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43)
신마의선-244화(243/500)
신마의선 (244)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래. 저놈도 이제 밥값 할 때가 되긴 했지.”
밉살스럽게 끼어드는 범계위의 말에 악호군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그런 악호군을 범계위가 마주 노려봤다.
“뭐야? 그 눈깔은?”
“…….”
“아니꼬우면 한판 붙든가.”
노골적인 범계위의 도발에 악호군은 애써 치솟는 노기를 억눌렀다.
‘앓느니 죽지.’
무공으로 겨루자니 실력이 부족하고 말로 싸우는 건 더욱 답도 안 나오는 상대가 범계위였다.
괜히 실랑이해 봐야 무조건 자신만 손해인 것이다.
게다가 당장은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우리가 황보세가를 친다면 무림맹이 나설 텐데? 이곳도 더 이상 금지로 유지될 명분이 사라질 테고.”
악호군의 우려에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걱정 마세요. 황보세가와 녹림의 싸움에 무림맹이 관여할 수 없도록 만들 테니까요.”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방주님을 살해한 흉수로 밝혀진 이상 칠절마군은 무림 공적의 신세를 면치 못해요. 그런 상황에서 황보세가가 칠절마군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황보세가도, 무림맹도 입장이 곤란해지겠죠. 여론을 의식해서라도 무림맹은 함부로 나설 수가 없을 거예요.”
“지금까지 모은 정보를 공표하겠다는 뜻이냐?”
“아니요.”
“……?”
“어디까지나 압박용이죠. 실제로도 황보세가와 녹림이 충돌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무림맹의 도움 없이는 녹림의 존재만으로도 그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테니까요.”
단악선의 노림수를 읽은 악호군이 피식 웃었다.
“나더러 종이호랑이 역을 맡으라는 건가?”
나름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다.
무엇보다 직접 나서 피해를 감수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범계위가 얄미운 소리를 지껄였다.
“어차피 원래부터 종이호랑이였잖아. 있으나 마나 한.”
“뭐라고?”
“이 중에 널 무서워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 거 같아?”
발끈했던 악호군이 얼굴을 구기며 신음을 흘렸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좋다. 맡지, 그 역할.”
결국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는 것이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다음 날 아침.
주초운은 신마의가 후원에 임시로 마련된 연무장을 찾았다.
회진까지는 아직 약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전에 아들의 일과를 살펴보고 싶었다.
주장명은 동이 트기 무섭게 사라졌다가 저녁 식사 때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주초운이 연무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침 수련을 끝냈는지 주장명은 온통 땀에 젖어 후줄근한 모습이었다.
“자, 여기 물.”
“고마워, 아두 형.”
아두에게 건네받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주장명이 연무장 한쪽에 마련된 탁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곤 탁자 위에 놓인 책을 집어 들었다.
“땀을 많이 흘렸는데 안 씻어도 돼?”
아두의 물음에 주장명이 씨익 웃었다.
“어차피 또 흘릴 텐데, 뭐. 잠깐 숨만 돌리고 계속 수련할 거야.”
못 말린다는 듯 아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는 시간과 식사 때를 제외하면 온통 심법의 수련과 독서에 매달리는 주장명이었다.
아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은 것도 그때였다.
“그러고 보니 책이 바뀌었네? 지난번 의서는 벌써 다 읽은 거야?”
“오늘부터는 임상 기록을 읽어도 된다고 허락하셨거든.”
“곡주님께서?”
“응.”
“축하해. 이제 본격적으로 의원의 길을 걷게 되었구나.”
“헤헤. 그래도 아직 아두 형 따라가려면 멀었는걸. 형은 벌써 환자 맥도 잡고 시침도 하잖아.”
“어깨너머로 배운 걸 이제 겨우 흉내 내는 수준인데, 뭘.”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지켜보던 주초운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그들 부자가 신마의가에 머문 지도 몇 달이 흘렀다.
비슷한 또래인 데다 동병상련의 처지인 아두와 주장명은 나이를 떠나 더없이 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치료를 병행하며 위화신공을 연마하기 시작한 이후 주장명은 더 이상 발작을 일으키거나 정신을 잃는 일이 없었다.
아두 역시 마찬가지.
꾸준한 치료를 통해 이제 일반인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다리가 호전된 상태였다.
주초운은 그저 현재의 상황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이렇게 아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또래와 어울려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동안의 노고를 전부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보기 좋죠?”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주초운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언제 왔는지 단악선이 미소를 건네 왔다.
“두 사람은 좋은 경쟁자가 될 거예요.”
“경쟁자 말입니까?”
“네. 서로의 발전을 기뻐해 주고 서로를 의지해 함께 나아가는 소중한 관계요.”
“단 의원님께도 그런 분이 계셨습니까?”
“그럼요.”
무심코 질문을 던진 주초운이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단악선의 의술이 너무 독보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진성의가의 가주이신 풍 아저씨요. 어렸을 땐 늘 그분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거든요.”
아직 만나 본 적은 없지만 풍진성에 관한 소문은 그 역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동문이라고 하셨죠? 신의 님과 마의 님 아래서 함께 수학하신…….”
단악선의 눈 위로 언뜻 그리움이 떠올랐다.
“네……. 풍 아저씨는 잘 지내고 계시나 모르겠네요.”
최근 들어 이런저런 일로 연락이 드물어진 두 사람이었다.
주초운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그나저나 이제 방법을 모색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단번에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단악선이 곤혹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최근 중증 환자가 더 늘고 있습니다. 입원실의 침상이나 약재는 여유가 있지만, 반대로 손이 너무 부족합니다. 지금 의원들도 거의 한계인 상황입니다.”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최근 신마의가의 명성이 중원 전역에 퍼지면서 연일 밀려드는 환자로 인해 의원들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였다.
당장 자신만 해도 최근 잠을 한 시진으로 줄여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무공 수련할 시간조차 부족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사람은 살려야 하니까.”
피곤한 얼굴로 애써 웃는 단악선이 주초운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단악선의 눈이 휘둥그레진 것도 그때였다.
“어?”
단악선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주초운은 이쪽을 향해 웃으며 다가오는 청수한 인상의 사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주초운은 단번에 그가 자신과 비슷한 분위기를 지닌 동류의 사람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단악선이 반색하며 그를 맞았다.
“이곳엔 어쩐 일이세요? 연락도 없이.”
풍진성이 울상을 지었다.
“아이고, 곡주님. 저 좀 거두어 주십시오.”
“네?”
“이제 전 가진 것 하나 없는 빈털터리입니다.”
풍진성의 너스레에 단악선이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풍진성 뒤쪽에 시립해 있는 십여 명의 사람을 발견하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풍진성이 입을 열었다.
“뭐 하느냐? 인사 올리지 않고.”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제자인 관옥심을 필두로 그를 따르기 위해 이곳까지 함께한 진성의가의 의원들이 일제히 단악선을 향해 예의를 갖추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많은 지도 편달 바랍니다!”
단악선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풍진성을 향해 물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요?”
“보시다시피 진성의가는 이제 없습니다. 비 그을 지붕조차 남지 않은 상황인지라 그나마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곡주님밖에 없더군요.”
“설마……?”
단악선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전부 다 버리고 오신 거예요?”
단악선과 시선을 마주하며 빙그레 웃던 풍진성이 주초운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혹시 하남성 정주에서 대를 이어 명의로 칭송받던 능요불망(能療不亡) 주 대협이 아니신지요?”
주초운이 깜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제가 주초운인 건 맞습니다만 명의라는 말은 감당하기 어렵군요. 여기 계신 단 의원님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풍진성이 웃으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주 의원님 같은 분께서 곡주님 곁을 지켜 주고 계셔서 내심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풍 씨 성에 진성이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으로, 저 역시 의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아! 이제 보니 진성의가의 가주님이셨군요. 그렇지 않아도 방금 단 의원님과 가주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제 이야기를요?”
“단 의원님의 좋은 경쟁자이셨다고…….”
이번엔 풍진성이 손사래를 쳤다.
“저런. 그게 대체 언제 적 이야긴지 모르겠군요. 이제는 제가 곡주님을 따라잡기 위해 애쓴 지 오래입니다.”
그 순간 풍진성은 자신의 허리를 감싸는 작은 팔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고마워요. 아저씨.”
풍진성이 조용히 웃으며 단악선의 등을 두드렸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이제야 예전처럼 곡주님을 모실 수 있겠군요.”
그렇게 풍진성과 그를 따르던 의원들이 신마의가에 합류했다.
잠시 후 풍진성은 곧장 내원으로 향했다.
초악량과 범계위, 그리고 한설화와 인사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그들은 간단하게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단 의원이 많이 버거워하는 눈치였는데 잘됐군. 큰 결심을 했어.”
초악량의 환대에 풍진성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한설화 역시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풍진성의 합류를 환영했다.
그에 반해 유독 범계위는 마뜩잖은 눈빛을 흘리며 풍진성을 노려봤다.
단악선과 풍진성의 관계가 얼마나 애틋하고 돈독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 단 의원을 빼앗으러 온 거냐?”
“예?”
일순 당황한 표정을 짓던 풍진성이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럴 리가요. 오히려 반대지요.”
“……?”
“제 덕분에 곡주님께서는 오히려 무공 수련에 전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곡주님 환자들을 제가 전부 가로챌 생각이거든요. 그만큼 자연히 세 분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겠지요.”
“어? 그런 거였어?”
언제 심통을 부렸냐는 듯 범계위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잘 왔어, 풍 의원.”
사무심, 능소밀과도 차례대로 인사를 나눈 뒤 풍진성은 곧장 단악선의 회진에 참여했다.
그 역시 환자들을 두고 보지 못하는, 천상 의원이었기 때문이다.
함께 회진을 마친 뒤 풍진성은 단악선과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다행히 제가 치료하지 못하는 환자는 없군요. 앞으로 곡주님의 환자는 제가 담당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인수인계에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임상 기록들을 모두 넘겨주시길 바랍니다.”
“네? 하지만…….”
“개방의 홍 장로님을 통해 현재의 상황에 대해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여느 때보다 지금은 수련에 매진하셔야 할 때라는 것도요.”
“그래도 송 씨 할아버지는 치료 방법이 까다로울 텐데요?”
병세가 가장 깊은 환자를 단악선이 언급하자 풍진성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저 역시 그동안 놀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폐부의 열을 다스려 염증을 가라앉힌 뒤 기갈 된 신장의 수기를 끌어 올리는 약을 쓸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내부의 균형이 제자리를 찾게 되겠지요.”
“아! 저도 그 방법을 생각했어요.”
“환자들은 제게 맡기시고 곡주님께서는 이제 필요한 일에 집중하도록 하십시오.”
비로소 단악선은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웃을 수 있었다.
풍진성의 명성과 실력이라면 환자들을 믿고 맡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단악선이 한 사람을 언급했다.
“그래도 반드시 제가 치료를 책임져야 하는 환자가 있어요.”
풍진성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악선이 언급한 환자가 누구인지 그 역시 짐작하고 있었다.
“마침 저기 있군요.”
진료 시간을 앞두고 분주하게 준비를 서두르는 아두를 발견한 풍진성이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
“의원님!”
풍진성을 알아본 아두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부목에 의지하지 않고 두 발로 달려오는 아두의 모습에 풍진성이 탄성을 터트렸다.
그만큼 걸음걸이가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잘 지냈느냐?”
“염려해 주신 덕분에요. 의원님은 잘 지내셨나요?”
“하하. 쫄딱 망했다.”
“예?”
“그래서 당분간 이곳에 신세를 좀 질까 한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누구보다 영리하고 눈치 빠른 아두는 이내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의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