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28)
신마의선-228화(228/500)
신마의선 (228)
단악선의 등장에도 혈랑대의 제이 단 단주, 이호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단악선을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이 일은 무위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고, 개인적인 원한으로 발생한 일이오. 그러니 그쪽에서 관여할 일이 아니외다.”
다소 무례한 이호의 말투는 단악선을 무시하는 태도가 역력했다.
그 모습에 무위의 사파인들이 일제히 살기를 뿜었다.
반면 단악선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이호의 시선을 마주했다.
“원한이요?”
단악선의 반문에 이호가 손을 들어 장곡을 가리켰다.
“녹림의 채주를 다치게 한 것은 정당한 비무였으니 따질 수 없소. 하나 염치없는 도적 운운하며 녹림 전체를 모욕한 것만큼은 절대 그냥 넘길 수 없소.”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다는 건가요?”
“당연히 무림인의 방식대로 해결할 것이오.”
단악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지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이호가 피식 웃었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안일한 방식은 흉험한 도산검림을 제대로 겪어 보지 못한 유약한 자들이 품은 환상 같은 거요. 우리들 무림인은 평생 이처럼 살아왔소. 자신의 의지와 믿는 바를 관철하기 위해 서로의 목숨을 걸어 왔지.”
“그렇다니 어쩔 수 없군요.”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다 판단한 단악선이 묵룡을 움켜쥐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에 이호가 어이없다는 눈빛을 흘렸다.
“뭐 하자는 거요?”
“당신이 말한 무림인의 방식대로 해결하려고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이호가 멈칫했다.
“이번 사태가 저에 대한 험담으로 시작됐다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당사자인 제게도 그 책임을 따져 물을 자격이 있겠죠?”
“그거야…….”
자신이 내세운 명분.
단악선이 이를 그대로 적용해 받아치자 이호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이내 곤혹스러운 눈빛을 흘렸다.
단악선 뒤쪽에 서 있는 범계위의 존재 때문이었다.
이를 눈치챈 단악선이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걱정 마세요. 그 어떤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저분은 나서지 않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이호는 여전히 지금 상황이 내키지 않았다.
아무리 명분이 주어진다 한들 눈앞의 꼬맹이가 다치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단악선은 자신들의 수장인 총표파자와 협상을 할 만큼 이곳 무위의 실질적인 결정권자였다.
당장 자신의 입장은 둘째 치고 총표파자의 입장까지 곤란하게 만들 소지가 다분한 것이다.
‘어쩔 수 없나.’
이쯤에서 대충 사과하고 넘어가려 하던 그 순간.
“……!”
이호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디선가 날아든 한 줄기 전음 때문이었다.
스릉.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인 이호가 허리춤에서 두 자루 곡도를 뽑아 들었다.
“칼에는 눈이 없으니 부디 조심하시길.”
“…….”
단악선은 묵룡을 고쳐 쥐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모습에 이호가 짧게 코웃음을 쳤다.
그리곤 곧장 지면을 박차며 단악선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총표파자의 명이 있어 상대하기는 하지만 어린애를 이겨 봐야 하등 자랑거리도 못 되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상황을 빨리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악선과 거리를 좁혀 가던 이호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돌연 시커먼 무언가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것이 뒤늦게 단악선의 손에 들려 있던 묵봉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호가 황급히 고개를 꺾었다.
칙.
가까스로 목봉을 피하긴 했으나 아슬하게 빗나간 목봉에 귀밑머리가 한 움큼 넘게 뜯겨 나갔다.
이를 악문 이호가 그대로 단악선을 향해 쇄도했다.
‘끝이다!’
곡도의 간격 안에 단악선이 들어왔다고 느낀 순간.
이호의 손에 들린 곡도가 대기를 찢었다.
눈앞의 풍경이 갑자기 뒤집어진 것도 그때였다.
갑자기 발밑이 꺼진 것 같은 느낌과 함께 균형을 잃은 것이다.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그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고 있었다.
자신의 발목을 걷어 올리는 목봉을 뒤늦게 발견한 이호가 허공에서 자세를 틀었다.
그리고 그대로 쌍도를 종횡으로 그었다.
한데 칼끝에 걸렸어야 할 느낌이 없었다.
이호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그 자리에 원래 있어야 할 단악선의 모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황급히 주위를 살피던 이호가 흠칫했다.
언제 움직였는지 귀신같이 자신의 배후를 선점한 단악선이 차가운 눈빛을 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순간 단악선의 손에 들린 묵봉이 움직였다.
퍽!
“큽!”
부지불식간에 어깨를 얻어맞은 이호가 신음을 삼키며 칼을 휘둘러 반격했다.
하지만 그가 휘두른 곡도는 묵봉에 가로막혀 단악선에게 닿을 수 없었다.
카앙!
오히려 손목을 타고 올라오는 육중한 충격에 하마터면 곡도를 놓칠 뻔했다.
그 순간 단악선의 손에 들려 있던 묵룡이 용틀임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눈앞을 가득 메운 어지러운 묵빛 그림자!
이를 마주한 이호는 그만 모골이 송연해졌다.
묵봉이 닿는 거리.
그 안의 공간이 이미 완벽하게 상대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퍼퍼퍼퍽!
연이어 목봉에 얻어맞은 이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눈으로 좇기 힘든 속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묵봉이 그리는 궤적을 예측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한 번씩 얻어맞을 때마다 전해지는 충격은 뼈까지 시큰할 정도였다.
“크아아!”
단악선을 떨쳐 내기 위해 이호가 발작적으로 소리치며 연거푸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묵룡은 무수한 칼 그림자를 교묘히 헤집으며 집요하게 이호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확실하게 그를 무력화했다.
빠악!
옆구리를 파고든 묵직한 충격에 이호가 젖은 낙엽처럼 바닥에 나뒹굴었다.
“…….”
장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단악선이 묵룡으로 이호의 발을 걸어 거꾸러트린 뒤 신형을 날려 배후를 선점하고, 그대로 묵룡을 휘둘러 이호를 두들겨 팬 것은 그야말로 눈 한 번 깜빡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특히나 혈랑대는 놀라움을 넘어 경악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방심했다고는 하나 이호는 혈랑대 내에서도 상위의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를 순식간에 쓰러트린 단악선의 실력에 비로소 단악선이 무시할 수 없는 고수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아직이다!”
쾌애애액!
쩌렁한 고함 소리와 함께 서슬 퍼런 예기가 단악선을 덮친 것도 그때였다.
나가떨어졌던 이호가 재차 달려들며 쌍도를 휘두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악선은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오연한 눈빛을 뿌리고 있을 뿐이었다.
순식간에 쇄도한 어지러운 도기가 순식간에 단악선을 에워쌌다.
카카카칵!
바닥을 긁은 도기에 의해 흙더미와 돌 조각이 비산했다.
그 뒤로 섬뜩한 살기를 베어 문 칼이 그대로 단악선의 허리와 가슴을 노리며 쇄도해 왔다.
“헉!”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사파인들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그만큼 이호의 공격은 완벽에 가까웠다.
그야말로 전방위를 아우르는, 물 샐 틈 없는 일격이었다.
난무하는 도기와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묵빛 섬광이 번뜩인 것도 그때였다.
찌이익!
비단 폭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겹겹이 중첩된 도기를 가르며 짓쳐 드는 시커먼 묵봉이 이호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쾅!
육중한 충격음과 함께 한 사람의 신형이 먼지를 뚫고 튀어 올랐다.
이호였다.
주위를 가득 메웠던 도기는 어느새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이호는 실 끊어진 연처럼 한참을 날아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
중인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단악선과 길게 뻗은 이호를 번갈아 볼 뿐이었다.
장내에 있는 혈랑대 역시 마찬가지.
혈랑대 소속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누구보다 자부심이 높던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조차 대체 단악선이 무슨 방법으로 이호에게 마지막 일격을 꽂아 넣었는지 제대로 본 사람이 없었다.
멀리서 이를 관전하던 악호군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악호군의 눈가에 미미한 경련이 일어났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사태에 당혹감을 금할 수 없었다.
“의원이라며?”
악호군의 말에 총사인 석단평도 질린 눈빛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들이 괴물을 키워 냈군요.”
더 기가 막힌 것은 이제 고작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대로 계속 성장한다면…….”
석단평이 말끝을 흐렸다.
하나 악호군은 어렵지 않게 그 뒷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것인가?”
악호군은 지금껏 자신이 믿어 왔던 무리가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단악선이 신마삼존에게 무공을 전수받았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 수준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문제는 그게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니라는 점이었다.
물론 자신이 나선다면 충분히 쓰러트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열다섯 꼬맹이를 상대로 진심으로 싸운다?
그런 상황 자체가 마뜩지 않았다.
그렇게 악호군이 심란해하던 와중.
단악선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얼어붙은 공기보다 더욱 차가운 단악선의 음성이 사위에 울려 퍼졌다.
“오월동주(吳越同舟). 하나의 목적 앞에서는 원수라도 기꺼이 손을 잡는다는 의미를 모르는 분은 없으리라 믿어요.”
마치 악호군에게 들으라는 듯이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엄밀히 말해 일반인에게 손을 댄 것은 아니니 이번에는 이 정도로 넘어가겠어요. 그러나 더 이상 저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세요. 마지막 경고예요.”
아직도 이 자리에는 열 명이 넘는 혈랑대의 무인들이 서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숫자의 우위를 점하고도 오히려 단악선 한 사람의 존재감에 압도당한 것이다.
단안선이 묵룡을 챙겨 돌아섰다.
신마의가로 돌아오는 길.
“잘했어, 단 의원.”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하던 범계위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그놈 얼굴이 아주 볼만하던데?”
“이 정도면 충분히 제 뜻이 전달되었겠죠?”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야.”
“제발 그래야 할 텐데요.”
“악호군 그놈이 멍청하긴 해도 바보는 아니야.”
악호군이 들었다면 거품을 물었을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범계위였다.
다행히 단악선의 바람대로 무위의 평화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 * *
무림맹주의 집무실.
“끝까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중원 곳곳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확인하던 제갈연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맹랑하기 짝이 없는 꼬맹이로군.”
누구의 계획인지 눈에 뻔했다.
이미 무림맹이 녹림의 토벌을 선언한 지 한 달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무림맹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녹림의 총채는?”
제갈연의 물음에 서류를 뒤적이던 수하들 중 한 명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총채뿐만 아니라 파악하고 있던 다른 산채들 또한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완벽하게 철수한 터라 건질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제갈연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처음 불같이 일어났던 기세가 최근 들어 주춤하고 있었다.
기껏 전력을 끌어온 세가의 가주들도 점차 의심의 눈빛을 던져 오기 시작했다.
“녹림의 사업권을 회수하는 건은 어찌 되었지?”
녹림이 오직 약탈에만 수입을 의존하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전 중원에는 그들이 관여하는 사업이 적지 않았다.
기루를 시작으로 도박장, 소금을 포함한 밀거래. 그리고 고리 대금업까지.
혹시라도 이와 같은 사태가 발생할 것에 대비해 제갈연은 이미 녹림의 사업체들을 소상히 파악해 두고 있었다.
아무리 꼭꼭 숨었어도 돈줄이 막힌다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을 터.
그러나 돌아온 보고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일체의 사업에서도 완벽하게 손을 뗀 상태입니다.”
“그게 가능하다고?”
제갈연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라 당혹감을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설마 신마상단이 저들의 손해까지 감당해 준 것인가?”
그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제갈연이 침음했다.
망가지기 전에 먼저 깔끔하게 털고 나가 버렸다.
손해를 감수한 만큼 인적 자원은 보존할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언제든 다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만큼 사업을 재개하는 것도 빠를 터.
“그 꼬맹이가 이렇게까지 자세한 계획은 수립하지 못했을 텐데…….”
생각을 정리하던 제갈연의 눈 위로 이채가 떠올렸다.
“역시 수전귀야, 그자의 생각인가?”
이때 수하들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가주들의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실제로 작은 싸움조차 벌어지지 않았기에 시간 낭비라는 말도 나오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한 달 동안 계속 헛걸음만 한 셈이니 그런 불만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진주언가의 가주가 세가로 돌아간다고 전해 왔습니다. 필요하면 다시 오겠다며…….”
제갈연이 미간을 찡그렸다.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
한 명이 떠나면 다른 이들의 이탈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그녀의 입지가 흔들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내가 상정했던 최악의 상황인건가?”
그 말을 들은 수하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를 본 제갈연은 조용히 웃었다.
“내가 예상했다는 것은 대비도 되어 있다는 뜻이다.”
지필묵을 가져오라 지시한 제갈연이 서신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 꼬맹이가 이번에는 어떻게 대응할지 기대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