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42)
신마의선-243화(242/500)
신마의선 (243)
그때였다.
“뭐? 누굴 죽여?”
“방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막 장내로 들어선 두 사람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악호군과 능소밀이었다.
두 사람 모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난데없는 굉음에 놀라 달려왔는데, 그보다 더 놀라운 말을 들은 것이다.
“자세하게 말씀해 주세요.”
단악선의 부탁에 한설화는 북해빙궁에 도착한 이후 겪은 일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다.
“으음…….”
악호군은 놀란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그 역시 과거 정마대전 당시 그들 중 한 명을 상대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호교십위였지.’
당시 단신으로 녹림의 총단에 난입해 왔던 부마(斧魔).
그의 가공할 무위는 지금 떠올려도 모골이 송연했다.
더구나 놈은 멀쩡한 상태도 아니었다.
어디서 당했는지 눈알 하나는 사라져 있었고, 다리도 절뚝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성치 않은 몸으로 녹림의 정예 백여 명을 길동무 삼아 저승으로 데려갔다.
나름 강호에서 알아주는 고수라 자부하던 그조차 놈과의 일대일 대결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대신 미리 준비해 둔 함정으로 유인한 뒤 암기를 퍼부어 간신히 놈의 숨통을 끊어 놓을 수 있었다.
그때의 정마대전에서 살아남은 호교십위가 지금의 육마존이었다.
그런 만큼 무공뿐만 아니라 노련함까지 겸비한 고수 중의 진짜 고수들이다.
그런 그들을 동시에 둘이나 상대하고, 그중 한 명의 목을 따 버렸다니!
이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한설화의 모습에 악호군은 그저 기가 질릴 뿐이었다.
반면 능소밀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수확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마교 입장에서도 육마존 중 하나를 잃은 건 제법 뼈아픈 타격일 것입니다. 장기로 치면 적어도 차(車)나 포(包) 정도는 될 테니까요.”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단악선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그들이 언급했던 수보(首輔)가 누굴까요?”
“일반적으로 조정의 내각 업무를 주재하는 내각대학사를 수보(首輔)라고 합니다. 황제에게 옳고 그름을 주청하는 고문(顧問) 역할인 셈이죠.”
능소밀의 대답에 단악선이 놀라 반문했다.
“조정의 인물이 마교와 깊게 관여해 있다는 의미인가요?”
“그건 아닐 것입니다.”
고개를 저은 능소밀이 설명을 이어 갔다.
“지금은 종교적인 색이 짙어졌지만 과거에는 황실을 전복시키기 위해 호시탐탐 음모를 꾸미곤 했던 놈들이 마교입니다. 지금의 황천이 본래는 자신들 것이라 믿고 있으니까요.”
홍건적의 난과 군벌들의 봉기로 혼란이 극에 달했던 원나라 말기.
수많은 한족이 백련교를 중심으로 세를 일으켰다.
백련교와 홍건적을 오가며 두각을 드러낸 사람중 한 명이 주원장이었고, 이후 한족 군벌들과 원나라 군대를 격파하며 황제가 되었다.
명(明)이라는 국호가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한족에 의해 세워진 나라는 춘추 전국 시대에 존재했던 국명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나라의 시조 유방은 한왕(漢王) 작위를 가지고 있었고, 위태조 조조와 진태조 사마소는 각각 후한과 위나라의 위왕(魏王), 진왕(晉王)을 자처했다.
수문제 양견은 북주의 수왕(隋王), 당고조 이연이 수나라의 당국공(唐國公)을 자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왕조를 건국하면 건국자가 기존에 하사받거나 불리던 작위명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태조 주원장은 황제가 되기 전 오국공(吳國公)이라는 칭호를 썼음에도 정작 나라의 이름은 오(吳)가 아닌, 명(明)으로 정했다.
이는 백련교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과거 백련교에서는 흑암(黑暗)이 물러가고 광명(光明)이 올 것이라고 주창해 왔다.
흑암 격인 원나라를 몰아내고 세운 나라가 곧 명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마교의 교주인 천마가 황색 무복을 즐겨 입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천하의 진짜 주인은 자신들이라 믿고 있는 것이지요.”
황색은 신성함, 고귀함 그리고 권위의 상징이며 제왕의 색으로도 불린다.
고대 이래로 황색은 오방(五方), 오행(五行), 오색(五色) 중의 정중앙에 위치하여 중앙 정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오직 황제에게만 허락되는 색으로 숭상했다.
“사실상 승상의 개념이 사라진 지금, 수보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쩌면 단순하게 이름 그 자체일 수도 있고요. 지금은 워낙 정보가 적어 단정하기가 어렵군요.”
능소밀의 말에 단악선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존재가 마음에 걸렸다.
“마교의 움직임 이면에는 어쩌면 그가 깊게 관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염마와 검마가 나누었던 대화.
특히 한설화가 북해빙궁에 올 것을 정확히 예상했다는 부분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특히 이를 대비해 육마존을 둘이나 보낸 부분도 신경이 쓰였다.
정작 염마는 수보가 과민하다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검마의 말대로 철두철미한 계산 아래 결정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그 두 사람이 처음부터 방심하지 않고 전력으로 한설화를 공격했다면?
지금쯤 부음을 전해 듣고 있을 사람은 수보라는 자가 아닌, 자신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혈운사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떠난 사무심이 더욱 걱정되었다.
“제발 총관님이 무사하셔야 할 텐데…….”
이때 말없이 어딘가를 응시하던 초악량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네 바람이 하늘에 닿았나 보구나.”
“네?”
의아한 얼굴로 반문하는 단악선을 위해 초악량은 대답 대신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그 손을 따라 시선을 돌린 단악선은 막 월동 문을 넘는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무심이었다.
“총관님!”
단악선이 반색하며 손을 흔들자 사무심 역시 웃으며 다가와 정중히 예를 갖췄다.
“마침 모두 모여 계셨군요.”
사무심이 자신이 겪은 일을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야기를 모두 마치자 범계위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내가 갈 걸 그랬나? 그랬다면 노단양 그놈을 잡아 왔을 텐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노단양이 드러냈던 신위를 떠올린 사무심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의 칠절마군이 아니었습니다.”
“흥! 그래 봐야 노단양이지. 마교의 잡기 하나 익혔다고 내 상대가 될 수 있을까?”
발끈하는 범계위의 모습에 사무심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타다 만 한 장의 서찰이었다.
“아무래도 그가 익힌 마교의 무공이 혈라강기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서찰의 내용을 확인한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공 요결이군.”
불에 의해 크게 훼손되어 있었지만 그것이 특정 무공의 핵심 요결인 가결의 일부라는 것을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중원의 무공과 확연하게 궤를 달리는 특징.
마공이 분명했다.
사무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식으로 노단양에게 마공을 전달하고 그가 숙지한 것을 확인한 뒤 연락책에게 증거를 인멸하도록 지시한 것 같습니다.”
“누가?”
범계위의 반문에 단악선이 대답했다.
“현 무림맹주겠죠.”
단악선이 서찰을 가리켰다.
“한눈에 봐도 여인의 필체가 분명해요.”
이때 생각에 잠겨 있던 능소밀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제갈연과 노단양 사이의 연락책이 황보세가 사람이었다고 하셨습니까?”
범계위 역시 고개를 갸웃했다.
“어? 그러고 보니 이상한데? 전에 초 형이 확인했던 연락책은 모용세가의 무공을 썼다고 하지 않았수?”
“그랬지. 분명 놈이 사용했던 무공은 모용세가 독문 무공인 금룡조였다.”
의아해하는 중인들의 시선에 사무심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본 것은 확실히 황보세가의 무공이었습니다.”
상대를 제압하기 직전.
그는 태산십팔반장(泰山十八盤掌)을 사용해 반격하려 했다.
황보세가의 권법은 이정제동(以靜制動)의 묘리에 충실했다.
대체적으로 타고난 힘과 장대한 근골, 웅후한 공력을 바탕으로 한 각종 권장에 능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무공은 비록 초식은 단순하고 우직하나 뛰어난 권장의 기세와 위력이 단점을 충분히 메우고도 남았다.
대표적인 무공 중 하나가 지금은 사라진 태산파의 무공을 흡수해 새롭게 집대성한 태산십팔반장이었다.
반장(盤掌).
다른 손으로 공격하는 손목을 감싸 받쳐 위력을 배가하는 장법은 타 문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그들만의 특징 중 하나였다.
“사실 이상한 일도 아니지요.”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가들이 연합한 곳이 지금의 무림맹이니까요.”
침묵을 유지하던 악호군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나는 그것보다 다른 게 신경 쓰이는군.”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자 악호군은 사무심이 설명했던 내용 중에 혈운사가 겪은 내분에 대해 언급했다.
“마교의 고수 한 명이 혈운사의 우두머리를 죽였다고 했는데, 나이는 고작 약관 남짓이라? 그것도 십 합 만에 말이야. 나는 그자의 존재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한데, 나만 그런가?”
혈운사를 이끌던 총령의 무위는 어림잡아도 자신과 엇비슷한 수준.
다시 말해 그 정체불명의 고수와 마주한 순간 그 역시 같은 전철을 밟지 말란 법이 없었다.
“혹시…….”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가 바로 육마존이 언급한 수보일까요?”
이때 한설화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어쩌면 육마존이 키워 낸 고수일 수도 있겠지. 수보라는 자와 육마존 사이는 매우 돈독해 보였거든.”
그를 언급할 때 염마와 검마의 눈에는 감출 수 없는 신뢰감이 담겨 있었다.
“마치 우리처럼?”
범계위의 반문에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라 해서 그러지 말란 법은 없지.”
단악선이 상황을 정리했다.
“우선 마교와의 일전은 늘 상정해 두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무엇보다 그 전에 무림 내부의 불안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고요.”
단악선이 사무심이 가져온 서찰을 집어 들었다.
“이걸 증거로 무림맹을 압박할 수 있을까요?”
능소밀이 고개를 저었다.
“애석하지만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찌어찌 황보세가까지는 노단양과의 관계로 엮어 몰아넣는다 하더라도, 무림맹주는 필시 모르는 일이라 잡아뗄 테니까요.”
초악량이 싸늘한 눈빛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상관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확신이었으니까.”
범계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가 관아도 아니고, 증거의 유무를 가지고 판결을 내리는 판관도 아니잖아.”
무림에는 무림만의 방식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 자리의 대부분이 납득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피는 피로 씻는 게 강호의 율법이지.”
지리멸렬한 현재의 상황에 지쳤던지 악호군마저 그 의견에 동조했다.
오직 단 한 사람.
단악선만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명분이에요.”
그렇게 운을 뗀 단악선이 차분한 눈빛으로 설득을 이어 갔다.
“무력을 앞세워 그들을 징벌한다면 돌아가신 방주님의 복수는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건 방주님이 원하시던 방식이 아니에요. 완벽한 증거를 바탕으로 저들이 절대 반박할 수 없는 명분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해요. 그래야 혹시 모를 분란이 야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의 진짜 적은 무림맹뿐만이 아니에요. 하루빨리 내부의 갈등을 제대로 봉합하지 않는다면 마교에 어부지리의 기회를 줄 뿐이에요.”
“그럼 증거를 더 찾아야 하나?”
범계위의 반문에 단악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도 굳이 크게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확실한 심증을 얻었으니 바로 시작해야죠. 이제는 우리가 상황을 주도해 저들 스스로 자중지란을 일으키도록 유도할 거예요.”
“무림맹에 속한 세가들에게 갈등을 야기시킨다는 말씀이십니까?”
능소밀의 반문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단은 황보세가를 시작으로요.”
그 말에 범계위가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을 꺾어 우두둑 소리를 냈다.
“드디어 내가 나설 차례가 된 것인가?”
그런데 단악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황보세가를 상대할 사람은 따로 있어요.”
“어? 누구?”
단악선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향했다.
“그들에겐 이미 확실한 적이 있잖아요. 아주 오랫동안 싸워 온.”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아지자 악호군이 당황해 눈살을 찌푸렸다.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