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41)
신마의선-242화(241/500)
신마의선 (242)
―시끄러워.
“그때는 정말 깜짝 놀랐지.”
당황했던 당시의 감정이 초악량의 표정에서 고스란히 묻어났다.
“처음에 쉽게 제압했기에 전음을 사용할 정도의 고수일 거라고는 짐작도 못 했거든.”
문제는 상황이 그리되자 오히려 초악량이 한설화를 경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 경계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좀 모자란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무공을 잘못 익혀 장애를 얻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
멈칫한 한설화가 초악량을 노려봤다.
초악량이 슬쩍 고개를 돌려 한설화의 매서운 눈빛을 외면했다.
“당시의 한 누이는 지금처럼 표정도 없었다. 전음 이외에는 이렇다 할 의사소통 방법도 전무했지. 그러니 당연히 그리 생각할 수밖에…….”
그렇게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당시의 그녀는 순진했고, 그래서 자신의 사연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것이 초악량의 경계심을 허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한설화는 그야말로 백치와 다를 바 없는 상태였다.
얼음을 깎아 만든 것 같은 아름다운 외견에 비해 정신 연령은 기껏해야 열 살 남짓한 수준.
그만큼 인세의 규범과 법도에 무지했다.
그녀가 동굴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세상은 더없이 가혹했고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를 안타깝고 가엾게 여긴 초악량은 이후 한동안 그녀와 함께 강호를 주유했다.
먼저 자처해 의남매를 맺자 제안한 사람도 초악량이었다.
“당시에는 나도 강호에 지쳐 있었고, 사람의 정에 굶주려 있던 때였다.”
사천에 사는 친구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한설화가 유일했다.
“한 누이의 나이가 나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나중의 일이었지.”
무공 역시 마찬가지.
시간이 지나며 온전히 본래의 상태를 회복한 한설화의 무위는 실로 기함할 정도였다.
“뒤늦게 한 누이가 오십 년 전 강호를 질타했다 홀연히 모습을 감춘 고수, 빙옥선자라는 것을 알았지.”
이후 초악량이 조심스럽게 서로의 호칭을 정리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한설화는 단호하게 이를 거부했다.
―유일했으니까.
갑자기 날아든 전음에 초악량이 한설화를 바라봤다.
―그 어떤 대가 없이 누군가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준 것도……. 그리고 누군가의 보호를 받은 것도.
당시를 떠올린 것일까.
초악량을 바라보던 한설화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초 오라버니만이 유일했어.
빙궁을 벗어나 마주한 세상은 한설화에 더없이 낯설고 기괴했다.
기껏 나쁜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생각했지만 세상엔 그보다 나쁜 인간들이 넘쳐 났다.
온갖 욕망과 이기심으로 사로잡힌 군상들.
탐욕으로 얼룩진 끈적한 눈빛은 지금 떠올려도 진저리가 쳐질 정도였다.
괴물 대하듯 자신을 보던 눈빛 역시 마찬가지.
그 안에서 한설화는 지쳐 가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외부와 고립되어 단절된 공간을 찾게 된 이유도 그래서였다.
오직 의식만이 존재하는, 스스로 만들어 낸 빙한의 감옥.
찰나의 시간이 영겁처럼 느껴지는 추위 속에서 점차 목적도, 이유도 희미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만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모두 놓아 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강렬한 유혹에 사로잡힌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철저히 혼자 조용히 얼음으로 변해 갔다.
삶과 죽음의 경계.
오직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모호한 의식만이 남아 끝없는 나락의 무저갱으로 추락하던 그녀를 붙든 것은 초악량이 불어넣어 준 한 줄기 온기였다.
깨어난 그녀를 다시금 세상에 붙들어 준 것도 초악량의 목소리였다.
그것이 한설화가 지금도 초악량을 오라버니라 부르는 이유였다.
그 외에는 달리 초악량과의 관계를 생각할 수 없었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세상에서 처음 느낀 인간다운 감정.
그 소중한 가치보다 속세의 규범을 우위에 두고 싶지 않았다.
“쳇, 난 또 뭐라고. 뭐 대단한 이유라도 있는 줄 알았네.”
툴툴대던 범계위가 매서운 한설화의 눈빛에 찔끔했다.
단악선이 탄성을 터트린 것도 그때였다.
“아!”
“왜 그러느냐?”
초악량의 반문에 단악선이 한설화에게 다가가 진맥을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무언가를 확인하던 단악선이 재차 탄식을 흘렸다.
“역시 그랬어요.”
의아해하는 초악량과 범계위를 뒤로한 채 단악선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한설화를 올려다보았다.
“빙정 때문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확실해요.”
그렇게 단언한 단악선이 재빨리 설명을 이어 갔다.
“만약 그랬다면 분명 진기의 흐름이 불안하다든지, 혹은 기맥이나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거예요. 하지만 실제로 아주머니의 몸 상태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실제로도 큰 이상은 없고요.”
단악선이 되물었다.
“예전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고 하셨죠?”
단악선이 초악량과 한설화가 처음 만났던 당시를 언급했다.
“이건 심리적인 문제예요. 쉽게 말해 마음이 다친 거죠.”
그 말에 범계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이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푸하핫! 말도 안 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 얼음 마녀가?”
반면 단악선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얼굴로 한설화를 응시했다.
“성정만큼은 누구보다 섬세하고 다정한 분이시니까요.”
초악량 역시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길 바랐건만,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안고 돌아왔구나. 이럴 줄 알았다면 그때 말릴 것을…….”
정신과 육신의 괴리.
무인에게 있어 사실 이보다 위험한 것도 없었다.
그나마 한설화여서 이 정도로 그치는 것일 뿐, 다른 무인이었다면 양쪽의 균형이 어그러지는 순간 통제를 잃은 진기가 미쳐 날뛰었을 터.
이후 주화입마의 수순을 밟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무공에 입문하는 순간부터 정신 수양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정파인에 비해 사파인의 주화입마 비율이 유독 높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만큼 여린 성정을 지닌 사람이 무공을 익힌다는 것은 양날의 칼을 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사실 단악선에게 무공을 전수하며 세 사람이 가장 우려했던 것도 이 부분이었다.
그때였다.
말없이 한설화를 빤히 응시하던 범계위가 장내를 짓누르는 무거운 침묵을 깨며 불쑥 입을 열었다.
“약골.”
한설화가 움찔하며 범계위를 노려봤다.
―……뭐?
초악량 역시 못마땅한 눈빛을 던졌다.
“지금 이 상황에 그게 할 말이냐?”
범계위가 홱 고개를 돌려 초악량을 째려봤다.
“초 형도 마찬가지요!”
엉뚱하게 자신에게 불똥이 튀자 초악량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내가 뭘?”
“마녀도 그렇고, 초 형도 그래. 사람들이 진짜 양심도 없어.”
“아저씨…….”
“아니야, 단 의원. 말리지 마. 내가 이 말은 꼭 해야겠어.”
단악선이 황급히 범계위를 만류하려 했지만 작정한 듯 범계위가 말을 이어 갔다.
“단 의원이 애써 고쳐 놓으면 뭐 해? 어디만 갔다 오면 다쳐서 오는데.”
찔끔한 초악량이 헛기침을 터트렸다.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표정은 없었지만 눈빛에는 당혹감이 역력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번 비난의 포문을 연 범계위는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두 사람을 몰아붙였다.
“두 사람 치료하느라 쏟아 넣은 단 의원의 소중한 영약과 시간, 그리고 노력은?”
“…….”
―…….
“대체 양심이 있어, 없어?”
범계위가 손을 들어 자신을 가리켰다.
“나 봐. 치료를 받을수록 더 건강해지고, 오히려 무공까지 강해졌잖아. 누가 큰 걸 바라? 그냥 나처럼 단 의원의 고생이 헛되지 않게만 하란 말이야.”
―닥쳐.
한설화의 전음에 범계위가 코웃음을 쳤다.
“단 의원 보기 부끄럽지도 않아? 아니면 단 의원의 노력이 우스워?”
―그만!
“그것도 아니라면 단 의원 무시하는 거야?”
조용히 끓어오르던 한설화의 분노가 어느 순간 비등점을 넘어섰다.
한설화의 신형이 그대로 꺼지듯 사라졌다.
쩌엉!
육중한 충격음이 대기를 뒤흔든 것도 그때였다.
한설화가 신형을 날려 범계위를 공격한 것이다.
범계위가 한설화가 날린 일 장을 주먹으로 쳐 내 걷어 올렸다.
그러나 그 역시 그대로 일 장가량을 주르륵 밀려났다.
충격을 완전히 흘려 내지 못한 것이다.
치솟는 살기를 직감하고 미리 방비했기에 망정이지, 넋 놓고 있었다간 곧장 황천행 배에 몸을 실었을 만큼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뉘우치지는 못할망정 되려 성질을 부려?”
한설화의 눈빛이 서늘하게 물들었다.
순식간에 대기가 차갑게 얼어붙나 싶더니.
츠츠츳.
허공에 투명한 얼음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설화의 손이 범계위를 가리키자 무수한 얼음 창이 일제히 범계위를 향해 쇄도했다.
하나 범계위 역시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래! 오늘 날 잡자!”
독문심법인 도반삼양진기를 극성으로 끌어 올리자 용암처럼 후끈한 열기가 삽시간에 일대를 가득 채웠다.
콰앙!
두 사람이 격돌한 것도 그 직후였다.
번개처럼 어지럽게 뒤얽힌 두 사람 사이에서 의외로 굉음은 터져 나오지 않았다.
대신 서로의 빈틈과 약점을 노리는 벼락같은 움직임이 눈을 어지럽게 할 뿐이었다.
두 사람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기세에서 밀리면 한순간에 승부가 결정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 바로 고수들의 대결.
특히나 근접전이 으레 그렇듯 한 수라도 삐끗하는 순간 그대로 승부가 결정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어느 한쪽이 왈칵 피를 토하며 나뒹굴 것 같은 흉험한 상황이 아슬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범계위가 살짝 밀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기세를 몰아 한설화가 범계위를 향해 온갖 절학을 쏟아부었다.
―내가.
쾅!
―그만.
콰앙!
“닥치라고 했지!”
대기를 떨어 울리는 한설화의 분노 어린 일갈에 범계위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
“전음을 날리든지 소리를 지르든지 둘 중 하나만 해, 하나만!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뭐?”
한설화가 놀란 얼굴로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
이때다 싶어 재빨리 물러선 범계위가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볐다.
“어디서 꾀병이야? 꾀병은. 멀쩡하기만 하구먼.”
“…….”
“마녀, 너 딱 걸렸어.”
당혹감에 말을 잇지 못하는 한설화를 향해 범계위가 눈을 부라렸다.
“어디서 수작질이야?”
“수작?”
“그래! 애처롭고 불쌍한 척해서 여린 단 의원의 마음을 얻어 보겠다는 심산이었잖아?”
한 줄기 환호성이 장내에 울려 퍼진 것도 그때였다.
“우와! 역시 범 아저씨는 대단해요!”
“어? 나?”
영문 모를 표정을 짓는 범계위를 단악선이 한껏 추켜세웠다.
“방금 한 아주머니를 치료하셨잖아요.”
“응? 내가 그런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한설화가 아미를 찡그린 채 범계위를 노려봤다.
“어쩌다 저 얼간이와 엮어서…….”
내심 기가 막히고 황당했지만 이내 피식 웃고 마는 한설화였다.
어쨌거나 지금은 목소리도 되찾았고, 표정도 지어졌다.
초악량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극복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 그런 정신적 외상마저 무의미하게 만들 정도로 사람 속을 뒤집어 놓다니. 어떤 의미로는 네가 천하제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단연 단악선이었다.
“어쨌든 다행이에요! 범 아저씨 최고!”
“으하하! 그것 봐, 단 의원. 우리 단 의원은 나만 믿으면 된다니까?”
단악선의 칭찬에 한껏 거드름을 피우는 범계위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흘리고 있었다.
무공이 일취월장한 이후 내심 한설화와 붙어 볼 기회만 노리고 있었는데 막상 손을 섞어 보니 이건 웬걸.
반수.
아니, 딱 반의 반수 정도가 모자랐다.
문제는 지금 그녀가 빙정을 속박하기 위해 상당한 내공을 금제하고 있는 상태라는 점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북해빙궁에 그 정도로 대단한 고수가 있었나?”
“응?”
의아해하는 초악량을 향해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그렇잖수. 빙정을 꺼내 놓으면 얼마 안 가 죽는다며?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전력을 쏟아부어야 할 고수가 거기에 있냐는 거지, 내 말은.”
그 의문에 대답한 사람은 한설화였다.
“그곳에 염마와 검마가 있었다.”
초악량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마교의 육마존?”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검마는 죽였고, 염마는 놓쳤어.”
“……!”
“……!”
초악량과 범계위가 잠시 얼빠진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다 결국 범계위가 버럭 했다.
“그 이야기를 왜 이제야 해! 제일 먼저 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