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29)
신마의선-229화(229/500)
신마의선 (229)
신마의가 내원에 위치한 정원.
사무심은 모처럼 느긋하게 다향을 만끽하고 있었다.
최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좀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없었는데, 오늘은 어째선지 약간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한데 이를 채 만끽하기도 전에 그에게 황급히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능소밀이었다.
“무슨 일인가?”
다급한 기색이 역력한 능소밀의 표정에서 사무심은 설명하기 힘든 불길함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사무심에게 다가온 능소밀이 들고 있던 서신을 내밀었다.
“무림맹 사람들이 직접 가져온 서신입니다.”
“무림맹이?”
“네. 입구에서 서신을 건네주고 답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체 그들이 왜?”
능소밀이 가져온 서신의 내용을 확인한 사무심이 심각한 표정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이건 정말 좋지 않군.”
사무심이 다기를 물리고 일어섰다. 그리고 곧장 정원을 가로질러 단악선의 진료실 쪽으로 향했다.
잠시 후.
단악선과 신마삼존, 그리고 사무심과 능소밀이 한자리에 모였다.
거기에 악호군도 참석했다.
그만큼 사안이 중대했기 때문이다.
“무림맹에서 보내온 서신이에요.”
단악선이 서신을 악호군에게 내밀었다.
서신 안의 내용을 확인한 악호군의 검미가 꿈틀했다.
―신마의가에 은닉한 녹림 소속의 마교 추종자를 본 맹에 인계하라.
한 줄짜리 내용이 전부인 간단한 서신.
그러나 그 내용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더구나 서신 말미에 찍혀 있는 붉은 직인은 무림맹주의 공식 서한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쪽의 정보가 새고 있어요.”
단악선의 말에 악호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간자가 있다는 뜻이군.”
악호군은 내심 뜨끔했다.
하필 자신들이 무위에 합류한 시점에서 정보가 새다니.
악호군 스스로도 녹림 내에 간자가 없다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지금 상황이 더욱 달갑지 않았다.
사무심이 심각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일단 저들이 마교를 언급한 이상 침묵으로 일관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이를 빌미로 저들이 여론전을 펼친다면 유리하게 이끌어 가던 상황이 역전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신마의가가 마교의 추종자를 보호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지금껏 우호적이었던 구파일방도 태도를 달리할 가능성이 높았다.
“어찌할 셈이냐?”
악호군의 물음에 단악선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떤 경우에든 환자를 내어 줄 수는 없어요.”
“머지않아 치료가 끝난다 들었는데?”
의뭉스러운 악호군의 말에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뜻이죠?”
“그 말대로다. 진영산은 여전히 녹림 소속이다. 치료가 끝나면 다시 내 수하로 돌아오겠지.”
“설마 그를 넘겨줄 생각인가요?”
“그럴 수도 있지. 마공을 익혔던 놈이니까.”
단악선이 악호군을 응시했다.
기껏 힘들게 치료해 살려 낸 환자를 무림맹에 넘길 수는 없었다.
그 안에서 그가 어떤 고초를 겪을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정색하자 악호군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무림맹에 넘겨주지는 않는다. 누구 좋으라고? 놈들에게는 티끌 하나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악호군이 선심 쓰듯 말을 이어 갔다.
“차라리 네게 넘기는 게 낫지.”
이 와중에도 능구렁이 같은 면모를 잃지 않는 악호군의 모습에 단악선은 내심 쓴웃음을 삼켰다.
“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군요.”
단악선이 자신이 생각한 대응책을 언급했다.
“정공법으로 상대하죠.”
“정공법?”
“모든 걸 사실대로 밝히는 거예요.”
단악선의 말에 악호군이 의문을 제기했다.
“저 교활한 놈들을 상대로? 과연 그게 제대로 먹힐까?”
“충분히 통할 테니 총표파자께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악호군이 불만 어린 눈빛으로 단악선을 응시했다.
“내게는 말해 줄 수 없다는 건가?”
이유야 짐작하지만 악호군은 내심 불쾌했다.
하지만 애써 내색하진 않았다.
단악선의 태도에서는 당황하거나 놀란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상황을 일찌감치 예상한 것이 분명했다.
“곧 알게 되실 거예요. 그러니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악호군이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이런 회의가 몇 번이고 반복될 터.
오늘과 같은 수모를 당하지 않기 위해 내부의 간자 색출이 우선이었다.
악호군이 물러나자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마교가 우리의 적이라 가정했을 때 과연 무림맹주는 적일까요? 아군일까요?”
“무슨 뜻이냐?”
초악량의 반문에 단악선이 고민하던 부분을 털어놨다.
“애초에 우리 목적은 무림맹주와 마교의 관계를 밝혀내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저들이 먼저 마공에 대해 언급하는 건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아요.”
능소밀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건 추후에 파악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당장 우선해야 할 것은 저들과 대치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행여 저들이 먼저 우리가 마교의 추종자를 보호하고 있다는 발표를 한다면 지금껏 무위를 지탱해 온 명분 자체가 사라져 버립니다.”
“혹시 시간을 벌 수 있을 방법이 있을까요?”
단악선의 물음에 능소밀이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능소밀이 눈빛을 빛냈다.
“마교의 추종자는 우리가 신병을 구속하고 있다고 회신하는 겁니다. 엄밀한 조사를 위해서요. 그리하면 무림맹도 더 이상 진영산의 신병을 넘겨 달라 요구할 명분이 없습니다. 진영산을 치료한 것도 조사를 위한 방편이라 둘러댈 수 있으니 꼬투리를 잡지도 못할 테고요.”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우선은 그렇게 진행하는 걸로 해요.”
능소밀이 무림맹에 보낼 회신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향해 단악선이 말했다.
“아, 참! 그리고 무림에 큰 행사가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지금의 사안을 공론화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이대로 무림맹이 여론을 주도하게 놔둘 수는 없으니까요.”
“그거라면 어렵지 않습니다.”
손으로는 서신을 작성하면서도 능소밀의 입은 쉬지 않았다.
“마침 두 달 뒤에 화산파 장문인의 고희연(古稀宴)이 있거든요. 우리 쪽으로 이미 초대장도 온 상태입니다.”
말없이 자리를 지키던 한설화가 그 말에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그 새파랗던 애송이가 벌써 그리되었나?”
뒤늦게 자신에게 모아진 시선을 느낀 한설화가 멈칫했다.
멍한 표정으로 한설화를 응시하던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너 도대체 몇 살이냐?”
“…….”
한설화가 말없이 고개를 돌리며 중인들의 시선을 외면했다.
덕분에 딱딱했던 분위기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이때 단악선이 능소밀을 향해 한 가지를 더 부탁했다.
“이 일에 대해 개방도 조사를 하고 있다고 했죠? 방주님을 만나 뵐 수 있게 약속을 잡아 주세요.”
그사이 무림맹에 보낼 서신의 작성을 마친 능소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습니다.”
* * *
깊은 어둠이 내려앉은 새벽.
그믐에 가까워진 흐린 달빛이 조용히 어둠을 걷어 내고 있었다.
흘러내리는 푸른 달빛을 안주 삼아 이립과 홍적문은 높은 전각의 지붕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차라리 길바닥에서 먹는 게 낫지 않아? 다 늙어 이게 무슨 궁상이야?”
홍적문의 핀잔에 이립이 피식 웃었다.
“예전 생각나지 않나? 이렇게 무림을 굽어보겠다고 꿈을 꾸던 시절도 있었잖나.”
“그래서 결국 최고 자리에 올랐잖아.”
“끌끌. 그래 봐야 길바닥 인생들을 끌어안은 거지 왕초지.”
이립이 허공에 잔을 들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초승달을 올려다보던 그가 불쑥 입을 열었다.
“나는 그믐달이 좋아. 새벽녘이 되어서야 살짝 드러났다 해가 뜨면 여명 속으로 사라지는…….”
“벌써 취했나? 또 무슨 헛소리를 늘어놓으려고?”
홍적문의 타박에도 이립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보고 있자면 가슴이 아리도록 가련하지. 세상의 온갖 풍상을 다 겪고, 말없이 스러지는 애절한 멋이 있어.”
“…….”
“마치 우리 개방과 같지 않은가?”
단번에 술을 입에 털어 넣은 뒤 이립이 인상을 찌푸렸다.
“크으…….”
“작작 마셔. 오늘만 사냐? 내일도 일 많다며.”
독한 화주의 기운에 불콰해진 얼굴로 이립이 씁쓸하게 웃었다.
“한심하지 않나? 뭐 그리 대단한 걸 얻자고 그리들 아등바등 사는지. 가끔은 진절머리가 나.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무림이라는 괴물의 진면목을 마주할 때면.”
이립의 고민을 이해하는 홍적문이 그의 빈 잔에 술을 채워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잔을 연달아 비운 뒤 이립이 나직한 한숨을 흘렸다.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죽음 앞에는 누구나 다 평등해지는걸. 나도 마찬가지고.”
툭 던진 이립의 말에 홍적문은 어찌 대답해야 할지 순간 난감해졌다.
이립 역시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지 가만히 웃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좋군.”
달이 기울었기 때문일까.
오늘따라 유독 별빛이 밝았다.
툭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우수수 쏟아질 것처럼 시린 별빛이 가슴을 채워 왔다.
이립이 하늘을 향해 조용히 손을 뻗었다.
“얻을 수 없어 더욱 아름다운 게 있지.”
바로 저 별빛처럼.
‘그리고 무림의 평화처럼.’
홍적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 놈들이 머잖아 다시 준동할 것 같아. 한뜻으로 뭉쳐 대처해야 할 판국에 무림은 제 밥그릇 챙기려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고.”
“세가들 말인가?”
홍적문이 못마땅한 눈빛을 흘렸다.
“무림맹의 기세가 심상치 않아. 그나마 무위에서 녹림을 끌어안고 있어 당장의 피바람은 어떻게 피해 갔지만, 지낭리 그 계집애가 언제까지 손 놓고 있지만은 않을걸세.”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그냥 두질 않는군.”
이립이 신형을 일으켰다.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무림맹주를 만나 보지.”
“자네가 직접?”
“그 앙큼한 여우를 말발로 찍어 누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이립이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강호가 위기에 처할 때 가장 먼저 나서는 게 누구? 바로 나! 개방의 용두방주 이립이다, 이 말씀이야.”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홍적문이 벅벅 머리를 긁적였다.
“그 뻔뻔하기 짝이 없는 세가의 가주들 낯짝을 볼 생각하니 벌써부터 온몸이 가렵군.”
“응? 자네가 왜? 무림맹은 나 혼자 갈 건데.”
홍적문이 눈살을 찌푸렸다.
“명색이 방주라는 작자가 호법장로 앞에서 할 말이냐?”
“자네는 따로 할 일이 있어.”
“……?”
“모용세가를 좀 조사해 주게. 칠절마군과 무림맹주 사이에서 오간 모종의 거래. 그 증거가 필요해.”
그 말에 홍적문이 벌컥 역정을 냈다.
“또 나 혼자 멀리 보내는 거냐! 장로고 나발이고 때려치우든지 해야지, 원! 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너무 심하지 않아? 못 해! 아니, 안 해!”
이립이 진지한 눈빛으로 홍적문을 응시했다.
“적문아.”
“뭐? 왜 또 갑자기 목소리는 깔고 난리야? 개방의 협의 운운할 거면 넣어 둬. 이제 안 통해.”
“너밖에 없다.”
“……!”
“꼬투리를 잡히면 저들은 반드시 이빨을 드러낼 거야. 너 말고는 그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하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홍적문을 향해 이립이 술병을 내밀었다.
“고생할 친구를 위해 마지막 잔은 양보하지.”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사람 무섭게.”
“자네가 모시는 방주가 이렇게 너그럽다네.”
이립이 건넨 술병을 낚아챈 홍적문이 코웃음을 쳤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겨우 몇 방울 밖에 안 남았구만 생색은…….”
홍적문은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이립은 허공을 향해 훌쩍 신형을 날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적문과 헤어진 이립은 곧장 경공을 전개해 무한으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관도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든 그때.
이립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근처를 에워싼 음습하고 무거운 살기!
이를 느낀 이립이 실소하며 입을 열었다.
“어디의 고인께서 이 늙은 거지를 이처럼 반갑게 환영해 주시나?”
어둠 속에서 한 쌍의 눈이 차갑게 번뜩인 것도 그때였다.
“오랜만이오. 홍두타.”
살기의 주인이 히죽 웃으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별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 상대방의 모습에 이립이 흠칫했다.
“칠절마군?”
“그렇소. 나요.”
노단양의 눈에서 가공할 마기가 폭사되었다.
“북망산까지 갈 길이 멀다오. 그러니 그 무거운 육신은 여기 내려놓고 가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