이를 통해 악호군은 저들의 뿌리 깊은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의지할 곳 없이 강호를 떠돌던 부평초 같던 놈들이 이곳을 구심점 삼아 제대로 된 일원으로 자리를 잡은 모습은 정말이지 예상 밖이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을 뒤따르는 인기척을 느낀 악호군이 걸음을 멈추고 인상을 찌푸렸다.
“손님을 초대해 놓고 감시를 붙이다니. 무례하기 짝이 없군.”
그 말이 끝나기 전에 거리의 인파 사이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하나 감시가 아니고 혹시 모를 미연의 사태를 대비한 예방 조치였을 뿐입니다.”
“예방 조치?”
악호군의 반문에 소적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만에 하나라도 총표파자께서 사고를 쳐서 애꿎은 민초들이 휩쓸리면 안 되니까요.”
악호군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그게 감시 아닌가?”
“아닐걸요? 만약 총표파자를 감시할 요량이었다면 저보다 훨씬 뛰어난 고수가 붙었겠지요.”
악호군의 눈이 가늘어졌다.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눈앞의 사내가 지닌 무공은 한눈에 봐도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 어떤 위축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좋다. 그럼 네가 신마의가로 안내해라.”
“그건 좀 곤란하겠는데요?”
“뭐라?”
“따로 안내는 붙이지 말라 하셨거든요.”
“누가?”
“범 선배님께서요. 뭐 그리 대단한 손님이라고 안내까지 붙이냐면서요. 아쉬운 놈이 알아서 찾아올 것이라 하셨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푸대접에 악호군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래도 명색이 사파 최대 조직인 녹림을 이끄는 총표파자였다.
‘구파일방 중 그 어느 곳도 나를 이리 홀대하지 않았건만…….’
끓어오르는 노기를 드러내며 악호군이 으르렁댔다.
“놈이 내 인내심이 깊지 않다는 말은 하지 않던가?”
온전한 기도를 드러낸 악호군의 눈빛에 소적산이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태연하게 웃으며 동쪽을 가리켰다.
“뭘 그렇게까지 역정을 내고 그러십니까? 저쪽 길로 쭉 가시면 어렵지 않게 의가에 도착하실 수 있을 겁니다.”
태연하게 자신의 눈빛을 받아 내는 소적산의 모습에 오히려 당황한 사람은 악호군이었다.
분명 놈의 무공 자체는 형편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지척에서 자신의 살기를 마주하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악호군은 그만 맥이 탁 풀려 버렸다.
‘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어서는.’
생각하면 할수록 한숨이 새어 나왔다.
십대악인.
그중에서도 초악량을 제외하면 두려울 게 없는 그였다.
그뿐만 아니라 녹림이라는 거대 세력을 이끌고 있었기에 무위를 압박해 목적을 이루는 게 어렵지 않다 판단하고 있었다.
한데 범계위와의 일전으로 모든 것이 틀어져 버렸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범계위의 무공이 자신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기 때문이다.
‘이 작은 마을에 나보다 강한 고수가 세 명이나 있다니…….’
실로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곳 무위는 이미 용담호혈이나 다를 바 없었다.
‘거기에 신마의선이라는 그 꼬맹이까지.’
소문으로만 접했던 단악선의 존재.
의술을 무기로 고수들을 포섭하고, 나아가 구파일방으로부터 협조를 얻어 낸 능력은 지금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 뛰어난 신의나 마의조차도 해내지 못한 일을 고작 약관에도 미치지 못한 아이가 이루어 냈다니.
처음에는 전면에 그 아이를 내세우고 뒤에서 따로 조종하는 실세가 있다 여겼다.
그리고 그 암중 실세가 초악량이라 판단했다.
실제로 초악량은 무공은 말할 것도 없었고, 뭇 강호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본인 스스로가 세력을 거느리지 않았다 뿐이지, 마음만 먹었다면 그 밑에 복속하는 사파인이 적지 않았을 터.
하지만 범계위를 만난 직후 생각이 달라졌다.
그 꼬맹이를 언급할 때의 눈빛과 태도는 누가 봐도 진심을 다하는 게 역력했기 때문이다.
‘어떤 놈인지 만나 보면 알겠지.’
악호군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난 악호군이다.’
비록 당장은 불리한 상황에 몰렸지만 지금까지 무수한 난관과 역경을 뚫고 이 자리에 오른 그였다.
지금은 놈들의 뜻에 따라 주고 있지만 머잖아 주도권을 되찾아 올 자신이 있었다.
녹림의 총표파자 자리가 길거리 노름으로 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리라.
그렇게 의지를 다진 악호군이 이윽고 신마의가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온화한 미소로 자신을 맞는 이는 사무심이었다.
한때 수전귀야로 불렸던 돈 귀신.
그런데 그가 알던 사무심이 맞나 싶을 정도로 눈빛과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들어가시지요.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하는 사무심을 따라 악호군이 의가 안으로 들어섰다.
진료를 기다리며 늘어선 수많은 환자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이 정도 인파가 몰렸음에도 혼란스럽기는커녕 질서 정연했고, 환자 특유의 짜증이나 초조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무림인과 일반인 구분 없이 차례를 기다리는 광경이 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한데 그보다 더 의외인 것은 따로 있었다.
저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한 사람에 대한 칭송을 이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홀리는 재주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이토록 엄청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단악선.
그 이유와 배경에 대해 악호군이 나름 고심을 거듭하고 있을 때였다.
“내 환자들은 알아서 일렬로 서!”
장내를 울리는 쩌렁한 음성에 환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그것이 범계위의 음성이라는 것을 깨달은 악호군의 얼굴에 긴장감이 떠올랐다.
그 순간 뜻밖의 광경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어디선가 나타난 범계위가 빠르게 환자들을 지나치며 연신 지풍을 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으, 이제 좀 살 것 같네. 감사합니다, 범 의원님!”
“와! 오한이 단번에 가셨네?”
“과연 명의십니다!”
뒤늦게 쏟아지는 환자들의 칭송과 감사의 말을 뒤로한 채 범계위가 계속 걸음을 옮겼다.
‘그 범계위가?’
강호 무림의 재앙으로 불리는 범계위는 누구에게나 경원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를 바라보는 환자들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하나같이 존경의 마음이 가득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악호군은 가슴이 덜컥했다.
잠깐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 어느새 범계위는 환자들을 지나쳐 자신의 코앞에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너도 치료받게?”
고개를 갸웃하는 범계위의 모습에 악호군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뭐?”
어리둥절한 악호군의 반문에 범계위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줄은 왜 섰어?”
주위를 둘러보던 악호군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환자들의 줄이 묘하게 자신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사무심이 웃으며 악호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안채로 드시지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인 악호군이 환자들의 대열에서 이탈했다.
그러자 범계위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치료를 계속 이어 갔다.
마치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에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했지만 악호군은 꾹 참으며 사무심의 안내에 따랐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기다리라고?”
“중증 환자들을 치료하는 중에는 그 누구도 방해를 해선 안 됩니다.”
“감히 나를 불러 놓고 기다려라?”
“그게 이곳의 규칙입니다.”
태연한 사무심의 대꾸에 악호군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했다.
억눌러 두었던 노화가 폭발하기 직전.
안채로부터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성질 급한 건 여전하군.”
초악량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초악량을 대면한 악호군이 내키지 않는 얼굴로 예의를 갖추었다.
“오랜만입니다, 초 선배. 그간 강녕하셨는지?”
그 와중에도 곁눈질로 초악량의 상태를 살피는 것을 잊지 않는 악호군이었다.
초악량이 실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젠장.’
너무나 건재한 초악량의 모습에 악호군은 내심 욕설을 삼켰다.
무림맹의 천라지망에 당해 죽음 직전까지 몰렸다던 소문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존재감이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살벌한 눈빛을 흘리는 것도 아니었고, 압도적인 기파를 뿜어 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은연중 느껴지는 압도적인 중압감은 마치 거악(巨嶽)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런 그를 앞에 두고 감히 불만을 늘어놓을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이 다경가량이 흘렀을 때 이윽고 단악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보게 되는군.’
단악선 곁을 지키는 한설화를 향해 악호군이 고개를 숙였다.
“무림 후배 악 모가 빙옥선자 한 선배님을 뵙습니다.”
한설화는 그저 고개를 한번 까닥이는 것으로 답례를 대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호군은 그 어떤 불만도 내색할 수 없었다.
무성한 소문으로만 존재하던 그녀를 마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딜 가나 괴물뿐이군.’
그렇게 내심 한숨을 삼키고 있을 때.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해요.”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네 오는 단악선을 향해 악호군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당연히 응해야지. 살면서 그렇게 정중한 초대는 처음이었으니까.”
그 순간 악호군은 돌연 눈앞이 아득해졌다.
갑자기 짓쳐들어온 해일 같은 살기!
말없이 자신을 응시하는 초악량과 한설화.
그런 두 사람의 눈빛 너머로 도사리고 있던 끔찍한 무언가가 조용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날 초대해 놓고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왈칵 밀려드는 죽음의 공포를 애써 떨쳐 내며 악호군이 소리쳤다.
“못 할 것 같아?”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온 대답에 악호군은 가슴이 철렁했다.
어느새 범계위가 자신의 등 뒤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때 단악선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서로 불편한 사이잖아요.”
단악선의 중재.
그 한마디에 피부를 에던 가공할 살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게 가능해?’
상황이 이쯤 되자 악호군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고수들이 고작 열다섯 살짜리 꼬맹이 말에 순순히 따르고 있었다.
그만큼 지극히 비현실적인 상황이었다.
단악선이 악호군을 향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지금의 상황을 너무 억울해하지는 마세요.”
“뭐?”
“우리 사람을 건드린 건 녹림이 먼저였으니까요. 선후 관계는 명확히 해야죠.”
“…….”
침묵하는 악호군을 향해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전 녹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이렇게 초대를 한 건, 최대한 서로가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 불필요한 피해를 줄여 보자는 취지에서예요.”
“말은 그럴싸하군.”
나름 자존심이 상했던 것일까.
어딘가 삐딱한 악호군의 태도에 단악선이 단호한 눈빛으로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지금 저는 총표파자께 호의를 베풀고 있어요. 이걸 모르신다면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어요.”
“호의? 이게 말인가?”
어떻게든 대화의 기선을 잡아 보려 하던 악호군은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진지하게 대화에 응할 생각이 없으시다면 그냥 돌아가셔도 좋아요.”
“협박인가?”
“아니요. 두 번째 호의죠.”
“……?”
“지금 서 계시는 그 자리에 총표파자가 아닌, 다른 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걸 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