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31)
신마의선-231화(231/500)
신마의선 (231)
평소 이립만큼이나 제갈연을 못마땅해하던 홍적문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방문이 썩 달갑지 않았다.
무림맹의 위세를 과시하듯 세가의 가주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온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나 어디까지 지금은 자신이 상주.
조문객을 대놓고 박대할 수는 없었다.
홍적문이 직접 나서 제갈연과 세가의 가주들을 맞이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무림맹을 대표해 제갈연이 이립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에 홍적문도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시했다.
“공사가 다망하실 터인데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강호에 헌신해 온 고인의 높은 뜻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 숭고한 의지는 저희 무림맹이 이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
홍적문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제갈연의 의중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문제 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상중에 고성이 오가 봐야 고인만 욕되게 할 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어진 제갈연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저희 무림맹도 이번 사건의 흉수를 찾는 데 최선을 다해 협조하겠습니다.”
그녀가 흉수를 언급하는 순간, 빈소를 채우고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그녀에게 모아졌다.
제갈연의 의도를 알아챈 홍적문이 그녀를 제지하려 했다.
그러나 제갈연은 빠르게 말을 이어 갔다.
“방주님의 직접적인 사인이 마공에 의한 것이라 들었습니다. 그런 만큼 이번 일은 과거의 은원을 떠나 전 무림이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 생각합니다. 돌아가신 방주님께서도 분명 그러기를 원하실 테고요.”
웅성.
“마공?”
“그렇다면 흉수가 마교의 인물이라는 말인가?”
마른 짚에 불이 옮겨붙듯 순식간에 번져 가는 소요에 홍적문이 이를 악물었다.
아직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기 전이었다.
그래서 이립의 명예를 위해 구체적인 사인을 언급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소문에 이립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건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한데 제갈연에 의해 틀어져 버렸다.
제갈연과 함께 온 황보세가의 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돌아가신 방주께서도 언제나 무림의 화합을 우선하지 않으셨소?”
하북 팽가의 가주가 그 말을 받았다.
“그렇소. 우리가 반목한다면 방주님의 죽음도 헛되게 될 터. 우리는 반드시 힘을 합쳐야 하오!”
닥치라는 일갈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홍적문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가까스로 억눌렀다.
제갈연이 묘한 눈빛과 함께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마침 저희가 이번 사건의 단서가 될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조사 중인 단계인지라 함구하고 있었지만 상황이 이리된 이상 부득이하게 밝히지 않을 수가 없군요.”
“그게 무슨 말이오? 단서가 될 만한 정보라니?”
홍적문의 반문에 제갈연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중원에 마교의 무공을 익힌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무림맹은 이를 중대 사안이라 판단해 일찍부터 그들의 신변을 파악해 두고 있었습니다.”
그 말에 조문객 가운데 누군가가 외쳤다.
“마공을 익힌 자가 중원을 활개하고 있다는 말이오?”
이미 이립을 살해한 흉수가 마공을 사용했다는 것이 밝혀진 상황.
거기에 던져진 제갈연의 발언은 그야말로 끓는 기름에 물을 부은 격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제갈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얼마 전 녹림도 중에서 마교의 무공을 익히다 주화입마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추적하고 있었죠.”
홍적문이 제갈연을 노려봤다.
설마 그녀가 이 자리에서 그 내용을 공표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실제로 홍적문은 조사 과정에서 신마의가에 관한 정보 역시 파악해 두고 있었다.
또한 이에 대해 이립과 사전에 의논을 마친 뒤였다.
문제는 시기였다.
민감한 문제이고, 자칫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단악선을 곤경에 빠트릴 수도 있었다.
진실을 알지만 세상사가 뜻대로 흘러가지만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었다.
편협한 시선과 오해로 인해 단악선이 힘들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래서 이를 발표할 때를 조율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립이 먼저 가 버린 것이다.
이 와중에 제갈연은 한발 앞서 이립의 사망 원인과 마공을 엮어 폭탄을 던져 버렸다.
교묘하게 앞뒤 상황을 잘라 내고 단편적인 사실만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있었다.
그 의도는 명백했다.
여론을 형성해 무위를 압박하려는 심산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를 쫓고 있다 했소? 그렇다면 그자의 소재도 파악한 것이오?”
화산파 장문인인 진명진인의 물음에 제갈연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정파인들은 출입할 수 없는 금지. 무위에 있습니다.”
“무위라면…….”
“네. 그곳에 위치한 신마의가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더군요.”
진명진인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무위에는 단악선뿐만이 아니라 한설화도 있었기 때문이다.
제갈연이 중인들을 향해 외쳤다.
“우리는 반드시 그의 신병을 확보해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마공을 익힌 연유를 밝혀낸다면 방주님의 죽음에 대한 진실 또한 백일하에 드러날 테니까요.”
웅성대는 중인들과 달리 진명진인을 비롯한 각파의 장문인들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이미 단악선을 만나 본 적이 있기에 누구보다 그의 올곧고 온화한 성품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미타불.”
나직하게 불호를 외며 소림의 방장인 법연이 앞으로 나섰다.
“그 말씀이 사실입니까?”
“여기가 어떤 자리라고 감히 거짓을 입에 담겠습니까?”
제갈연이 웃으며 법연의 시선을 받아 냈다.
“신마의가에 의심스러운 정황이 포착된 것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해남검파에서 마교의 무공을 익힌 자가 나타나 수하들을 죽음에 몰아넣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셨는지요? 공교롭게도 그 해남검파의 부문주인 벽화령이 최근 무위의 망산초자와 혼인을 약속했다고 하더군요.”
중인들의 얼굴에 떠오른 한 줄기 의혹.
이를 파악한 제갈연이 기세를 몰아 분위기를 이끌었다.
“마공과 관련된 정황들이 모두 무위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반복되는 우연이 과연 단순한 우연이라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반드시 그곳을 조사할 필요가 있…….”
“그만!”
홍적문의 쩌렁한 일갈이 제갈연의 말을 잘랐다.
“맹주님의 뜻은 알겠으나, 이 자리에 어울리는 이야기는 아닌 듯합니다.”
정색하는 홍적문을 향해 제갈연이 실소했다.
“어울리지 않다니요? 방주님을 살해한 흉수를 찾기 위해 누구보다…….”
홍적문이 다시 한 번 제갈연의 말을 막았다.
“이 자리는 고인의 넋을 기리고 애도하는 자리입니다. 정치는 자중하시지요.”
완곡하지만 확실한 경고가 담겨 있는 홍적문의 음성에 제갈연의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
“제 순수한 의도를 왜곡하시는군요.”
“별로 순수해 보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당사자인 무위의 인사들도 이곳에 없지 않습니까? 사안을 판단함에 있어, 양측 의견을 모두 듣고 판단한다는 것이 돌아가신 방주님의 원칙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 순간, 제갈연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다급히 이쪽으로 달려오는 한 사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마침 저기 당사자가 오는군요.”
제갈연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린 홍적문은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울면서 달려오는 단악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저씨!”
홍적문을 향해 달려온 단악선이 울먹이며 외쳤다.
“방주님은요?”
이제껏 담담한 얼굴로 의연하게 버텨 온 홍적문이었다.
한데 단악선의 눈물을 마주한 순간 말라 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끄으……. 늦었다. 너무…… 늦어 버렸어.”
“아아!”
무너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는 단악선의 어깨를 홍적문이 끌어안았다.
“미안하다. 내가 미안해. 지켰어야 했는데……. 내가 그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목 놓아 서럽게 우는 두 사람의 모습에 장내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때였다.
“혀, 혈수존자!”
“망산초자까지!”
단악선을 따라 장내로 들어서는 초악량과 범계위를 발견한 무림인들이 대경실색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개방 방주인 이립의 상중인 만큼 조문객들 역시 모두 정파 쪽 인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운집해 있던 좌중이 썰물처럼 갈라지며 널찍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두 사람의 명성과 압도적인 존재감이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게 만든 것이다.
그중 몇몇은 초악량과 범계위를 노려보며 적대감을 드러내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감히 앞으로 나설 수 없었다.
그런 그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초악량과 범계위는 차디찬 눈빛을 뿌리며 단악선 뒤에 시립했다.
홍적문이 뒤늦게 자세를 바로 한 뒤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립의 이름이 새겨진 위패를 눈에 담은 초악량이 무거운 탄식을 흘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네.”
범계위도 위패를 향해 입술을 삐죽였다.
“거, 사람……. 뭐 그리 급하다고 이리 일찍 가나 그래. 그래도 기왕 갔으니 극락왕생해. 다음 생에는 거지 하지 말고, 번듯한 집에서 태어나 만수무강 다 누리고.”
홍적문이 두 사람을 향해 정중히 포권했다.
“방주님께서도 두 분의 방문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때였다.
“아미타불. 기쁜 자리에서 만나야 하는데, 이런 곳에서 다시 보게 되어 심히 유감스럽소이다. 단 시주.”
소림의 법연이 단악선을 향해 안쓰러운 눈빛을 건넸다.
한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량수불. 금일 빙옥선자께서는 함께 조문하러 오지 않으셨는지?”
화산의 진명진인을 시작으로.
“오랜만일세, 단 의원.”
곤륜의 장문인인 광진도장과…….
“슬픔을 그만 거두시게, 단 의원.”
형산파의 장문인인 진조운도 단악선을 향해 다가와 위로를 건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제갈연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지금껏 대화의 분위기를 주도해 오던 그녀였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중요 인사들 대부분이 단악선을 중심으로 빼곡하게 모여 있었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불편한 시선을 느낀 것도 그때였다.
세가의 가주들이었다.
뭐라도 해 보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입술을 지그시 씹은 제갈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사파의 거마들이 개방의 성지인 이곳 총단에 스스럼없이 들어설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런데 뜻밖에도 소림의 법연이 나서 혀를 찼다.
“쯧쯧.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데 정사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오.”
그 말을 곤륜의 광진도장이 받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우리 정파가 옹졸하다 욕해도 할 말 없겠구먼.”
제갈연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졌다.
비단 각파의 장문인들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들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홍적문이 쐐기를 박은 것도 그때였다.
“혈수존자 초악량, 망산초자 범계위는 개방에서 정식으로 인정한 청의빈객이오. 더 이상 우리 개방 사람에게 무례를 범하지 마시오.”
제갈연이 뭔가 반박을 하려 했지만 단악선의 말이 먼저였다.
“방주님을…… 뵙고 싶어요.”
“그래, 그래야지.”
홍적문이 단악선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내가 안내하마.”
단악선과 함께 걸음을 옮기던 홍적문이 고개를 돌려 제갈연을 바라봤다.
“애도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오.”
여전히 눈물범벅인 단악선의 얼굴을 눈짓하며 홍적문이 말했다.
“하긴……. 가슴을 지닌 자라면 진즉에 이랬을 테지.”
“……!”
제갈연이 단악선과 함께 내실로 향하는 홍적문을 노려봤다.
그러다 문득 얼굴에 날아와 박히는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제갈연이 흠칫했다.
가만히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의 주인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그 시선의 주인, 초악량이 불쑥 입을 열었다.
“이 사달의 배후에 있는 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다.”
“무슨 뜻이죠?”
제갈연의 반문에 이번엔 범계위가 섬뜩한 눈빛을 흘리며 대답했다.
“지옥에 던져 버릴 거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