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27)
신마의선-227화(227/500)
신마의선 (227)
무위로 입성한 녹림도.
그들이 머물 곳은 북쪽의 외곽 지역이었다.
자신들에게 배정된 처소를 확인한 녹림도들은 하나같이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사안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만큼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았고, 그래서 겨우 몸만 움직인 그들이었다.
그런 만큼 애초에 숙소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표행을 털기 위해 몇 날 며칠 산속에 숨어 서리와 이슬을 감내하는 게 일상인 만큼 풍찬노숙에는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그들이었다.
그래서 기껏해야 이엉이나 갈대를 엮어 지붕에 얹은 모옥도 감지덕지할 판국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제대로 기와를 얹고 담벼락까지 갖춘 숙소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 이불과 식기를 비롯한 온갖 가재도구까지.
당장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세간이 모두 갖추어진 숙소가 주어지자 오히려 당황한 것이다.
그 아늑함과 편리함은 이제껏 그들이 지내 왔던 산채와 견줄 바가 아니었다.
숙소를 둘러보던 철마채의 부채주 장이걸이 반쯤 얼이 나가 있는 자신의 상관을 향해 불쑥 입을 열었다.
“그거 아십니까?”
“어? 뭐?”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철마채주 곽홍의 모습에 장이걸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여기가 원래는 빈민촌이었답니다.”
“빈민촌? 이게?”
곽홍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이곳이 빈민촌이라면 자신들이 머물던 산채는 대체 뭐란 말인가?
“신마상단이 성장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빈민촌 사람들을 교육해 상단원으로 받아들인 거라고 합니다. 이 숙소들도 원래는 직원들을 위해 지은 것이라고 하고요. 상황이 급박하니 우리에게 내어 준 거랍니다.”
덕분에 무위에 빈민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곽홍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고 했다!”
애초에 관이 제대로 빈민을 구휼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랬다면 굶주림에 지쳐 칼을 쥐고 산으로 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신마상단은 하지 않았습니까? 실제로 사파 무림인을 상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도 했고요.”
“흥! 그래 봐야 숨어 지내는 도망자들이지.”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상관의 모습에 장이걸이 안타까운 눈빛을 흘렸다.
그러기를 잠시.
장이걸이 고개를 돌려 부지런히 짐을 나르는 신마상단 일꾼들을 눈에 담았다.
“언젠가 저도 손을 씻고 저리 살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이 자식이? 혓바닥 간수 잘해. 잘라 버리기 전에.”
“우리도 태어날 때부터 녹림은 아니었지 않습니까?”
인부를 바라보는 장이걸의 눈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일을 하고 급료를 받고……. 그렇게 얻은 돈으로 처자식과 뜨신 밥 함께 먹는, 그런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다면 혓바닥 자르는 게 대수겠습니까?”
곽홍이 나직하게 으르렁댔다.
“내가 입조심하라 했지? 수하들 듣는다. 그러니 그런 꿈 같은 상상일랑 혼자 속으로 삭여. 괜히 애들 사기 떨어트리지 말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곽홍은 장이걸의 심란한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직접 와서 본 무위는 외부에서 보는 것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특히나 일반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지내는 사파인들의 모습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를 순순히 인정하기에는 녹림 채주로서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애써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며 무위의 사파인들을 비난했다.
“일신의 안락함을 위해 자존심마저 포기한 놈들이다. 약관에도 못 미치는 어린애를 주인처럼 떠받드는 놈들이 부럽긴 뭐가 부러워?”
장이걸이 나직이 한숨을 흘리고는 정색하는 곽홍을 달랬다.
“뭘 그렇게까지 역정을 내고 그러십니까? 갑시다. 별거 아닌 걸로 화내는 거 보니 시장하신 모양인데, 이곳 객잔 음식들이 괜찮다 하더이다. 오늘은 제가 살 테니 노여움은 그만 거두시고.”
“이 새끼가? 너 점점 말이 짧아진다?”
“아니면 채주께서 밥 사시든가.”
장이걸의 넉살에 곽홍의 눈빛이 살짝 누그러졌다.
“술도 시킨다?”
“언젠 안 시키신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예, 제가 다 살 테니 갑시다.”
그렇게 객잔에 도착한 두 사람은 적당한 자리에 앉아 음식들을 주문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곽홍의 인내심이 점차 한계에 이르렀다.
“이거 텃세 맞지?”
주위를 둘러보던 장이걸이 고개를 저었다.
“한창 붐빌 때 아닙니까. 딱 봐도 주문이 밀려서 그러는 것 같은데 좀 더 기다려 봅시다. 저쪽에 앉아 있는 사파인들 음식도 아직 안 나왔네요.”
장이걸의 만류에 곽홍이 불편한 심기를 애써 억누르고 있던 그때.
바쁘게 객잔을 뛰어다니던 점소이가 곽홍이 앉아 있던 의자에 부딪쳤다.
마침 곽홍은 찻잔을 들어 올리고 있었고, 이로 인해 입고 있던 바지에 찻물을 쏟고 말았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점소이가 급히 사과했다.
그러나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했던 곽홍은 벌컥 화를 냈다.
“이 새끼가 돌았나?”
“채주님, 참으시죠.”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에 장이걸이 급히 곽홍을 진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곽홍은 살기까지 흘려 가며 노발대발했다.
“이게 그냥 한마디 사과로 넘어갈 사안이야? 저기 쓸개 빠진 놈들과 나는 달라! 나 곽홍이야! 철마채 채주 곽홍!”
금방이라도 허리춤의 칼을 뽑아 들 것 같은 살기등등한 모습에 점소이가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멀리 떨어져 있던 식탁에서 한 사람이 일어선 것도 그때였다.
“채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어찌 어린 점소이를 핍박하시는가? 적당히 하시게. 이렇게까지 얼굴을 붉힌 사안은 아니라 생각하네만?”
곽홍의 눈빛이 대번 사나워졌다.
“방금 지껄인 놈이 누구냐?”
“날세.”
성큼 앞으로 나선 장년인을 확인한 곽홍의 얼굴에 비릿한 조소가 떠올랐다.
“누군가 했더니 구유음소(九幽吟嘯) 장곡 선배셨군?”
곽홍이 자신을 알아보자 장곡이 고개를 끄덕였다.
“십오 년 만인가? 채주 자리에 올랐음에도 급한 성미는 여전하군.”
“그러는 장 선배야말로 뭐 하자는 거요? 듣자니 무공도 제대로 쓰지 못한다면서? 기껏 숨어 지내기로 했으면 끝까지 숨죽이고 있을 일이지, 왜 쓸데없는 일에 나서 목숨을 재촉하시오?”
“뭐라?”
장곡은 순간 울컥했지만 무위의 규칙을 떠올리며 화를 억눌렀다.
“무위에 들어올 때, 규칙을 듣지 않았나? 무슨 일이 있어도 무공을 익힌 자가 일반 백성을 건드리는 일은 용납 못 한다. 내 단 의원님의 말씀이 있기에 한 번은 참고 넘어가지만…….”
곽홍이 실소하며 장곡의 말을 잘랐다.
“단 의원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맹이를 교주처럼 모시다니, 구유음소라는 별호가 아깝군. 선배 손에 죽은 무림인들이 지하에서도 부끄러워 눈을 감지 못하겠어.”
“꼬마?”
장곡의 눈에서 자욱한 살기가 일렁였다.
다른 건 몰라도 단악선을 모욕하는 것만큼은 절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한때 사파 내에서도 손꼽히는 고수였던 그였지만 몇 년 전부터 주화입마의 전조 증상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자연 무공 사용을 기피했고, 적을 피해 달아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단악선으로부터 꾸준한 치료를 받은 결과 예전의 무공 대부분을 회복한 상태였다.
장곡은 단악선을 만나 희망을 얻었고, 무너졌던 자존감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단악선은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베푼 고마운 은인이었다.
“운이 좋은 줄 알아라. 무위가 아니었다면 당장 네놈의 목을 비틀었을 것이다.”
장곡의 엄포에 곽홍이 실소했다.
“흥! 왜 쓸개가 없나 했더니 간덩이가 부어 쓸개가 붙어 있을 자리가 모자란 거였군. 그때 꽁지 빠지게 달아나던 인간이 뭘 믿고 이렇게 설치는 거지? 아! 똥개도 제집에서는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그런 건가?”
“이놈! 곽홍!”
“뭐? 내가 없는 말을 지어낸 것도 아닌데 왜 눈을 그리 뜨실까?”
“네놈이 정녕 죽고 싶은 게로구나!”
“할 수는 있고?”
두 사람을 에워싼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몰아치는 살기 사이로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자리 잡았다.
그 순간 곽홍이 입을 열었다.
“자신 있으면 무위 밖으로 나가지? 아! 무공을 잃었으니 이제는 일반인이 된 셈인가? 그러면 건드리면 안 되겠네?”
곽홍의 비아냥에 장곡의 분노가 비등점을 넘어섰다.
“좋다! 나가자!”
객잔에서 식사를 하던 사파인들 몇 명이 장곡을 만류했다.
그러나 장곡은 단호하게 이를 거절했다.
“괜찮네, 형제들. 저놈이 먼저 제안했으니 뒷말은 하지 못할 걸세.”
결국 두 사람이 객잔을 벗어나 무위 밖으로 향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후 진료를 준비하던 단악선은 허겁지겁 달려온 아두의 모습에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아두 형. 무슨 일이야?”
“그게…….”
아두로부터 객잔에서 벌어진 일을 전해 들은 단악선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네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선 긋기로군요.”
“선 긋기요?”
“이곳 무위에서 어디까지 자신들의 행동이 용납 가능한지 떠보는 겁니다.”
능소밀의 대답에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총표파자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겠죠?”
“네. 얼핏 보기로는 제멋대로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의외로 녹림은 규율과 기강이 엄격합니다. 비록 직접 명령을 내린 게 아니라 할지라도 악호군의 암묵적인 방관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죠.”
단악선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위를 벗어나면 된다는 그 단순한 생각은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걸까요?”
능소밀이 흠칫하며 범계위 쪽을 힐끔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범계위가 곤혹스러운 눈빛을 흘리고 있었다.
하나 이를 알 리 없는 단악선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단지 몇 발자국 밖으로 나간다고 심성과 태도를 달리한다면 우리가 만든 규칙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애들도 아니고 다 큰 어른들이 그걸 모르다니……. 참 한심하네요.”
“……!”
범계위가 뜨끔한 듯 그 자리에 굳어졌다.
그러기를 잠시.
“그 한심한 놈들은 내가 혼내 주고 올게!”
범계위가 벌떡 일어나 뜨거운 콧바람을 뿜어 댔다.
그 멍청한 놈들 때문에 졸지에 자신까지 한심한 놈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단악선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실 것 없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묵룡을 챙겨 드는 단악선의 모습에 범계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께서 처리하시면 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에요. 신마삼존이 무서워서 참는 게 되겠죠.”
“어쩌려고?”
“아무래도 제가 직접 정리를 해야겠어요.”
자신의 진의를 확실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그 시각.
무위와 오 리 정도 떨어진 야트막한 능선에서는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참혹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퍽퍽!
“커헉!”
장곡의 매서운 주먹질에 곽홍이 연이어 피 기침을 토했다.
그의 얼굴은 이미 피떡이 되어 있어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비무를 시작하기 무섭게 장곡은 무서운 기세로 곽홍을 몰아붙였다.
반면 당황한 곽홍은 손발이 어지러워 제대로 반격조차 하지 못했다.
그 결과 두 사람의 비무는 장곡의 일방적인 구타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마지막 순간에 장곡은 손을 거두었다.
털썩.
맥없이 널브러진 곽홍을 내려다보는 장곡의 눈 위로 싸늘한 살기가 일렁였다.
“앞으로 두 번 다시 단 의원님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마라. 그때는 내가 무위를 떠나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의 목숨을 거둘 것이다.”
그 말을 남기고 장곡이 돌아서던 그때.
비무의 참관을 위해 모여 있던 녹림도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붉은 상의를 걸친 삼십 대의 장한이었다.
그가 악호군의 직속 무력 단체인 혈랑대 소속임을 알아본 장곡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 하자는 건가?”
혈랑대의 사내가 슬쩍 웃으며 건성으로 예의를 갖췄다.
“혈랑대 제이 단을 이끌고 있는 무명의 후배가 구유음소 장 선배님을 뵙습니다.”
“뭐 하자는 짓이냐 물었네만?”
“후배는 그저 소임을 다할 뿐이외다.”
“소임?”
“혈랑대의 임무 중 선참후주(先斩后奏) 가능한 몇 안 되는 사안 중 하나가 바로 채주의 신변이 위험에 처했을 때입니다.”
선참후주.
즉, 먼저 베고 나중에 보고를 올린다는 의미였다.
그 안에 담긴 노골적인 살의에 장곡의 눈썹이 꿈틀했다.
“기껏 인정을 베풀어 목숨을 붙여 두었건만 참으로 뻔뻔하기 짝이 없군. 하긴, 도적 따위에게 염치를 기대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인가?”
그 말에 자신을 혈랑대의 제이 단 단주라 밝힌 사내가 피식했다.
“어이, 장곡.”
“……!”
“선배 대접해 주려 했더니 그냥 아주 막 선을 넘는군.”
“뭐라?”
“녹림이 그리 우습나? 채주 하나 반병신 만들어 놓고도 그냥 넘어갈 수 있을 만큼 우리가 만만해 보이냐는 말이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녹림도들 사이에서 혈랑대의 무인들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서늘한 살기를 베어 문 그들의 눈빛에 사파인들도 저마다 기파를 개방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살얼음판 사이로 한 사람이 뛰어들었다.
“그만두세요.”
낭랑한 음성의 주인.
단악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