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26)
신마의선-226화(226/500)
신마의선 (226)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제갈연이 말을 이어 갔다.
“무위에 녹림도 전원을 수용하는 건 불가능해요. 아무리 정예들을 대피시킨다 해도 외부의 녹림도들을 모두 쓸어버리면 그만이죠. 거점인 산채들이 사라지면 악호군은 더욱 궁지에 몰릴 거예요.”
무엇보다 총표파자의 권위 자체가 흔들릴 것이다.
수하들이 죽어 나가는 와중에 핵심 전력만 대피시킨다?
명예와 명분으로 움직이는 정파와 달리 이익으로 움직이는 사파의 무리들이 그런 우두머리를 믿고 따를 리 만무했다.
“놈은 결국 뛰쳐나올 수밖에 없어요. 녹림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면요.”
“신마삼존이 함께 나온다면 어찌할 생각이요?”
황보언의 우려에 제갈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우리가 무위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그들이 우리를 공격할 명분이 없거든요.”
위리안치(圍籬安置).
결국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금지가 스스로를 가둔 울타리가 된 셈이다.
“우리가 먼저 저들을 공격하지만 않는다면 그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비로소 가주들의 표정이 한결 느긋해졌다.
“더구나 단악선이라는 꼬맹이는 어설픈 평화 주의자죠.”
그 유약함이 신마삼존을 묶는 단단한 족쇄가 될 터.
제갈연은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만에 하나, 악호군이 살아남는다 해도 결국 녹림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겁니다.”
* * *
악호군과 협상을 마친 직후.
녹림의 인물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무위로 집결하고 있었다.
녹림의 총사인 석단평.
거기에 악호군의 수족과도 다름없는 직속 단체인 혈랑대를 필두로, 각 산채의 채주들과 핵심 고수들이 악호군의 명령을 신속하게 이행한 것이다.
반면 무위 입구를 지키고 있던 곡운경은 걱정이 깊어졌다.
그가 문지기를 자처한 이래 가장 많은 사파인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미 눈으로 확인한 녹림도의 숫자만 벌써 삼백 명을 넘은 상태.
‘그나마 추리고 추린 인원이 이 정도라니…….’
사파 제일 세력이라는 말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래서 내심 우려하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곡운경의 물음에 나란히 서 있던 사무심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곡주님께서 결정하신 사안일세.”
그 한마디에 곡운경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무심은 말을 덧붙였다.
“곡주님을 믿으시게. 비록 나이는 어리시나 결코 호락호락한 분이 아닐세.”
곡운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면을 주시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붉은 상의를 걸치고 악호군 앞에 도열한 이백여 명의 무리가 있었다.
혈랑대.
녹림 내에서 가장 뛰어난 무공을 지닌 자들로, 호위와 추적에 능한 특임대 성격을 지닌 악호군의 직속 정예 조직이었다.
무공으로는 초악량에게 한참이나 밀리는 악호군이 신마삼존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이유였다.
실제로 저들은 과거 정마대전 당시 수많은 마교 고수를 명부(冥府)로 떨어트렸다.
비록 지금은 세월이 흘러 세대교체가 되었지만 삼엄한 예기가 느껴지는 눈빛이나 서릿발 같은 기강은 그조차 섬뜩해질 정도였다.
한편 단악선은 단악선대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계획을 입안한 당사자였지만 상정했던 인원보다 훨씬 많은 녹림도의 숫자에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알려진 것보다 녹림의 규모가 상당했군요.”
단악선의 말에 악호군이 슬쩍 웃었다.
“녹림의 각 채주와 주요 인물들을 모두 이곳으로 집결하라고 한 사람은 너 아니더냐?”
단악선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다른 분들은 모두 피신한 상태인가요?”
“네 말대로 석 달 동안은 철저히 몸을 숨기라 지시했다. 사업 또한 완전하게 철수했고. 연락책을 제외한 대부분이 천하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으니 무림맹이 그들을 추적한다 해도 성과는 극히 미미할 것이다.”
“잘하셨어요. 이것으로 일단은 우리가 우위에 섰네요.”
악호군이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듯 단악선을 향해 반문했다.
“그런데 정말 이것만으로 되겠느냐?”
“네, 충분해요.”
“오히려 우리가 궁지에 몰린 것 같은데?”
의외로 단악선은 선선히 수긍했다.
“그 말도 맞아요. 무림맹과 우리는 서로 공격할 수 없는, 이른바 교착 상태가 된 거죠. 반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저들과 달리 우리는 무위를 벗어날 수 없으니, 그들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셈이고요.”
악호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애초에 잘못된 계획이 아니더냐?”
버럭 하려던 악호군이 단악선 곁을 지키고 있는 한설화의 눈치를 살피며 언성을 낮추었다.
“스스로 불리한 입장을 자처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군.”
못 미더운 기색이 역력한 악호군을 향해 단악선이 미소를 건넸다.
“걱정 마세요. 우리가 생각하는 걸 저들이라 해서 모를 리 없으니까요.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상황은 달라져요. 저들에게는 없지만 우리에겐 있는 것이 있거든요.”
“그게 뭐지?”
“시간이요.”
“시간?”
의아해하던 악호군은 이어진 단악선의 설명에 눈빛을 달리했다.
“무림맹은 반드시 성과가 필요해요. 무려 세가의 가주들이 모두 집결했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악호군은 단악선이 무얼 설명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는 건 저들이겠군. 이 계획을 만든 무림맹주의 입지도 흔들릴 테고.”
“이곳 무위를 공격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 되겠죠. 물론 그런 선택을 할 만큼 바보는 아니겠지만요.”
생각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절대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만큼 현재 무위의 전력은 무림맹이 전력을 기울인다 해도 승산을 점칠 수 없었다.
천하오절 중 한 명인 초악량과 누대에 걸쳐 무명을 떨친 한설화.
움직이는 재앙이라 일컫는 범계위를 비롯해 혈랑대를 거느린 악호군.
거기에 중원 각지에서 집결한 사파의 고수들까지…….
무엇보다 금지로 선포된 무위를 제대로 된 명분 없이 공격한다면 연판장에 동의했던 구파일방마저 적으로 돌리게 된다.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도 앞뒤로 적을 만드는 불리한 형국을 자초할 리 없었다.
“으음…….”
악호군이 복잡한 눈빛을 흘렸다.
예상보다 뛰어난 단악선의 심계가 점차 큰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단악선의 말대로였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든 힘을 집결시켰는데, 헛물만 켜게 된다면 무림맹의 결속력은 그만큼 약해질 것이 분명했다.
이를 눈치챈 단악선이 머쓱하게 웃었다.
“저 혼자 생각한 건 아니에요. 이곳 무위에는 저를 도와주는 분들이 많거든요. 모두와 머리를 맞대고 얻은 계획이에요.”
“뭐, 그렇다고 해 두지.”
끝내 미심쩍은 눈빛을 거두지 못하는 악호군을 향해 단악선이 더없이 진지한 눈빛을 건넸다.
“이 계획을 제대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총표파자의 힘이 필요해요.”
“그게 뭐지?”
“무위에 입성한 녹림도들이 이곳의 규칙을 지키는 것이에요.”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이제부터는 서로가 버티는 싸움이 된 형국이에요. 먼저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쪽이 빈틈을 보이는, 매우 지루하고 힘든 대치 상황으로 접어든 거죠.”
어떻게든 지금의 상황으로 끌고 오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안 요소는 남아 있었다.
그래서 확실하게 쐐기를 박을 필요가 있었다.
“녹림의 사람들이 무위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의 협상도 그 순간 끝이에요.”
그 말에 악호군이 발끈했다.
“또 협박이군.”
“협박이 아니라 부탁이에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총표파자께서는 반드시 명심해 주셨으면 해서요.”
“사람이 의심스럽거든 쓰지 말고, 사람을 쓴 뒤에는 의심하지 말라는 말도 모르나?”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촉나라는 산이 높고 안개가 항상 짙었다죠?”
“뭐?”
“항상 안개가 짙어 해가 보이는 날이 드물었고, 그래서 개들이 해를 보면 이상히 여겨 짖었다고 해요.”
처음에는 영문 모를 표정을 짓고 있던 악호군이 이내 그 의미를 깨닫고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식견이 좁은 사림이 현인의 언행을 의심한다는 의미인 촉견폐일(蜀犬吠日).
단악선은 그 본래 뜻을 뒤집어 완곡하게 자신을 꾸짖고 있었다.
한마디로 언제 믿을 만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 주기나 했느냐는 뜻이다.
악호군이 뭐라 대꾸하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말을 해도 알아듣질 않는 범계위와 달리 논리로 무장한 눈앞의 꼬맹이는 또 다른 의미의 강적이었다.
무공이라면 모를까 말로는 도저히 어찌해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괜히 말을 섞었다 손해만 본 악호군이 쓴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였다.
“그럼 편하게 지내세요.”
수하들 앞에서 보기 좋게 체면을 구긴 악호군을 뒤로한 채 단악선이 돌아섰다.
“평화롭게 지내는 것. 아주 쉬운 일이잖아요.”
그때까지 말없이 단악선 곁을 지키고 있던 한설화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멀어지는 단악선을 노려보던 악호군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석단평을 향해 불쑥 입을 열었다.
“다음부터는 네가 상대해.”
석단평은 일순 곤혹스러운 눈빛을 흘렸다.
어디 가서 말로 밀리는 걸 보인 적이 없던 악호군이었다.
그런 악호군이 참패한 마당에 그라 해서 달리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글거리는 악호군의 눈빛에 마지못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하겠습니다.”
* * *
“어서 와, 단 의원.”
신마의가에 돌아온 단악선을 맞이한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얼굴이 왜 이리 어두워?”
범계위 물음에 한설화가 악호군과 단악선이 나눈 대화를 설명했다.
“응? 그럼 단 의원이 바라는 대로 된 거 아냐?”
범계위의 반문에 한쪽에서 서류들을 확인하던 능소밀이 단악선을 대신해 입을 열었다.
“분명히 이 싸움은 우리가 이길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림맹주가 느끼는 압박은 더욱 커질 테니까요. 기껏해야 녹림이 도망쳤다고 선언하고 어떻게든 이를 포장하기 바쁘겠죠.”
거의 다 되어 가던 일이 별안간 어그러진 장중득실(場中得失)의 상황에서는 그나마 그것이 최선이었다.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하지만 무림맹주가 가만히 있을 리 없어요. 허울뿐인 공적에 만족할 사람이 아니잖아요.”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냥 물러설 위인은 아닙니다. 자신의 야욕을 위해 그 어떤 무리수라도 기꺼이 감내할 만큼 지독한 여자니까요.”
범계위가 단악선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고민인 거야?”
“네. 아무도 죽지 않고 이 싸움을 끝내고 싶지만 불가능할지도 몰라요.”
능소밀이 그런 단악선을 토닥였다.
“일단 상대의 대응을 지켜보시죠. 어차피 시간은 우리 편 아닙니까?”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우선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겠죠.”
“그게 뭔데?”
범계위의 물음에 단악선이 대답했다.
“녹림 사람들이 이곳에 적응하는 게 먼저예요. 무위에서 혼란이 일어나면 이 계획은 실패할 테니까요.”
범계위가 씩 웃으며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런 거라면 나한테 맡겨라! 내가 가서…….”
“그러지 마세요. 녹림을 압박하는 방식은 저들의 반발을 가져올 뿐이에요. 그렇게 인내심이 많은 사람들도 아니잖아요.”
“그럼 그냥 지켜봐?”
“일단은요. 그들이 잘 적응하길 바라야죠.”
당장 바라는 목표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