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33)
신마의선-234화(233/500)
신마의선 (234)
제갈연은 아직 새외 세력의 동향에 대해서는 모르는 눈치였다.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할 필요가 있어요.”
노단양에게 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그들이 아니었다.
특히 자신들의 의도와 다르게 마공을 대성한 노단양을 마교가 좌시할 리 없었다.
그들이 마공서를 강호에 흘린 목적은 최대한 많은 고수들을 포섭하기 위한 것.
무슨 수를 써서라도 노단양과 접촉하거나 제거하려 들 것이 분명했다.
“역시 우리 단 의원!”
단악선의 말이라면 일단 고개부터 끄덕이는 범계위였다.
반면 초악량은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라. 반드시 그리될 것이다.”
이 순간 초악량은 한 사람을 떠올랐다.
누구보다 새외에 익숙했고, 잘 아는 사람.
바로 한설화였다.
* * *
풍진성이 개봉에 도착한 것은 이립의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서였다.
이미 방문첩을 보냈기에 홍적문이 직접 나와 풍진성을 맞이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조문 인사를 건네는 풍진성의 손을 홍적문이 마주 잡았다.
“늦게라도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주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한시라도 서둘러 오고 싶었지만 위중한 환자가 있어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해합니다.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살려야지요.”
“그런데 방주님께서는……?”
“따라오시지요.”
홍적문의 안내에 따라 개방 본타 내부로 들어선 풍진성은 잠시 후 작은 사당 앞에 이르렀다.
역대 개방 방주들의 신위(神位)가 모셔져 있는 곳이었다.
그중 가장 끝자리에 이립의 위패가 놓여 있었다.
‘영도개방(領導丐幇) 홍두타(紅豆駝) 이립(李岦) 신위’라 쓰인 위패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풍진성이 이내 경건한 태도로 향을 살라 영령 앞에 바쳤다.
홍적문이 씁쓸하게 웃었다.
“방주님의 유해는 화장을 해서 가까운 강에 뿌렸습니다. 평생을 빌어먹고 산 거지 주제에 몸을 누일 땅 한 뼘마저 탐낸다면, 그거야말로 염치없는 짓이라고 말씀하시곤 했거든요.”
“그곳이 어딘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홍적문이 앞장서 안내했다.
이윽고 한참을 걸어 강가에 도착한 두 사람은 거칠게 내달리는 벌건 흙탕물을 마주했다.
황하에 의지해 발전하고, 또 황하에 의해 몰락하기를 반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개봉은 수많은 물줄기를 끼고 있는 곳이었다.
말없이 강물을 응시하던 풍진성이 가지고 온 술병의 마개를 열었다.
그리곤 병을 거꾸로 뒤집어 강물을 향해 부었다.
“산서 분주라. 우리 방주, 호강하시는구려.”
빙그레 웃던 홍적문이 풍진성의 손에 들려 있던 술병을 낚아챘다.
한 모금 정도밖에 남지 않아 바닥에 찰랑이는 술을 확인한 홍적문이 의아해하는 풍진성을 향해 웃음을 건넸다.
“방주와 나 사이에는 불문율이 하나 있었습니다. 마지막 한 모금을 비우는 사람이 빈 병에 술을 채워 돌려주는 거지요.”
“아! 그래서…….”
이유를 깨달은 풍진성이 안타까운 눈빛을 흘렸다.
이립은 더 이상 술병을 채워 돌려줄 수 없었다.
남아 있던 술을 단번에 입에 털어 넣은 홍적문이 수염에 묻은 술을 훔쳐 내며 씩 웃었다.
“마지막 술을 비웠으니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제가 술병을 채워야겠군요.”
그렇게라도 이유를 만들어 다시금 이곳을 찾고 싶은 홍적문의 마음을 풍진성이라 해서 모를 리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을 응시하던 풍진성이 입을 열었다.
“이번 사안에 대해 곡주님께서 어느 정도나 관여하실 것 같습니까?”
단악선과 풍진성의 관계를 잘 아는 까닭에 홍적문은 굳이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중원에 흩어져 있는 마교 비급은 우리 개방이 도맡기로 했고, 단 의원은 새외의 동향 파악과 칠절마군의 행방을 추적하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새외 쪽은 개방보다 신마상단이 활동하기 용이하니까요.”
“그렇……습니까.”
무거운 한숨을 흘리는 풍진성의 모습에 홍적문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이 많으시겠습니다.”
홍적문이 건넨 위로에 풍진성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어쩌겠습니까? 그게 곡주님 뜻이라면 따라야지요. 그 고집을 누가 꺾겠습니까? 다만…….”
“……?”
“너무 일찍 모진 풍파에 휩쓸리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세상을 향한 단악선의 큰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심 단악선이 평범한 행복을 누리길 바라는 풍진성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안타깝기만 했다.
“나이로 가두기에는 그 그릇이 너무 큰 것이지요.”
홍적문의 말에 풍진성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왜 아니겠는가.
“이래서 피는 못 속이나 봅니다.”
부친인 신의가 그랬고 모친인 마의가 그랬듯, 두 사람에게 물려받은 단악선의 재능과 의지는 그 누구와도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출중한 것이었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자리를 지키기를 잠시.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풍진성의 인사에 홍적문이 고개를 숙였다.
“부디 살펴 가시길.”
홍적문의 배웅을 받으며 개봉을 벗어난 풍진성은 복잡한 눈빛으로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관도 끝자락에 서 있던 누군가가 다가선 것도 그때였다.
약관을 넘긴 지 두 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앳된 얼굴이 인상적인 청년이었다.
“오셨습니까. 스승님.”
풍진성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성의가를 세울 때부터 함께했던 가장 오랜 제자, 관옥심이었다.
묘한 눈빛을 던지는 스승의 모습에 관옥심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왜 그리 빤히 보십니까?”
“이제 너도 슬슬 독립할 때가 된 것 같아서.”
“예? 갑자기요?”
눈에 띄게 당황한 자신의 수제자를 향해 풍진성이 피식 웃었다.
“꽤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일이다. 이제 너도 네 이름을 걸고 의가를 세우기에 부족함 없는 실력 아니더냐?”
관옥심이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아닙니다. 아직도 스승님 따라가려면 멀었는걸요.”
“배울 만큼 충분히 배운 녀석이 엄살은.”
관옥심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거두고 풍진성을 응시했다.
“진심이십니까?”
“아무래도 때가 된 것 같구나.”
관옥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오랜 시간 모셔 왔던 스승이었기에 풍진성의 의중을 눈치채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음을 굳히신 모양이군요.”
풍진성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성의가를 정리하고 무위로 가려 한다.”
관옥심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이미 앞서 여러 차례 비슷한 말을 해 왔던 풍진성이었다.
“한데 단 의원님께서 받아 주시겠습니까? 전에도 단호하게 거절하셨다면서요?”
풍진성이 씨익 웃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말하지 않고 가려 한다.”
“예?”
“비 그을 지붕 하나 남기지 않고 죄다 정리할 생각이다. 오갈 데 없는 가엾은 신세가 되면 그리 쉽게 내치진 못하실 게다.”
“하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관옥심이 우려 가득한 눈빛을 건넸다.
“맨손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어떻게 일궈 오신 의가인데요. 쌓아 오신 경력과 명성을 이렇게 쉽게 내려놓으신다고요? 저라면 아까워서 그러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한 번이면 족하니까.”
“네?”
“소중한 인연을 잃는 경험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다는 의미다.”
풍진성이 웃으며 관옥심을 다독였다.
“그런 표정 할 것 없다. 이는 오히려 내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어진 풍진성의 말에 관옥심은 더없이 복잡한 눈빛을 흘렸다.
“두 스승님의 의술을 더욱 발전시킨 분이시다. 그런 그분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기연이니라.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던 내 의술도 그분과 함께라면 벽을 깨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의원에게 있어 이보다 더한 횡재가 어디 있겠느냐?”
“스승님…….”
“그러니 너도 그리 알고 미리 준비하도록 해라.”
“……그리하겠습니다.”
관옥심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의 뜻이 너무 확고해 더 이상의 설득은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 *
신마의가 내부의 회의실.
초악량을 위시한 범계위와 한설화, 거기에 사무심과 능소밀, 악호군까지 모인 자리에서 단악선이 회의를 주재했다.
“마교 비급에 관해서는 개방이 추적할 거예요. 그러니 우리는 처음 계획했던 대로 칠절마군을 찾는 데 주력하면 될 것 같아요. 그의 신병만 확보한다면 모든 배후가 밝혀질 테니까요.”
“그런데 잡는다 해도 그놈이 순순히 입을 열까?”
악호군의 반문에 단악선의 눈 위로 강렬한 빛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제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요.”
평소 온화하던 단악선의 눈빛과 판이하게 다른 섬뜩한 느낌에 악호군이 흠칫했다.
이때 능소밀이 가져온 서류들을 탁자 위에 올리며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언급하셨던 강명이라는 이름 말입니다.”
“알아내셨나요?”
반색하는 단악선을 향해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기련산 인근에 위치한 객잔 중에 동일한 이름을 사용하는 곳이 있습니다.”
“객잔이요?”
“네. 우리 상단이 새외를 오가는 길과 겹치는 지역이어서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능소밀이 말끝을 흐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곡주님께서 찾던 곳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마교와의 연관성을 딱히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일부러 눈썰미 좋은 녀석들을 뽑아 손님으로 머물게 했습니다. 원래부터 서역을 오가는 교역상들이었던지라 달리 위장할 필요도 없었고요.”
문제는 보고의 내용이었다.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기로는 그냥 평범한 객잔이라고 하더군요. 역사가 아주 오래되기도 했고요.”
“비급에 기재된 이름이 그곳을 가리키는 건 확실한가요?”
“실종된 자들 가운데 일부가 그 객잔에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 소문 없이 종적을 감췄다고 합니다.”
상대는 마공을 연성한 무림인이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으로 더 이상 조사는 불가능했습니다. 흑점에 감시를 의뢰하려고도 생각해 봤지만, 자칫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할 수도 있는지라 일단 곡주님의 의향을 여쭙고 싶었습니다.”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무심이 의견을 개진한 것도 그때였다.
“만약 그곳이 마교의 거점이라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뭔가 알아내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능소밀과 시선을 마주한 채 사무심이 말을 이어 갔다.
“제가 마교라면 분명히 최소한의 인원으로 방문자를 구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마공을 익힌 자가 찾아오면 만나고, 일반인에겐 그냥 객잔 운영을 하는 형태로 말입니다.”
“그 말은…….”
“마공을 익힌 흔적이 있어야만 상대가 먼저 접촉해 올 거라는 뜻입니다.”
나름 합당한 추론에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식이라면 객잔의 이름이 알려져도 마교 입장에서는 부담이 없겠군요.”
“그렇지. 역사가 오래된 객잔의 이름을 내건 것도 그 때문일 걸세. 찾는 게 너무 어렵다면 마공을 익힌 자들도 찾아오지 못할 테니까.”
마교 입장에서는 안전하게 옥석을 구분하는 방법인 셈이었다.
“누군지 몰라도 꽤나 머리가 좋은 사람 같아요.”
단악선의 말에 모두가 수긍했다.
마교의 비급을 중원에 흘려 무림인을 끌어모으는 계책도 그렇지만 객잔을 이용하는 방법도 마찬가지.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능소밀의 말에 고심을 거듭하는 단악선과 달리 범계위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가서 다 뒤집어 놓으면 되는 거 아냐? 마교 놈들이라면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 않겠지. 마공을 쓰는 놈들이 기어 나오면 전부 다 때려잡…….”
범계위가 말끝을 흐렸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향한 초악량과 한설화의 눈빛이 곱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웃으며 만류했다.
“그건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해요.”
단악선이 사무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새외 세력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가급적 많은 눈과 귀가 필요해요. 사 총관님께서 초원의 부족들과 인연이 있으시니 그들의 인맥을 동원할 방법이 있을까요?”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사무심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한설화가 불쑥 입을 열었다.
“나는 북해빙궁에 다녀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