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32)
신마의선-233화(232/500)
신마의선 (233)
일순 말문이 막힌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단악선을 향해 제갈연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건넸다.
“예외를 둘 수는 없겠죠? 그토록 어렵게 만든 금지일 테니까요. 그걸 저희도 인정하기에 녹림 총표파자의 행방을 알면서도 묵인해 왔던 것이고요.”
무슨 일이든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어렵지 않았다.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그다음이 없으리란 법이 없었다.
당연히 본래의 의미는 퇴색할 터.
“무엇보다 정파의 상징적인 존재였던 개방 방주님의 죽음을 사파인들이 조사한다는 게 웃기지 않나요?”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불편한 언급에 장내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그럼에도 제갈연은 당당한 표정으로 마지막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방주님의 장례가 끝나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오늘 하지 못한 이야기를 모두 들려 드리겠어요.”
내심 불쾌했지만 홍적문은 상주라는 자리를 되새기며 다시 한 번 참았다.
“배려에 감사하오.”
끝까지 뻣뻣한 홍적문의 모습에 제갈연이 내심 코웃음을 쳤다.
구파일방도 사람이 모인 이상 이해관계와 명분 앞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갈등과 반목을 넘어 하나로 결속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개방이었다.
당장은 자신을 냉대하지만 결국 감정이 가라앉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무림맹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대문파의 결속도 예전 같지 않으니 의견이 모이지도 않을 것이고.’
당장 조문객의 상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 어디에도 청성파의 조문객은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에 장문인으로 취임한 운정진인은 뒤숭숭한 청성파 내부의 분위기를 다스리기도 급급한 상황.
게다가 청성파 전대 장문인이었던 청명산인이 초악량의 손에 절명한 사건으로 인해 개방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졌다 들었다.
제자들을 이끌고 초악량을 단죄하려 했던 운정진인을 이립이 막아섰기 때문이다.
이립은 그 자리에서 청성칠자의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며 오히려 초악량의 복수에 명분을 실어 주었다.
‘공동파도 마찬가지.’
대놓고 드러내지 못했을 뿐, 초악량과 범계위를 청의빈객으로 받아들인 개방의 처사에 대해 내심 불만을 지니고 있을 게 분명했다.
아무리 거대한 제방도 작은 균열로 무너지는 법.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녀의 의중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었다.
제갈연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초악량이 불쑥 입을 열었다.
“승냥이들 무리에 호랑이 한 마리가 섞여 있더군.”
그것도 제법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감춘 놈이었다.
범계위 역시 모용극이 신경 쓰이는 눈치였다.
“그 정도나 되는 고수가 어째서 그 계집애 밑에 있는 거유?”
“저들의 사정이야 어찌 알겠느냐.”
초악량이 밀려드는 조문객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뒤늦게 아미와 무당, 점창을 비롯한 공동과 종남파의 조문객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성파에서도 조문객을 보내왔다.
명색이 구대문파인 이상 참석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나 최근 들어 무서운 기세로 입지를 굳혀 가는 형산파에게 구대문파 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 특히 위기감을 느꼈던지 장문인인 운정진인이 직접 방문했다.
조문을 마치고 돌아서던 운정진인이 초악량과 범계위를 발견하고 움찔했다.
하지만 애써 태연히 시선을 거두며 모른 척했다.
굳이 이 자리에서 언성을 높여 봐야 득보다 실이 많을 게 뻔했다.
공동파를 제외한 다른 구대문파 사람들이 단악선 일행에게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러 밤이 깊자 홍적문은 구대문파의 주요 인물들을 회의실로 모이게 했다.
그리고 이립을 대신해 회의를 주재했다.
물론 단악선을 위시한 초악량과 범계위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이렇게 따로 자리를 마련한 것은 여러분께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입니다.”
홍적문은 그간 이립의 지시로 개방이 조사한 정보들을 자세히 설명했다.
“중원에 마공 비급이 나돌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실제로 마공을 익히다 주화입마에 걸린 자들도 적지 않고요. 이 자료는 본 방이 파악한 관련자들의 명단입니다.”
최근 구대문파 내에서 실종되거나 행방이 묘연한 자.
그들 대부분이 마공과 관련되었다는 말에 구대문파의 수뇌부들은 침음성을 흘렸다.
그 숫자가 무려 백여 명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공개하는 것은 그만큼 사안이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구대문파의 수뇌들이 무거운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 역시 자체적인 조사를 통해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한 뒤였다.
하지만 내부의 문제라 판단해 공개를 꺼려 왔었다.
“상황이 이리된 만큼 남궁세가의 가주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합니다. 칠절마군에 대한 단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남궁백을 대신해 참석했던 남궁호는 이 자리에 없었다.
보고를 위해 급히 떠났기 때문이다.
홍적문이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위에 머물고 있다는 녹림도 역시 조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단 의원, 도와주겠나?”
조심스러운 홍적문의 물음에 단악선은 스스럼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분에 대한 조사는 이미 마쳤어요. 그리고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그 밖에도 몇 가지 더 알아낸 것이 있었고요. 마공으로 인해 주화입마에 걸렸던 사람은 그분 말고도 또 있었거든요.”
단악선은 해남검파의 부문주인 벽화령이 신마의가를 찾아온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 갔다.
“그 두 사람을 통해 얻은 정보 중에 중첩되는 것이 있었어요. 바로 강명이라는 이름이에요.”
“역시…….”
홍적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급 뒤에 적혀 있던 이름 맞느냐?”
“네.”
“혹시 그 강명이라는 이름에 대해 알아낸 바가 있느냐?”
“저희도 조사 중이지만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요.”
“…….”
침묵을 이어 가던 홍적문이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이대로라면 무림맹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겠군요.”
홍적문은 제갈연이 떠나기 전에 남긴 말이 마음에 걸렸다.
이번 일에 대해 오랫동안 조사해 왔다고 했으니 그만큼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을 터.
저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방식은 원치 않았지만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서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만 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제는 각파의 장문인들께서 직접 나서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개방의 이목을 벗어난 자들이 분명 더 있을 테니까요.”
법연의 불호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탄식과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 모습에 단악선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직접 문파의 오점을 찾아내야 하는 저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홍적문이 장문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저희 또한 최선을 다해 조사하겠습니다.”
결국 구파일방의 회의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자리를 뜨기 전에 다시 한 번 명복을 비는 구대문파의 수뇌들과 홍적문은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그렇게 그들을 모두 배웅한 뒤.
회의실을 나선 홍적문을 향해 몇 사람이 다가섰다.
회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개방의 장로들이었다.
“언제까지 방주 자리를 공석으로 비워 둘 수는 없소이다.”
얼굴이 얽은 곰보, 늙은 거지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백화분타의 분타주직을 지내다 최근 장로직에 오른 추면신개(醜面神丐)였다.
무공이 크게 뛰어나지도, 언변이 훌륭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개방 내에서 누구보다 신망이 두터운 사람이었다.
“신 장로님의 말씀대로요.”
다른 개방의 장로들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홍 장로야말로 다음 방주직을 맡아 가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우리는 이미 의견을 모았소.”
“평소 방주님과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오지 않으셨소? 부디 방주직에 올라 우리 개방을 이끌어 주시오.”
새로운 방주에 자신을 추대하려는 장로들의 말에 홍적문이 나직이 한숨을 터트렸다.
“저는 그와 같은 중책을 감히 맡을 수 없습니다.”
당황한 장로들을 향해 홍적문이 단호한 눈빛을 드러냈다.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바로 흉수를 찾아 단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를 좋게 봐 주신 마음은 감사하지만, 그 제안은 부디 거두어 주십시오.”
워낙 강경한 홍적문의 태도에 장로들이 아쉬운 듯 한숨을 흘렸다.
“어쩔 수 없지. 그럼 차기 방주는 개방의 절차에 따라 정식으로 뽑도록 합시다.”
장로들이 물러가자 단악선도 홍적문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럼 저도 이만 돌아가 볼게요.”
“그래. 더 붙들고 싶다만…….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구나.”
홍적문이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홍적문을 향해 초악량과 범계위는 다시 한 번 위로를 건넸다.
그렇게 밖으로 나선 단악선은 개봉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곡소리를 마주하고 마음이 울적해졌다.
개방의 정신적 지주이자 버팀목이었던 이립.
그런 그의 죽음 앞에 누구보다 큰 상실감을 느끼는 이는 바로 개방 방도들이었다.
그러다 문득 단악선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거지들 중에서 유독 서글프게 오열하는 한 사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유독 덩치가 작은 어린 거지.
방소방이었다.
“잠시 만나고 올게요.”
초악량과 범계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악선아!”
뒤늦게 단악선을 알아본 방소방이 목을 놓아 울음을 터트렸다.
“사부님께서……. 사부님께서…….”
“알아, 소방아. 그 마음…… 나도 너랑 같아.”
“사부니임! 어허헝!”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두 사람은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흉수는 내가 찾을 거야! 이 손으로 반드시 사부님의 원한을 풀어 드릴 거야!”
방소방의 원한 가득한 눈빛이 단악선은 몹시 안타깝고, 가슴 아팠다.
하지만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단악선이 결의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노력할게.”
* * *
그날 밤.
개봉을 떠나 무위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밤이 깊어 부득이하게 야영하게 된 세 사람은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았다.
타닥타닥.
주위는 고요했다.
단악선도, 초악량과 범계위도 말이 없었다.
이따금 습기를 머금은 장작에서 튀어 오르는 불꽃 소리만이 장내를 채우는 전부였다.
무릎을 가슴팍에 끌어안은 채 타오르는 모닥불을 응시하던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너무 일찍 장례식에서 돌아온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적어도 마지막 가는 길은 끝까지 배웅하고 싶었다.
하나 발인까지는 적어도 며칠은 걸릴 터.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그 무거운 침묵을 견디기 힘들었던 것일까.
단악선의 눈치를 살피며 범계위가 입을 열었다.
“칠절마군 찾으려다 마교까지 줄줄이 딸려 오는 거 아냐?”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명확히 밝혀진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칠절마군은 마교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것 같아요.”
“어? 그럼 그 자식은 어디서 혈라강기를 얻은 거야?”
“그걸 알아내야죠.”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범계위를 향해 초악량이 설명을 대신했다.
“일단 새외 세력이 마교와 결탁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노단양은 새외 세력 중 한 곳인 혈운사를 공격했지. 만약 같은 편이었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필시 다른 목적이 있을 거예요. 그런 만큼 우리는 우선 하나의 대상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요.”
“하나만?”
“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칠절마군을 찾는 데 주력하는 거죠.”
“쉽지가 않을 텐데? 초 형도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잖아.”
“빈손으로 오신 건 아니죠. 초 아저씨께서 칠절마군에 대한 단서를 얻어 내지 않으셨다면 방주님을 살해한 흉수가 누군지 알아내지 못했을 테니까요.”
단악선이 두 사람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무림맹이 아직 모르는 정보를 저희가 선점하고 있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