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4)
신마의선-24화(24/500)
신마의선 (24)
“이런, 실례했습니다.”
풍진성이 웃으며 사과했다. 그리곤 손을 뻗어 침을 쥐었다.
“저도 거들도록 하죠.”
“그만! 무슨 짓이야!”
범계위가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무림맹주 딸을 치료하는 놈에게 뭘 믿고 내 몸을 맡겨?”
“환자에 정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단악선도 풍진성을 거들었다.
“믿고 맡기셔도 돼요. 저보다 훨씬 오래 배우시고, 경험도 많은 분이니까요.”
“뭐, 단 의원이 그렇게 말한다면…….”
두 사람이 동시에 움직이자 치료는 더욱 속도가 붙었다. 그 와중에 풍진성이 넌지시 운을 뗐다.
“곡주님께서 한번 살펴보시겠습니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이해한 단악선의 얼굴 위로 난처함이 떠올랐다.
“흥미롭긴 한데 전 여길 떠날 수가 없어요.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를 치료해야 하니까요.”
“그렇죠…….”
풍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수존자의 상태도 꽤나 위태로워 보이더군요.”
“네. 많이 호전되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이제 겨우 기맥이 자리를 잡아 가는 중이거든요. 행여나 무리하게 내공을 운용하기라도 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겠죠.”
“그때는 저도 방법이 없어요.”
“괜찮을 겁니다. 무모하게 자신의 운을 시험하지만 않는다면요.”
풍진성이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이미 그분은 곡주님을 만난 것만으로도 평생 운을 다 쓰셨을 테니까요.”
“그러고 보니 제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네요. 이곳에서 무공을 쓸 일이 뭐가 있겠어요? 당장 눈앞에 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요.”
단악선과 풍진성이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범계위만은 웃을 수 없었다.
“자, 아저씨. 다 끝났어요. 물구나무 반 시진만 하시고, 탕약 드시면 돼요.”
“고마워, 단 의원.”
범계위가 침상에서 내려서는 순간, 단악선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모옥 밖으로 향하는 범계위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어디 불편하세요?”
범계위가 몇 번 눈을 껌벅여 눈물을 떨궈 내고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그 말과 함께 범계위가 밖으로 향했다.
그런데 때마침 모옥 밖으로 나서던 초악량과 딱 마주쳤다.
“초 형, 내가 그동안 미안했수.”
뜬금없는 범계위의 사과에 초악량의 얼굴에 짙은 의혹이 떠올랐다.
“뭐 하는 수작이야?”
“수작이 아니라 진심이오.”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그 눈빛은 또 뭐고?”
“내 눈빛이 어때서?”
“한 대 때리고 싶어지는 눈빛이랄까?”
그 말에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슴을 두드렸다.
“좋소. 시원하게 한 대 치시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죽을 사람 소원이라고 못 들어줄까.”
“곧 죽어? 누가?”
물끄러미 자신을 보는 범계위의 시선에 초악량은 심장이 철렁했다.
“단 의원이 그러더냐? 내가 죽는다고?”
당혹감에 휩싸인 초악량을 향해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 형이 내공을 쓰면 죽는다고 했수. 그런데 지난번 파사단 애들 처리할 때 무공을 썼잖수.”
초악량은 겨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난 또 뭐라고. 그거야…….”
그 순간 범계위의 등 뒤에서 단악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 때문에 우울해지셨던 거였어요?”
단악선이 모옥에서 걸어 나왔다.
“초 아저씨는 멀쩡해요. 어젯밤에도 제가 진맥했잖아요.”
“어? 그럼 안 죽는 거야?”
“당연하죠. 그나저나 제가 모르는 일이 있었나 보네요?”
단악선이 초악량을 바라봤다.
“저 모르게 언제 내공을 쓰신 적 있으세요?”
초악량과 범계위가 흠칫하며 굳어졌다.
“너어…….”
으르렁거리며 자신을 노려보는 초악량의 눈빛에 범계위가 허둥대며 입을 열었다.
“아니야. 그깟 놈들 처리하는 데 무슨 내공씩이나. 안 그렇수, 초 형?”
범계위가 어물쩍 넘기려 했으나 오히려 더 큰 의혹만 가져왔다.
“그깟 놈들이요? 그게 누군데요?”
“그, 그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매던 범계위가 이내 질끈 눈을 감았다.
“비, 비밀이다!”
“비밀이요?”
“그래! 누구나 하나쯤은 있는 거 아니냐?”
“전 아저씨들에게 비밀 없는데…….”
왠지 풀이 죽은 단악선의 목소리에 범계위가 깜짝 놀랐다.
“아저씨는 제게 비밀이 있으셨구나.”
“단 의원, 혹시 삐진 거야?”
“비밀이에요.”
입술을 삐죽이며 단악선이 돌아섰다. 누가 봐도 단단히 토라진 기색이 역력했다.
“다, 단 의원. 내 말은 그게 아니고…….”
당황한 범계위가 초악량에게 도움을 청했다. 머리 쓰는 일은 그나마 자신보다 나았기 때문이다.
“초 형! 뭐라고 말 좀 해…….”
범계위는 말을 잇지 못했다.
방금까지 눈앞에 서 있었던 초악량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런 치사한!”
멀찌감치 물러서 있는 초악량의 모습에 분통을 터트리기도 잠시.
범계위가 황급히 단악선을 따라붙었다.
“단 의원, 내 말 좀 들어 봐. 응?”
그러나 단악선은 끝내 입을 꾹 다문 채 전각 안으로 사라졌다.
“어쩌지?”
범계위가 전각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못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풍진성은 그저 이 상황이 재미있기만 했다.
* * *
그날 저녁.
구수한 고기 냄새가 신마곡에 진동했다.
계곡 중앙에 피워진 모닥불. 그 위로 노릇하게 익어 가는 먹음직스러운 고기들 때문이었다. 그 황홀한 냄새에 사람들이 뭐에 홀린 것처럼 모닥불 앞으로 모여들었다.
“웬 고기냐? 단 의원이 허락한 것만 먹어야지.”
초악량의 물음에 정성스레 고기를 굽던 범계위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나 먹을 거 아니오. 단 의원 줄 거지.”
“그걸로 마음이 풀어질 것 같으냐?”
“단 의원이라 해서 허구한 날 풀때기만 먹고 싶을까. 우리 때문에 참는 거지. 게다가 이 냄새 맡아 보슈. 세상 누가 이걸 거절한단 말이오?”
아닌 말대로 범계위가 구운 고기는 냄새부터가 예술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키며 초악량이 핀잔을 던졌다.
“이왕이면 큰 놈으로 잡아 오지 그랬냐? 멧돼지 같은 놈으로.”
범계위가 코웃음을 쳤다.
“뭘 모르는 소리. 이 야들야들한 육질을 보라고. 지금 이맘때는 토끼가 가장 맛있을 때요.”
“그래? 그럼 나도 좀 거들어 볼까?”
초악량이 자연스럽게 모닥불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은근슬쩍 토끼 고기를 꿰어 놓은 꼬치를 집어 이리저리 돌려 가며 굽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슈? 어디 이제 와 숟가락을 얹으시려고?”
범계위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나타난 한설화가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이 인간들이! 손대지 마! 그거 전부 우리 단 의원 줄 거라고!”
단악선의 음성이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그러지 말고 다 같이 먹어요. 건강을 위해서는 가끔 육류도 섭취해야 하니까요.”
풍진성과 함께 나란히 걸어온 단악선이 모닥불 앞에 도착했다.
범계위가 재빨리 꼬치구이 하나를 집어 단악선에게 건넸다.
고기를 한 입 베어 우물거리던 단악선이 탄성을 터트렸다.
“와! 정말 맛있어요!”
“그치?”
단악선의 눈치를 살피며 범계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화는 풀린 거야?”
“네? 저 화 안 났었는데요?”
범계위의 얼굴이 단번에 환해졌다. 열심히 사냥한 보람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도 먹어도 되냐?”
기분이 좋아진 범계위는 알아서 하라는 듯 초악량에게 휘휘 손을 저었다.
초악량과 한설화, 그리고 풍진성까지.
저마다 하나씩 고기 꼬치를 들었다.
그렇게 한참 식사를 즐기던 도중 초악량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넓게 펴서 말리고 있던 토끼 가죽이었다.
“이건 뭐 하려고?”
초악량의 질문에 범계위가 대답했다.
“잘 손질해서 단 의원 장갑 만들어 주려고.”
“만들 줄은 알고?”
“그건 초 형이 해야지. 손재주 좋잖아.”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 먹은 토끼 고깃값이라 치자.”
그때였다.
“토끼요?”
단악선이 떨리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고기가……. 토끼였어요?”
단악선이 한쪽에 펼쳐진 토끼 가죽을 향해 걸어갔다. 멍한 얼굴로 가죽을 바라보던 단악선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범계위를 바라봤다.
“혹시 이 토끼……. 한쪽 귀가 반쯤 잘려 있었나요?”
“어? 단 의원이 그걸 어떻게 알아?”
툭.
단악선이 들고 있던 고기 꼬치를 떨어트렸다. 그리곤 토끼 가죽을 와락 껴안았다.
“으앙! 아소야!”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는 단악선의 모습에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아소? 아소가 누구야?”
단악선이 울먹이며 대답했다.
“약초 캐다 만난 친구예요. 예전에 다쳤을 때 제가 치료해 줘서 친해졌거든요. 제 말도 알아듣고 그랬는데…….”
단악선이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떨궜다.
“미안해, 아소야. 내가 널 먹어 버렸어!”
“……!”
범계위는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그 순간 입에 넣었던 꼬치를 슬쩍 내려놓으며 일어서는 초악량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설화 역시 애써 딴청을 피우며 모닥불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 * *
침상에 누운 단악선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막연한 무언가가 머릿속을 맴돌았는데, 그게 뭔지 명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를 천천히 되짚어 보던 단악선이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에 벌떡 일어났다.
풍진성과의 대화가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원인과 증상……!”
서둘러 불을 밝힌 단악선이 탁자 위의 종이를 펼쳐 들었다.
초악량과 범계위, 그리고 한설화까지. 각자의 내공심법 구결이 적혀 있는 종이였다.
“맞아! 이거였어!”
내용을 유심히 살피던 단악선의 눈빛이 반짝였다.
비로소 머릿속의 생각이 명료해지며 미진했던 의문의 정체가 깨달아졌다.
문제를 해결하는 단서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아저씨! 아주머니!”
단악선이 전각 밖으로 뛰어나갔다.
갑자기 들려온 단악선의 외침에 세 사람이 동시에 모옥 밖으로 나섰다.
“무슨 일이냐?”
초악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구결이 적혀 있는 종이를 흔들었다.
“구결의 함정에 빠져 있었어요.”
“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구결의 함정이라니?”
단악선이 몇 번의 심호흡으로 흥분을 가라앉혔다.
“세 분의 심법 구결에 따라 진기가 흐르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면 이렇게 돼요.”
단악선이 모닥불에서 숯덩이 하나를 집어 종이 위에 그림을 그렸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른 것처럼 인체의 기맥도 마찬가지예요. 큰 맥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세맥의 위치는 조금씩 차이가 나죠.”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당연히 처음 내공심법을 만들었던 분과 여러분도 다르겠죠? 그런데 구결에 맞추어 억지로 진기를 운용하다 보니 이론과 실제 운용에서 작은 괴리가 발생한 거예요. 내공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 차이는 점차 더 벌어지고요. 결국 그것이 균형의 부조화를 가져와 부작용으로까지 이어진 것이죠.”
단악선의 설명을 듣던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왜 나만 그런 부작용이 생겼지? 우리 사부님은 괜찮으셨는데?”
“그건 아마……, 그분께서 범 아저씨 경지까지 이르지 못하셨기 때문 아닐까요?”
“어? 그러고 보니…….”
범계위가 수긍하자 한설화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악선이 그림을 한 곳 한 곳 짚어 갔다.
“아주머니는 이곳, 그리고 범 아저씨는 이 부분의 세맥이 닫혀 있어요. 덕분에 원래 세맥을 돌아 단전으로 돌아왔어야 하는 진기가 방향을 잃고 흩어져 엉뚱한 곳으로 이어진 거죠. 그게 결국 부작용을 초래한 거고요.”
이때 풍진성이 뒤늦게 모습을 나타냈다.
“아저씨에게 말했던 실수를 제가 저지르고 있었어요.”
“실수라니요?”
“병을 치료하려면 원인을 알아내 고쳐야 하는데, 증상을 치료하려고만 했어요. 하지만 그건 근본적인 치료가 될 수 없어요. 진짜 원인은 실제 세맥과 일치하지 않고 따로 노는 심법구결 때문이니까요.”
말없이 단악선의 설명을 듣던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얼추 아귀가 들어맞는군.”
초악량이 한설화와 범계위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내공심법은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작도 짐작하기 힘들 만큼 오래된 절학이지. 같은 피를 지녔다 해도 아비와 자식의 체질이 서로 다른 법. 타인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무공을 전수받는 사람은 계속 바뀌는데, 구결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으니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충분하지.”
“하지만 초 형은 부작용 없이 멀쩡했잖소?”
범계위의 물음에 초악량이 빙그레 웃었다.
“두 사람의 내공심법은 그야말로 초창기 원시 내공심법에 가깝다고 할 수 있잖아. 반면 혼원무극진기는 후대에 만들어진 거고. 무수한 내공심법들을 연구하고 거기서 얻은 시행착오를 보완해 적용한 것이니만큼 부작용이 적을 수밖에.”
“흥!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면서 잘난 척은.”
“뭐, 인마? 누가 내가 만들었대!”
금세 열을 올리는 두 사람을 무시한 채 한설화가 물었다.
“원인을 알았다면 치료도 가능한 것이냐?”
“일단 확인부터요.”
단악선이 한설화의 손목에 손가락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