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36)
신마의선-237화(236/500)
신마의선 (237)
이 순간 맹렬하게 경고하는 본능을 따라 모규광이 훌쩍 뒤로 물러섰다.
서억.
화끈한 느낌과 함께 가슴팍 언저리가 길게 갈라진 것도 그때였다.
모규광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 어떤 전조도 찾아 볼 수 없는 칼날이라니!
조금만 망설였어도 그대로 가슴이 갈라졌을 테지만 다행히 얕은 자상에 그쳤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집요하게 따라붙는 한설화를 떨쳐 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모규광은 답답한 마음에 가슴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내력을 잔뜩 담아낸 검만 휘두를 수 있다면 눈앞의 괴물을 베어 내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다만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화륵!
살이 그대로 익어 버릴 것 같은 가공할 열기가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파고들었다.
마영기였다.
그가 개입한 시기가 너무 적절해 한설화는 모규광을 포기하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치익.
한설화가 서 있던 자리.
쌓였던 눈이 그대로 기화되어 뿌연 수증기를 만들어 냈다.
그것도 모자라 바닥에 작열한 고리 형태의 화염은 이글거리며 석판을 파고들었다.
석판마저 순식간에 용암으로 녹아내릴 만큼 가공할 열양지기였다.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모규광이 놀란 가슴을 다스렸다.
마영기가 제때 관여하지 않았다면 제대로 검 한번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비명횡사할 뻔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이번에는 그 수모를 되돌려 줄 차례였다.
쾌애액!
침묵하고 있던 모규광의 광도검이 용트림했다.
비쩍 마른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그는 거대한 검을 지푸라기처럼 휘둘러 대기 시작했다.
콰릉!
검이 지나간 자리에서 번갯불 같은 섬광이 번뜩이며 용이 울부짖는 듯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진공 상태가 된 대기가 일그러지며 생성된 충격파 때문이었다.
이번 공격에 모규광은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만큼 방금 전의 공격은 실로 소름 끼쳤다.
그 어떤 전조도, 흔적도 없는 무형의 칼이라니…….
마치 호사가들이 떠들어 대는 전설상의 무형지검(無形之劍)을 마주한 것만 같았다.
‘아니.’
그러고 보니 그런 고수라면 한 명 알고 있었다.
바로 자신들의 주인이자 명실상부 천하제일 고수인 천마.
종여의라면 얼마든지 그런 신위를 보여 줄 수 있었다.
하나 눈앞의 여인은 그가 아니었다.
당장은 그녀의 무위에 밀리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제아무리 대단한 고수라 할지라도 이를 연이어 구사할 수는 없을 터.
그렇다면 끊임없이 몰아붙여 숨 고를 여유조차 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아니나 다를까.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한설화의 눈 위로 스쳤다 사라지는 당혹감을 모규광은 놓치지 않았다.
콰콰콰!
순식간에 한설화를 에워싼 검영이 섬뜩한 살기를 베어 물며 달려들었다.
이에 대한 한설화의 대응은 어처구니없을 만큼 간단했다.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검이 지척에 이르면 차례대로 소매를 휘둘러 걷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꽈앙! 꽈앙! 꽈앙!
연이어 터져 나오는 충격음이 얼어붙은 대기를 흔들었다.
끈임없이 이어지는 격돌.
손목을 타고 올라오는 저릿한 느낌에 모규광이 으스러져라 이를 악물었다.
움켜쥔 검파를 통해 검의 균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육체와 정신에 가중되는 부담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옥죄어 왔다.
게다가 전력을 실어 휘두른 검이 튕겨 나갈 때마다 그 충격은 반탄력이 되어 고스란히 그에게 돌아왔다.
그 누적된 충격으로 인해 어느새 기혈이 들끓고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한 줄기 불길함이 고개를 든 것도 그때였다.
그녀와 마주 섰을 때부터 희미하게 느끼고 있던 불안.
그것은 확신에 가까운 패배감이었다.
동시에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순수한 경의가 솟구쳤다.
그녀도 결국엔 인간.
분명 지칠 때가 오리라 생각했건만…….
이미 그가 이해하고 있는 기존의 무리를 월등히 뛰어넘어 선 그녀에게는 의미 없는 기대에 불과했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무위의 열세가 더없이 무겁게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함께 사선을 넘나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뒤를 받쳐 주고 있었다.
“물러서!”
쩌렁한 마영기의 음성이 귓전을 파고든 것도 그때였다.
돌연 등 뒤에서 들이닥친 강력한 열기에 한설화가 힘껏 소매를 휘둘렀다.
꽈앙!
강력한 냉기를 품은 경력과 충돌한 화염 고리가 그대로 충돌하며 허공에 흩어졌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각기 다른 크기의 화염 고리가 연이어 날아들고 있었다.
한설화는 급히 몸을 빼려 했으나 이조차도 수월하지 않았다.
네 방위를 차단하며 교묘하게 들이닥친 화염륜(火焰輪)!
콰르르르!
한설화를 중심으로 일대가 순식간에 거대한 불기둥에 휩싸인 것도 그때였다.
간신히 화염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온 모규광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한계까지 내력을 끌어 썼기에 당장은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없었다.
하지만 느긋하게 호흡을 가다듬을 여유도 없었다.
“아직이다!”
재차 진기를 끌어 올리던 마영기가 기겁하며 외쳤기 때문이다.
일단 갇히면 누구도 살아 나온 적 없는 최후의 한 수.
누구보다 극염무간(極炎無間)의 위력을 자신하는 그였지만 그 자부심이 눈앞에서 산산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 안에서 태연하게 걸어 나오는 한설화의 모습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얼음장 같은 한설화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마영기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나 그 역시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였다.
이대로 내력 싸움으로 이어 가 조금만 버틴다면?
손을 나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의 배후를 모규광이 칠 것이다.
이때 한설화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가공할 냉기의 파도가 턱밑까지 이르러 있었다.
마영기가 전력을 끌어 올려 쌍장을 내밀었다.
쩌엉!
“……!”
장력과 장력이 부딪치는 순간 마영기는 울컥 터져 나오는 핏물을 억지로 삼켰다.
확실히 공력으로는 밀리는 건 분명했다.
하나 여기까지는 사전에 머릿속에 그려 두었던 예상대로였다.
그그그극.
바닥에 깊은 고랑을 새기며 마영기의 신형이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마영기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버티고, 또 버텼다.
치이이익!
극양의 냉기와 열기가 뒤얽히며 생성된 뿌연 수증기가 순식간에 두 사람을 집어삼켰다.
“……?”
마영기의 눈에 의아함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갑자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지?’
이처럼 압도적은 무위 차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지나치게 서두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또한 오랜 세월 도산검림을 누벼 온 노련한 고수.
그 직감과 경험을 바탕으로 단번에 그 이유를 깨달았다.
바로 시간이었다.
무엇이 대체 그녀를 이토록 서두르게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시간만 끌면 아예 승산이 없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이대도강(李代桃僵).
우위를 선점한 고수답지 않게 한설화는 시종일관 무모하리만치 과격하고 거친 수법으로 응수하고 있었다.
이토록 압도적인 신위를 지니고도 서두르는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그렇지 않고서야 이와 같은 고육책을 감내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마영기는 그 생각을 길게 이어 갈 수 없었다.
툭.
물러서던 발뒤꿈치에 무언가가 걸렸기 때문이다.
“헉!”
무심코 곁눈질한 마영기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발에 걸린 건 시신이었다.
그것도 꽁꽁 언 채로 죽어 있는 북궁정이었다.
퍼석.
발에 차인 충격 때문인지 북궁정의 시신이 그대로 조각조각 부서져 내렸다.
‘그렇다는 건?’
마영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신없이 밀리던 와중에 생각하지 못했더니만 지금 깨닫고 보니 그가 서 있던 곳이 북궁정이 얼어 죽은 그 자리였다.
한설화가 일부러 이쪽으로 몰아붙인 것이 틀림없었다.
날카롭게 등을 파고드는 한기가 느껴진 것도 동시였다.
“……!”
허공에 떠 있는 빙정.
요사스러운 빛을 뿌리며 웃고 있는 마물을 발견한 마영기의 안색이 흙빛이 되었다.
한설화도 버거운 판에 등 뒤로 서서히 거리를 좁혀 오는 빙정의 한기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졸지에 진퇴양난의 상황에 몰려 버린 것이다.
비록 의지를 좇아 진기가 일어나는 심의운기(心意運氣)의 경지에 이른 고수라 할지라도 일단 마음이 흔들리자 의지에 균열이 생겼다.
면면부절 이어지던 내력이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자신의 호신강기를 뚫고 천천히 가슴을 향해 밀고 들어오는 섬섬옥수가 망막을 파고들었다.
그 순간.
돌연 한설화가 휙 돌아섰다.
쾅!
그리곤 갑자기 벼락 같은 충격음과 함께 신형이 튕겨 나갔다.
방금 전까지 그녀가 서 있던 곳.
모규광의 광도검이 육중한 존재감을 뽐내며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마영기가 뒤늦게 얼굴에서 비 오듯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모규광 덕에 눈앞에서 입을 벌리고 있던 지옥문을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인간 같지도 않은 괴물에게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일격을 먹였다.
솔직히 말하면 이는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었다.
설마 그녀 정도 되는 고수가 눈앞의 목표에만 집착해 이처럼 쉽게 공격을 허용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비록 호신강기 덕에 허리가 양단되지는 않았지만 그로 인한 심각한 내상은 피해 갈 수 없을 터.
아니나 다를까.
“왁!”
한참을 날아가 널브러져 있던 한설화가 한 움큼이 넘는 피를 토하더니 비틀거리며 신형을 일으키고 있었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한설화의 상태를 확인한 마영기의 눈에 감출 수 없는 희열이 떠올랐다.
생사의 기로에서 힘겹게 거머쥔 승기!
오직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생사결에 뛰어든 자에게만 허락된 뜨거운 고양감이 전신을 사로잡았다.
“거의 다 왔다. 이제 저 괴물을 잡을 수 있어!”
이제 버티기만 하면 된다.
시간이 자신들의 편인 것을 안 이상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당연히 돌아와야 할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쿠웅.
대신 육중한 소리가 바로 옆에서 울려 퍼졌다.
무심코 모규광을 향해 고개를 돌린 마영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닥에 꽂아 넣은 거검에 의지한 채 간신히 서 있는 모규광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목에서 왈칵왈칵 뿜어지는 선홍색 핏물 때문이었다.
모규광이 한 손을 들어 끔찍하게 입을 벌린 목의 자상을 눌렀다.
그러나 쏟아지는 핏물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모규광과 마영기의 시선이 한순간 허공에서 뒤엉켰다.
모규광이 입술을 달싹였다.
‘달아나.’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만큼은 분명 그리 말하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자신의 피를 바라보던 모규광의 얼굴 위로 허탈한 웃음이 떠올랐다.
‘뭐 이래?’
그가 예상했던 죽음의 형태가 아니었다.
한설화의 옆구리에 광도검을 욱여넣던 순간.
모규광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목에 닿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빠르다는 표현만으론 담아내지 못할 섬뜩한 기운.
눈부신 섬광도, 허공을 찢는 파공음도 없었다.
단지 뼈를 시리게 하는 예리한 기운이 어느 순간 턱 밑에 이르러 있을 뿐이었다.
이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 무언가가 목을 긋고 지나간 뒤였다.
‘의형수검(意形手劍)…….’
아니면 그에 버금가는 그 무엇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처럼 손도 써 보지 못하고 당할 리가 없었다.
‘부럽군…….’
마음이 가는 곳에 이미 검이 이르러 있으니 베지 못하는 것이 없다 했던가.
초식이나 내공에 얽매이지 않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무공의 또 다른 형태.
다만 그에게는 더 이상 허락되지 않을 무공의 끝자락이었다.
그나마 죽기 전에 직접 이를 목도한 것이 한 줄기 위안이 되었다.
그 생각을 끝으로 모규광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더 볼 것도 없었다.
절명이었다.
그 어떤 고수라도 발밑에 웅덩이를 이룰 만큼 피를 쏟아 내고도 살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