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40)
신마의선-241화(240/500)
신마의선 (241)
“곡주님!”
의원들을 대동한 채 회진을 이끌던 단악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부르며 다급하게 달려오는 아두.
평소 차분하던 아두가 이처럼 흥분한 모습은 좀처럼 보기 드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아두의 말에 단악선의 얼굴이 환해졌다.
“선자님께서 돌아오셨어요!”
단악선이 의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남은 환자가 몇 명이죠?”
주초운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세 분이 더 남았지만 크게 위중한 환자는 아닙니다. 저희끼리도 충분히 회진을 돌 수 있으니 단 의원님께서 자리를 비우셔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럼 부탁드려요.”
어디론가 서둘러 달려가는 단악선을 바라보며 주초운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한설화와 단악선 사이가 얼마나 각별한지, 그리고 그녀가 떠나 있는 동안 단악선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자, 그럼 회진을 이어 갑시다.”
주초운이 단악선을 대신해 앞서 걷자 다른 의원들도 서둘러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아두에게 한설화의 위치를 물은 단악선은 한달음에 달려 그녀의 처소에 도착했다.
다탁에 앉아 조용히 차를 마시는 한설화를 발견한 단악선이 날 듯이 달려갔다.
“아주머니!”
그런데 단악선이 일순 멈칫했다.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한설화가 돌연 손을 들어 자신을 제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데없이 한 줄기 전음이 날아들었다.
―가까이 오지 마라.
“아주머니?”
의아해하는 단악선을 향해 한설화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냄새가 난다.
“냄새라니요?”
단악선의 반문에 한설화는 이번에도 전음으로 대답했다.
―몸에 밴 혈 향이 가시질 않는구나.
단악선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의 말에 담긴 의미를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비록 표정은 없었지만 그녀의 눈 위로 떠오르는 착잡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단악선이 애써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전 의원인걸요. 피 냄새는 익숙해요.”
한설화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단악선은 주저 않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한설화가 당황해 물러서려 했지만 단악선은 그대로 손을 뻗어 한설화를 덥석 껴안았다.
“……!”
흠칫하는 한설화와 달리 단악선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데요? 전 피 냄새가 안나요. 평소와 같은 향기만 느껴지는걸요.”
―평소와 같은 향기?
“네. 차가운 눈 속에서 피어난 야래향(夜來香) 같은……. 시원하고 청아한 향기요.”
야래향은 본래 더운 지역에서 자생하기에 눈 위에서 꽃을 틔울 수 없다.
그럼에도 그것 말고는 달리 마땅한 표현이 없었다.
그 순간 한설화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정말이구나.
“네?”
―혈 향이 사라졌다.
한설화는 당혹스러웠다.
북해빙궁을 나선 이후 집요하게 달라붙던 비릿한 피 냄새가 거짓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 아이 때문인가?’
자신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단악선.
무한한 신뢰와 애정이 담긴 눈빛 앞에 한설화는 문득 쓸쓸함이 밀려들었다.
함께 마주 웃어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맙구나.
“저야말로 고마워요. 무사히 돌아와 주셔서.”
한설화의 얼굴을 응시하던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라면 이쯤에서 희미하게라도 부드러운 미소를 건네 왔을 한설화였다.
그런데 여전히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아주머니?”
―듣고 있다.
“어째서 계속 전음을…….”
말끝을 흐리던 단악선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설마……?”
―미안하다.
“다시 처음과 같은 상태로 돌아온 건가요?”
놀란 얼굴로 반문하는 단악선을 향해 한설화가 씁쓸한 눈빛을 건넸다.
―아무래도 빙정을 다시 거두었기 때문인 것 같구나.
“빙정이라뇨?”
한설화는 북해빙궁에서 겪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떠나기 전, 단악선과 약속했던 대로 북해빙궁과 자신 사이에 얽힌 은원도 언급했다.
한참 동안 이어진 한설화의 전음에 단악선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기를 잠시.
단악선이 복잡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즉 빙정이 아주머니의 생명을 지탱하는 근원이라는 건가요? 그리고 그 빙정을 내부에 가두기 위해 평소에는 내력의 상당 부분을 계속해서 소모하던 상태고요.”
―비슷하다.
육마존 둘을 한 번에 상대하는 건 그녀에게도 버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빙정을 해방해야만 했다.
오롯이 모든 내력을 쓸 수 있는 방법은 그것만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싸움을 마무리 짓고 빙정을 다시 거두었을 때만 해도 특별한 이상 징후는 느껴지지 않았다.
심상치 않은 전조가 찾아온 것은 북해빙궁을 떠나오고 나서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지나치게 내력을 소모했기 때문일까.
빙정을 제어하고 다스리는 내력보다 어느 순간 빙정의 기운이 더욱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와 더불어 온몸의 감각이 확연하게 약해지기 시작했다.
―과거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돌아오는 내내 한설화는 최선을 다해 빙정의 기운을 억눌렀다.
그러나 결국 단악선을 만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처음 아주머니를 진료했을 때 제가 했던 말 기억하시나요?”
―……?
“아주머니께서는 아마도 오래전에 연신환허의 단계에 접어든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고 했던 말이요.”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 단악선도 확신하는 건 아니었다.
그와 유사한 그 어떤 사례도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이 불가능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진즉에 죽음에 이르렀을 내부의 한기 때문이었다.
오직 육신의 제약을 벗었을 때만 가능한 현상.
“왜 그토록 연신환허의 상태가 불안정한지 알았어요.”
바로 도가의 연기파에서 말하는 연정화기(練精化氣), 연기화신(練氣化神), 연신환허(練神還虛)의 순서를 온전히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정화기는 정(精), 즉 타고난 정기인 선천지기를 수련해 기를 축적하는 과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신(神)을 양성하는 것이 연기화신이며, 신을 단련해 궁극에 이르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연신환허다.
그야말로 육신의 제약을 넘어선 초월의 경지.
육체의 한계에 갇히지 않으니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불로불사의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소위 육체를 벗고 신선이 되는 등선(登仙)과도 비슷한 개념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불안정하다는 점이죠. 그 원인은 아무래도 빙정 때문이 아닐까 싶고요.”
―내가 다시 목소리를 찾을 수 있겠느냐?
비록 표정은 없었지만 단악선은 그녀가 마주한 상실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진정 소중한 것을 알게 되는 법.
그녀에게는 목소리가 그랬다.
“일단 진맥부터 해 봐야겠어요.”
한설화는 선선히 소매를 걷고 손목을 내밀었다.
한참 동안 신중하게 그녀를 진찰하던 단악선이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다발성 골절……. 게다가 내상도 심각했었군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지금은 상당히 호전되었다는 점이었다.
기껏해야 보름 정도 정양하면 부상의 영향에서 완벽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악선으로서는 이 역시 빙정의 효과 때문이 아닐까 막연히 짐작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쳇, 벌써 왔어? 이제 좋은 시절 다 갔군.”
월동문을 넘으며 툴툴거리는 범계위 뒤로 초악량이 따라 걸어 들어왔다.
“예상보다 빨리 돌아온 것을 보니 무언가 소득이 있었나 보군.”
대수롭지 않게 들어서던 두 사람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단악선의 표정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단악선과 한설화를 번갈아 바라보던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왜 그래? 단 의원. 혹시 마녀가 죽을병에라도 걸린 거야?”
범계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 건 그 직후였다.
“너나 닥쳐!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갑자기 버럭 하는 범계위의 모습에 초악량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혼자 난리냐?”
“마녀가 나더러 닥치라잖수.”
“뭐?”
“……?”
여전히 영문 모를 표정을 짓고 있는 초악량의 모습에 범계위가 당황한 얼굴로 눈을 껌벅였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상황을 깨달은 범계위가 한설화를 노려봤다.
“사람 바보 만드니 좋냐? 행복해? 왜 뜬금없이 전음이야? 전음은…….”
살기까지 담아 으르렁대는 범계위를 향해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아주머니께서는 지금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태세요.”
초악량이 놀라 반문했다.
“목소리를 낼 수 없다니?”
단악선이 한설화의 상황을 두 사람에게 설명했다.
“저런…….”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초악량과 달리 범계위는 코웃음을 쳤다.
“흥! 쌤통이다! 이제 그 귀찮은 목소리를 안 들어도 되겠군.”
이죽거리던 범계위가 와락 인상을 찡그리더니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으으…….”
범계위가 이내 울상을 지었다.
그 모습에 초악량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상황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귀를 막는다 해서 들리지 않는다면 전음이 아니다.
연이어 날아드는 전음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범계위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그만해! 그만! 이제 입 다물고 있을 테니 작작 좀 하라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씩씩대던 범계위가 홱 고개를 돌려 한설화를 외면했다.
반면 초악량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그때가 떠오르는 상황이구나.”
“그때라니요?”
단악선의 반문에 초악량이 대답했다.
“한 누이를 처음 만났던 당시 말이다.”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초악량이 곤란한 듯 한설화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단악선이 재차 부탁했다.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싶어요. 아주머니의 치료를 위해서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단악선의 심정을 초악량이라 해서 어찌 모를까.
다만 한설화 본인이 아닌 자신이 언급하기에는 입장이 난처했다.
이때 한설화가 초악량을 향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군.”
한 차례 쓰게 웃은 초악량이 오래된 기억을 더듬었다.
“한 누이를 처음 만난 것은 사부님의 복수를 위해 내가 청산혈사를 일으키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전 중원에 나를 죽이려는 놈들이 넘쳐 나던 때였지. 그만큼 내 악명이 자자하던 때였고.”
불에 취해 달려드는 부나방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달려드는 정파의 고수들.
천하의 초악량조차 끊임없이 반복되는 피의 굴레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동안 중원을 떠나 있기로 마음먹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여정을 이어 가던 도중.
갑자기 닥친 눈보라를 피해 들어선 동굴에서 한설화를 만났다.
“처음에는 얼어 죽은 사람인 줄 알았다.”
동굴 벽에 기대어 가만히 앉아 있던 한설화.
얼굴은 핏기 한 점 없이 창백했고,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의당 지녔어야 할 온기도 없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서 외롭게 죽어 간 그녀가 안타까웠다.
그래서 눈이 그치면 근처에 그녀를 안장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니 실낱처럼 이어지는 미약한 호흡이 느껴졌다.
“뒤늦게 그녀가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진기를 불어 넣기 시작했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는지 한참 후에 한설화가 눈을 떴다.
“그리고 곧장 죽일 듯이 내게 달려들더군.”
그때를 생각하자 새삼 어이없었던지 초악량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당시의 한설화는 몹시 쇠약한 상태였다.
어렵지 않게 한설화를 제압한 초악량은 한동안 동굴 안에서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 후로도 사흘이나 계속 이어진 눈보라 때문이었다.
육포와 건량으로 버티며 날씨가 잠잠해지길 기다리기도 잠시.
“말을 건넨 것은 내가 먼저였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야말로 심심파적을 위해서였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지만 그래도 계속 혼자 떠들었지.”
일상적인 날씨 이야기부터 살아온 인생 이야기.
거기에 깊은 곳에 담아 두었던 속내까지…….
어차피 헤어지면 그뿐인 인연이라 생각했기에 거리낄 것이 없었다.
처음에는 몹시 경계하던 한설화도 시간이 지나며 점차 눈빛이 누그러졌다.
그렇게 사흘째 되던 날.
“처음으로 한 누이가 전음으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