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35)
신마의선-236화(235/500)
신마의선 (236)
돌연 서늘하고 예리한 무언가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자신의 가슴을 향해 날아드는 것을 느낀 북궁정이 본능적으로 황급히 물러섰다.
동시에 쌍장을 휘둘러 난데없이 짓쳐들어온 예기를 걷어 내려 했다.
꽈앙!
차가운 대기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한 사람의 신형이 허공에 떠올랐다.
북궁정이었다.
실 끊어진 연처럼 한참을 날아간 북궁정이 꼴사납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우웩!”
그대로 한 움큼의 선지피를 토해 낸 북궁정이 비틀거리며 신형을 일으켰다.
그의 두 팔은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그토록 자신했던 절학마저 소용 없었다.
가까스로 가슴은 방비했으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손목뼈가 부러져 버린 것이다.
반면 한설화는 언제 손을 썼냐는 듯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시치미를 뚝 뗀 그녀의 평온한 신색에 북궁정은 내심 신음을 삼켰다.
일찍이 그녀에 대한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
장내에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너무나 압도적인 한설화의 신위에 북해빙궁의 무인들은 기가 질려 버렸다.
빙궁 내에서 궁주를 제외하고 가장 강한 무인인 북궁정이 고작 일합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다니!
한설화가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그녀와 시선을 마주한 북해빙궁의 무인들이 흠칫하며 물러섰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한설화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전면을 가득 메운 북해빙궁 무인들 사이에서 날카롭고 섬뜩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 것도 그때였다.
“크하하. 거봐. 우리 온 거 이미 안다니까?”
인파를 헤치며 앞으로 나서는 두 사람을 발견한 북궁정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수하들 사이에서 어슬렁거리며 모습을 드러낸 비대한 장년인.
사자의 갈기 같은 머리카락을 치렁치렁하게 늘어트리고 두 눈에서는 자욱한 핏빛 광망이 줄기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뭐가 그리 재밌는지 연신 킬킬대며 웃고 있었다.
반면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걸어 나오는 노인은 몹시 왜소했다.
게다가 깡마르고 초췌해 툭 건드리면 그대로 나자빠질 것만큼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다.
한데 그 모습이 무색하게 어깨에 올린 검은 칠십 근은 족히 넘어 보이는 거대한 광도검이었다.
그는 시종일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으나 두 눈만큼은 한설화에게 고정된 채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다.
“그러게 우리에게 맡기라니까 왜 사서 고생을 자초하나 그래.”
귓전을 파고드는 장년인의 카랑카랑한 음성에 북궁정이 침음했다.
“육마존(六魔尊)…….”
그제야 한설화는 계속해서 거슬렸던 이질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한때 호교십위(護敎十衛)라 불리었던 마교 교주의 최측근.
정마대전 당시 그중 네 명이 목숨을 잃었고, 현재는 여섯 명만 남아 육마존이라 불리는 마교의 고수들이었다.
한데 그들 중 두 명씩이나 이곳에 와 있을 줄은 몰랐다.
비대한 체구의 장년인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은 채 한설화를 응시했다.
그러기를 잠시.
“이거 좀 실망스러운데? 나까지는 차례도 안 오겠어.”
한설화의 무위를 가늠하던 그가 피식 웃었다.
“수보(首輔)께서는 다 좋은데 너무 과민하시단 말이지. 굳이 우리 둘씩이나 보낼 필요 없다고 그리 말했건만…….”
거검을 짊어진 노인이 그 말을 받았다.
“소심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철두철미하신 거요. 실제로 모든 것이 그분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소?”
뜻밖에도 노인은 존대를, 그보다 더 젊어 보이는 장년인은 반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장년인이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맞아. 그 어떤 것도 그분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지. 저 여자가 단신으로 북해빙궁을 찾아올 거라는 말을 듣고도 난 설마 했다니까?”
한설화가 말없이 두 사람을 응시했다.
마치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그들의 태도가 내심 어이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충분히 그럴 만하다 여겨졌다.
확실히 두 사람은 그녀조차 경시할 수 없는 대단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고수.
특히나 그녀나 저들 정도 되는 고수라면 굳이 손을 섞지 않아도 승부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주하는 즉시 깨닫는 것이다.
고수들의 겨룸에서 변수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정해진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에 불과했다.
“어쨌든 이번 내기는 자네가 이겼군. 운이 좋았어.”
비대한 장년인의 말에 깡마른 노인이 피식했다.
“운이 좋은 게 아니라 수보에 대한 믿음이 더 강했던 거요.”
“흥! 헛소리! 그냥 나한테 지기 싫어서 그런 걸 내 모를 줄 알아?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미끼에 이만한 대어가 걸려들 줄 어찌 알았겠나?”
한설화는 기가 막혔다.
아마 자신의 행보를 두고 자신들끼리 내기까지 한 모양이었다.
“여하튼 이런 걸 횡재라고 하지. 이걸로 중원 놈들의 콧대를 꺾을 수 있겠어.”
천하오절과 명성을 나란히 하는 빙옥선자의 목을 거둔다면 그것만으로도 크게 남는 장사였다.
무엇보다 중원을 향한 선전 포고로 이만한 것이 없었다.
문득 한설화와 시선이 마주친 장년인이 히죽 웃었다.
“아, 실례. 소개가 늦었소이다. 나는 마가 성에 영기라는 이름을 쓰는 늙은이요. 당신네들이 염마(炎魔)라 부르는 사람이지. 여기 이 사람은 모규광. 당신들이 검마(劍魔)라 부르는 친구고.”
한설화가 멈칫했다.
자신을 마영기라 소개한 염마.
그에 관한 이야기는 그녀 역시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외모와 달리 실제로는 백수(白壽)를 코앞에 둔 노마두인 셈.
그가 지닌 마공인 극멸염륜(極滅炎輪)은 범계위가 익힌 도반삼양공과 더불어 천하에서 수위를 다투는 극양기공으로 알려져 있었다.
무공의 상성상 자신과는 상극의 상대인 것이다.
거기에 검마 모규광 역시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단 삼 초식으로 이루어진 멸천삼식(滅天三式).
중원 최고의 검학 중 하나인 소림의 달마삼검(達磨三劍)과 비견되는 그의 검법 아래 유명을 달리한 고수는 그 숫자를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사람의 기도는 중원에 알려진 것 이상이었다.
‘하긴…….’
정마대전이 끝나고도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그동안 저들도 가만히 놀고만은 있지 않았을 터.
표정이나 말투에서 느껴지는 저들의 자신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당장 지닌 기세만 해도 검마라 불리는 비쩍 마른 노인이 자신을 월등히 넘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설화가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글쎄…….”
마영기와 모규광.
두 사람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지금은 중원에서 가장 강한 고수를 천하오절이라 부르지만, 과거의 정마대전 당시에는 신주팔성(新主八星)이라 불리던 여덟 명의 고수가 존재했다.
그중에는 지금의 천하오절로 불리는 혈수존자나 화산신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들과 수차례 싸워 본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눈에 봐도 한설화의 기도나 존재감은 당시의 정파 고수들에 비해 분명 모자람이 있었다.
당장 자신들 중 한 사람만 나서도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는 수준.
분명 본인도 이를 모르지 않을 텐데 한설화의 신색은 너무나 평온했다.
아니나 다를까.
“운이 좋은 건 과연 어느 쪽일까?”
그 말과 함께 한설화가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츠츠츠.
그녀의 전신에서 새하얀 서기가 뭉클거리며 쏟아져 나온 것도 그때였다.
허공에서 일렁이며 꿈틀대던 서기.
이는 곧 그녀가 들어 올린 손바닥 위에서 빠르게 엉겨 갔다.
그러다 종국에는 눈부신 작은 결정으로 온전한 형태를 갖추었다.
마주한 것만으로도 눈이 시릴 만큼 찬란한 빛을 뿌리는 냉기의 결정체.
이를 본 북궁정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빙정(氷精)!”
한설화로 인해 오랜 세월 사라졌던 북해빙궁의 유일한 신물.
이름 그대로 극음의 기운이 응집된 한기의 정수가 오랜 세월을 건너뛰어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북궁정이 한설화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한설화는 그를 제지하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 보라는 듯 오히려 손을 내밀었다.
덕분에 북궁정은 빙정을 수월하게 낚아챌 수 있었다.
“드디어!”
두 손으로 빙정을 받쳐 든 북궁정의 눈에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의 감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가 눈을 부릅떴다.
“……!”
그의 눈동자에는 방금 전의 희열 대신 당혹과 경악의 감정이 채워져 갔다.
쩌적.
필설로 형언하기 힘든 지독한 냉기.
손가락 끝을 시작으로 빠르게 팔을 타고 올라오던 서리가 순식간에 그의 전신을 뒤덮어 버렸다.
“아, 안 돼…….”
그가 내뱉는 마지막 날숨.
그 안에 섞여 있던 뿌연 입김이 그의 생명과 함께 허공으로 흩어졌다.
한설화의 일격에 이미 한차례 내부가 진탕되었던 북궁정이었다.
진기의 운용이 뒤엉켜 내기마저 고르지 못한 상태로 빙정의 냉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만큼 빙정은 북해빙궁 무인들에게 있어 무엇으로도 견줄 수 없는 지독한 유혹을 지니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눈앞에서 얼어 죽는 북궁정을 목도했음에도 북해빙궁의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취한 사람처럼 몽롱한 눈으로 북궁정의 시신을 응시했다.
아니, 정확히는 시신의 손에 들려 있는 빙정을 응시하고 있었다.
반대로 마영기와 모규광의 눈빛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왜 그분이 우리 둘을 보내셨는지 알겠군.”
“너무 여유를 부렸소.”
처음에는 무슨 짓인가 싶었다.
한설화가 오래전에 북해빙궁의 신물인 빙정을 탈취했고, 그 기운을 흡수해 인세를 초월한 고수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그들 역시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껏 흡수한 빙정을 어째서 이토록 순순히 내놓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깨달았다.
그녀는 빙정의 기운을 흡수한 것이 아니었다.
반대로 자신의 몸에 가두어 빙정의 기운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한가롭게 농담 따 먹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미 눈앞의 한설화는 방금 전 그들이 알던 한설화가 아니었다.
스스로를 묶고 있던 제약에서 벗어난 그녀의 존재감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 안 될 정도로 강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 방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수보의 충고가 뒤늦게 떠올랐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어이없지만 두 번 다시 없을 절호의 기회를 눈 뜨고 놓쳐 버린 셈이다.
“더 늦기 전에 손을 쓰자.”
마영기의 말에 모규광이 거검을 모로 세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신형을 날렸다.
그런데…….
“본 궁의 신물을 되찾자!”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북해빙궁의 무인들이 일제히 한설화를 향해 달려들었다.
“저 얼간이들이!”
마영기의 입에서 당혹성이 새어 나왔다.
예상 못 한 이변에 그들이 당황하는 사이.
사방에서 눈 더미가 솟구치며 북해빙궁의 무인들이 새카만 개미 떼처럼 한설화를 향해 쇄도했다.
어림잡아도 무려 삼백은 가뿐히 넘어가는 숫자.
거기에 하나같이 상당한 실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비록 개개인은 한설화의 무위에 미치지 못하나 그 힘이 결집되는 대상은 오직 하나였다.
우르릉!
구름처럼 피어오른 가공할 압력.
북해빙궁의 절학이 뒤섞인 거대한 운무가 한설화를 집어삼켰다.
순간 한설화를 에워싼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 냉기가 폭발하듯 일대로 퍼져 나간 것도 동시였다.
한설화가 손을 들어 눈앞의 공간을 그어 갔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무인들과는 거리는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었고, 따라서 그녀의 손은 직접 그들에게 닿지 않았다.
대신 실제의 칼날보다 섬뜩한 예기가 이를 대신했다.
그 예기에 닿은 운무가 거짓말처럼 스러지고 있었다.
수백 명의 합공이 만들어 낸 운무를 걷어 낸 선명한 궤적.
서억.
북해빙궁의 무인들은 예리하고 차가운 무언가가 자신들 사이를 헤집고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 호선이 긋고 지나간 자리를 따라 피 보라가 일었다.
“……!”
그들은 아연한 눈으로 한설화를 바라봤다.
그러기를 잠시.
털썩.
한 사람의 신형이 무너졌다.
이를 필두로 한설화를 공격하던 북해빙궁의 무인들이 모두 피를 뿜으며 무너졌다.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오직 한설화만이 유일했다.
마영기의 눈에 당혹감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돌연 눈앞에서 한설화의 신형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뒤다!”
마영기의 날카로운 외침에 모규광이 돌아보지도 않고 거검을 휘둘렀다.
검극을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인 시선.
‘망할!’
모규광은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차가운 분노를 깊이 갈무리한 소름 끼치는 눈빛.
그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가공할 살기에 일순 기가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