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244)
신마의선-245화(244/500)
신마의선 (245)
그날 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회의를 주재하던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황보세가 가주를 은밀히 만날 방법이 있을까요?”
“은밀하게요?”
의아한 얼굴로 반문하던 능소밀의 눈이 이내 휘둥그레졌다.
“설마 직접 만나실 생각입니까?”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서요.”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황보세가는 오랜 역사를 이어 온 가문이에요. 태산파가 무너진 이후 그들마저 흡수할 정도로 저력이 있는 명문가고요. 그런 그들이 칠절마군과 협력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얻을 이익에 비해 위험이 더 커요.”
자칫 정파 전체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쩌면 무림맹주에게 약점을 잡힌 걸 수도 있겠군요?”
사무심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지만요. 만약 그렇다면 이를 이용해 무림맹을 흔들 수 있을지도 몰라요.”
잠시 고민하던 사무심이 고개를 저었다.
“가주를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은밀하게는 힘들 것입니다.”
삼엄한 경계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신마삼존 중 한 명만 나서도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과정이 조용히 진행될 리 만무했다.
분명 한바탕 난리가 일어날 것이고, 그 소란은 고스란히 제갈연의 귀에 들어갈 터.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아쉽네요. 이럴 때 신투 아저씨가 계셨다면…….”
가두달의 경공과 은신술이라면 아무리 경계가 삼엄한 곳이라도 제집처럼 드나들 수 있었을 것이다.
은밀하게 서신을 전하거나 전언을 남기는 역할에 있어 그만 한 능력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신투? 귀영마자 그놈 말이냐?”
범계위의 반문에 단악선이 어딘가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벽면에 위치한 선반.
그 위에는 가두달이 남기고 간 섭선이 놓여 있었다.
“왜 그렇게 갑자기 사라지신 걸까요?”
단악선의 얼굴 위로 한 줄기 근심이 떠올랐다.
“부디 별일 없으셔야 할 텐데…….”
초악량이 실소했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일을 꼽으라면 가두달 그 녀석을 걱정하는 것일 게다.”
그 어떤 위기의 상황에서도 제 몸 하나만큼은 충분히 건사할 능력이 있는 위인이었다.
그때였다.
“걱정 마! 단 의원. 그런 거라면 내가 해결해 줄게.”
당당하게 외친 범계위의 말에 그 자리의 대부분이 눈살을 찌푸렸다.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 바로 범계위였다.
누구보다 눈에 띄는 덩치는 말할 것도 없었고, 성격은 더욱 조심성과 거리가 멀었다.
문제는 그 자리에서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 단악선이라는 점이었다.
“하긴, 아저씨는 뭐든 잘하시니까요.”
모두가 뜨악한 얼굴로 단악선과 범계위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기를 잠시.
“저……. 만약에 말입니다.”
능소밀이 범계위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약 잠입하시다 누군가에게 들킨다면요?”
범계위가 뭘 그렇게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태연히 대답했다.
“목을 꺾겠지? 증인을 남겨 두면 안 되니까.”
“역시……. 그렇죠?”
“황보세가의 가주만 살려 두면 되는 거잖아.”
능소밀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야 답이 없었다.
사무심이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계획을 재검토해 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무력으로 황보세가를 제압하는 게 오히려 쉬울 것 같군요.”
능소밀이 답답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만약 그리되면 애써 얻어 낸 금지의 역할이 유명무실해질 텐데요?”
단악선이 웃으며 사무심과 능소밀을 다독였다.
“에이, 두 분도 참. 농담하신 거잖아요. 그렇죠?”
“어?”
당황한 범계위가 눈을 껌벅였다.
“그, 그렇지. 농담이었어, 농담. 하하하.”
범계위가 어색하게 웃고는 사무심과 능소밀을 노려보았다.
능소밀이 울상을 지은 채 초악량과 한설화를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결국 초약량이 나섰다.
“단 의원.”
“네?”
“아무래도 그 일은 저 녀석보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게 나을 것 같구나. 분명 그 일에 걸맞은 적임자가 있을 것이다.”
“으음…….”
단악선이 고민하자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초 형! 왜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리는 거유? 사내가 쪼잔하게 질투나 하고 말이야!”
“질투? 내가?”
“단 의원을 위해 내가 뭔가 좀 해 보려 하니 샘내는 거잖수!”
“하!”
어이없다는 눈빛을 흘리던 초악량이 단악선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차라리 내가 하마. 아무리 그래도 저놈보다는 나을 것이다.”
범계위가 코웃음을 쳤다.
“흥! 또 갔다가 반송장 돼서 돌아오려고?”
“뭐, 인마!”
험악한 눈빛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모습에 능소밀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군요. 제가 해 보겠습니다.”
단악선이 의아한 눈으로 반문했다.
“아저씨께서요? 하지만 경공이나 은신이 뛰어나지 않으시잖아요. 게다가 무공도요. 적진 한가운데로 향해야 하는 위험한 일이에요.”
“해 보겠다 했지 직접 황보세가의 가주를 만난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의미였습니다. 결국 황보세가의 가주와 곡주님의 독대가 진정한 목적 아니겠습니까? 굳이 잠입이 아니어도 방법을 조금 달리한다면 아주 답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 말에 범계위가 버럭 했다.
“이 자식이 감히 어디서 내 일을 가로채려 들어?”
난데없는 살기에 능소밀이 흠칫했다.
하지만 애써 표정을 수습하며 범계위를 설득했다.
“범 선배님께서는 곡주님을 지켜 주셔야지요.”
“왜 하필 나야? 초 형이나 마녀도 있는데.”
“그래도 어디 선배님만 하겠습니까?”
“뭐?”
“선배님께서는 다른 두 분께 곡주님을 믿고 맡기실 수 있습니까? 선배님 말씀대로 두 분 다 약골…… 헉!”
능소밀은 그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범계위의 살기야 어찌어찌 겨우 버티고 있었지만 거기에 초악량과 한설화의 살기가 더해지자 눈앞이 그만 아득해졌다.
그 순간.
“역시 그렇지?”
범계위가 능소밀의 어깨에 팔을 두르더니 씨익 웃었다.
그 덕에 능소밀은 겨우 막혔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틀린 소리를 한 것도 아닌데 왜 사람을 핍박하고 그래?”
기분이 좋아진 듯 범계위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약골들에게 단 의원을 맡겨 놓을 수는 없지! 좋아, 그런 사소한 일은 네게 맡기마.”
초악량과 한설화의 눈치를 살피며 능소밀이 어색하게 웃었다.
양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하나 이미 그들에게 능소밀은 안중에도 없었다.
잡아먹을 듯이 범계위를 노려보는 두 사람의 눈빛.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분노로 이글거리는 그들의 안광에 능소밀은 그저 마른침을 삼킬 뿐이었다.
닷새 후.
한 청년이 황보세가가 자리 잡은 산동성의 한 다루를 방문했다.
헌앙한 체구에 기품 있는 분위기.
거기에 감출 수 없는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눈빛은 한눈에 봐도 명망 있는 가문의 후손임이 분명했다.
“어서 오십시오, 소가주님.”
그가 들어서기 무섭게 다루의 주인과 점소이들이 깍듯하게 예의를 갖춰 맞이했다.
그가 다름 아닌 일대를 지배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황보세가의 유일한 후계자였기 때문이다.
황보경은 고개를 까닥이며 자연스럽게 계단으로 향했다.
손님이 뜸한 이 시각, 삼 층에서 한 잔의 차를 기울이며 근처의 풍광을 감상하는 것이 그의 일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가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점소이가 차를 내어 왔다.
무심코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던 황보경이 눈살을 찌푸렸다.
차 맛이 평소와 달랐기 때문이다.
“……?”
의아한 얼굴로 찻잔을 들여다보던 그가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삼 층 누각에는 오직 그뿐이었다.
―서길(西吉)
찻잔에 쓰인 글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던 황보경이 신형을 일으켰다.
다루를 나서 말없이 걸음을 옮기던 황보경이 이윽고 인적 없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저 멀리 골목 끝에 서 있는 누군가를 발견한 황보경이 어이없다는 눈빛을 흘렸다.
“나를 부른 것이 당신인가?”
황보경의 말에 골목 끝의 사내가 천천히 돌아서더니 빙그레 웃었다.
“용케 찾아오셨군요.”
능소밀의 말에 황보경이 짧게 코웃음을 쳤다.
“서쪽 방향에서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이라면 여기가 유일하지.”
“과연 황보세가의 소가주님답게 영민하십니다. 이처럼 훌륭한 후계자를 두셨으니 가주님께서도 참 든든하시겠습니다.”
황보경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내가 누군지 알면서도 꼬드겨 냈다? 일단 당신 말대로 이곳에 왔지만 과연 길할지 흉할지는 이제부터 알아보도록 하지.”
능소밀이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능 씨 성에 소밀이라는 이름을 쓰는 자로, 신마상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신마상단?”
황보경이 움찔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살기를 피워 올리는 황보경을 향해 능소밀이 적의가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소매를 걷은 두 손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본래는 가주님을 뵙고 싶었지만, 귀가의 경비가 삼엄해 부득이 이렇게 소가주님을 만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태연한 능소밀의 태도에 황보경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차분한 눈빛으로 능소밀을 응시했다.
황보세가의 앞마당에서 이처럼 태연한 데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저희 곡주님께서 귀하의 아버님이신 가주님을 조용히 뵙길 원하십니다.”
“곡주?”
고개를 갸웃하던 황보경은 이내 한 사람을 떠올렸다.
“혹시 신마의원이라 불리는 그 꼬맹이를 말하는 것인가?”
순간 황보경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사람 좋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신 서늘한 안광을 흘리는 능소밀의 눈 때문이었다.
분명 상대는 고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눈빛에 담긴 살기는 도저히 경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스스로 무공을 자부하던 그조차 섬뜩함을 느낄 만큼 더없이 위험한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어이, 애송이.”
“……!”
“입조심해라. 영문도 모른 채 길거리에서 객사하기 싫으면.”
“가, 감히!”
“……라고, 다른 분이라면 그리 말씀하셨을 겁니다.”
언제 살기를 흘렸냐는 듯 능소밀이 생글거리며 말을 이어 갔다.
“본래 이 자리에는 제가 아닌 다른 분이 계셨어야 합니다.”
“다른 분?”
무심코 반문하던 황보경은 이어진 능소밀의 대답에 얼굴이 해쓱해졌다.
“귀하께서 혹 들어 보셨을지 모르겠군요. 망산초자라 불리는 범 선배님의 흉명을.”
“……!”
“만약 원래대로 제가 아닌 그분께서 이 자리에 계셨다면 그 말을 입에 담는 순간 소가주님의 목숨은 이미 소가주님의 것이 아니게 되었겠지요. 물론 그것만으로 끝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귀하의 가문에도 필시 한바탕 피바람이 불었을 것입니다.”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황보경을 안심시키듯 능소밀이 미소를 건넸다.
“그것만 봐도 소가주님의 오늘 운세는 매우 길하다 할 것입니다.”
“내, 내가 그런 협박에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으냐?”
“협박이라니요. 제게 그런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면 이렇게 웃으며 말하겠습니까? 곡주님을 모욕한 순간 바로…….”
말끝을 흐린 능소밀이 서늘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그 웃음 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소름 끼치는 살의에 황보경이 이를 악물었다.
“내 몸에 손대고도 네놈이 무사할 성싶더냐?”
“사실 크게 상관없습니다.”
“……?”
“어차피 한 번 죽었다 살아난 몸이라서요. 지금 사는 것도 거저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라 당장 죽어도 여한은 없습니다.”
“뭐?”
“정 믿기 어려우시다면 이 자리에서 손을 써 보시지요. 제가 눈 하나라도 깜짝하는지.”
그 말과 함께 능소밀이 무방비 상태로 황보경을 향해 다가섰다.
그렇게 서로 한 걸음의 거리를 두고 멈춰 선 능소밀이 빙그레 웃었다.
“다행히 분노에 사로잡혀 굴러들어 온 복을 걷어찰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으시군요.”
“복?”
황보경의 반문에 능소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과 가주님의 회담은 귀가에게 주어진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니까요.”
능소밀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불에 타 일부만 남은 서신이었다.
“가서 가주님께 이것을 보았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리하면 귀가에 얼마나 큰 기회가 주어졌는지 바로 알게 되실 것입니다.”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황보경을 향해 능소밀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태연히 돌아서서 멀어지는 능소밀의 모습을 황보경은 그저 황망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