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3)
신마의선-23화(23/500)
신마의선 (23)
“공청석유…… 말입니까?”
처음엔 농담인가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단악선의 눈빛은 항상 그렇듯 너무도 해맑았다. 그래서 더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그 모습에 초악량이 실소했다.
“이거 팔자에도 없는 공청석유를 구경하게 생겼군.”
“그게 구한다고 구해지는 거야?”
범계위의 반문에 한설화가 대답했다.
“더덕 구해 오니 산삼을 내놓으라는 것과 다르지 않지.”
그제야 단악선은 당황한 풍진성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죄송해요. 방금 건 못 들은 걸로 해 주세요.”
뒤늦게 풍진성이 정신을 차렸다.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이라는 말이 입안에 맴돌았지만 풍진성은 끝내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풍진성의 눈빛이 반짝였다.
“아!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고 보니 벌써 식사 시간이네요.”
풍진성이 아침 준비를 위해 일어나는 단악선을 만류했다.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단악선이 재빨리 전각 쪽으로 달려갔다.
단악선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풍진성이 다른 세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당분간 잘 부탁드립니다.”
“당분간?”
“네. 여기서 며칠 쉬어 갈까 합니다.”
가만히 풍진성을 응시하던 초악량이 희미하게 웃었다.
“우리를 믿지 못하는 게로군?”
풍진성은 부정하지 않았다.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해하네.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초악량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눈빛만큼은 차갑게 번뜩였다.
“자네에게도 미리 양해를 구하지.”
“무엇을 말입니까?”
“자네를 믿지 못하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거든.”
그 순간 잠자코 있던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꼬맹이라고 이용해 먹을 생각은 하지 마. 그랬다가는 내 손에 죽을 테니까.”
“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 그러지 않아야 할 거야.”
풍진성은 눈앞의 악인들을 약간은 다시 보게 되었다. 세상 다시 없을 악인들이라 들었는데…….
꼬장꼬장하지만 어째 순박해 보이기까지 하지 않은가.
하지만 수십, 수백을 죽인 악인들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마음이 쉬이 놓이진 않았다.
잠시 뒤 단악선이 약초들로 이루어진 아침을 가지고 왔다.
약초를 씹으며 맛을 음미하던 풍진성이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음, 나쁘지 않군요. 두성초 맛이 훌륭합니다.”
“이 자식 거짓말에 아주 능숙한데? 어떻게 이게 맛있을 수 있어?”
모두의 시선이 범계위에게 모였다.
범계위가 깜짝 놀라 눈을 끔벅였다.
“내가 입 밖으로 말했어? 속으로 생각한다는 게 그만…….”
말끝을 흐리는 범계위를 향해 풍진성이 빙그레 웃었다.
“처음에는 쓰고 떫지만 익숙해지면 그 안에 담긴 세세한 맛이 느껴집니다. 오래 씹으면 단맛이 올라오죠.”
그 말을 증명하듯 풍진성은 약초를 천천히, 그리고 꼭꼭 씹어 삼켰다.
“뭔가 특별한 방법이 있나 봅니다? 일반적으로 채취한 두성초에 비해 단맛의 여운이 길게 남는군요.”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아저씨라면 알아주실 거라 믿었어요.”
단악선은 자신이 약초를 재배하며 어떤 부분에 공을 들이고 신경을 썼는지 세세하게 설명했다.
“허, 그렇게까지 하셨습니까?”
설명에 열을 올리는 단악선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범계위가 눈앞의 약초를 덥석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범계위의 미간이 확 일그러진 것도 동시였다.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쓴맛이 입안을 가득 메웠던 것이다. 그러나 범계위는 애써 웃으며 단악선을 바라봤다.
“으음! 역시 단 의원 말대로……, 오래, 씹으니까 그 맛이 일품이군!”
“범 아저씨도 드디어 그 맛을 아셨……. 어?”
단악선이 놀란 눈으로 범계위를 바라봤다.
분명 표정은 웃고 있었는데,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범계위가 들고 있는 약초로 시선이 갔다.
“아저씨, 그건 고심락(苦深落)…….”
범계위가 씹고 있는 약초는 맛이 가장 쓰고 지독한 고심락이었다. 씹을수록 쓴맛이 배가 되는.
“그래, 정말 맛있게 먹는구나.”
그 눈물겨운 노력에 초악량이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자, 내 것도 가져가 먹어라.”
“이것도.”
한설화도 껴들었다.
억지로 웃느라 얼굴에 경련이 날 것 같았지만 물러설 순 없는 노릇.
범계위는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했다.
결국 두 사람이 내민 고심락을 모두 씹어 삼켜야 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초악량과 한설화를 향해 조소를 날렸다.
“훗, 이런 문외한들 같으니라고. 무공만 할 줄 알면 뭐 해? 미식의 미 자도 모르면서.”
“눈물이나 닦고 말해!”
“눈물? 무슨 눈물?”
범계위는 그제야 자신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난번에도 단 의원이 말했잖아. 고심락은 씹어 먹는 게 아니라 그냥 한두 번 씹고 그냥 삼키라고.”
“뭐? 언제?”
두 사람의 대화에 한설화가 끼어들었다.
“됐어. 이제 와 뭘 더 설명하려고 그래?”
그리곤 범계위를 향해 슬쩍 웃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미·식·가.”
“내 것도.”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범계위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 인간들이 감히 날 속여?”
“우리야 미식의 미 자도 모르는 문외한이니까.”
티격태격하는 세 사람을 보며 단악선은 웃음을 터트렸다.
‘묘하구나, 묘해.’
풍진성이 흥미로운 눈빛을 드러냈다.
‘무림에서는 사신으로 불리던 사람들인데.’
지금 단악선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눈빛에는 감출 수 없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
‘이 사람들이 정말 십대악인이 맞나?’
그래서 내심 걱정이 든다.
이 인연이 선연이 될지 악연이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인연이 과거의 불행과 같은 형태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단악선이 스승들의 전철을 밟게 놔둘 수는 없었다.
‘일단은 좀 더 지켜볼까?’
속단은 금물이다.
단악선의 미래가 걸린 일이니 말이다.
* * *
식사를 마친 뒤 단악선은 일과대로 범계위의 치료를 시작했다.
한참 침을 놓고 있는 와중 풍진성이 찾아왔다.
“제가 방해한 건 아니지요?”
“당연하죠. 괜찮아요.”
웃으며 반기는 단악선과 달리 범계위는 지그시 풍진성을 쏘아보았다.
“난 안 괜찮은데?”
단악선이 놀란 눈으로 범계위를 바라봤다.
“어디가 안 괜찮으신데요?”
“어? 아니야, 단 의원. 그런 의미가 아니라…….”
범계위는 한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단악선의 손에 들린 침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그것도 무려 한 자가 넘는 거대한 대침이었다.
그걸 보자 거짓말처럼 화가 쑥 가라앉았다.
“혹시 모르니 치료 도중 이상이 있다면 바로 말씀해 주셔야 해요.”
“말하면?”
“늦기 전에 손을 써야죠.”
“손을 쓴다는 것이 혹시……?”
범계위가 바닥 한편에 얌전하게 놓인 대침을 힐끔 바라봤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조금 아프기는 해도 효과는 확실하니까요.”
저런 대침이 몸 안을 파고든다고 생각하니 천하의 범계위도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래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치료를 이어 가던 단악선이 풍진성을 바라봤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여쭐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말문을 연 풍진성이 단악선을 향해 질문했다.
“나이 열다섯을 넘긴 직후 피가 차갑게 식으며 전신이 굳어 가는 병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맥(陰脈)이 발달하여 절맥(絶脈)이 되는 경우를 말하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증상이 어떤데요?”
“빈혈과 어지러움, 체력의 저하와 발열입니다.”
“그것만으로는 절맥으로 진단하기 성급한 것 같은데요?”
“네, 그래서 피부를 살짝 긁어 봤습니다. 얼마 안 가 검붉은 반점이 생기더군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혈관의 파열.
그것이 지혈되지 않으며 생기는 피부의 반점은 전형적인 절맥의 증상 중 하나였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단악선이 말했다.
“구음절맥(九陰絶脈)을 지닌 이는 대부분 태중에서 사산하고, 운 좋게 태어난다 해도 일 년을 넘기지 못하니, 그 환자는 아마 칠음절맥(七陰絶脈)이나 오음절맥(五陰絶脈)이겠네요.”
강해지는 음기를 양기가 받쳐 주지 못해 내부의 균형이 깨지고, 그로 인해 기혈을 비롯한 전신이 차가워져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병.
절맥은 난치를 넘어선 불치의 병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예외인 경우가 있었다.
“과거 스승님들께서 절맥을 치료하신 걸로 압니다.”
“그랬었죠.”
“혹시 그때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까?”
“네.”
풍진성의 얼굴이 환해졌다.
“혹시 그 의서를 제가 볼 수 있을까요?”
“그건 힘들 것 같아요.”
“네?”
풍진성의 얼굴 위로 당혹감이 떠올랐다.
설마 단악선이 거절할 줄은 예상 못 했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웃으며 대답했다.
“문자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서요. 당시 두 분 모두 치료에 전념하고 계셔서 경황이 없으셨거든요.”
“그럼?”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기억하고 있어요.”
“아!”
탄성을 흘리는 풍진성에게 이번에는 단악선이 물었다.
“그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누군데요?”
잠시 고민하던 풍진성이 이내 결심한 듯 단악선을 바라봤다.
“무림맹주의 막내딸입니다.”
“아! 그래서 무림맹과 연관되신 거로군요.”
“네. 무림맹주 막내딸의 치료를 제가 맡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풍진성이 말을 이어 갔다.
“덕분에 이번 파사단의 일도 수월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말끝을 흐리던 풍진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치료가 요원하다는 점입니다. 온갖 영약을 쏟아부어 겨우 목숨만 연명하는 상황입니다.”
“그런가요? 그럼 시작점이 틀린 건데…….”
“네?”
의아해하는 풍진성을 향해 단악선이 조심스레 입을 뗐다.
“절맥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예요. 병으로 인해 발현되는 증상 중 하나죠.”
“……!”
“다른 의원들이 지금까지 절맥을 치료하지 못했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에요. 시작부터 틀렸으니까요. 원인을 정확히 짚어 치료해야 하는데, 자꾸 증상에 초점을 맞추니 치료가 안 될 수밖에요.”
“아!”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풍진성의 모습에 단악선은 괜히 미안해졌다.
잠시 후 풍진성이 쓰게 웃었다.
“제가 겪어 보지 못한 희귀병 대부분을 오래된 의서에 의지하다 보니 어느새 저도 모르게 타성에 젖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책하실 거 없어요. 부모님께서도 힘들게 깨달으신 거니까요.”
발상의 전환이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오래전 일인데 기억하세요?”
단악선의 질문에 풍진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떤 일 말씀이십니까?”
“부모님께서 처음으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포기했던 환자요.”
“네, 기억납니다. 그 라마…….”
무심코 입을 열던 풍진성이 황급히 말끝을 흐렸다. 그리곤 서둘러 말을 이어 갔다.
“지병에 중독이 겹쳤는데, 억지로 독과 싸우다 결국 주화입마에 빠졌던 분 말씀이시죠?”
“네, 맞아요. 그때 부모님께서 처음으로 협력해 그분을 살려 내셨죠. 그분의 증상이 절맥과 매우 유사했어요. 그분 치료한 것을 계기로 부모님은 절맥의 치료법을 찾으신 거고요.”
“아!”
탄성을 흘리던 풍진성은 문득 의아했다.
“그런데 어째서 제게는 그 치료법을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을까요?”
“제게도 가르쳐 주시지 않았어요. 그냥 제가 두 분 곁을 지키며 익힌 거죠.”
“그때 잠시 곡을 떠나 있었던 게 안타깝군요.”
“어쩔 수 없었잖아요. 절맥이 흔한 병도 아니고요.”
단악선이 진지한 표정으로 풍진성을 바라봤다.
“게다가 절맥은 의원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병이 아니에요. 부모님조차 혼자서는 치료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하셨을 정도로요.”
“으음.”
침음하는 풍진성에게 단악선이 미소를 건넸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알려 주지 않으신 거라 생각해요. 스스로를 아끼지 않고 환자에게 모든 걸 쏟아부을 풍 아저씨를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그렇다는 건…….”
풍진성의 안색이 흐려졌다.
신의와 마의조차 힘을 모아 겨우 치료가 가능할 만큼 절맥은 어려운 병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치료법을 아는 사람은 단악선이 유일하다.
‘곡주님과 비슷한 실력을 지닌 의원이 또 있을까?’
풍진성이 내심 쓴웃음을 머금었다.
황실의 어의들과도 교류를 나누어 봤지만 단악선 정도의 의술을 지닌 의원은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
풍진성이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렇게 곡주님을 찾아뵙길 잘한 것 같습니다. 눈앞의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군요.”
그때 그들의 대화에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저기…….”
범계위였다.
“나 계속 여기 있었는데. 혹시 까먹었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