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38)
신마의선-239화(238/500)
신마의선 (239)
북방의 초원에 도착한 사무심은 곧장 자신과 인연이 있는 부족을 찾아갔다.
“어서 오십시오.”
이제는 제법 수장다운 분위기가 묻어나는 훤칠한 키의 사내가 사무심을 맞이했다.
사무심을 덥석 끌어안아 호의를 표시한 사내가 저들의 언어를 이용해 게르라 표현하는 이동식 천막 안으로 사무심을 안내했다.
“이건 선물일세.”
사무심이 건넨 목갑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사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목갑 안을 채우고 있는 단약들 중 처음 보는 종류의 단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뭡니까?”
사내가 붉은빛이 감도는 단약을 집어 들었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물건임은 분명했다.
이미 신마단의 효험은 익히 경험해 잘 아는 그였다.
앞서 몇 차례나 사무심이 서역을 오가는 상인들을 통해 그에게 선물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무심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늦었지만 축하하네, 네르구이. 얼마 전에 세 번째 부인을 얻었다지?”
여전히 궁금함을 감추지 못하는 네르구이를 향해 사무심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자네의 가세가 번창하길 기원하는 마음에 준비한 물건일세.”
사무심이 네르구이가 집어 든 독계산의 효용을 자세히 설명했다.
네르구이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보내 주신 소금과 물품들만으로도 갚기 어려운 은혜를 입었는데…….”
“대신 자네도 충분한 성의를 보였지 않은가.”
“우리가 지배하는 초원을 승냥이 떼로부터 보호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것일세. 덕분에 상단의 위험이 많이 줄었으니까.”
네르구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무엇보다 사람과 말이 가장 큰 재산인 네르구이에게 있어 독계산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선물이었다.
“참으로 감개가 무량하군. 예전에 그 꾀죄죄하고 볼품없던 아이가 지금은 이처럼 한 부족을 이끌고 있다니. 더구나 전보다 세력이 훨씬 커졌군.”
사무심의 칭찬에 네르구이가 자랑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 역시 은공의 덕분입니다.”
“내 덕분이라고?”
“전에 은공께서 선물이라며 던져 주신 어린놈을 기억하십니까?”
고개를 갸웃하던 사무심이 이내 누군가를 떠올렸다.
“아! 그 혈운사의 어린 녀석?”
네르구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보니 놈이 혈운사의 우두머리인 총령(摠領)의 유일한 혈육이었다고 하더군요.”
네르구이가 설명을 이어 갔다.
“성인식을 치르기 위해 사냥감을 물색하던 중에 운 나쁘게 은공을 선택한 것이지요.”
한 사람의 전사로 인정받기 위해 홀로 사냥을 성공해야 하는 것이 초원의 율법이었다.
다만 혈운사는 그 사냥의 대상이 사람이었다.
“저와 안다를 맺은 의형제에게 놈을 넘겼습니다. 한께서는 이를 높이 치하해 제게 오백 마리의 말을 하사하셨고요.”
당연히 말을 지키고 돌보는 사람도 딸려 왔을 터.
비로소 사무심은 네르구이의 부족이 커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로 인해 혈운사는 한차례 큰 내홍(內訌)을 겪었다고 합니다.”
“내홍?”
“후계자를 지키지 못한 것에 분노한 총령이 당시 수행에 나섰던 무리들을 직접 참살했다 하더군요.”
이에 불만을 가진 혈운사의 무리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반복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래도 결국 총령 쪽이 우세를 차지하나 싶었는데, 그때 모종의 세력이 개입했다고 합니다.”
사무심이 눈살을 찌푸렸다.
혈운사의 내분에 개입했다는 세력을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교였겠군?”
네르구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의 고수 한 명이 단신으로 걸어 들어와 총령의 목을 베어 냈다고 합니다. 그것도 고작 십 합 만에요.”
“……!”
사무심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혈운사의 우두머리인 총령의 무위는 구대문파의 장문인과 필적하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작 십 합 만에 목을 떨구어 냈다니.
그 정도 무위를 지닌 고수 중에 당장 짐작 가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그 고수가 혹시 천마인가?”
사무심의 질문에 네르구이가 고개를 저었다.
“천마는 아닙니다. 매우 젊다고 들었거든요. 기껏해야 약관 언저리라 했습니다.”
사무심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 정도 나이라면 육마존은 아닐 터.
‘그쪽에도 신진 고수가 등장한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 나름대로 불길한 징조였다.
이때 천막이 걷히며 네르구이의 수하들이 커다란 가죽 주머니와 삶은 양고기를 가져왔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일단 요기부터 하시지요.”
네르구이가 가죽 주머니를 기울여 그 안에 담긴 술을 한 잔 가득 부어 사무심에게 건넸다.
저들의 언어로 아이락이라고 부르는, 말 젖을 이용해 만든 술인 마내자(馬奶子)였다.
“가끔은 이 초원의 술이 그립더군.”
시큼한 맛이 나는 술을 단숨에 들이켠 사무심이 슬쩍 웃으며 무언가를 꺼내 네르구이에게 내밀었다.
사무심이 건넨 술병을 건네받은 네르구이가 환한 얼굴로 탄성을 흘렸다.
그들 초원의 부족에게 가장 귀한 사치품은 소금도, 향신료도 아니었다.
바로 증류를 통해 도수를 높인 화주였다.
원래 중원에 증류주를 전파한 것은 그들 초원의 부족이었다.
과거 원대한 제국을 다스리던 시절.
한계를 모르고 국경을 넓혀 가던 그들은 파사국으로부터 발효주를 증류하는 기술을 습득했고, 이를 다시 중원에 전파했다.
하지만 원나라가 몰락하고 초원으로 쫓겨난 지금은 좀처럼 누리기 힘든 호사였다.
증류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곡식이 필요했다.
하나 이 척박한 대지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
발효주인 마내자를 증류해 화주를 얻는 방법도 있었지만, 극히 비효율적이었다.
일반 암말에게서 얻는 젖의 양은 생각보다 매우 적었다.
그래서 보통 손님에게 대접하기 위해 마내자를 만들려면 열 마리의 암말에게서 젖을 얻어야 할 정도였다.
아이락조차 부족할 판국에 그걸 다시 증류하는 사치는 어지간해서는 쉽게 엄두를 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좋은 술이 몇 잔 돌자 게르 안의 공기는 금세 후끈해졌다.
불콰해진 얼굴로 기분 좋게 웃던 네르구이가 뒤늦게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부탁하신 인삼은 다음 달부터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
사무심이 반색했다.
중원에서 유통되는 인삼 중 상품으로 손꼽히는 것은 해동의 인삼이었지만, 그 물량이 한정적이라 일반적인 시장에 풀리는 양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더구나 조공 무역의 형태로 거래되기에 조정의 인가를 받은 상단 이외에는 함부로 개입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턱없이 부족한 인삼의 물량 대부분을 흑룡강 일대의 유목 부족인 흑수말갈(黑水靺鞨)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유목민과 다르게 돼지를 기르고 농사도 병행하는 농경 생활을 병행하는 반농반목의 민족이었다.
달연과 흑수말갈은 서로를 견제했지만 이익 앞에서 종종 거래를 트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인삼(人蔘)이었다.
“듣자니 여진 일대에는 하루도 피가 마를 날이 없다 하더군요.”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지만 그것만으로는 삶을 유지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흑수말갈은 이따금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었다.
과거에는 약탈이 목적이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오직 인삼을 채취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은 본위 제도가 완벽하게 뿌리를 내리면서 중원의 상거래가 활성화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돈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건강이다.
이로 인해 인삼의 수요가 급증했고,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 천정부지로 값이 치솟고 있는 상황이었다.
“조공 무역의 형태를 취하는 해동과 달리 흑수말갈은 아예 대놓고 부족장이 나서 거래처를 트고 있는 상황입니다. 품질은 둘째 치고 물량과 거래량부터가 압도적이지요.”
“고맙네. 값은 내 충분히 쳐주겠네.”
일반적으로 인삼은 은과 동일한 무게로 교환된다.
그 어떤 상인들도 인삼만 가져가면 흔쾌히 은과 교환해 주기 때문에 물량만 확보할 수 있다면 막대한 이익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여진 일대의 국경 분쟁이 잦아졌다 하지만 그들과는 상관없는 먼 이야기일 뿐이었다.
네르구이가 웃으며 화답했다.
“우리 역시 덕분에 신마단을 얻을 수 있으니 서로에게 좋은 일입니다.”
부족끼리의 크고 작은 갈등은 늘 있는 일이었고, 초원의 사람들은 그 갈등의 해결 방식으로 전투를 선호했다.
따라서 늘 사상자가 속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마단을 확보한 이후 네르구이 측의 사상자는 눈에 띄게 줄었고, 이를 통해 타 부족보다 전투력과 영향력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서로 웃음과 덕담을 주고받은 뒤 사무심이 이곳을 찾은 진짜 이유를 말했다.
“최근 혈운사의 동향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가?”
사무심의 질문에 네르구이가 무거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평소에는 작은 규모를 이루어 흩어져 지내다가 약탈을 도모할 때만 뭉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근래 들어 부쩍 뭉쳐 움직이는 일이 잦다고 합니다. 일부는 시신으로 발견되기도 하고요.”
사무심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자 때문이로군.”
“뭔가 짚이는 것이 있으십니까?”
네르구이의 물음에 사무심은 선선히 정보를 제공했다.
“칠절마군이라 불리는 중원의 무림인 때문일세.”
사무심이 노단양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 그제야 네르구이는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최근에 혈운사의 약탈이 잠잠했던 것이로군요.”
잠시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네르구이가 게르 밖으로 나섰다.
사무심이 따라나서자 네르구이가 손을 들어 먼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에 말로 사흘 정도 달리면 나타나는 바위 지대가 있습니다. 석녹평(石綠平)이라 불리는 지역인데, 최근 혈운사가 그 지역을 집중적으로 수색하고 있습니다.”
사무심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놈들이 칠절마군의 위치를 특정했나 보군?”
“이전보다 수색 범위를 훨씬 좁힌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짐작됩니다.”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
갈 길을 서두르는 사무심을 향해 네르구이가 미안한 눈빛을 건넸다.
“마음 같아서는 사람을 붙여 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사무심이 빙그레 웃으며 네르구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네. 자네들은 일 년 중 지금이 가장 바쁠 시기 아닌가?”
더구나 혼자 움직이는 것이 여러모로 용이했다.
“혹시 모르니 이걸 가져가십시오.”
네르구이가 건넨 물건을 받아 든 사무심이 빙긋 웃었다.
독수리가 새겨진 손바닥 크기의 작은 깃발이었다.
명실상부 당금 초원을 지배하는 달연(達延) 부족.
그곳의 우두머리인 한(汗)의 직속 사자(使者)를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혈운사와 시비가 붙으면 그걸 보여 주십시오. 당장은 놈들도 우리와의 싸움을 원치 않을 테니 대놓고 건드리진 않을 것입니다.”
“신경 써 주어 고맙네.”
고개를 끄덕인 사무심이 짧은 인사를 나눈 뒤 곧장 신형을 날렸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달려 그가 도착한 곳은 이끼 낀 돌이 무성한 평야 지역이었다.
자세히 보니 곳곳에 구르는 돌은 오래전에 무너진 고성 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사무심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대충 쌓아 올린 흙벽에 지붕만 얹어 이슬만 겨우 그을 수 있게 만들어진 건물이었다.
하지만 규모는 제법 커서 많은 수의 인마를 수용할 수 있었다.
‘마시장인가?’
겸사겸사해서 객잔을 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무심은 태연히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일단은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물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초악량에게 얻은 인피면구를 착용한 뒤였다.
혈운사의 무리로 짐작되는 무인들이 곳곳에서 예리한 눈빛을 던져 왔지만 사무심은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이때 누군가가 살기를 흘리며 사무심에게 다가섰다.
“못 보던 얼굴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