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39)
신마의선-240화(239/500)
신마의선 (240)
사무심이 말을 걸어온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말 위에서 노려보는 사내는 언제라도 내지를 수 있도록 단단히 창을 움켜쥔 상태였다.
여차하면 곧장 피를 볼 기세였다.
험악한 살기를 피워 올리는 건 비단 그만이 아니었다.
가까운 곳에 포진한 혈운사 무리들 역시 하나같이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날카롭게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사무심이 짐짓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품속에서 네르구이가 건넨 깃발을 꺼내 들었다.
“한의 전언을 전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말이 쓰러졌다.”
처음 입을 열었던 혈운사 무인의 눈에 언뜻 실망감이 떠올랐다.
사무심이 눈살을 찌푸린 것도 그때였다.
“그런데 당신들은 왜 여기서 어슬렁대는 것이지? 이곳은 혈운사의 활동 영역이 아닐 텐데?”
사무심의 물음에 혈운사의 무인은 대답도 없이 말 머리를 돌렸다.
다른 혈운사 무리들 역시 이내 관심을 거두며 저들끼리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바탕 일전까지 감수할 각오를 다지고 있던 사무심은 내심 안도하여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무심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말을 보러 오셨다고요?”
사십 대 정도 되었을까.
밖에서 나눈 대화를 들었는지 싹싹하게 자신을 맞는 거간꾼을 향해 사무심이 은자 하나를 내밀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란 사내가 재빨리 은자를 낚아챘다.
재빨리 주위를 살핀 사내가 목소리를 낮추며 씨익 웃었다.
“말이 아니라 다른 것을 찾고 계시는군요?”
그때였다.
삐익!
날카로운 호각 소리와 함께 혈운사 무리의 움직임이 부산해졌다.
순식간에 진열을 정비한 그들이 급히 말을 몰아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사무심이 중개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들이 이곳에 머문 지 얼마나 되었소?”
“대략 보름가량 된 듯싶습니다.”
“그 이유를 아시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누군가를 찾는 모양이더군요.”
사무심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기를 잠시.
“나 역시 사람을 찾고 있소.”
사무심의 말에 사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히죽 웃었다.
“어르신 같은 중원인 말입니까?”
뜻밖의 말에 사무심이 놀라 반문했다.
“어떻게 아셨소?”
“제법 유창하게 우리 말을 구사하시지만 자세히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지요.”
사내가 사무심의 신발을 가리켰다.
“초원의 사내들의 신발은 발등 부분과 코가 닳아 있거든요.”
“아!”
사무심은 이내 그 이유를 깨달았다.
등자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도보로 이동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부분이 말을 이용하는 만큼 바닥에 서 있는 경우보다 등자에 발을 걸고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만큼 등자와 닿는 신발 부분이 가장 빨리 마모되는 것이다.
사무심이 슬쩍 물었다.
“이곳을 찾는 중원인들이 많나 보오?”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최근에는 좀 빈번해지긴 했지만 전에는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했습니다.”
“최근이라면?”
“닷새 전에 한 사람이 잠깐 들렀습니다. 건량만 구입해 바로 떠났지만요. 한데 그 양이 꽤 많았습니다. 적어도 두 명이 한 달 이상은 너끈히 버틸 수 있는 분량이었습니다.”
사무심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자의 체구가 어느 정도였소?”
“그냥 평범했습니다. 팔이 조금 길다는 점만 제외하면 여느 중원인과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사무심의 얼굴에 언뜻 실망의 감정이 떠올랐다.
‘칠절마군이 아니다.’
사무심이 생각을 정리했다.
‘조력자? 아니면 감시자인가?’
아무래도 조력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현재 칠절마군은 개방의 방주인 이립조차 당해 낼 수 없었던 정도로 무위가 크게 높아진 상태.
그 정도 되는 고수가 감시자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그렇다는 건…….’
전에 초악량이 확인했던 것처럼 제갈연의 연락책일 가능성이 높았다.
“고맙네.”
중개인에게 은자 한 덩이를 더 던져 준 사무심이 밖으로 나섰다.
저 멀리 피어오르는 먼지구름이 시야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사무심이 지체하지 않고 혈운사가 사라진 방향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렇게 일 각 정도 달렸을까.
“……!”
사무심의 눈 위로 기광이 번뜩였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 섞여 있는 혈 향이 코끝을 스쳤기 때문이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피 냄새는 더욱 짙어졌다.
자세를 낮춘 사무심이 최대한 기척을 감춘 채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 나뒹구는 한 기의 인마가 눈에 들어왔다.
사무심은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적지 않은 세월, 제법 험난한 도산검림을 헤쳐 왔다 자부하는 그였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참혹하기 짝이 없었다.
육중한 충격에 터져 나간 말 머리는 둘째 치고, 바닥을 나뒹구는 시신은 머리와 목이 분리되어 있었다.
그것도 예리한 병기에 의해 잘려 나간 것이 아닌, 순수한 악력에 의해 뜯겨 나간 것이었다.
게다가 그 지옥도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죽음의 냄새가 떠도는 혈로를 따라 계속해서 이동한 사무심은 이윽고 그 종착지에 도달했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고함 소리가 어지럽게 난무하는 장내.
빼곡하게 에워싼 이십여 기의 혈운사를 상대로 홀로 분전하고 있는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칠절마군!’
섬뜩함이 느껴지는 핏빛 서기를 온몸에 휘감은 채 가공할 신위를 드러내는 자.
바로 노단양이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호리병 형태의 계곡 안쪽이었다.
삼면이 절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고 유일한 출입구는 기껏해야 말 두어 마리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지형이었다.
그토록 불리한 지형에서, 그것도 철저하게 포위되어 합공을 당하는 와중에도 노단양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혈운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그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시산혈해를 확인한 사무심이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칠절마군의 무위가 이 정도였다니!’
그가 알던 과거의 노단양은 십대악인 중에서도 기껏해야 중간 정도.
초악량이나 범계위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고, 악호군에 비해서도 한 수 이상 뒤처지는 걸로 알려져 있었다.
한데 지금의 모습을 보니 악호군은 감히 비벼 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사무심은 돌연 등골이 서늘해지며 머리털이 쭈뼛 서는 기분을 느꼈다.
뒤늦게 이쪽을 응시하는 노단양의 시선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놈이 나를 찾아냈다!’
단지 눈빛이 마주친 것뿐인데도 이립 정도나 되는 고수가 그에게 당한 이유가 대번에 납득이 되었다.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날아든 눈빛에 온몸의 피부가 서걱서걱 베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이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은 신마삼존 이외에는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돌연 불길함이 엄습했다.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그나마 놈이 혈운사에 에워싸여 몸을 빼지 못하는 지금이 유일한 기회였다.
‘하지만…….’
차가운 이성은 당장 달아나야 한다고 명령했지만 정작 사무심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운 좋게 단번에 칠절마군을 발견할 줄은 그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대로 돌아서면 그 어떤 실마리도 거머쥘 수 없었다.
하늘이 준 모처럼의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노단양은 한 명씩 혈운사의 숫자를 확실하게 줄여 나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이 자리를 피하기로 마음을 굳힌 사무심이 미련을 떨치며 돌아섰다.
그런데…….
‘저자는?’
사무심의 눈 위로 이채가 떠올랐다.
멀리 떨어진 바위.
그 위에 엎드린 채 장내의 상황을 주시하는 누군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놈이다!’
객잔의 거간꾼이 언급했던 중원인이 분명했다.
그는 아직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노단양을 주시하는 데 지나치게 몰두한 탓이었다.
사무심이 재빨리 노단양 쪽의 상황을 살폈다.
이제 남은 혈운사 무리는 고작 열 기 정도.
그중 몇 명이 탈출을 꾀하고자 했지만 입구 쪽을 막아선 채 버티고 있는 노단양에 의해 피를 뿌리며 거꾸러졌다.
달아날 곳 없는 그들은 노단양의 손쉬운 먹잇감에 불과했다.
이대로라면 몇 호흡 안에 확실하게 노단양의 승리로 귀결될 것이 분명했다.
사무심이 관찰하던 중원인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낸 것도 그때였다.
그것이 한 장의 서신과 화섭자라는 것을 깨달은 사무심이 곧장 그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화섭자를 기울여 서신을 태우던 사내가 뒤늦게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인기척을 느끼고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사무심이 그의 목덜미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턱.
그대로 목 뒤의 마혈을 짚힌 사내의 몸이 굳어졌다.
그러다 이내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쓰러졌다.
사무심은 황급히 절반 넘게 타들어 간 서신을 낚아챘다.
서둘러 불을 끈 뒤 서신을 품에 갈무리한 사무심이 사내를 어깨에 둘러멨다.
이 순간에도 사무심은 속이 달았다.
힐끗 노단양 쪽을 보니 남아 있는 혈운사는 고작 세 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사무심이 황급히 장내를 벗어났다.
잠시 후.
사무심이 서 있던 자리에 한 사람의 신형이 뚝 떨어져 내렸다.
두 눈에서 자욱한 혈광을 줄기줄기 쏟아 내던 노단양이 슬쩍 입매를 말아 올렸다.
“흐…….”
뜨꺼운 피를 잔뜩 뒤집어쓴 노단양의 입에서 더없이 잔인한 흉소가 흘러나왔다.
노단양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를 쫓아 신형을 날린 것이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이미 한참이나 멀어진 말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데 한 마리가 아니었다.
놈은 교활하게도 자신이 내달리는 반대 방향으로 다른 말을 보내 교란을 유도한 것이다.
지면에 새겨진 말발굽의 흔적을 살피던 노단양의 눈에서 섬뜩한 안광이 폭사되었다.
“어림없다, 쥐새끼.”
다른 쪽에 비해 유독 깊게 파여 있는 마제흔(馬蹄痕).
사람을 싣고 달리는 말은 그만큼 말발굽 흔적에서 차이를 드러내는 법이다.
노단양의 신형이 한 줄기 빛살이 되어 사람을 태운 기마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미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공이 높아진 그에게 있어 달리는 말을 따라잡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공기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말 위에 바짝 엎드려 달리는 인영이 보였다.
노단양이 더욱 거리를 좁히며 손을 뻗었다.
그의 전신에서 서릿발 같은 기파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앞으로 내민 그의 손끝을 따라 선명한 핏빛 아지랑이가 꿈틀하나 싶더니, 점차 허공의 한 점을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쾌애액.
그의 손을 떠난 핏빛 기운이 한 줄기 섬광처럼 전면을 향해 격사되었다.
뻐엉!
비산하며 부서지는 혈광 너머.
후두둑.
자욱한 피 안개가 일대를 가득 채우며 산산조각 난 육편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단 일수에 한 기의 인마를 고깃덩이로 다져 버린 노단양이 흡족한 웃음을 머금었다.
핏물을 머금어 붉게 변한 대지 위로 노단양이 내려섰다.
그리곤 바닥을 나뒹구는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턱.
격공섭물을 통해 달아나던 놈의 머리를 거둔 노단양이 순간 멈칫했다.
그의 손에 죽은 자의 얼굴이 눈에 익었기 때문이다.
제갈연과 자신 사이를 오가며 연락과 보고를 담당하던 자였다.
“제길!”
노단양이 황급히 신형을 날려 처음의 장소로 되돌아왔다.
“하…….”
주위를 둘러보던 노단양의 얼굴에 허탈함이 떠올랐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움푹 팬 구덩이였다.
교활하게도 놈은 제갈연의 연락책을 미끼로 이용해 자신을 꾀어냈다.
그리고 정작 본인은 이곳에 숨어 있었다.
귀식대법(龜息大法)을 펼쳐 기척을 감춘 뒤, 지둔술(地遁術)로 땅 밑에 은신해 있었던 것이다.
저 멀리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내달리는 말들이 눈에 들어왔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말의 숫자는 무려 여덟 마리에 달했다.
주인을 잃고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혈운사의 말들이 분명했다.
혹시 몰라 바닥에 남겨진 마제흔을 살폈지만 깊이가 전부 비슷했다.
그러고 보니 나뒹굴던 혈운사의 시신 일곱 구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자신의 행적이 노출될까 싶어 놈은 말 위에 시신을 실어 보낸 것이다.
누군지 몰라도 보기 좋게 당해 버렸다.
“빌어먹을!”
노단양이 빠드득 이를 갈아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